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저당권 한 줄이 가르쳐준 스토아철학 네거티브 시각화, 최악을 미리 상상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
📜 등기부등본에 적힌 근저당권 한 줄
2021년 11월, 계약 도장을 찍기 전날 밤이었다. 전세금 2억 4천만 원짜리 집이었고, 등기부등본을 다시 한번 훑어보다가 근저당권 1억 9천만 원이 잡혀 있는 걸 봤다. 집주인 명의 대출이 전세금의 80%에 육박한다는 뜻이었다. 그날 밤 잠을 설치면서 계속 같은 생각을 굴렸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내 순위가 밀리면, 그래서 보증금을 못 돌려받으면 — 정확히 얼마를 잃는지 계산해봤다. 2억 4천에서 선순위 근저당을 뺀 나머지, 최악의 경우 전액. 그 숫자를 종이에 써놓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막연한 불안보다 구체적인 손실액이 오히려 덜 무서웠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게 스토아 철학자들이 '프라이메디타티오 말로룸(praemeditatio malorum)', 미리 나쁜 일을 그려보는 훈련이었다.
✉️ 세네카가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편지
세네카는 리옹(옛 루그두눔)이 하룻밤 사이 화재로 완전히 잿더미가 된 사건을 두고 루킬리우스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도덕 서한』 91번). 번영하던 도시 하나가 밤사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그는 운명이 우리에게서 빼앗아갈 수 있는 것들을 미리 계산해두라고 말한다. 다만 세네카가 진짜 흥미로운 지점은 다른 편지에 있다. 13번 편지에서 그는 "우리는 실제보다 상상 속에서 더 자주 고통받는다(Plura sunt quae nos terrent quam quae premunt, et saepius opinione quam re laboramus)"고 썼다. 이건 얼핏 91번 편지와 모순처럼 보인다 — 미리 최악을 상상하라면서, 동시에 상상 속 고통이 과장됐다고 경고하니까. 하지만 두 편지를 같이 읽으면 요지가 분명해진다. 세네카가 권한 건 막연히 겁내는 게 아니라, 손실을 구체적인 숫자와 장면으로 '계산'하는 작업이었다. 계산이 끝나면 상상은 더 이상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 로또 당첨자와 사고 피해자가 알려준 것
1978년 브릭먼, 코츠, 재노프-불먼이 『성격 및 사회심리학 저널』에 발표한 연구가 있다. 복권 당첨자 22명, 하반신 또는 전신마비 사고 피해자 29명, 평범한 대조군을 비교했는데, 당첨자들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TV 보기, 친구와 대화하기)에서 느끼는 만족도가 대조군보다 오히려 낮게 나왔고, 사고 피해자들이 예측한 자신의 미래 행복도는 처참할 만큼 비관적이었지만 실제로는 대조군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연구가 보여준 건 우리가 미래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강도를 심하게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근저당권을 보고 며칠간 잠을 못 잔 나 역시, 실제로 보증금을 떼였을 때의 고통을 상상 속에서 훨씬 크게 부풀리고 있었다. 미리 손실을 계산해보는 행위는 그 과대평가를 교정하는 작업에 가깝다.
⚖️ 걱정과 준비는 다르다
여기서 짚어야 할 한계가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토머스 보르코벡은 범불안장애 환자들의 '걱정'을 연구하면서, 걱정이란 언어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만약에... 만약에...")로 흘러가면서 정작 그 사건의 구체적 이미지와 감정을 회피하는 인지 과정이라고 설명했다(1998년 보르코벡·알케인·베하르의 인지적 회피 이론). 반면 임상에서 쓰이는 심상 노출 기법은 그 최악의 장면을 끝까지 구체적으로, 감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내가 등기부등본을 보고 숫자를 계산한 밤과, 그냥 "망하면 어떡하지"를 되뇌며 뒤척인 밤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전자는 손실액을 특정하고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전세보증보험 가입 여부 확인, 확정일자와 전입신고 순서 재점검)까지 따져본 것이고, 후자는 그냥 막연한 되새김질이었다. 스토아식 네거티브 시각화가 효과가 있으려면 이 구체성이 핵심이다. 흐릿하게 겁내는 건 훈련이 아니라 그냥 불안이다.
🏠 결국 그 집은
결국 나는 계약 전에 전세보증보험 가입 조건을 확인했고, 확정일자를 계약 당일 바로 받는 걸로 특약을 넣었다. 다행히 그 집은 별 탈 없이 2년을 살고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근저당권을 보고 계산기를 두드리던 그 밤이, 계약서에 특약 조항을 넣게 만든 실질적인 이유였다. 최악을 상상한 덕분에 겁을 먹은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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