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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 바디우 둘의 무대로 본 연애: 권태기·다툼 앞에서 다시 하는 사랑의 선언

📑 목차 💔 '위험 없는 사랑'을 파는 광고에서 시작하는 책 🎭 사랑을 잘못 보는 세 가지 방식, 그리고 '둘' 💌 우연을 붙잡는 선언, 그리고 '지점' 🔄 니체의 영원회귀, 불교의 집착 옆에 놓아 보면 🧭 권태기, 다툼, 미래 앞에서 스스로 물어볼 것 📚 참고 자료 💔 '위험 없는 사랑'을 파는 광고에서 시작하는 책 『사랑 예찬』은 두꺼운 철학서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대담집이었다. 2008년 아비뇽 연극제에서 니콜라 트뤼옹과 나눈 공개 대담을 다듬어 2009년 플라마리옹에서 냈고, 한국어판은 2010년 조재룡 옮김으로 도서출판 길에서 나왔다. 바디우는 첫머리에서 파리에 붙은 데이트 사이트 메틱(Meetic)의 광고 문구를 꺼낸다. 우연에 기대지 말고 사랑하라, 괴로움 없이 사랑에 빠지라는 식의 약속이다. 바디우는 이것을 사랑을 보험 상품처럼 다루는 발상으로 본다. 조건을 미리 맞추고 위험을 걸러 내면 안전은 남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내 생각 습관 하나를 떠올렸다. 연애가 힘들어지면 사람들은 쉽게 "처음부터 잘 맞는 사람을 만났어야 했다"고 말한다. 바디우 식으로 보면 이 말은 사랑을 매칭 결과로 다루는 관점이다. 그리고 그가 이 책에서 공들여 반박하는 게 바로 그 관점이다. 🎭 사랑을 잘못 보는 세 가지 방식, 그리고 '둘' 바디우는 사랑에 대한 흔한 이해를 셋으로 나누고 하나씩 물리친다. 첫째는 낭만적 융합이다. 두 사람이 하나로 녹아드는 황홀한 순간을 사랑의 정점으로 본다. 바디우가 보기에 이건 사랑의 시작을 신화로 만든 것에 가깝다. 하나가 되면 둘이 사라지고, 둘이 사라지면 세상을 둘의 눈으로 볼 수도 없다. 둘째는 계약이다.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합의로 사랑을 보는 시각이고, 메틱 광고가 여기 들어간다. 셋째는 회의주의다. 사랑은 결국 욕망에 포장을 씌운 환상일 뿐이라는 냉소다. ...

💗 사랑의 유통기한 — 설렘이 사라진 자리에서 왜 우리는 익숙해지고, 그럼에도 선택할 수 있는가

💔 그 손이 그냥 손이 됐다 3년을 사귄 사람과 마지막으로 밥을 먹던 날을 기억한다. 식탁 위엔 그가 좋아하는 된장찌개가 있었고, 나는 그의 숟가락 쥐는 방식을 보며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 처음엔 그 손이 너무 예뻐서 몰래 훔쳐보던 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손이 됐다. 아름답지도 않고, 밉지도 않은 — 그냥 식탁 위의 손. 나는 그게 사랑이 끝난 증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 뇌가 먼저 지운다 — 도파민의 절약 회로 Helen Fisher는 2005년 *Journal of Comparative Neurology*에 발표한 fMRI 연구에서, 새로운 연인을 떠올릴 때 뇌의 복측 피개 영역(VTA, ventral tegmental area)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보였다. VTA는 도파민의 주요 생산지다. 중독, 보상, 갈망 — 코카인이 건드리는 바로 그 회로다. 그리고 이 회로는 새로움에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뇌는 점점 그것을 배경으로 처리한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 부른다. Shane Frederick과 George Loewenstein은 1999년 *Well-being: The Foundations of Hedonic Psychology*에서 이 개념을 체계화했는데, 핵심은 인간이 긍정적 자극이든 부정적 자극이든 결국 감정의 기저선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Philip Brickman은 1978년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발표한 연구에서 복권 당첨자와 사고 피해자의 1년 후 행복 수준이 수렴한다는 결과를 보였다 —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뇌는 결국 평탄하게 만든다. 익숙해짐은 배신이 아니다. 진화가 설계한 에너지 절약 회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여기서 잘못된 결론을 내린다. 설렘이 사라졌으므로 사랑이 끝났다는 결론. 나도 그랬다. 하지만 설렘은 사랑의 가장 단기적인 형태다....

💔 알랭 바디우 『사랑 예찬』 연애관: 위험 없는 사랑을 거절하는 이유와 니체·붓다의 반론

📑 목차 📢 위험 없는 사랑이라는 광고 ⚖️ 바디우가 실제로 반대하는 두 가지 ⚡ 사건, 선언, 그리고 첫 번째 싸움 🪷 니체와 붓다는 바디우 편이 아니다 💌 안전하지 않게 사랑하는 몇 가지 방법 📚 참고 자료 📢 위험 없는 사랑이라는 광고 요즘 연애가 왜 이렇게 피곤한지 생각하다가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조재룡 옮김, 길)을 다시 붙들게 됐다. 바디우는 이 책을 광고 문구 이야기로 시작한다. 프랑스의 만남 주선 사이트 Meetic이 파리 곳곳에 붙인 포스터에 "위험 없는 사랑을 당신에게!"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영어판에는 "사랑에 빠지지 않고 사랑하라", "고통 없는 완벽한 사랑" 같은 문구도 실려 있다. 은유 작가는 경향신문 칼럼 「은유의 책 편지」(2021.8.6) 에서 이 대목을 소개하면서, 우연과 갈등을 걷어 낸 '위험 제로의 사랑'은 바디우가 보기에 '전사자 제로의 전쟁'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 광고는 2000년대 말 프랑스의 일이니 지금은 오래된 이야기처럼 들린다. 숫자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퓨 리서치 센터가 2022년 7월 미국 성인 6,034명을 조사한 결과 , 데이팅 사이트나 앱을 써 본 사람은 30%였고 30세 미만에서는 53%였다. 이용 경험이 좋았다는 응답(53%)과 나빴다는 응답(46%)은 거의 반반이었다. 연애 중인 사람 가운데 지금의 상대를 앱에서 만났다는 비율은 10%였는데, 30세 미만만 따로 보면 20%로 올라간다. 바디우가 포스터에서 읽어 낸 문제는 이제 꽤 많은 사람이 첫 만남을 시작하는 기본 방식이 되었다. 조건을 미리 걸러 주는 시스템에 잘못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걸리는 건 그 시스템이 우리 마음에 남기는 습관이다. 상대가 내 예측을 벗어나면 그걸 실패로 받아들이게 되고, 실패라고 판단되면 다음 프로필로 넘어가면 된다. 바디우의 말을 빌리면 이건 사랑을 보험 상품처럼 대하는...

💔 나는 그를 사랑한 게 아니었다 — 집착이 사랑처럼 느껴지는 이유

새벽 두 시.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는 척하면서 사실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뜨지 않으면 불안했고, 뜨면 또 긴장했다. 그 무렵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그토록 간절하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를 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의 시선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는 거울이었고 나는 거울 앞에서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 뇌는 집착을 사랑과 구별하지 못한다 헬렌 피셔(Helen Fisher) 팀이 2005년 *Journal of Neurophysiology*에 발표한 fMRI 연구에서, 연인을 강렬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뇌를 스캔했을 때 가장 활성화된 부위는 복측피개부(VTA)와 미상핵(caudate nucleus)이었다. 둘 다 도파민 보상 회로의 핵심이다. 같은 회로가 코카인 중독자들에게서도 동일하게 켜진다. 피셔의 결론은 단호했다: 낭만적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욕구(craving) 상태에 가깝다. 더 결정적인 건 이 상태가 불확실성에 의해 강화된다는 점이다. 상대가 일관되게 응답하면 도파민 분비는 안정되고 오히려 떨어진다. 응답이 불규칙할수록, 올 때도 있고 안 올 때도 있을수록, 보상 예측 오류(reward prediction error)가 커지고 도파민 폭발은 더 강렬해진다. 슬롯머신 원리다. 그 사람이 나를 불안하게 했기 때문에 집착한 게 아니라, 불안이 먼저였고 그 강렬한 감정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Dorothy Tennov는 1979년 저서 *Love and Limerence*에서 이 상태를 '리머런스(limerence)'라 명명했다. 그 특징 중 하나는 침습적 사고가 깨어있는 시간의 85%를 점령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15%는 자고 있거나, 다른 생각을 억누르는 데 쓰는 시간이었을 거다. 그것은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신경계가 보내는 위험 신호였다. 👁️ 나는 그를 원했던 게 아니라, 그의 시선을 원했다 볼비(Bowlby)의 애착...

💞 알랭 바디우 『사랑 예찬』 연애에 적용하기: 설렘이 끝난 자리에서 '둘의 무대'를 짓는 법

📑 목차 📱 앱이 약속하는 '다치지 않는 사랑' ⚡ 만남은 계산 밖에서 터지는 사건이다 🎭 설렘은 무상하고, 그래서 무대를 짓는다 🔁 니체의 영원회귀로 권태기를 시험해 보기 📝 오늘 밤 꺼내 볼 질문과 관계 점검표 📚 참고 자료 📱 앱이 약속하는 '다치지 않는 사랑' 데이팅앱 관련 통계를 찾아보다가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조재룡 옮김, 길)을 다시 펼치게 됐다. 2024년 포브스 헬스가 조사기관 원폴에 맡긴 설문이 있다. 최근 1년 안에 데이팅앱을 써 본 미국인 1,000명에게 물었더니, 78%가 앱 때문에 정서적·정신적·신체적으로 지친 적이 '가끔, 자주, 혹은 항상'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괜찮은 연결을 찾지 못한다'(40%)였다( Global Dating Insights ). 퓨 리서치센터의 2022년 조사를 보면 미국 성인의 30%, 30세 미만으로 좁히면 53%가 데이팅앱이나 사이트를 써 본 적이 있다( Pew Research Center ). 쓰는 사람은 많고 지친 사람도 많다. 고를 수 있는 조건은 넘쳐나는데 정작 연결은 잘 생기지 않는다. 바디우는 스와이프가 일상이 되기 전인 2009년에 이미 이 장면을 짚었다. 기자 니콜라 트뤼옹과 나눈 대담을 엮은 이 책은 파리 거리에 붙은 만남 사이트 미틱(Meetic)의 광고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이, 직업, 재산, 별자리까지 계산해서 '안전한' 상대를 골라 주겠다는 광고였다. 바디우는 이런 약속을 미군이 선전하던 '전사자 제로의 전쟁'에 빗댄다( 경향신문 ). 정밀 폭격 덕분에 아군은 한 명도 죽지 않는 전쟁이 선전 문구일 뿐이듯, 아무도 다치지 않는 사랑도 선전 문구일 뿐이라는 얘기다. 번역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타자에게서 비롯되는 시련이나 심오하고 진실된 온갖 경험을 완전히 회피하려 한다. 그러나 위험이란, 그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

💞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의 차이 — 프롬의 돌봄을 니체와 싸움 붙여 보다

📑 목차 🤔 프롬의 문장 옆에 니체를 놓았더니 불편해졌다 💓 설렘은 정말 식는가 ⚡ 니체가 돌봄에 던지는 질문 ⚠️ 그런데 창조하려는 사랑은 위험하다 🧍‍♀️🧍 머문다는 건 각자 서 있다는 것 📚 참고 자료 🤔 프롬의 문장 옆에 니체를 놓았더니 불편해졌다 에리히 프롬이 1956년에 낸 『사랑의 기술』을 다시 읽으면서, 이 책의 유명한 구분을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롬은 사랑에 처음 '빠지는(falling)' 경험과 그 뒤에 이어지는 '서 있는(standing)' 상태를 혼동하지 말라고 한다. The Marginalian의 해설 에 실린 원문을 보면, 두 사람이 서로를 잘 알게 될수록 친밀함은 "갈수록 더(more and more)" 기적 같은 성격을 잃어 간다. 그래서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기술로 보라는 게 프롬의 처방이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내가 걸린 건 프롬이 2장 '사랑의 이론'에서 사랑의 첫 요소로 꼽은 돌봄(care)이다. 프롬은 사랑을 상대의 삶과 성장에 대한 능동적인 관심으로 정의하고, 거기에 책임과 존중과 이해를 덧붙인다. 그런데 바로 이 돌봄을 정면으로 의심한 철학자가 니체다. 둘을 서둘러 화해시키기보다 한번 맞붙여 보고 싶었다. 다만 그 전에 프롬의 전제부터 확인해야 했다. 💓 설렘은 정말 식는가 프롬의 논리는 처음의 흥분이 결국 사라진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이 전제가 흔들리면 '머무는 사랑'이라는 처방도 다시 봐야 한다. 심리학자 도로시 테노브는 1979년 책 『사랑과 리머런스』에서, 상대에게 사로잡혀 그 사람의 반응 하나에 하루가 뒤집히는 상태를 '리머런스'라고 불렀다. 2021년 Journal of Patient Experience에 실린 사례 연구 가 정리한 테노브의 결과를 보면, 리머런스 한 번은 몇 주에서 수십 년까지 가기도 하지만 ...

💞 우연 없는 사랑은 왜 사랑이 아닐까: 바디우 『사랑 예찬』 둘의 무대를 니체·불교와 읽기

📑 목차 😮 철학자가 광고에 화를 낸다니 🎲 '위험'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 👥 둘이라는 관점은 어디에 있나 ⚡ 니체와 바디우는 사이가 나쁘다 🪷 무상한 마음으로 충실하기 📚 참고 자료 😮 철학자가 광고에 화를 낸다니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이 책이 광고 포스터 이야기로 시작한다는 걸 알고 조금 웃었다. 철학자가 광고에 화를 낸다니. 2000년대 파리에 붙었던 데이팅 사이트 미틱(Meetic)의 포스터다. 책 첫머리 대담에서 바디우가 옮겨 적은 문구는 이렇다. "Ayez l'amour sans le hasard!", 우리말로는 "우연 없는 사랑을 가지세요!"다. 그다음이 "사랑에 빠지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이 "고통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였다( 『사랑 예찬』 첫 대담 「위협받는 사랑」 발췌 ). 바디우는 이걸 사랑에 대한 '안전주의적 위협'이라고 부른다. 그러고는 이렇게 비꼰다. "사상자 없는 전쟁, 위험 없는 사랑. 우연도 없고, 만남도 없다." 다른 대목에서는 이걸 '모든 위험을 보장하는 보험 같은 사랑'이라고 하면서, 인터넷에서 상대를 미리 꼼꼼히 골라 두면 "이 사람이랑은 위험 없이 잘될 거야!"라고 믿게 만드는 '선전'이라고 부른다( Critiques Libres 서평 속 인용 ). 처음에 나는 이 비판을 '다칠 각오를 하라'는 말로 읽었다. 한국어 인용문들도 대개 '위험'이라는 단어를 앞세운다. 그런데 프랑스어 원문을 다시 보니 광고가 없애겠다고 약속한 건 hasard, 곧 우연이었다. 이 단어 하나 때문에 이 글의 방향을 바꿔야 했다. 🎲 '위험'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 바디우에게 사랑은 만남이라는 사건에서 시작한다. 계획에 없었고, 내가 가진 기준...

💌 나는 밥을 차렸고, 그는 말을 기다렸다 — 사랑의 언어 불일치가 조용히 만든 외로움에 대하여

🌅 도시락을 싸던 그 새벽,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헤어지고 반년이 지나서야 이상한 점이 보였다. 나는 그 관계에서 지치지 않았다는 것. 야근이 잦은 그를 위해 새벽에 도시락을 쌌고, 출장 날엔 간식 꾸러미를 챙겼고, 감기에 걸리면 해장국을 끓였다. 나는 이것들을 하면서 소진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종의 충만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알고 보면, 경고등이었다. 게리 채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는 1992년 출간 이후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고 누적 판매량 2천만 부를 넘는다. 단순 자기계발서로는 이례적인 생명력이다. 25년 이상 임상 결혼 상담을 해온 채프먼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사람마다 사랑을 주고받는 기본 언어가 다르고, 그 불일치는 서로가 충분히 사랑을 주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상대의 '사랑 탱크(love tank)'는 텅 비는 상태를 만든다. 두 사람이 최선을 다하면서 서로를 외롭게 하는 기이한 구도. 나와 그가 정확히 그랬다. 📨 수신 확인 없는 전송 — 봉사형 사랑의 구조적 결함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Acts of Service)에는 다른 언어들과 구별되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혼자서 완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말로 사랑을 전하려면 상대가 들어야 한다. 선물은 받아야 하고, 스킨십은 닿아야 한다. 하지만 도시락은 만들 수 있다 — 상대가 고마워하지 않아도, 먹지 않아도. 나는 새벽 4시에 계란말이를 말면서 회로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그 회로는 그를 통과하지 않아도 작동했다. 나는 전송만 했고, 수신 여부는 확인하지 않았다. 채프먼의 '빈 사랑 탱크' 개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날카로워진다. 그는 자신의 탱크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분명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에게 필요한 것은 직접적인 언어, "나는 지금 너를 사랑한다"는 문장이었다. 도시락은 그 문장이 아니었다. 암호화 방식이 달랐다. 더 이상한 것은, 나 역시 사랑을 ...

💞 알랭 바디우 『사랑 예찬』 연애에 적용하기: 권태를 넘어 '둘의 무대' 다시 세우는 질문들

📑 목차 📢 데이팅 사이트 광고 하나에서 시작된 철학 💍 만남, 선언, 충실성: 사랑이 '진리'가 되는 과정 🪷 불교의 렌즈: 붙드는 것과 충실한 것은 다르다 ❓ 권태가 왔을 때 던질 질문들 🔁 니체의 악마에게 하루를 물어보기 📚 참고 자료 📢 데이팅 사이트 광고 하나에서 시작된 철학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은 책보다 칼럼으로 먼저 알게 됐다. 은유 작가가 경향신문에 연재한 '은유의 책 편지'에서 이 책을 다뤘는데( 경향신문, 2021.8.6 ), 그 글이 소개한 출발점이 뜻밖이었다. 철학자가 파리에서 본 만남 알선 사이트의 광고 문구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프랑스어권 서평들에 따르면 그 사이트는 Meetic이었다. 문구는 이랬다. "위험 없는 사랑을 당신에게!" 이 책은 2008년 7월 14일 아비뇽 페스티벌의 '사상의 극장'에서 바디우가 니콜라 트뤼옹과 나눈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원서는 2009년 Flammarion에서 나왔고, 한국어판은 조재룡이 옮겨 도서출판 길에서 펴냈다. 아래 인용은 모두 칼럼에 실린 번역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바디우는 저 광고 문구를 사랑에 대한 위협으로 읽었다. 조건을 미리 맞춰 놓으면 고통 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약속인데, 그 약속이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빼 버린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은 "더 이상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삶"이다. 나와 같은 사람을 찾는 일이 아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세계를 처음부터 다시 보는 일이다. 💍 만남, 선언, 충실성: 사랑이 '진리'가 되는 과정 바디우의 틀을 조금만 정리해 두자. 그는 사랑이 만남이라는 우연한 사건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그 우연을 "사랑해"라는 선언으로 붙잡고, 그 뒤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그 선언에 충실하게 산다. 바디우는 사건·선언·충실성으로 이어지는 이 과정 전체를 '진리...

💔 알랭 바디우 사랑예찬으로 읽는 데이팅앱: 우연을 흉내 내는 스와이프는 왜 사랑을 약하게 만드나

📑 목차 🍜 국숫집에서 알게 된 것 📖 2009년의 바디우는 무엇을 비판했나 🎰 스와이프는 우연을 없애지 않는다, 흉내 낸다 🎭 '둘의 무대'에는 관객이 없어야 한다 🪷 불교는 오히려 반대편에 서지 않을까 📵 다시 우연 앞에 서 보기로 했다 📚 참고 자료 🍜 국숫집에서 알게 된 것 작년 겨울 두 달 동안 데이팅앱을 썼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엄지로 카드를 넘기는 게 어느새 버릇이 됐다. 키, 직업, 사는 동네, 담배를 피우는지. 넘긴 카드가 몇 백 장은 됐을 텐데, 실제로 만난 사람은 셋뿐이었다. 그중 한 사람과는 을지로의 작은 국숫집에 갔다. 프로필로 보면 나와 거의 모든 게 맞는 사람이었다. 대화도 막힘이 없었다. 그런데 국수가 나오고 그 사람이 젓가락을 들다가 휴대폰을 잠깐 내려다봤다. 알림 하나였고 채 1초도 안 걸렸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안심이 됐다. 저 사람도 나처럼 다음 카드가 있구나. 오늘이 별로면 우리 둘 다 돌아갈 곳이 있구나. 그 안도감이 그날 저녁을 망쳤다. 국수는 맛있었고 대화는 즐거웠는데, 둘 중 누구도 이 자리에 무언가를 걸지 않았다. 헤어지고 나서 우리는 연락하지 않았다. 거절당한 사람도, 거절한 사람도 없었다. 그냥 흐지부지 끝났다. 그때 떠오른 책이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이었다. 이 글은 그 책으로 데이팅앱을 다시 읽어 보는 기록, 말하자면 알랭 바디우 사랑예찬 데이팅앱 이야기다. 📖 2009년의 바디우는 무엇을 비판했나 바디우는 2009년 아비뇽 연극제에서 니콜라 트뤼옹과 대담을 했고, 그 대담이 이 얇은 책이 됐다(국역본은 조재룡 옮김, 도서출판 길, 2010). 1장 「위협받는 사랑」은 파리 시내에 붙어 있던 매칭 사이트 미틱(Meetic)의 광고 문구 이야기로 시작한다. "Ayez l'amour sans le hasard!" 우연 없는 사랑을 가지세요. 다른 광고에는 "사랑에 빠지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다", "고통 ...

🕯️ 사별 후 새 연애 죄책감, 그 미안함의 정체를 붓다의 경전과 니체의 악마 앞에서 다시 묻다

📑 목차 🌙 웃고 돌아온 밤에 드는 미안함, 그 정체부터 🔗 유대를 이어 가는 게 늘 좋은 건 아니었다 🪷 붓다는 사랑을 면죄해 주지 않는다 🔁 니체의 악마는 무엇을 고르라고 하지 않는다 🧭 막연한 위로 대신 구체적인 기준 몇 가지 📚 참고 자료 🌙 웃고 돌아온 밤에 드는 미안함, 그 정체부터 사별한 뒤 다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 겪는 죄책감에 관한 자료를 읽다가, 이 미안함이 정확히 누구를 향하는지 궁금해졌다. 새 사람과 웃고 돌아온 밤에 갑자기 밀려오는 그 감정 말이다. 막연하던 감정을 조금 나눠서 볼 수 있게 해 준 건 홍콩과 위트레흐트 연구진이 만든 사별 죄책감 척도(Bereavement Guilt Scale, Li 외, 2017) 였다. 연구진은 인터뷰와 문헌 검토로 문항을 모은 뒤 세 표본으로 검증했고, 다섯 요인 구조가 가장 잘 맞았다. 그 다섯은 죽음에 대한 책임감, 고인에게 상처를 줬다는 느낌,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갚지 못한 빚 같은 마음, 그리고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죄책감이다. 새 연애에서 오는 미안함은 이 가운데 몇 가지에 걸쳐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을 배신하는 것 같다"는 마음은 고인에게 상처를 준다는 느낌에 가깝고,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에 가깝다. 하나 더 눈에 띈 건 이 척도 점수가 자존감, 자기 용서와 함께 움직였다는 결과다. 상관관계일 뿐이라 인과를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새 사랑 앞에서 드는 죄책감의 상당 부분이 "그 사람만 사랑하던 나"라는 자기 그림이 흔들리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짐작한다. 어디까지나 내 짐작이고, 연구로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다. 외로움도 이 감정에 섞여 있다. 사회학자 데버라 카(Deborah Carr)가 65세 이상 사별 배우자를 추적한 2004년 연구 에서, 사별 18개월 뒤 데이트에 관심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남성 37%, 여성 15%였다. 더 흥미로운 건 6개월 시점의 ...

💔 애착 유형별 이별 후 회복 속도 — 뇌과학과 철학으로 풀어낸 고통의 이유

열아홉에 처음 이별했을 때,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수사(修辭)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실제로 가슴이 당겼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뭔가가 걸리는 느낌. 나중에야 알게 됐다. 이건 은유가 아니라 신경학적 사실이다. 2003년 나오미 아이젠버거(Naomi Eisenberger)의 fMRI 연구는 사회적 거절이 신체 통증과 동일한 뇌 영역 — 배측 전대상피질(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 dACC) — 을 활성화한다는 걸 보여줬다. 그러니 "가슴이 아프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사실이다. 뇌가 이별을 통증으로 등록한다. 2010년 드월(DeWall et al.)의 연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는데, 아세트아미노펜을 3주간 복용한 집단이 위약 집단에 비해 사회적 거절로 인한 정서적 고통을 유의미하게 낮게 보고했다. 타이레놀이 실연의 통증을 줄인다. 진통제가 마음에도 듣는다는 게 우스꽝스럽게 들리지만, 뇌가 구분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같은 통증인데 왜 누구는 석 달 만에 일상으로 돌아오고, 누구는 몇 년씩 맴도는가. 나는 오랫동안 그게 "얼마나 사랑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었다. 🧠 뇌는 이별을 금단 증상으로 처리한다 헬렌 피셔(Helen Fisher, 2010)의 fMRI 연구에서, 최근 거절당한 사람들의 뇌를 스캔하자 복측 피개 영역(ventral tegmental area, VTA) — 도파민이 생성되는 곳 — 이 여전히 활성화돼 있었다. 패턴이 코카인 금단 증상자의 뇌와 비슷했다. 관계가 끝났는데도 뇌는 그 사람을 보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공급이 끊겼으니 갈망하는 것. 이별이 금단 증상이라면, 회복 속도의 차이는 그 회로가 얼마나 깊이 새겨졌느냐의 문제다. 그리고 그 깊이는 애착 유형에 따라 다르다. 😰 불안형: 불교가 말하는 집착, 그러나 진단의 방향이 다르다 불안형은 이별 후 가장 오래, 가장 격렬하게 괴로워한다. 유년기에 주양육자의 반응이...

💭 집착과 그리움의 차이 — 넉 달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그리워한 건 그 사람이 아니었다

넉 달째 되던 새벽, 잠에서 깼는데 그 사람 향수 냄새가 났다. 정확히는 났던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코를 킁킁거리다가 혼자 피식 웃었다. 실제로 냄새가 날 리 없었다. 그 사람은 이미 다른 도시에 있었고, 내 방에는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그걸 그리움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감정을 진짜로 들여다보려던 날 밤, 이상한 걸 발견했다. 내가 그리워하는 게 정말 그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 사람의 지금 모습을 — 다른 도시에서 다른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그를 — 그리워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붙들고 있던 건 넉 달 전 어느 저녁이었다. 우리가 같이 밥을 먹던 식당의 조명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웃고 있던 — 나였다. 🪞 잃어버린 것은 그 사람인가, 그때의 나인가 집착과 그리움의 차이 에 대해 많은 말이 있다. '현실을 부정하면 집착, 현실을 수용하면 그리움'이라는 공식이 가장 흔하다. 틀린 말은 아닌데, 어딘가 핵심을 빗겨간다. 나는 그 사람이 사라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언가에 붙들려 있었다. 집착의 실제 대상은 그 사람이 아닐 수 있다. 그 사람과 함께했던 나다. 그 사람과 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깊이 보여지는 사람이었고, 별것도 아닌 농담에 배를 잡고 웃던 사람이었고, 미래 계획을 신나게 떠들던 사람이었다. 헤어지면서 잃은 건 그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존재함으로써 가능했던 '나'도 함께 사라졌다. 집착은 상대를 붙잡으려는 게 아니라, 그 상실과 함께 증발해버린 자신의 한 버전을 되살리려는 안간힘인지도 모른다. 이걸 깨달았을 때 조금 무섭고 조금 슬펐다. 그 감정이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나를 잃어버리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에. ♾️ 이 고통을 영원히 반복하겠는가 — 니체의 진단 니체는 『즐거운 학문(Die fröhliche Wissenschaft)』 341절에서 이런 생각 실험을 제안...

💔 불안형 애착유형 연애패턴: 왜 나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상처받는가

💬 상대의 읽음 표시 하나에 온 우주가 흔들릴 때 연락이 뜸해지면 나는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카톡 읽음 표시가 뜬 지 두 시간이 지나도 답이 없으면, 나는 상대가 바빠서가 아니라 나를 싫어하게 됐다는 결론부터 꺼내 들었다. 이유를 찾는 게 아니라 최악의 결론에서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그러다 답장이 오면 잠깐 안도했다가 — 다음 연락까지 또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한동안 이게 내가 더 사랑하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경험한 건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사랑이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가의 문제였다. 나는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확인받고 있었다. 그 차이가 전부였다. ⚡ 니체가 말한 '반응하는 자의 사랑'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부 「자기극복에 대하여」에서 쓴다. "살아 있는 것이 있는 곳마다 나는 힘에의 의지를 발견했다.(Wo ich Lebendiges fand, da fand ich Willen zur Macht.)" 여기서 힘에의 의지는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넘어서려는 충동, 자기 안에서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에너지다. 그런 맥락에서 애착유형 불안형 연애패턴 은 힘에의 의지가 안쪽을 향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위탁된 상태다. 내가 사랑받는지 여부가 내 존재의 가치를 결정하게 되면, 나는 더 이상 창조자가 아니라 반응자가 된다. 니체가 『도덕의 계보』 1논문에서 분석한 르상티망(ressentiment)이 이 구조와 닮아 있다. 르상티망은 자기 안에서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의 행동을 원인으로 삼아 자기 감정을 설명하는 패턴이다. 상대가 답장을 늦게 보냈다 → 나를 싫어하는 거다 →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다. 이 연쇄가 반응하는 자의 사랑이다. 같은 책 2부 「밤의 노래」에서 차라투스트라는 고백한다. "나는 빛이다; 아, 내가 밤이었으면! 그러나 이것이 나의 고독이니, 나는 빛에 둘러싸여 있다.(...

💞 연애 권태기 쾌락 적응 심리: 설렘이 식는 이유와 무상·영원회귀로 다시 보는 익숙한 사랑

📑 목차 🧩 설렘이 줄어드는 데에도 구조가 있다 ⚙️ 적응을 움직이는 두 개의 톱니 🪷 무상과 집착은 이 구조를 어디서 건드리나 🔁 영원회귀의 질문, 힘에의 의지의 방향 🧪 연구로 확인된, 바로 해 볼 수 있는 방법 📚 참고 자료 🧩 설렘이 줄어드는 데에도 구조가 있다 권태기에 관한 자료를 읽다가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문장을 하나 만났다. 리처드 루커스(Richard Lucas)가 2007년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에 낸 논문의 결론, "adaptation is not inevitable", 곧 적응은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문장이 왜 위로가 되었는지 설명하려면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는 개념부터 꺼내야 한다. 쾌락 적응은 좋은 변화든 나쁜 변화든 시간이 지나면 행복감이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는 경향을 말한다. 흔히 드는 예가 1978년 브릭먼 연구팀의 복권 연구다. 당첨자 22명의 현재 행복 점수는 4.00으로, 대조군의 3.82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점수는 오히려 3.33으로 더 낮았다. 연애 초반의 두근거림이 몇 달, 몇 년 뒤 잦아드는 것도 같은 틀로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이 틀을 법칙처럼 받아들이기 전에 짚어 둘 것이 있다. 복권 연구는 한 시점에 두 집단을 비교한 횡단 연구이고 표본도 작다. 이후 독일과 영국의 대규모 패널 자료를 분석한 루커스는 이혼이나 실직처럼 행복 수준을 오래 바꿔 놓는 사건들이 있고, 얼마나 적응하는지는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고 보고했다( Lucas, 2007, APS ). 적응은 일어나지만 그 속도와 정도는 정해져 있지 않다. 나는 권태기 이야기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한다. ⚙️ 적응을 움직이는 두 개의 톱니 그렇다면 무엇이 적응을 빠르게 하고 무엇이 늦출까. 소냐 류보머스키(Sonja Lyubomirsky)와 크리스틴 바오(Kristin Bao)는 2013년...

💔 기대를 낮추면 덜 아플까? 신혼부부 4년 연구와 철학자들이 말하는 기대하지 않는 사랑의 의미

📑 목차 🤔 기대를 낮추면 정말 덜 아플까 📜 에픽테토스가 나눈 두 개의 칸 💋 입맞춤에 관한 불편한 문장 🔄 받아들이는 것과 다시 원하는 것 🪷 붓다가 짚은 두려움의 뿌리 🛠️ 실제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 참고 자료 🤔 기대를 낮추면 정말 덜 아플까 이 주제를 붙잡고 자료를 찾다가 예상하지 못한 연구 하나를 만났다. 기대를 줄이면 관계가 편해진다는 말은 너무 흔해서 나도 반쯤 믿고 있었다. 그런데 오하이오주립대의 제임스 맥널티와 플로리다대의 벤저민 카니가 2004년 『성격 및 사회심리학 저널』에 낸 연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신혼부부 82쌍을 4년 동안 6개월마다 조사했다. 부부가 갈등을 의논하는 모습을 촬영해 문제 해결 능력도 따로 평가했다. 결과는 이랬다. 기대는 높은데 갈등을 다루는 능력이 부족한 부부는 만족도가 가파르게 떨어졌다. 같은 능력 수준에서 기대가 낮은 부부는 처음 만족도는 낮았어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반면 능력이 좋은 부부는 기대가 낮을 때 오히려 만족도가 더 빨리 떨어졌다. 맥널티는 오하이오주립대 발표 자료 에서 "배우자의 기대가 현실과 맞지 않을 때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정리했다. 이걸 읽고 나서 "기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기대의 양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답이 안 된다. 무엇에 기대를 거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그 지점에서 스토아 철학의 오래된 구분이 생각보다 정확한 도구라는 걸 알게 됐다. 📜 에픽테토스가 나눈 두 개의 칸 『엥케이리디온』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이어지는 목록이 흥미롭다. 의견, 추구, 욕구, 회피, 그리고 우리 자신의 행위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몸, 재산, 평판, 지위, 그리고 우리 행위가 아닌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MIT 인터넷 클래식스 아카이브, 『엥케이리디온』 영역본 ). 연애에 이 목록을 대 보면, 상...

💔 짝사랑이 가르쳐준 소유와 사랑의 철학적 차이, 니체 영원회귀와 신촌 카페에서 배운 사랑 이야기

☕ 신촌, 어느 카페 구석 자리 2019년 11월 셋째 주 화요일. 신촌 기차역 근처 작은 카페에서 나는 창가 자리를 원했는데 그 사람이 구석 자리를 골랐다. "여기 조명이 눈 안 아파서 좋아." 그 한마디를 나는 그 후로 이 년 가까이 곱씹었다. 정확히는 그 사람을 곱씹은 게 아니라 그 문장을 곱씹었다. 조명, 구석 자리, 화요일 오후 세 시 사십 분경 창밖으로 지나가던 마을버스 번호까지. 짝사랑이 끝나고도 한참 뒤에야 나는 물었다. 나는 그 사람을 그리워한 걸까, 아니면 그 장면을 재생할 권리를 그리워한 걸까. ♾️ 영원회귀라는 형벌 니체는 『즐거운 학문』 341번 아포리즘 "최대의 무게"에서 이런 상상을 던진다. 어느 날 밤 악마가 찾아와 말한다.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을, 크고 작은 모든 고통과 기쁨을 포함해서, 똑같은 순서로 무한히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너는 그 악마를 저주할 것인가, 아니면 "너는 신이며 나는 이보다 더 신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을 신촌 카페 장면에 대입해봤다. 만약 그 화요일 오후를 영원히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 그 대사와 그 표정과 뒤이은 이 년의 미련까지 통째로 — 나는 그러겠다고 할 수 있는가. 처음엔 그렇다고 답할 뻔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알게 됐다. 내가 반복하고 싶었던 건 그 장면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었다. 이건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 즉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그 위에 서서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힘이 아니라 르상티망에 가까웠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앙심을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계속 재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 니체는 불교를 싫어했다 — 그런데도 내겐 둘 다 필요했다 여기서 정직하게 짚어야 할 게 있다. 니체는 불교의 편이 아니었다. 『안티크리스트』 20절과 21절에서 그는 불교가 그리스도교보다 "백 배는 더 냉정하고 진실하며 객관적"이라...

💬 연인 말투 닮아가는 심리, 사랑의 증거일까: 기능어로 본 언어 스타일 매칭

📑 목차 🗣️ 우리가 '말투'라고 부르는 것은 연구자들이 재는 것과 다르다 🇰🇷 관사가 없는 언어에서 닮음은 어디에 묻어날까 👀 닮음은 좋아한다는 증거가 아니라 주의를 기울였다는 증거다 🔁 영원회귀로 보면, 닮음을 시험하는 방법이 생긴다 🪷 내 말투는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 그래서, 사랑의 증거인가 📚 참고 자료 🗣️ 우리가 '말투'라고 부르는 것은 연구자들이 재는 것과 다르다 연인끼리 말투가 닮아간다는 이야기를 자료로 찾아보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현상을 다루는 대표 연구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것을 재지 않습니다. 'ㅋㅋ'가 'ㅎㅎ'로 바뀌는 것, 같은 이모티콘을 쓰게 되는 것, 상대가 자주 쓰는 유행어를 따라 하는 것은 측정 대상이 아닙니다. 텍사스대 제임스 페니베이커와 몰리 아일랜드 연구팀이 쓴 지표는 '언어 스타일 매칭(LSM)'입니다. 대명사, 관사, 전치사처럼 내용과 상관없이 문장을 이어 주는 기능어를 두 사람이 얼마나 비슷한 비율로 쓰는지를 셉니다. 페니베이커는 Science News 인터뷰에서 기능어가 대화 주제와 무관하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의 언어적 조율을 드러낸다고 설명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어 붙이느냐를 본다는 뜻입니다. 결과는 꽤 강했습니다. 미국 심리과학협회(APS) 보도자료 에 따르면, 4분짜리 스피드데이트에서 LSM 점수가 평균보다 높았던 쌍은 그렇지 않은 쌍보다 다시 만나고 싶어 할 가능성이 거의 네 배였습니다. 연인들이 10일 동안 주고받은 메시지를 분석한 두 번째 연구에서는, 문체가 잘 맞은 커플의 약 80%가 석 달 뒤에도 만나고 있었고 덜 맞은 커플은 약 54%였습니다. 🇰🇷 관사가 없는 언어에서 닮음은 어디에 묻어날까 여기서 한국어로 말하는 사람으로서 질문이 생겼습니다. 한국어에는 관사가 없습니다. 영어의 전치사가 하는 일은 대체로 조사가 맡고, 문장의 태도는 어미가 정합...

💔 연애에서 맞춰주는 것과 나를 잃는 것의 경계 — 니체의 '베푸는 덕'과 법구경이 부딪히는 곳

📑 목차 🤝 "잘 맞춰주는 편"이라는 말이 걸리는 이유 ⛲ 니체: 두려워서 주는 건 사실 빼앗는 것이다 🪷 불교: 그 샘을 지키는 '나'가 문제라면 ⚖️ 같은 증상, 반대의 처방 📝 경계를 점검하는 다섯 개의 질문 📚 참고 자료 🤝 "잘 맞춰주는 편"이라는 말이 걸리는 이유 연애 고민 글을 읽다 보면 자기소개처럼 붙는 문장이 있다. "저는 원래 잘 맞춰주는 편이에요." 그리고 그 뒤에는 꽤 높은 확률로 이런 말이 따라온다. "그런데 요즘 너무 지쳐요." 나는 이 두 문장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궁금했다. 맞춰주는 행동은 겉으로는 다 비슷하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같이 보고, 약속 장소를 상대 동네로 잡고, 서운한 말을 삼킨다. 차이는 행동이 아니라 그 밑에 깔린 동기에 있다. 하나는 이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 맞춰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안 맞춰주면 떠날까 봐 맞춰주는 것이다. 곤란한 건 이 둘이 내 안에서도 잘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려움은 자주 배려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두 번째 마음에는 심리학이 이미 붙여 둔 이름이 있다. 신디 헤이잔과 필립 셰이버는 볼비의 애착 이론을 성인의 연애에 적용했다. 이 연구에서 '불안-양가' 유형은 상대에게 몰두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확인을 계속 원하며, 감정 기복이 큰 연애를 하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Hazan & Shaver, 1987 ). 심리학자 데이나 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친밀함을 지키려고 자기 생각과 감정을 눌러 버리는 패턴을 '자기침묵(silencing the self)'이라 부르고, 이를 재는 척도를 만들어 우울과의 관련성을 연구했다( Jack & Dill, 1992 ). 관계를 지키려고 입을 다물수록 정작 그 관계 안에 있어야 할 '나'는 희미해진다. 여기까지가 진단이다. 내가 정말 궁금한 건...

💐 사별 후 다시 연애를 시작하는 마음 — 죄책감 너머, 고인의 기억은 새 사랑과 함께 살 수 있을까

📑 목차 💭 "이래도 되나"가 설렘보다 먼저 온다 🌊 슬픔을 다 끝내야 다음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 🔗 어떤 유대가 새 사랑과 함께 살 수 있나 🌱 키사 고타미의 겨자씨, 그리고 같은 삶을 다시 원할 수 있는가 📝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물어볼 것 📚 참고 자료 💭 "이래도 되나"가 설렘보다 먼저 온다 사별한 사람이 다시 누군가를 만나는 이야기를 찾아 읽어 보면 첫 장면이 대개 비슷하다.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 기쁘기보다 먼저 멈칫한다. 웃다가 문득 미안해진다. 이 주제를 붙잡게 된 것도 그 멈칫함 때문이었다. 사랑이 끝나서 헤어진 게 아니라 사랑하는 도중에 잃어버린 사람은, 다음 사랑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숫자부터 보면 다시 짝을 찾는 일은 드물지 않다. 퓨 리서치 센터가 2014년에 낸 보고서를 보면, 2013년 기준으로 이혼이나 사별로 첫 결혼이 끝난 미국 성인 가운데 재혼한 사람은 남성 64%, 여성 52%였다. 아쉽게도 이 수치는 이혼과 사별을 합친 것이라 사별자만 따로 떼어 볼 수는 없다. 그래도 한 번 잃은 뒤에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소수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당사자는 거의 모두 자기만 유난히 이기적인 것처럼 느낀다. 이 간극이 흥미로웠다. 🌊 슬픔을 다 끝내야 다음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 "아직 다 슬퍼하지도 않았는데"라는 말 밑에는 오래된 가정이 하나 깔려 있다. 슬픔은 끝까지 통과해야 하는 터널이고, 고인과의 정서적 연결을 다 풀어야 비로소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애도 작업(grief work)' 가설이라 부르고, 1942년 보스턴 코코넛 그로브 화재의 유족을 연구한 에리히 린데만의 1944년 논문과 함께 자주 거론된다. 이 가설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연구가 마거릿 슈트뢰베와 헹크 슈트의 이중과정 모델(1999) 이다. 이들은 사별한 사람이 두 종류의 과제를 오간다고 본다. 하나는 고인과 상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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