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도약계좌 3년 만에 깼는데 비과세 그대로 받은 이유 (생애최초 특별중도해지 후기)

## 😰 청약 당첨되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계좌 어떡하지"였다 작년 말에 생애최초 특별공급으로 당첨 통보를 받았을 때, 기쁜 것도 잠깐이고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계약금이었다. 나는 2023년 8월에 청년도약계좌를 개설해서 월 70만원씩 3년 가까이 넣고 있던 상태였는데, 만기(2028년)까지 가려면 아직 2년이나 남아 있었다. 계약금 낼 돈이 부족한 상황이라 이 계좌를 깨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는데, 문제는 "5년 안 채우고 깨면 그동안 받은 정부기여금이랑 비과세 혜택이 다 날아간다더라"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들은 거였다. 실제로 [청년도약계좌 중도해지 비과세 요건](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청년도약계좌+중도해지+비과세+요건)이 어떻게 되는지, 방법이 있는지 직접 알아보고 은행까지 다녀온 과정을 정리해본다. --- ## 📋 특별중도해지 사유 8가지, 나는 여기 해당됐다 청년도약계좌는 원칙적으로 5년을 채워야 정부기여금과 비과세를 온전히 받는다. 하지만 서민금융진흥원 청년도약계좌 홈페이지 공지사항의 "특별중도해지 사유 및 유의사항" 항목을 보면, 아래 8가지 사유에 해당하면 5년을 못 채우고 깨도 만기해지와 동일하게 취급받는다. - 가입자 사망·해외이주 - 가입자 퇴직 - 사업장 폐업 - 천재지변 - 장기치료가 필요한 질병 - **생애최초 주택구입** - 혼인 - 출산 이 중 혼인·출산·생애최초 주택구입은 2024년에 새로 추가된 사유다(금융위원회가 2024년 6월 발표한 청년도약계좌 가입자 편의성 제고방안 관련 보도자료 기준). 나는 생애최초 주택구입에 해당했기 때문에 3년 시점에 깨더라도 5년 만기와 똑같이 처리될 여지가 있었다. --- ## 🧮 일반해지였으면 얼마나 손해였을까 — 실제 숫자로 계산해봤다 내가 헷갈렸던 부분은 "특별중도해지가 아니라 그냥 일반해지를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였다. 2024년 하반기부터...

🪞알고리즘이 편집하고 지운 얼굴도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얼굴이라 할 수 있을까, 철학적으로 따져본다

## 📸 지진 사진 한 장이 남긴 질문 2023년 2월,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 지역에 강진이 덮쳤을 때 나는 여느 때처럼 인스타그램 익스플로어 탭을 넘기고 있었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아버지가 딸의 손을 붙잡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떴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눌러 좋아요를 누르고, 곧바로 다음 게시물로 넘어갔다. 다음 게시물은 누군가의 강아지 산책 브이로그였다. 그 전환의 매끄러움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방금 본 얼굴과 지금 보는 얼굴 사이에, 알고리즘은 아무런 위계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날 이후 며칠간 피드에는 비슷한 재난 사진이 계속 올라왔다. 내가 그 사진에 오래 머물렀다는 신호를 시스템이 읽어낸 결과였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 얼굴이 내 안에 만들어낸 반응을 알고리즘에게 학습시켜주고 있었던 걸까. --- ## 💭 레비나스가 말한 얼굴은 계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레비나스+타자의+얼굴)는 1961년 저작 『전체성과 무한』에서 '얼굴(visage)'을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라 윤리적 사건으로 규정한다. 그에게 얼굴은 눈, 코, 입의 형태로 환원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나의 인식 범주에 포섭되지 않고 나를 넘어서는 무한이다. 얼굴은 침묵 속에서도 하나의 명령을 발화한다. "너는 나를 죽이지 말라"는 명령. 이후 인터뷰집 『윤리와 무한』(1982)에서 그는 이를 더 분명히 말한다. 얼굴과의 만남은 재현이나 정보 습득이 아니라, 나를 볼모로 잡는 책임의 시작이라고. 중요한 건 레비나스가 이 마주함을 철저히 신체적 근접성, 살과 목소리, 같은 공간을 점유하는 두 신체 사이의 사건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그는 표상과 얼굴을 구조적으로 대립시킨다. 그런데 우리가 화면에서 보는 것은 정확히 표상, 즉 이미지로 압축되고 편집되고 전송된 얼굴이다. 화면을 통과한 얼굴도 레비나스적 의미의 얼굴일 ...

💌 짝사랑 감정 일기 쓰는 법, 니체의 영원회귀와 붓다의 화살에 제대로 걸려버린 씁쓸한 후기

## 📖 J를 처음 만난 3월, 그 문장이 하필 341번이었다 작년 3월 둘째 주 화요일, 저녁 일곱 시. 강남의 낡은 스터디룸에서 J를 처음 만났다. 그날 발제문은 니체의 『즐거운 학문』이었고, 그중에서도 341번 잠언, 흔히 "최대의 무게"라고 불리는 그 문단이었다. 어느 날 밤 악마가 찾아와 이렇게 묻는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이 거미와 저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던 달빛 한 조각까지, 크고 작은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무수히 다시 살아야 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J는 이 문단을 소리 내 읽다가 "이 삶을 다시"라는 대목에서 반 박자쯤 목소리를 멈췄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다던 사람이었고, 아메리카노는 늘 연하게 시켰고, 손목에 가느다란 은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 멈춤 하나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날 밤 집에 와서 메모장을 열었다. 뭘 써야 할지 몰라서 그냥 날짜, 장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순간 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내가 속으로 지어낸 이야기와 실제 벌어진 팩트를 나눠 적었다. 이게 시작이었다. 감정을 그대로 두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부풀어 오르는데, 적어놓으면 신기하게 크기가 줄어들었다. --- ## 🔄 영원회귀로 일기를 다시 읽는 법 한 달쯤 일기가 쌓였을 때, 341번 잠언이 다시 생각났다. 니체가 던진 질문은 사실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테스트다. 이 하루를 그대로 무한히 반복해도 괜찮은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순간만이 진짜 살아있는 순간이라는 것. 이 기준으로 일기를 다시 읽어봤다. 4월 12일자 일기에는 J가 답장을 세 시간 늦게 보낸 날, 그 세 시간 동안 휴대폰을 스물두 번 확인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 하루를 무한히 반복해도 좋은가. 답은 명백히 아니오였다. 반대로 3월 스터디 뒤풀이에서 J가 내가 번역한 문장 하나를 소리 내 다시 읽어주며 웃었던 밤, 그날 일기에는 "이 순간이라면 몇 번이고...

📖 회사가 망하고 대출 4200만원 남았을 때, 1500년 전 죄수가 쓴 철학의 위안을 읽다

재작년 11월, 다니던 광고대행사 '그로스랩'이 문을 닫았다. 두 달치 월급이 밀린 상태로 출근했더니 사무실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대표는 연락이 끊겼고, 나는 서른다섯이었고, 전세자금대출 4200만원이 남아 있었다. 그 뒤로 일곱 달을 백수로 보냈다. 이력서를 백 통쯤 넣었을 때, 친구 책상에서 얼떨결에 집어 든 책이 [보이티우스 철학의 위안 요약](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보이티우스+철학의+위안+요약)이었다. 처음엔 제목이 너무 뻔해서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저자 소개를 읽다가 멈췄다. 이 사람, 진짜 감옥에서 죽기 직전에 이걸 쓴 거였다. --- ## ⛓️ 반역죄로 갇힌 로마 귀족이 남긴 마지막 책 보에티우스는 6세기 초 동고트 왕국에서 집정관까지 지낸 인물이다. 왕 테오도리쿠스 밑에서 승승장구하다가 524년, 반역 혐의로 파비아 감옥에 갇혔다. 재판도 제대로 못 받고 그해 처형당했다. 『철학의 위안』은 그 감옥에서, 죽음을 코앞에 두고 쓴 글이다. 철학이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를 위로한다는 설정인데, 산문과 운문이 번갈아 나오는 독특한 형식(프로시메트룸)을 쓴다. 재밌는 건 이 사람이 원래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저작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던 학자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의 논증도 감상적인 위로가 아니라, 하나씩 전제를 세우고 반박하고 결론을 좁혀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역사가들이 그를 두고 "마지막 로마인이자 최초의 스콜라 철학자"라 부르는 이유다. --- ## 🎡 포르투나의 수레바퀴, 그리고 내 대출 문자 2권에서 철학은 '포르투나(운명의 여신)'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나는 원래 이런 존재다. 오르내림이 내 본질이며, 그것이 내 놀이다. 올라가고 싶으면 올라가라, 다만 내 놀이의 규칙에 따라 다시 내려와야 할 때 그것을 억울해하지는 마라." (박문재 옮김, 『철학의 위안』, 현대지성, 2018, 2권 2장 부분 발췌)...

💔 청첩장 문자 받고 화났던 이유, 짝사랑 끝난 자리서 스토아 철학 연애관과 싸운 이야기

## 💌 청첩장 문자를 받은 날, 나는 화가 났다 작년 6월, 밤 11시 반이었다. "나 다음 달에 결혼해." 정우한테서 온 문자를 세 번 다시 읽었다. 손이 떨렸는데 슬퍼서가 아니었다. 화가 났다. 왜 화가 나는지 스스로도 이상했다. 3년 동안 나는 일요일마다 그의 안부를 물었고, 생일엔 늘 선물을 준비했고, 새벽에 울면서 전화하면 받아준 사람이었다. 그 문자를 보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내가 그렇게 해준 게 몇 번인데." 사랑이 끝났다는 슬픔보다 먼저 온 건 청구서를 못 받은 사람의 억울함이었다. 그날 밤 나는 그와 나눈 카톡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크롤했다. 3년치였다. --- ## 🏛️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 [스토아 철학 연애관](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스토아+철학+연애관)을 붙잡았지만 실패한 이유 에픽테토스의 그 유명한 구분,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누라는 말을 붙잡았다. 그의 마음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니 놓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실제로 해봤다. 연락처를 지웠다. 사진 폴더를 삭제했다. 그리고 새벽 2시에 휴지통에서 복구했다. 다음 날 다시 지웠다. 그다음 주에 또 복구했다. 세 번을 반복하고서야 깨달은 게 있다. 스토아 철학은 "이미 마음을 정리한 사람"이 정념을 절제하는 훈련법이지, 아직 원망이 펄펄 끓는 사람한테 던지는 명령어가 아니었다. 놓아야 한다는 걸 아는 것과 놓아지는 것 사이엔 내가 넘지 못하는 강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강을 스토아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 ## 🔁 니체라면 "그 고통을 다시 원해봐"라고 했을 것이다 — 근데 그게 말이 되나 그때 니체가 걸렸다. 영원회귀. 지금 이 고통스러운 3년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시 살아야 한다면, 나는 그걸 원할 수 있는가. 처음엔 웃겼다. 스토아는 감정을 절제하라 하고, 니체는 그 감정까지 통째...

🪙 KRX 금현물 vs 골드바 vs 골드통장, 세금 뭐가 제일 유리할까 (세율표 완벽 정리)

작년에 금값이 계속 오른다길래 은행에서 골드바 하나를 샀다. 그런데 결제하면서 영수증을 보니 가격의 10%가 부가가치세로 따로 붙어 있는 거다. "어? 이거 원래 이렇게 비싼 거였나" 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금 투자는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세금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같은 100만원을 투자해도 KRX 금현물로 하느냐, 골드바로 사느냐, 골드통장에 넣느냐에 따라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오늘은 [금현물 ETF 골드바 세금 비교](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금현물+ETF+골드바+세금+비교) 세율표로 딱 정리해봤다. --- ## 🏦 KRX 금현물 계좌, 세금이 없다는 게 진짜일까 먼저 헷갈리기 쉬운 것부터 짚고 가자면, KRX(한국거래소) 금시장은 '금현물' 상품이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골드 ETF'는 이것과 별개로 파생상품(금 선물)을 추종하는 상품이다. 이 둘은 세금 구조가 다르니 나눠서 봐야 한다. 증권사 계좌를 통해 KRX 금시장에서 금을 사고파는 방식은 국내 금 투자 상품 중 세금 면에서 가장 유리하다. 매매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가 아예 없고, 무엇보다 매입할 때 부가가치세 10%도 면제된다. 증권거래세도 붙지 않는다. 예를 들어 1000만원어치를 사서 1200만원에 팔았다면, 200만원의 차익이 그대로 내 손에 들어온다. 세금 관련 신고 의무도 없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다. 계좌 안에서 매매만 할 때 얘기다. 만약 실물 골드바로 인출하면 그 순간 부가가치세 10%가 부과된다. 그래서 투자 목적이면 실물 인출을 하지 않는 게 세금상 유리하다. --- ## 🪙 골드바 실물 매입, 부가세 10%부터 각오해야 한다 은행이나 금은방에서 골드바를 직접 사는 경우다. 이 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살 때부터 부가가치세 10%가 붙는다는 점이다. 1000만원짜리 골드바를 사려면 실제로는 1100만원을 내야 한다는 ...

💔 짝사랑도 유통기한이 있다: 니체와 붓다에게 물어본 3년 짝사랑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 😢 3년째 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날 작년 겨울, 친구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그 사람을 봤다. 인사만 하고 돌아섰는데, 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손끝이 떨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나 아직도 이러고 있네." 처음 마음이 생긴 게 대학교 3학년 때였으니까, 계산해보니 거의 3년이었다. 3년 동안 나는 같은 감정을 붙잡고, 놓았다가, 다시 붙잡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거다. 그날 밤 나는 궁금해졌다. [짝사랑 유통기한](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짝사랑+유통기한)이라는 게 정말 있을까. 있다면 나는 왜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감정을 냉장고에서 계속 꺼내 먹고 있었던 걸까. --- ## ⏳ 짝사랑에는 실제로 '평균 소비기한'이 있다 심리학자 도로시 테노브는 1979년 저서 『사랑과 리머런스(Love and Limerence)』에서 짝사랑에 가까운 강렬한 몰입 상태를 '리머런스'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그녀가 수백 명의 인터뷰를 분석한 결과, 리머런스 상태는 평균적으로 18개월에서 3년 사이에 자연스럽게 소멸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짧게는 몇 개월, 길어도 3년을 넘기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것이다. 인류학자 헬렌 피셔의 뇌 영상 연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짝사랑 상태의 뇌를 fMRI로 촬영했을 때, 코카인 중독자의 뇌와 유사하게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이 과다 분비되는 것을 발견했다. 문제는 이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이 원래 오래 지속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뇌는 이 고강도 흥분 상태를 길어야 1~2년 정도 유지할 수 있고, 그 이후엔 화학적으로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즉 우리가 "마음이 식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의지의 실패가 아니라 생리적으로 예정된 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나처럼 3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감정이 안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갈림길이 나온다. 짝사랑 그 ...

🍯 모든 걸 다 아는 사이는 필요 없다 —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우정이라는 쾌락, 그 놀라운 이유

## 📱 카톡 친구 800명, 정작 그날 밤엔 한 명도 못 눌렀다 작년 이맘때, 자정 넘어 갑자기 배가 뒤틀리듯 아팠다. 맹장인가 싶어 진지하게 응급실을 검색하다가, 혼자 가긴 무서워서 누구한테라도 연락해볼까 하고 카톡을 열었다. 친구 목록을 내려봤다. 800명 가까이 있었다. 대학 동기, 전 직장 사람들, 몇 번 술자리에서 만난 지인, 이름은 아는데 얼굴이 가물가물한 사람들. 그런데 그 목록에서 "지금 와줄 수 있어?"라고 물을 사람은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단체 채팅방은 열 개가 넘게 떠 있는데 말이다. 결국 나는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못하고 택시를 불러 혼자 응급실에 갔고, 대기실에서 세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 800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공허한지 계속 곱씹었다. 다행히 장염이었다. 하지만 그날 확인한 건 위장 상태보다 더 불편한 사실이었다. 나는 관계의 숫자는 넘치는데 관계의 밀도는 텅 비어 있었다. --- ## 📜 에피쿠로스가 우정을 "최고의 쾌락"이라 부른 이유 이 경험을 곱씹다가 다시 펼친 게 [에피쿠로스 우정론](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에피쿠로스+우정론)의 『주요 교설』(Kyriai Doxai)이었다. 27번째 교설에 이런 문장이 있다. "지혜가 완전한 삶의 축복을 위해 마련하는 것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을 소유하는 것이다." 흔히 에피쿠로스를 쾌락주의자로만 기억하는데, 그가 말한 쾌락은 술과 음식이 아니라 '아타락시아', 즉 마음의 동요가 없는 평정 상태였다. 그는 쾌락을 두 종류로 나눴다. 배고픔을 채우는 것 같은 순간적·동적인 쾌락과, 그 결핍 자체가 사라진 상태에서 오는 지속적·정적인 쾌락. 우정이 후자에 속한다. 맛있는 걸 먹는 즐거움은 끝나지만, 위급할 때 부를 사람이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안정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에피쿠로스가 실제로 우정을 이론으로만 말한 게 아니라, 아테네 외곽에 '정원(케포...

💌 니체와 부처에게 한 달간 검사받은 짝사랑 감정 일기 쓰는 법, 질투 점수로 나를 관찰한 기록

## 🌙 새벽 두 시, 프로필 사진을 스무 번째 확인하고 나서 7월 3일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오늘 그 사람 스토리 배경이 어디인지 알아내려고 15분 썼음. 같이 있던 사람이 나보다 편해 보였음. 질투 7/10." 이걸 쓰면서 스스로 놀랐다.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을 몇 번 했는지, 카톡 프사를 몇 번 눌러봤는지 세어본 적이 그때까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감정은 계속 있었는데 그걸 숫자로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이 일기였다. 규칙은 단순했다. 매일 세 줄. 뭘 느꼈는지, 몇 시에 그랬는지, 왜 그랬다고 생각하는지. 감상이나 다짐은 쓰지 않기로 했다. 그날그날의 데이터만 남기기로. --- ## 🏷️ 감정에 이름을 붙이면 진짜 조용해지는가 UCLA의 매튜 리버먼 교수가 2007년 학술지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한 연구가 있다. 참가자들에게 화난 표정, 무서운 표정 같은 감정적인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fMRI로 뇌를 찍었는데, 그냥 사진을 보기만 했을 때보다 "이건 화난 표정이다"처럼 감정에 이름을 붙여 말했을 때 편도체(공포·불안을 담당하는 부위) 활동이 줄어들고 대신 전전두엽 쪽이 활성화됐다. 이 현상을 affect labeling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걸 읽고 일기를 감정 라벨링 훈련처럼 썼다. "그립다" 대신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웃는 거 보고 배 아래쪽이 조여드는 느낌, 이건 질투다"라고 구체적으로 적었다. 처음 열흘 정도는 큰 차이를 못 느꼈다. 여전히 프사를 확인했고, 여전히 새벽까지 카톡 내용을 곱씹었다. 다만 다음 날 아침 그걸 숫자로 옮겨 적는 행위 자체가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감정이 나를 덮치는 사건에서, 내가 관찰하고 기록하는 대상으로 슬쩍 자리를 옮긴 거다. --- ## 🔁 니체를 소환한 건 반복 횟수 때문이었다 일기를 2주쯤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패턴이 보였다. 화, 수, 금 밤...

🏛️ 에피쿠로스는 왜 재산을 공유하지 말라고 했을까 — 정원학교의 진짜 구조와 공동체 설계 비밀

## 📦 당근마켓에 짐을 다 풀어놓고 작년에 이사하면서 당근마켓에 물건을 한 사흘 내내 올렸다. 안 입는 재킷, 사놓고 펼치지도 않은 전공서적, 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커피용품들. 물건이 하나씩 팔려나가면서 방이 비는 걸 보는데, 이상하게 홀가분한 것과 별개로 조금 허전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 감정이 뭔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작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몇 달 뒤 에피쿠로스의 '정원(케포스, Kepos)'에 대해 읽으면서였다. 다만 지금 와서 보니 그때 내가 느낀 건 미니멀리즘이라기보다는, 물건을 줄이는 것과 함께 사는 방식 자체에 대한 질문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이 글은 '비우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뻔한 이야기 대신, 에피쿠로스가 실제로 어떻게 공동체를 설계했는지를 좀 파보려 한다. --- ## 🚪 정원 대문에 붙어 있던 문구 기원전 306년,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성벽 밖에 땅을 사서 학교 겸 거주 공동체를 만든다. 세네카가 『도덕서한』 21번에서 전하길, 그 정원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나그네여, 여기 머물면 좋을 것이다. 여기서는 쾌락이 최고선이다." 아카데메이아나 리케이온처럼 귀족 자제들이 다니는 엘리트 교육기관과 나란히 놓고 보면, 이 광고 문구 자체가 이미 도발이다. 게다가 정원에는 여성(헤타이라 출신인 레온티온), 노예(뮈스) 도 정식 구성원으로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그리스 철학 공동체에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다. 여기까지만 보면 "역시 진보적인 코뮌이었구나" 싶은데, 실제 운영 방식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정반대 지점에서 흥미로워진다. --- ## 🤝 "친구의 재산은 공동의 것"이라는 말을 에피쿠로스는 거절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모든 것이 공동이다"라는 원칙으로 유명했다. 재산을 공동 소유로 묶는 방식이다. 그런데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에피쿠로스의 편지에는 ...

💔 정서적 시차: 애착유형이 아니라 마음이 도착하는 속도 차이가 관계의 진짜 온도를 결정짓는다

## 🌙 밤 11시의 온도차 작년 3월, 세 번째 데이트가 끝나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그 사람이 보낸 문자를 다섯 번쯤 다시 읽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다음엔 언제 봐요?" 짧은 한 줄이었는데 나는 답장을 쓰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좋아하는 마음은 이미 턱 끝까지 차 있었는데,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았다. 상대는 아직 세 번째 만남이라는 온도에 머물러 있는 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이 어긋남을 애착유형이라는 말로 정리하고 싶었다. 나는 불안형이라 빨리 달아오르고, 저 사람은 회피형이라 천천히 온다 - 이렇게 카테고리 하나만 붙이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몇 주 지나서 보니 그 설명은 절반만 맞았다. 진짜 문제는 유형이 아니라 속도였다. --- ## 🧩 애착유형론이 설명 못하는 부분 볼비와 에인스워스가 만든 애착이론은 사실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이론이지 '얼마나 빨리'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이론이 아니다. 안정형이든 불안형이든 회피형이든, 이 분류는 감정을 처리하는 패턴을 설명할 뿐, 그 패턴이 작동하는 속도까지 설명해주진 않는다. 두 사람이 똑같이 안정형이어도 한 명은 두 번 만나고 확신이 서고, 다른 한 명은 여섯 번은 만나야 겨우 마음을 정한다. 유형의 차이가 아니라 그냥 속도의 차이다. 로버트 스턴버그가 1986년에 내놓은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보면 이 부분이 좀 더 선명해진다. 스턴버그는 사랑을 친밀감, 열정, 헌신이라는 세 요소로 쪼갰는데, 이 세 요소가 시간에 따라 자라는 속도가 사람마다 완전히 다르다고 봤다. 열정은 초반에 빨리 타오르고 서서히 식는 반면, 친밀감은 느리게 쌓이다가 어느 시점부터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문제는 이 곡선의 기울기가 개인마다 다르다는 거다. 나는 열정 곡선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친밀감 곡선이 완만하게 올라가는 사람이었을 뿐. 애착유형은 같았어도 곡선의 기울기가 달랐던 거고, 그게 내가 ...

💰IRP 담보대출로 전세보증금 올려막기, 한도부터 금리·마진콜 리스크까지 다 파헤쳐봤습니다

## 📩 재계약 두 달 전, 집주인한테 문자 한 통 받고 작년 10월이었어요. "재계약 때 보증금 3천만 원 올려주셔야 할 것 같아요"라는 문자 한 통. 마이너스통장은 이미 한도 꽉 채워 쓰고 있었고, 신용대출은 금리가 6%대까지 붙어서 엄두가 안 났어요. 그러다 회사 재무팀 동료가 "너 IRP 있잖아, 그거 담보로 대출받으면 돼"라고 툭 던진 한마디에 처음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저도 IRP는 그냥 세액공제용 노후자금 통장인 줄만 알았거든요. --- ## 🤔 왜 IRP를 담보로 대출이 되는 걸까 이게 아무 때나 되는 게 아니에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 제2조에 나오는 '중도인출 사유'와 사실상 같은 목록에 해당해야 담보 제공이 허용됩니다. 무주택자의 주택 전세금·임차보증금 부담,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 6개월 이상 요양, 개인회생·파산 절차 개시, 천재지변 피해 정도가 대표적이고요. 이 사유들에 해당하는 가입자에 한해 적립금을 담보로 제공할 수 있게 해주는 근거가 시행령 제2조의2입니다. 저는 '무주택자의 전세보증금 인상분 부담'에 해당해서 임대차계약서와 등본, 무주택 확인서류를 은행에 냈어요. 여기서 헷갈리시는 분들이 많은데, IRP는 DC형 퇴직연금처럼 자유롭게 빼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인출·담보 제공 자체가 막혀 있고, 이 시행령이 정한 사유에 해당할 때만 예외적으로 문이 열리는 구조예요. 그래서 은행 창구에서도 서류가 안 맞으면 아예 접수 자체를 안 받아줍니다. --- ## 📊 한도는 법이 50%로 못 박아뒀다 [IRP 담보대출 한도](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IRP+담보대출+한도)가 은행마다 제각각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 제2조의2에서 '적립금의 100분의 50 이내'로 상한선이 이미 법으로 정해져 있어요. 즉 은행이 마음대로 60%, 70%까지 열어줄...

💰IRP 계좌 해지 없이 담보대출 받는 법, 은행별 한도·금리·조건 완벽 비교 (실전 후기)

## 💰 전세보증금 4천만 원 올려달라는 말에 IRP부터 떠올랐다 작년 이맘때쯤 집주인한테 전세 재계약하면서 보증금 4천만 원을 올려달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마이너스통장 한도는 이미 꽉 차 있고, 적금 깨자니 만기가 여섯 달밖에 안 남은 상태였죠.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게 회사 다니면서 8년 넘게 넣어온 IRP 계좌였어요. 적립금이 3,200만 원 정도 쌓여 있었거든요. 처음엔 그냥 해지하려고 했어요. 근데 세무사 지인한테 물어보니 기절할 뻔했습니다. 세액공제 받은 원금이랑 운용수익에 대해 16.5% 기타소득세가 한 번에 붙는다는 거예요. 3,200만 원 중 세액공제 받은 부분만 2,400만 원이었는데, 이걸 한꺼번에 정산하면 대략 400만 원 가까이 세금으로 날아가는 계산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해지 대신 담보대출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 ## ⚠️ 아무 이유로나 담보대출이 나오지는 않는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어요. [IRP 담보대출 조건](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IRP+담보대출+조건)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 제2조 1항에 명시된 사유로 한정돼 있어요. 무주택자가 본인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거나 전세·임차보증금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 본인이나 부양가족이 6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경우, 개인회생절차 개시 또는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 천재지변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 정도로 한정돼 있어요. 저는 '무주택자의 임차보증금 부담'을 사유로 신청했고, 이걸 증명하려고 확정일자 찍힌 임대차계약서, 등기부등본, 무주택 확인이 되는 지방세 세목별 과세증명서를 준비해서 냈습니다. --- ## 🏦 3곳 은행 직접 상담받고 정리한 실제 숫자 이 부분이 제일 궁금하실 것 같아서 그때 받았던 상담 내용을 그대로 옮겨볼게요. 담보인정비율은 관행상 적립금의 50% 이내로 잡히는 경우가 많았고, 은행마다 기준금리 지표와 가산금리가 달랐습니다. - KB국민은행: 코픽스 신잔액기준 +...

📱 손안의 반쪽 자아: 폰 없이 보낸 아홉 시간 사십 분, 시몽동의 개체화로 다시 읽는 스마트폰

## 🕗 아침 8시 22분, 폰이 없다는 걸 알았다 지난달 7월 셋째 주 화요일, 나는 평소보다 십 분 늦게 집을 나섰다. 지하철 3호선 개찰구 앞에서 교통카드 앱을 켜려고 주머니를 뒤졌는데 폰이 없었다. 식탁 위, 충전기 옆에 그대로 놓여 있는 게 뻔했다. 다시 집에 갔다 오면 지각이 확정이라 그냥 역무원에게 사정을 말하고 일회용 승차권을 샀다. 그날 하루가 얼마나 이상했는지 구체적으로 적어보면 이렇다. 회사 출입증이 폰 안의 QR코드라서 로비에서 십오 분을 서 있다가 지나가는 동료를 붙잡고 같이 들어갔다. 열한 시 화상회의는 링크가 팀 채팅방에 왔는데 그걸 받을 방법이 없어서 이십 분 늦게 노트북으로 겨우 접속했다. 점심 약속은 상대방 번호가 폰에만 저장돼 있어서 결국 못 갔다.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땐 도어록 비밀번호가 기억이 안 나 십 분간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그렇게 폰 없이 보낸 시간이 정확히 아홉 시간 사십 분이었다. 이상한 건 그 아홉 시간 사십 분 동안 내가 느낀 감정이 '불편'이라는 단어로는 잘 안 담긴다는 점이다. 뭔가 내가 반쪽만 작동하는 느낌, 아니 더 정확히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로 하루를 돌아다닌 느낌이었다. 그날 밤 이 감각이 이상하게 낯익어서, 대학원 시절 잠깐 읽다 만 [질베르 시몽동 개체화](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질베르+시몽동+개체화)의 책을 다시 꺼냈다. --- ## 🌱 개체는 완성품이 아니라는 이야기 시몽동은 1958년 박사논문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와 이어지는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에서 개체화(individuation)라는 개념을 다룬다. 그가 뒤집으려 한 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서구 철학이 당연하게 여겨온 전제, 즉 개체란 이미 완성된 실체이고 철학은 그 완성된 것을 나중에 설명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시몽동의 주장은 반대다. 개체는 처음부터 완결된 것으로 주어지지 않고, 언제나 '전...

💌짝사랑 들키지 않으려던 밤들, 사내 CRM 이관 프로젝트 회의실에서 니체와 붓다에게 물어본 이유

## 🚪 회의실 문 앞에서 3초를 멈췄던 이유 2019년 여름, 사내 CRM 이관 프로젝트에서 화요일 목요일 오후 2시마다 리팩토링 문서를 같이 검토하던 개발자가 있었다. 편의상 '재우'라고 부르겠다. 다른 팀 소속이라 평소엔 마주칠 일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로그인 모듈 세션 타임아웃 값을 두고 그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근데 이거 30분 맞아요? 원래는 더 길지 않았어요?" 나는 "어... 원래 60분이었는데 보안팀에서 30분으로 내리라고 해서요"라고 답했다. 별거 아닌 대답인데, 말하고 나서 회의 끝나고 화장실에 가서 물을 틀어놓고 세수를 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왜 목소리가 그렇게 올라갔지." 그날부터 나는 그의 PR 코멘트를 필요 이상으로 정독하기 시작했고, 나중엔 git log를 열어 그가 새벽 1시에 커밋을 올린 걸 보고 "이 사람 잠은 자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이게 시작이었다. 회의실 문 앞에서 들어가기 전에 3초쯤 멈추고 표정을 가다듬는 버릇이 생긴 것도 그 무렵이다. --- ## 🎭 니체라면 이 감정을 숨기는 걸 비겁하다고 했을 것이다 니체를 다시 읽으면서 걸린 건 '힘에의 의지' 자체가 아니라 '원한(르상티망)'이었다. 니체는 노예 도덕을 이렇게 정의한다. 강자가 두려워서 스스로를 '저것이 아닌 것'으로 규정하는 태도라고. 나는 내 감정 숨기기를 되짚어보다가 소름이 돋았다. 내가 티를 안 내려던 진짜 이유는 재우를 배려해서가 아니라, 거절당했을 때 동료로서의 관계까지 어색해질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온 은폐였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여기서 갈리는 지점은 '티를 내느냐 안 내느냐'가 아니다. 왜 안 내느냐다. 두려움 때문에 숨기면 그건 반응적(reactive) 태도고, 회의 준비를 더 꼼꼼히 하고 코드 리뷰를 더 성실히 남기는 식으로 계속 ...

🌿에피쿠로스 정원학파, 2300년 전 아테네가 먼저 살았던 '조용한 삶'의 진짜 의미를 다시 묻다

## 🔕 알림을 끄던 밤,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했을까 작년 가을 어느 저녁이었다. 회사 단톡방, 인스타그램, 뉴스 푸시까지 하루 종일 울려대던 휴대폰을 보다가 홧김에 알림을 죄다 꺼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밤, 개운하기는커녕 좀 허전했다. 조용해진 방 안에서 나는 뭘 놓친 기분이었을까. 요즘 유행하는 '조용한 삶(quiet living)'이라는 말도 비슷한 온도로 다가온다. 알고리즘과 비교, 성과 압박에서 벗어나 작은 삶으로 물러나자는 제안. 그런데 이걸 처음 실천한 사람들이 2300년 전 아테네에 있었다는 걸 알고 나서, 나는 이 유행어를 다시 보게 됐다. --- ## 🏛️ 아테네 변두리, 이상한 공동체 하나 기원전 306년,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성벽 밖 어딘가에 땅을 사서 학교를 세운다. 흔히 [에피쿠로스 정원학파](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에피쿠로스+정원학파)의 '정원(Kepos)'이라 불리는 곳이다. 당시 아테네 철학계의 중심이던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나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리케이온과 비교하면 이 정원은 지리적으로도, 구성원 면에서도 변방이었다. 여기엔 시민만 있는 게 아니라 여성도, 심지어 노예 신분인 사람도 함께 공부했다. 아테네 시민 남성만 정식 구성원이 될 수 있던 다른 학파들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저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0권(에피쿠로스 편)에 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다. --- ## 🙊 "숨어 살라"는 말, 사실은 반대였다 에피쿠로스의 유명한 모토 중에 "λάθε βιώσας(라테 비오사스)", 흔히 "숨어서 살라"로 번역되는 말이 있다. 나도 처음엔 이걸 '은둔형 외톨이가 되라'는 뜻으로 오해했다. 그런데 이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쓴 사람이 있다. 그리스 출신의 전기작가이자 수필가인 플루타르코스다. 그는...

💔 환승연애 말고 환승우정, 헤어진 연인과 다시 가까워지는 사랑의 새로운 형태와 이유

## 📞 헤어지고 삼 년 만에 다시 연락한 그 사람 작년 겨울, 헤어진 지 삼 년 된 전 애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직을 준비 중인데 내가 있는 업계 얘기를 좀 듣고 싶다고. 처음엔 손이 떨릴 정도로 어색했다. 카페에 앉아 두 시간 동안 이직, 연봉, 요즘 읽는 책 얘기를 하다가 헤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사람과 나 사이에 남은 감정이 미련도 애증도 아니고, 그냥 이 사람을 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자산처럼 남아 있다는 걸.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친한 후배 하나는 재작년에 헤어진 전 남자친구랑 아직도 서로 이사할 때 짐을 날라준다. "사귈 때보다 지금이 더 편해요"라고 그 애는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예능 프로그램 가 화제였던 것도 비슷한 지점을 건드렸기 때문일 거다. 그 프로그램의 재미는 사실 새 연애가 아니라, 헤어진 사람과 한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고 밥을 먹는 장면에서 나온다. 사람들이 그 장면에 유독 몰입하는 건, 우리 모두 마음 한구석에서 "이별이 곧 관계의 완전한 소멸이 아닐 수 있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 ## ♾️ 니체가 물은 건 '돌아옴'이 아니라 '긍정'이었다 니체의 영원회귀를 이 얘기에 갖다 붙이고 싶은 유혹이 크다. "관계가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는 식으로. 그런데 이건 니체를 오독하는 거다. 『즐거운 학문』 341절에서 니체가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어느 날 악마가 찾아와 이렇게 속삭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이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다시 살아야 한다면. 그 안의 모든 고통과 기쁨, 모든 사소하고 큰 일들이 같은 순서와 같은 계열로 되돌아올 것이다." 니체가 묻는 건 형태의 변형이 아니라 동일한 것의 반복이다. 그리고 그 반복을 견딜 수 있는가, 나아가 긍정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내가 이 개념에서 가져올 수 있는 건 딱 하...

💰IRP 부분인출 세금 계산법 — 퇴직금과 세액공제분 섞인 계좌는 인출 한도가 다르게 잡힌다

## 🔍 친구 계좌를 다시 들여다보다가 알게 된 것 작년 가을에 친구가 [IRP 계좌 부분인출 세금 계산법](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IRP+계좌+부분인출+세금+계산법)이 궁금하다며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는 "세액공제 받은 돈이니까 다 기타소득세 16.5%"라고 단순하게 계산해줬는데, 나중에 친구가 보내준 계좌 명세서를 다시 보니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다. 그 계좌엔 퇴직할 때 회사에서 이체된 퇴직금 원금이 절반 넘게 들어 있었고, 세액공제를 받은 자기부담금은 일부였고, 심지어 세액공제를 신청하지 않은 자기부담금도 조금 섞여 있었다. 셋 다 세금 매기는 방식이 다르다. 이걸 하나로 뭉뚱그려 계산하면 실제 세금과 꽤 어긋난다는 걸 그때 알았다. --- ## 🧩 IRP 잔액은 사실 세 덩어리로 나뉜다 국세청은 연금계좌 안의 돈을 재원별로 나눠서 관리한다. 인출할 때도 아무거나 먼저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정해진 순서가 있는데, 근거는 소득세법 시행령 제40조의3(연금계좌의 인출순서 등)이다. 순서는 이렇다. 1. **과세제외금액** —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자기부담금. 예를 들어 연 900만원 세액공제 한도를 넘겨서 추가로 넣은 돈이나, 세액공제 신청을 아예 안 한 납입분이 여기 해당한다. 이 돈은 인출할 때 세금이 붙지 않는다. 2. **이연퇴직소득** — 퇴직할 때 회사가 원천징수했어야 할 퇴직소득세를 내지 않고 IRP로 그대로 옮겨온 퇴직금 원금. 인출 시 퇴직소득세가 과세된다. 3. **세액공제받은 자기부담금 + 운용수익** — 요건을 채워 연금으로 받으면 연금소득세(3.3~5.5%), 요건을 못 채우거나 한도를 넘겨 받으면 기타소득세 16.5%가 붙는다. 인출은 항상 1번부터 순서대로 빠진다. 그래서 계좌에 과세제외금액이나 퇴직금 원금이 많이 남아 있으면, 정작 세율 높은 3번까지 손대지 않고도 필요한 돈을 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 ## ⚖️ 연금수령한도, 손익분기선은...

💔 그가 기억 못하는 책을 나 혼자 3년째 붙잡은 이유, 짝사랑 상대 결혼 소식과 마음 정리법

## 인스타 스토리 하나가 무너뜨린 것 📱💔 7월 둘째 주 화요일 밤 11시쯤이었다. 씻고 나와서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켰는데 스토리 맨 앞자리에 그 사람 얼굴이 떠 있었다. 흰 배경에 검은 세리프체로 "8월 15일, 그리고 영원히"라고 적힌 청첩장 사진. 손에서 핸드폰이 그대로 이불 위로 떨어졌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정확히는 명치 아래 어딘가가 훅 빠지는 느낌, 숨을 들이쉬는 타이밍을 놓친 사람처럼 한동안 숨을 참고 있었다. 3년 전 대학원 스터디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매주 화요일 저녁 학교 앞 카페에서 논문을 같이 읽었고, 그 사람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빌려준 게 2023년 가을이었다. "이 책 되게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라는 말을 나는 3년째 곱씹고 있었다. 그날 밤 친구 지은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 아직도 이러고 있나 봐"라고 했더니 지은이는 한참 말이 없다가 "야, 너 그 사람이랑 연락한 지 1년도 넘었잖아"라고만 했다. --- ## 민재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알게 된 것 📞 다음 날 저녁, 그 사람과 아직 연락하는 유일한 사람인 민재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뭔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뭘 확인하고 싶었는지는 통화가 끝나고서야 알았다. 민재는 결혼식 얘기를 하다가 무심코 "아 맞다 걔 요즘도 책 잘 안 읽더라, 예전부터 그랬잖아"라고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데미안 빌려줬던 것도 기억 안 하려나" 하고 흘리듯 말했는데, 민재가 되물었다. "누가 누구한테 뭘 빌려줬다고?" 진심으로 몰라서 묻는 목소리였다. 3년 동안 내가 붙잡고 있던 장면 하나를, 정작 그 장면의 주인공은 기억조차 못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나한테 준 것 같았던 어떤 의미를 사랑했다. --- ## 니체라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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