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크라시아: 알면서도 왜 못 하는가 — 의지 박약을 철학적으로 해부하다

## 🌙 자정의 유튜브, 그리고 철학의 오래된 수수께끼 자정을 넘겼다. 내일 오전 발표 자료는 절반도 완성되지 않았다. 수면 부족이 전전두엽 피질의 실행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지금 이 선택을 내일 아침의 나는 후회할 거라는 것도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 그런데도 손가락은 알고리즘이 건네는 다음 영상을 누르고 있었다. 이 상황을 철학에서는 **[아크라시아](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아크라시아)(akrasia)**라고 부른다. 그리스어로 '자기통제의 부재'. 더 정확하게는 — 더 나은 판단을 알면서도 그것에 반하여 행동하는 상태. 소크라테스부터 현대 인지과학자까지 수천 년 동안 설명을 시도했지만 아직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질문이다. --- ## 🏛️ 소크라테스가 틀렸다 — 아리스토텔레스도 곤혹스러워했다 소크라테스의 입장은 단호했다. 아크라시아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진정으로 선을 안다면, 그 앎 자체가 행동을 결정한다. 나쁜 행동은 결국 무지의 결과다 — 그 사람은 진짜로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뜻이다. 이 논리는 깔끔하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과는 완전히 어긋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7권(1147a-b)에서 이 역설을 정면으로 다룬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논리를 인정하면서도 현상 자체를 부정하기를 거부했다. 그의 해법은 '앎의 두 층위'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수면은 건강에 중요하다"는 보편 명제를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잠자리에 드는 것이 낫다"는 특수 명제를 충분히 활성화하지 못한 채 행동할 수 있다. 욕구(orexis)가 실천적 추론을 방해할 때, 앎은 있되 작동하지 않는다. 섬세한 분석이지만 메커니즘의 핵심은 여전히 흐릿하다. 욕구가 정확히 어떻게 추론을 방해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현상을 분류하지만, 그 원인 구조를 충분히 열어놓지 않는다. --- ## 🧠 데이비드슨의 분...

💔 고백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자기검증 3단계 — 짝사랑 감정 정리하는 법

## 💭 그 감정이 '진짜'라고 어떻게 확신했는가 3년 전, 나는 한 사람을 1년 넘게 좋아했다. 정확하게는, 1년 동안 내가 만들어낸 그 사람의 이미지를 사랑했다. 그가 카페에서 책을 읽던 모습, 누군가의 말에 조용히 웃던 방식 — 나는 그 파편들을 조합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그에게 투사했다. 직접 대화를 나눈 시간은 고작 몇 시간이었다. 그 일이 끝나고 나서 나는 [짝사랑 감정 정리하는 법](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짝사랑+감정+정리하는+법)을 찾아 책을 뒤졌다. 자기계발서들은 한결같이 물었다 — "상대가 나 없이 행복해도 기쁠 수 있는가?" 그 질문은 내 혼란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했다. 질문 자체가 너무 착해서,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했다.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니체의 『즐거운 학문』 §341과, 붓다의 첫 번째 설법. --- ## 🪞 1단계 — 나는 그를 원하는가, 아니면 그를 통해 완성될 나를 원하는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에서 자기극복(Selbstüberwindung)을 삶의 핵심 원리로 놓는다. "나는 그것을 사랑한다, 스스로를 넘어서 창조하려는 자를(Ich liebe den, der über sich hinaus schaffen will und so zugrunde geht)" — 차라투스트라가 나열하는 사랑의 목록 중 가장 처음 나오는 문장이다. 여기서 힘에의 의지는 타인을 제압하려는 욕망이 아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초월하려는 충동이다. 이 렌즈를 짝사랑에 대면 불편한 질문이 생긴다. 나는 저 사람 앞에서 더 나은 내가 되려 하는가, 아니면 저 사람이 이미 내 이상형의 윤곽을 채우고 있어서 안도감을 느끼는가. 전자라면 그 감정은 자기극복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후자라면 그건 거울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르시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사랑했고, 그 반영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끝내 이해하지...

🧬 감정의 계보학: 수치심·질투·그리움은 어디서 왔는가

## 🤔 이 감정, 정말 내 것인가 며칠 전 지인의 SNS에서 해외여행 사진을 봤다. 노을이 지는 해변, 웃는 얼굴들. 스크롤을 내리면서 뭔가 불쾌한 것이 차올랐는데, 정확히 무엇인지 규정이 안 됐다. 부럽다는 건지, 나 자신이 초라하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지금 내 삶에 대한 막연한 불만인지. 그 감정들이 서로 엉켜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걸 '내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솟아오른 것처럼. 그런데 최근 니체와 푸코의 계보학을 읽으면서 그 확신이 흔들렸다. --- ## 🔍 계보학: '언제부터?'라고 묻는 방법론 니체는 1887년 《도덕의 계보학》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선하다'는 감각은 원래 어디서 왔는가?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다. 선함은 영원한 진리가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투쟁 속에서 승리한 쪽이 붙인 이름이다. 강자의 '좋음'이 먼저 있었고, '악함'이라는 개념은 힘없는 자들의 원한(르상티망)이 역전시킨 결과라고 그는 주장한다. 푸코는 이 방법을 더 구체적으로 발전시켰다. 그에게 계보학이란 '기원'을 찾는 작업이 아니라, 어떤 개념이나 감정이 어떤 권력관계와 제도 속에서 현재의 형태를 갖게 됐는지 추적하는 작업이다. 기원에는 순수한 본질이 없다. 있는 건 다만 갈등, 우연, 그리고 반복이다. 이 방법을 감정에 적용해 보자. 수치심, 질투, 그리움. 이것들은 정말 보편적 인간 감정인가, 아니면 특정한 역사적 조건이 빚어낸 구성물인가. --- ## 😳 수치심: 식탁에서 배운 자기감시 수치심이 타고난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1939)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편다. 중세 유럽 귀족들은 공동 식탁에서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고, 소리 내어 트림하고, 뼈를 바닥에 던졌으며, 이런 행동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 당시의 예법서들이 "남이 먹은 뼈를 접시에 돌려놓지 ...

📉 스태그플레이션 수혜주: 2022년에 직접 돈 잃고서야 이해한 것들

## 💸 내가 2022년에 리츠 샀다가 40% 날린 이야기 그해 봄, 나는 스태그플레이션 대비를 한다며 프롤로지스(PLD)를 샀다. 논리는 이랬다. 임대료는 CPI에 연동되고, 이커머스 물류 수요가 폭발하고 있으니 실물 자산인 리츠가 인플레이션을 방어해준다고. 당시 PLD는 아마존·쿠팡 물류창고 임대료를 연 10~15%씩 올리고 있었다. 이 얼마나 완벽한 헤지냐. 그해 말, PLD는 -43%였다. 아메리칸 타워(AMT)도 -36%. 논리는 맞았는데 돈을 잃었다. 이 경험이 [스태그플레이션 수혜주](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스태그플레이션+수혜주)를 제대로 이해하는 출발점이 됐다. --- ## 📌 스태그플레이션이 그냥 인플레이션과 다른 이유 딱 하나 리츠가 망한 이유는 단순하다. 리츠는 인플레이션 헤지가 맞다. 그런데 스태그플레이션 헤지는 아니었다. 차이가 뭐냐. 금리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오면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으러 금리를 올린다. 2022년 연준은 기준금리를 0.25%에서 4.5%까지 올렸다. 금리가 오르면 할인율이 오르고, 할인율이 오르면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가 줄어든다. 리츠는 결국 미래 임대료의 현재가치다. 임대료가 10% 오른다고 해도, 할인율이 4%p 뛰면 주가는 내려간다. 산수가 안 된다. 금도 같은 이유로 2022년에 연간 -1.5%였다. 금에는 이자가 없으니 실질금리가 오를수록 들고 있을 이유가 줄어든다. 인플레이션만 있으면 금·리츠가 작동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거기다 금리 충격을 얹는다. 이 둘은 다른 시나리오다. --- ## 📈 2022년에 실제로 올랐던 것, 그리고 그게 항상 통하지 않는 이유 그해 S&P 500은 -19.4%였다. 플러스를 낸 섹터는 하나뿐이었다. 에너지(XLE +65.7%). 엑손모빌 +87%, 쉐브론 +53%. 한국도 에쓰-오일이 +45%대였다. 왜 에너지만 올랐냐. 공급 충격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이 줄었는데 수요는 ...

💔 짝사랑 상대가 나를 피할 때: 거리가 당신에게 보내는 7가지 신호와 해탈로 가는 한 걸음

## 💬 거리라는 언어를 나는 너무 늦게 배웠다 메시지를 보내고 핸드폰을 뒤집어 놓는 버릇이 생겼다. 뒤집어야 읽음 표시를 못 보고, 못 봐야 덜 기다리는 것 같아서. 여섯 시간 후에 '응'이라는 한 글자가 왔을 때, 나는 그걸 받아들이는 대신 해석하려 했다. 피곤했겠지. 바빴겠지. 원래 말수가 적잖아. 불교에서는 이런 인지 패턴을 '명(名, nāma)'이라고 부른다. 현상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 안에 갇히는 것. 나는 '응' 한 글자에 수십 가지 이름을 붙이며 거기에 의미를 욱여넣었다. 정작 그 신호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보지 않으려 했다. 거리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조금씩 온다. [짝사랑 상대가 나를 피할 때](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짝사랑+상대가+나를+피할+때)도 그렇다. 그 조금들을 나는 매번 다른 이름으로 무마했다. --- ## 📋 7가지 신호 — 거리가 말하는 방식 첫 번째는 **답장 텀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처음엔 몇 분이었다. 어느 날부터 한 시간이 되고, 그다음엔 하루가 됐다. 중요한 건 이게 내용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진지한 이야기도, 아무 의미 없는 밈 하나도 똑같이 늦게 온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두 번째는 **답장이 짧아지는 것**이다. 이전엔 내 말에 이어 자기 얘기를 보탰다. 지금은 'ㅋㅋ', '맞아', '👍' 같은 것들이 온다. 대화를 잇지 않는다. 끝내는 것이다. 짧은 답장은 철수의 문법이다. 세 번째는 **단둘이 만나는 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약속을 잡으면 "다른 친구도 같이 와도 돼?"가 나온다. 세 번 이상 반복되면 그건 우연이 아니다. 상대는 지금 사람을 완충재로 쓰고 있다. 단둘이 마주하는 무게를 피하기 위해. 네 번째는 **눈 맞춤이 짧아지는 것**이다. 예전엔 내가 먼저 눈을 피했다. 이제는 반대다. 이...

💸 공모주 환불금 받고도 다음 청약 자금이 부족한 이유 - 배정 주식 담보로 잡히는 돈의 흐름

공모주 청약을 몇 번 해보면 누구나 비슷한 착각을 한다. 환불금이 D+2에 돌아오면 그걸 그대로 다음 청약에 넣으면 된다는 생각. 나도 작년 봄까지 그렇게 믿었다. 공모가 5만 원짜리 공모주에 100만 원을 증거금으로 넣고 균등 5주를 배정받았는데, 환불금 87만 5천 원이 제대로 들어왔다. 그런데 며칠 뒤 열린 다음 공모주 청약 화면을 열어보니 청약 가능 금액이 62만 원이었다. 25만 원이 어딘가에 묶여 있었다. 고객센터에 전화하니 직원이 말했다. "배정 주식 평가액이 담보로 잡혀 있어서요." 그날 처음 알았다. 환불금과 배정 주식은 전혀 다른 흐름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 ## 💰 환불금이 들어와도 청약 가능 금액이 줄어드는 이유 공모주 청약의 현금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자금이 두 층위로 나뉜다. 첫 번째는 환불금이다. 배정받은 주식의 증거금을 뺀 나머지가 청약 마감 D+2 영업일에 계좌로 돌아온다. 이 돈은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두 번째가 문제다. 배정된 주식에 해당하는 증거금, 즉 '배정 주식 수 × 공모가 × 증거금률(통상 50%)'만큼은 상장 전날까지 사실상 동결된다. 증권사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이 금액은 '담보' 혹은 '청약 불가 자산'으로 분류돼 다른 공모주 청약에 재사용할 수 없다. 앞서 예시로 돌아가면, 5주 배정에서 묶이는 금액은 5주 × 5만 원 × 50% = 12만 5천 원이다. 환불금 87만 5천 원에서 이 금액을 빼면 62만 5천 원 — 내가 봤던 숫자와 정확히 일치했다. 배정 규모가 크거나 증거금이 수천만 원대라면 이렇게 묶이는 금액도 수십만 원을 넘는다. --- ## 📅 공모주 일정표에서 놓치기 쉬운 날짜 환불금은 D+2에 오지만, 배정 주식에 묶인 돈은 상장 후 주식을 매도해야 비로소 자유로운 현금이 된다. 청약 마감일부터 상장일까지 통상 7~10 영업일이 걸리는데, 이 기간 안에 다른 공모주 청약이 열리면 자금이 꼬인다. 일정을 의식...

🔥 스피노자 코나투스로 번아웃 사회를 읽기 — 살아남으려는 욕망이 도덕이 되는 철학적 이유

## 🫀 몸이 먼저 알았다 몇 년 전, 나는 이상한 종류의 피로를 경험했다. 게으름이 아니었다. 정반대였다.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오늘도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눈꺼풀보다 먼저 떠올랐다. 커피를 마셨고, 회의에 들어갔고, 마감을 넘겼다. 잘 기능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내가 누구를 위해 이것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몸이 계속 움직이는데 '나'라는 주체가 거기 없는 기분. 그것이 번아웃이었다. 이 경험을 설명하려고 여러 언어를 빌렸다. 심리학은 '소진'이라 했고, 자기계발은 '회복력'을 처방했다. 그런데 가장 정확하게 내 상태를 짚어준 것은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였다. 바뤼흐 스피노자는 『에티카』 3부 정리 6에서 이렇게 썼다: *"각각의 사물은 자신의 역량이 미치는 한, 자기 존재 안에 머물려 한다(Unaquaeque res, quantum in se est, in suo esse perseverare conatur)."* 이 한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멈췄다. 살아남으려는 충동. 그것이 각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 그렇다면 번아웃은 단순한 과로가 아니다. 무언가가 그 충동의 회로를 비틀어놓은 것이다. --- ## 🎯 코나투스: 존재가 스스로에게 거는 베팅 스피노자가 '코나투스(conatus)'라 부른 이 개념은 단순한 생존 본능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론적 주장이다. 모든 사물—돌멩이도, 식물도, 인간도—은 자기 자신으로 계속 있으려는 내적 경향성을 가진다. 인간의 경우 이 충동은 욕구(appetitus)가 되고, 그것을 의식하면 욕망(cupiditas)이 된다. 스피노자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이 사실 진술에서 가치 판단을 끌어낸다. 존재가 자신을 보존하려는 방향으로 판단하는 것이 '선(善)'의 기준이 된다. 신학적 명령이나 사회적 규범이 아니...

💌 짝사랑 들키지 않는 감정 관리법 — 니체와 불교가 알려준 억누름 없이 마음 다루는 기술

버스 안에서 핸드폰을 봤다. 카카오톡 알림. 그 사람 이름. 내용 미리보기에는 '맞다, 그 파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업무용 메시지였다. 나는 0.3초 동안 온 얼굴이 환해졌다가, 다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옆자리 사람이 봤을 수도 있었다. 8개월째 이 짓이다. ## 💭 억누름과 담아둠은 다르다 [짝사랑 들키지 않는 감정 관리법](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짝사랑+들키지+않는+감정+관리법)을 찾는 사람이 가장 먼저 시도하는 것은 억누름이다. 표정 관리. 목소리 톤 조절. '아무렇지 않아 보이기.' 근데 억누름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감정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라 겉으로 새어나오는 통로를 막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압이 높아진다. 결과는 역설이다 —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더 들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불교는 이것을 다르게 설명한다. 집착(執着)을 끊으라는 말은 '감정을 없애라'가 아니다. 팔리어로 'upādāna', 집착은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에 매달리는 행위다.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을 때 문제는 감정이 아니라, '이 감정이 있으면 안 된다'고 저항하는 마음이다. 그 저항이 오히려 감정을 단단하게 만든다. 담아둠은 다르다.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것이 표정이나 행동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도록 사이에 공간을 두는 것이다. 그 공간이 어떻게 생기는지는 뒤에 설명하겠다. --- ## ⚡ 니체가 묻는다 — 이 감정의 주인이 누구냐고 니체의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를 '강해지고 싶은 욕망'으로 이해하면 절반만 맞다. 더 정확히는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충동'이다. 니체에게 감정을 숨기는 행위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 다른 하나는 두려움 때문에 감정 자체를 부정하는 것. 앞은 힘의 표현이고, 뒤는...

🧠 슬픔의 문법: 언어가 다르면 슬픔도 달라진다

몇 해 전, 독일인 친구에게 이별 직후의 감정을 설명하려다 멈췄다. "슬프다"고 하면 너무 단순했다. 내가 실제로 느낀 건 슬픔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억울함이었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기묘한 부유감이었고, 그 사람이 없는 세계가 구조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이상한 확신이었다. 결국 "It's complicated"라고 했고,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이 이해인지 체념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 경험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내가 번역에 실패한 건 단순히 언어의 한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 감정 자체가 한국어라는 언어 안에서만 가능한 형태로 존재했던 걸까? --- ## 🧠 감정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감정을 몸 안에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로 생각한다. 슬픔이 가슴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고, 언어는 그것에 이름을 붙일 뿐이라고. 하지만 보스턴대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은 이 가정을 뒤집는다. 그녀의 "감정 구성 이론(Constructed Emotion Theory)"에 따르면, 뇌는 신체 신호를 받아 그 순간 동원할 수 있는 개념적 틀로 감정을 '예측'하고 '구성'한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공포인지 흥분인지를 결정하는 건 맥박이 아니라 뇌가 그 맥락에서 가져오는 감정 범주다. 이 이론이 더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네덜란드 심리학자 바트야 메스퀴타(Batja Mesquita)의 작업을 만날 때다. 2022년 출간된 《Between Us: How Cultures Create Emotions》에서 메스퀴타는 서양 심리학이 전제해온 감정 모델을 문제 삼는다. "감정은 개인 내부에서 발생해 외부로 표출된다"는 'MINE' 모델이 실은 개인주의 문화의 특수한 감정 문법이라는 것이다. 많은 비서양 문화권에서 감정은 개인의 내면 사태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상황 안에서...

💙 거리를 두는 사람의 철학 — 회피는 두려움이 아니라 자기보호다

## 💬 답장하지 않은 문자 하나 2년 전 여름이었다. 그 사람이 "나 보고 싶어"라고 보냈을 때, 나는 화면을 30분쯤 바라보다가 전화기를 뒤집어 놓았다.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그 짧은 문장이 문에 달린 손잡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 돌리면 뭔가가 열릴 것 같아서, 나는 돌리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스스로를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회피형 애착이라는 개념은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 이론에서 파생됐다.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가 1970년대 낯선 상황 실험(Strange Situation Test)에서 처음 분류한 유형으로, 엄마가 방을 나가도 울지 않고 돌아와도 반기지 않는 아이들을 설명한다. 냉담한 게 아니었다. 코르티솔 수치를 측정해보니 내면의 스트레스가 오히려 더 높았다. 반응을 끄는 법을 일찍 배운 것이다. 회피형 어른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 친밀감이 가까워질수록 내면에서 경보가 울리고, 그 경보를 끄기 위해 거리를 만든다. 이 패턴이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건, 그것이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기 보존의 논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 ## ⚡ 니체가 말한 것: 힘에의 의지는 도망이 아니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는 남을 지배하려는 충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초월하려는 생명력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나는 너희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핵심은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회피형 반응을 이 맥락에서 놓으면 불편한 진실이 드러난다. 니체라면 아마 회피를 비겁하다고 했을 것이다 — 적어도 그것이 반응적(reactive)인 한에서는. 니체가 가장 경멸했던 태도가 르상티망(ressentiment)이다. 과거의 상처에 대한 반응으로 자신을 가두는 것. 누군...

🏠 역모기지론 수령 조건, 60대 조건별 실전 시뮬레이션 총정리

## 🧮 아버지가 계산기를 두드리던 날 아버지가 한국주택금융공사 홈페이지를 처음 열어본 건 퇴직 1년쯤 지난 2022년 초였다. 퇴직금이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고, 국민연금은 63세가 돼야 나온다는 게 실감 나면서 "집이라도 써먹어야 하나"는 말이 나왔다. 예상조회 결과는 이랬다. 서울 은평구 아파트, 공시가격 4억 2천만 원, 65세 가입 기준 월 수령액 약 97만 원. 아버지는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라고 했다. 나는 그 숫자가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97만 원이라는 금액 자체가 아니라, 그게 '지금의 97만 원'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 ## 💸 종신 정액형 30년, 실제로는 얼마짜리 돈인가 주택연금의 기본 상품인 종신 정액형은 살아있는 한 동일한 금액을 평생 받는다. 집값이 올라도, 물가가 올라도 금액은 고정이다. 65세에 월 97만 원을 받기 시작했다고 치자. 물가 상승률 연 2%를 적용하면 실질 구매력은 이렇게 쪼그라든다. - 10년 후(75세): 97만 원 × 1/1.02^10 = **약 80만 원어치** - 20년 후(85세): 97만 원 × 1/1.02^20 = **약 65만 원어치** - 30년 후(95세): 97만 원 × 1/1.02^30 = **약 53만 원어치** 오늘의 97만 원이 30년 뒤엔 53만 원짜리 생활비가 된다. 한국은행의 장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평균 2~2.5%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건 비관적 시나리오가 아니라 현실적 계산이다. 이 맹점을 피하고 싶다면 증가형 옵션이 있다. 초기 수령액은 낮지만 매년 3%씩 오른다. 같은 조건에서 증가형을 택하면 시작은 약 66만 원이지만, 10년 후 89만 원, 20년 후 119만 원이 된다. 물가를 어느 정도 상쇄하고 장수할수록 유리하다. 단, 80세 이전에 사망하면 정액형보다 총 수령액이 적다. 건강 상태와 가족력을 따져서 골라야 하는데, 조회 페이지에서 이 두 가지를 나란히 비교해보는 사람은 많지 ...

💜 짝사랑 티 안 나게 감정 정리하는 법: 고백도 포기도 아닌 니체와 부처의 세 번째 방법

## 💭 나는 그 사람의 이야기에서 목적어였다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그날 열세 번째였다. 새로운 게시물은 없었고, 어제 올린 사진의 좋아요가 231에서 234로 늘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숫자를 보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잠깐 멍해졌다. 그 사람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길 바랐고, 동시에 그 사람이 나를 절대 알아채지 못하길 바랐다. 모순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도 하루에 열세 번씩 그 사람의 SNS를 확인했다. 짝사랑을 정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들 한다. 고백해서 결과를 받거나, 포기하고 잊거나. 나는 둘 다 선택할 수 없었다. 고백은 지금 이 감정을 망가뜨릴 것 같았고, 포기라는 말은 너무 의지적이었다—뭔가를 그만두려면 그게 여전히 내 안에서 힘을 쓰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짝사랑 티 안 나게 감정 정리하는 법](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짝사랑+티+안+나게+감정+정리하는+법)을 찾기 시작했다. 철학책을 뒤적이다 보니, 두 사람이 거기 있었다. 니체와 부처. --- ## 🎯 고백도 포기도 결국 '그 사람'이 주어다 어느 날 그 사람이 내 농담에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기억하기 위해 속으로 그 장면을 세 번 반복 재생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이야기에서 행위자는 누구인가?* 행동하는 쪽은 그 사람이었다. 웃는 것도, 연락하는 것도, 관심을 주는 것도. 나는 그것을 기다리고, 수집하고, 해석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인데 내가 목적어였다. 고백을 하면 주어가 바뀔까? 아니었다. "그 사람이 나를 받아줄 것인가"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포기를 하면? "그 사람을 잊으려는 나"가 여전히 그 사람을 축으로 공전한다. 어느 쪽이든 결국 그 사람이 이야기의 중력이다. 나는 그 중력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 ## ⚡ 니체가 말한...

💸 월급날 돈이 자동으로 쪼개진다 — CMA통장 자동이체 세팅 루틴과 함정 3가지

## 💸 월급날 앞이 두려웠던 이유 솔직히 말하면 나는 꽤 오래 '돈 관리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레이블을 스스로에게 붙이고 살았다. 월급날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건 좋은데, 2주만 지나면 어디 간지도 모르게 녹아 있었다. 가계부도 써봤고, 봉투 예산법도 해봤다. 전부 3주를 못 넘겼다. 그러다 동생이 "CMA에 월급 받고 자동이체 걸어놓으면 그냥 된다"는 말을 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통장 쪼개기는 재테크 카페에서 수백 번 본 얘기고, 새로울 게 없어 보였다. 근데 막상 세팅해보니 기존 은행 통장 관리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아무도 먼저 알려주지 않아서 내가 직접 부딪쳤던 함정들도. --- ## 📋 CMA 자동이체 루틴, 실제로 어떻게 생겼나 내가 쓰는 구조는 단순하다. 급여 계좌를 한국투자증권 CMA-RP(환매조건부채권형)로 지정했고, 월급이 들어오는 날 +1일 차에 3개 계좌로 자동이체가 나간다. - **생활비 통장(카카오뱅크)** — 월 150만 원 (식비·교통·잡비 포함) - **고정지출 통장(토스뱅크)** — 월 70만 원 (카드값·보험료·통신비 합산) - **투자 계좌(미래에셋증권 CMA-MMF)** — 월 50만 원 (ETF 매수용 대기 자금) CMA 본통장에는 비상금과 이달 남은 여유분이 그대로 쌓인다. 한국투자증권 CMA-RP 기준 현재(2026년 7월) 연 3.3% 수준이니까, 300만 원을 한 달 굴리면 약 8,200원의 이자가 붙는다. 은행 입출금 통장 연 0.1%와 비교하면 33배다. 액수보다 이 구조가 만들어주는 습관이 핵심이다. 이체일을 월급날 당일이 아니라 **+1일**로 잡은 건 이유가 있다. 기업 급여 처리 특성상 입금 후 CMA 계좌 반영까지 수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 당일 이체를 걸어두면 잔액 부족으로 이체가 조용히 실패한다. 은행과 달리 증권사 CMA는 실시간 입금 처리 시스템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

🌀 손이 먼저 움직였다—하이데거의 심오한 권태에 대하여: 시간의식과 현존재의 권태 세 층위

## 🤚 손이 먼저 움직였다 몇 주 전 일요일 오후, 마감 글도 없었고 밀린 청소도 끝낸 상태였다. 저녁 약속도 없었다. 완벽하게 비어 있는 시간이었다. 소파에 앉아 십오 분쯤 지났을 때, 손이 저절로 핸드폰 쪽으로 갔다. 내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 그냥 갔다. 그 순간 나는 멈췄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싶어서 이걸 집은 거지?" 답이 없었다. 원하는 것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루함도 피곤함도 아닌, 이상하게 낯선 상태였다. 그게 권태였다. 하지만 내가 이름 붙일 수 있는 종류의 권태가 아니었다. --- ## 🧠 하이데거가 구분한 권태의 세 층위 마르틴 하이데거는 1929~30년 겨울 강의 『형이상학의 근본 개념들』에서 권태를 세 층위로 나눈다. 첫 번째는 '무언가에 의해 지루해지는' 권태다. 기다리는 기차가 늦거나, 긴 강연이 지루한 것. 원인이 특정되고, 원인이 사라지면 권태도 사라진다. 두 번째는 '무언가와 함께 지루해지는' 권태다. 재미없는 파티에 참석해서 어색하지 않으려고 자리를 지키는 상태. 이건 사회적 맥락이 만드는 권태다. 세 번째가 하이데거가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이것을 'Es ist einem langweilig'—'사람에게 권태롭다'고 표현한다. 주어가 없다. 원인도 없다. 일요일 오후의 그 이상함이 정확히 이것이었다. 기차가 늦은 것도, 파티가 재미없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다. 아무것도 나를 끌어당기지 않는다. 이 세 번째 권태에서 하이데거가 중요하게 본 것은, 특정 대상에 대한 흥미 상실이 아니라 나 자신의 현존 자체가 무게 없이 덩그러니 드러난다는 점이다.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지는 그 순간이, 아무것에도 가려지지 않은 나의 가능성을 노출시킨다. --- ## ⏳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의 의미 독일어로 권태는 Langeweile, 직역하면 '긴 시간...

💔 1년이 지나도 그 사람인 이유 — 짝사랑이 끝나지 않는 구조를 해체하다

## 🗓️ 12번째 달에 나는 드디어 질문을 바꿨다 K를 마지막으로 본 게 작년 2월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매달 "이번 달엔 끝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1월, 2월, 3월—그렇게 열두 개의 달이 지나갔다. 주변에선 말했다. "그냥 잊으면 돼." "다른 사람 만나면 돼." 나도 안다. 문제는 안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1년 동안 내가 진짜로 질문해야 했던 건 '어떻게 잊느냐'가 아니었다. '왜 1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느냐'였다. 그 질문을 바꾸기까지 1년이 걸렸다. --- ## 🧠 먼저, 이건 의지 문제가 아니다 짝사랑이 안 끝나는 걸 의지력 부족으로 보면 안 된다. 뇌 구조의 문제다. 신경과학자 헬렌 피셔(Helen Fisher)는 2005년 아서 아론, 루시 브라운과 함께 《Journal of Comparative Neurology》에 fMRI 연구 "Romantic love: an fMRI study of a neural mechanism for mate choice"를 발표했다. 낭만적 사랑에 빠진 뇌가 코카인 중독과 거의 동일한 보상 회로—복측 피개 영역(VTA)과 미상핵(caudate nucleus)—를 활성화한다는 내용이었다. 핵심은 이 회로를 강화하는 게 '충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간헐적 보상', 즉 예측 불가능하게 주어지는 작은 신호가 집착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심리학자 도로시 테노브(Dorothy Tennov)는 1979년 저서 《Love and Limerence》에서 이 상태를 '라이머런스(limerence)'라 명명하며, 특별한 개입이 없으면 18개월에서 수 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기술했다. 그리고 이 상태를 연장시키는 핵심 연료가 바로 상대가 간헐적으로 보내는 희망의 신호라고 했다. K는 명확하게 거절하지 않았다. 가끔 친절했고, 한 번은 내 생일을 기억했...

💐 죽음 이후에도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 애도의 철학이 풀어주는 상실과 위로의 진짜 의미

## 💬 위로가 거짓말처럼 들릴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세상을 떠났어도 마음속에 살아 있잖아요. 관계는 끝나지 않아요."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위로가 되기는커녕 어딘가 붕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속에 살아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나는 몰랐다. 할머니 목소리가 가물가물해질 때마다, 냄새가 기억나지 않을 때마다, 그 말은 오히려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처럼 들렸다. 관계가 끝나지 않는다면 왜 이렇게 멀어지는 것 같지? 철학자들도 이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애도의 철학](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애도의+철학)이 내놓는 답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그래서 훨씬 정직했다. --- ## 🧠 프로이트가 틀린 것 애도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이론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1917년 쓴 논문 〈애도와 멜랑콜리〉(Trauer und Melancholie)에서 나왔다. 프로이트는 애도를 일종의 심리적 탈착 작업으로 봤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쏟아붓던 심리적 에너지를 천천히 회수해서 새로운 대상으로 옮겨야 건강한 애도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애도의 과업이 완수되면, 자아는 다시 자유로워지고 억제에서 벗어난다." 요컨대 잘 애도한다는 것은 잘 '보내는' 것이었다. 이 모델은 한동안 심리학 교과서의 표준이었다. 그런데 1996년, 데니스 클라스·필리스 실버만·스티브 닉맨이 편집한 연구서 《지속적 유대》(Continuing Bonds)가 이 패러다임을 정면으로 흔들었다. 이들은 자녀를 잃은 부모 모임(Compassionate Friends) 회원 69명을 포함해 다양한 사별 경험자를 장기 추적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고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 여전히 말을 걸고, 조언을 구하고, 사진 앞에서 감정을 나누는 사람들 — 이 심리적으로 더 건강하게 기...

💘 맞는 사람이 아니라, 맞는 순간이었다 — 사랑의 타이밍 철학

2020년 겨울이었다. 기억이 선명한 건 그날 오후에 눈발이 굵었고, 나는 카페 창가 자리에서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보다 15분 일찍 와서 아메리카노가 식어가는 걸 보면서 그가 들어오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을 때 — 나는 그 장면을 지금도 프레임 단위로 떠올릴 수 있다. 외투에 묻은 눈송이. 안경이 살짝 흐려지는 것. 나를 향한 미소. 나는 오랫동안 그게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특별하니까 그런 감정이 드는 거라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건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 ## 💓 출렁다리에서 사랑에 빠지는 이유 1974년, 심리학자 도널드 더튼(Donald Dutton)과 아서 아론(Arthur Aron)은 캐나다 밴쿠버의 카필라노 협곡에서 실험 하나를 진행했다. 남성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쪽은 70미터 높이의 흔들리는 출렁다리를 건너게 하고, 다른 쪽은 낮고 견고한 다리를 건너게 했다. 다리 건너편에서 여성 연구원이 설문지를 건네며 전화번호를 남겼다. 나중에 연락한 비율은 출렁다리를 건넌 그룹에서 훨씬 높았다(*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0(4), 510–517, 1974). 더튼과 아론의 해석은 이랬다. 출렁다리를 건너며 느낀 심장 두근거림, 즉 공포로 인한 생리적 각성을 뇌가 '매력'으로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다. 스탠리 샥터(Stanley Schachter)가 1962년에 제시한 감정 2요인 이론이 예측한 대로였다 — 같은 각성 상태라도, 어떤 인지적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른 감정으로 라벨링된다. 이걸 처음 읽었을 때, 조금 화가 났다. 그럼 내가 그 사람에게 느낀 감정도 상황의 산물이었단 말인가. 식어가는 아메리카노, 눈송이, 그 프레임들 — 전부 출렁다리였단 말인가. 화를 삭히고 나서 생각해보면, 문제는 그 발견이 감정을 가짜로 만드느냐가 ...

💳 압류통장 해지 방법 완전 정리 — 법원 신청부터 채권자 협의까지

## 🏧 어느 날 아침, ATM 앞에서 멈췄다 몇 년 전 지인에게 황급히 전화가 왔다. 편의점 ATM 앞에서 출금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잔액은 분명히 있는데 화면에는 '거래정지' 네 글자만 떴다고 했다. 알고 보니 몇 년 전 연체된 카드 대금이 법원 결정으로 통장을 묶어버린 상태였다. 채무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게 어느 날 갑자기 계좌를 멈출 수 있다는 건 몰랐던 것이다. 압류통장을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실수는 은행 창구에 달려가는 것이다. 은행은 법원의 압류 명령을 집행하는 역할만 할 뿐, 풀어줄 권한이 없다. 해제는 오직 법원 또는 채권자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그 경로가 딱 세 가지다. 어떤 경로냐에 따라 준비 서류도, 기간도, 전략도 완전히 달라진다. --- ## 🤝 경로 1 — 채권자와 합의해서 취하서 받기 가장 빠른 [압류통장 해지 방법](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압류통장+해지+방법)이다. 채권자(보통 대부업체, 카드사, 은행)가 법원에 압류 취하 신청을 하면 보통 2~3영업일 안에 통장이 풀린다. 문제는 채권자가 취하를 거부하거나 조건을 걸 때다. 일부 채권자는 '전액 변제' 외에는 취하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어떤 경우는 분할 합의 후 구두로만 약속하고 서면을 안 써준다. 구두 약속은 나중에 번복돼도 막을 방법이 없다. 반드시 **취하 확약서**를 서면으로 받아야 한다. 취하 확약서의 핵심 문구는 이렇다: > "채권자 ○○○은 채무자 ○○○에 대하여 ○○지방법원 ○○○카단○○○○호 예금압류명령에 기하여 실시된 강제집행을 ○○○○년 ○○월 ○○일까지 취하하기로 확약합니다." 날짜를 반드시 못 박아야 한다. '합의 완료 후' '입금 확인 후' 같은 조건부 문구는 채권자 측이 기준일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 분쟁의 씨앗이 된다. 분할납부로 합의했다면, 1회차 납부 당일 채권자가 법원...

💔 짝사랑 오래하면 생기는 일 — 고백도 포기도 못한 채 수개월이 지나면

작년 가을, 나는 한 달에 한 번꼴로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닫고 폰을 뒤집어 놓는 의식을 반복했다. "이제 그만하자"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사흘쯤 지나면 다시 첫 화면에 그 계정이 떠 있었다. 본인도 언제 켰는지 모르게. 고백도 못 했고, 포기도 못 했다. 그러는 사이 여섯 달이 지났다. 그 여섯 달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당시엔 몰랐다. 지금 돌아보면 꽤 선명하게 보인다. ## 🧠 도파민과 영원회귀: 왜 "이번만"을 멈출 수 없는가 먼저 뇌 얘기부터 하자. 연구자 헬렌 피셔(Helen Fisher)는 fMRI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를 촬영했을 때, 활성화된 부위가 코카인 중독자의 뇌와 거의 일치한다는 걸 발견했다. 핵심은 보상 회로의 복측 피개 영역(ventral tegmental area)이었다. 그런데 짝사랑의 경우 이게 더 교묘하게 작동한다. 상대가 일정하게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에 뇌는 '가변 비율 강화(variable ratio reinforcement)' 상태가 된다. 슬롯머신과 같은 원리다.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나한테 생긴 첫 번째 변화는 **과잉 해석**이었다. 단체 카톡에 그 사람이 밈을 올리면, 나는 그게 나를 향한 신호인지 5분간 분석했다. 두 번째는 **기억 편집**이었다. 어색했던 순간들은 흐릿해지고, 잘 웃었던 어느 오후 장면만 계속 재생됐다. 뇌가 보상 기대치를 유지하려고 스스로 기억을 다시 자르는 것이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 341절 「가장 무거운 짐」에서 이런 물음을 던진다. "지금 네가 살고 있고 살아온 이 삶을, 너는 한 번 더, 그리고 무한히 더 살아야 할 것이다." 영원회귀는 감정이 반복된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이 삶 전체를 단 하나도 바꾸지 않고 영원히 반복할 수 있겠냐는 실존적 물음이다. 나는 그 여섯 달을 영원히 반복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 아니었다. 그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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