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한다는 말을 못 하는 이유 — 니체와 붓다가 함께 말하는 사랑의 침묵과 고백의 심리

스물다섯 겨울, 나는 세 달 동안 매일 같은 카페에 앉았다. 옆자리에는 늘 그 사람이 있었고, 나는 매번 "오늘은 말해야지"라고 다짐했다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아무 말도 못 했다. 커피잔을 내려놓을 때마다 느끼는 그 작은 패배감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왜 말을 못 하는 걸까. 무서운 건 뭔가. 거절이? 아니면 말을 꺼내는 순간 이 카페의 온도 자체가 달라질 것 같은 느낌? 그 질문을 붙들고 한참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뜻밖에도 두 명의 철학자가 자꾸 떠올랐다. 니체와 붓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 모두 사랑의 침묵에 대해 뭔가 할 말이 있었다. 문제는, 그 두 사람이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말을 했다는 거다. --- ## ⚡ 니체가 보는 침묵: 자기 자신을 배반한 의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Der Mensch ist etwas, das überwunden werden soll)." 이 문장은 보통 초인(Übermensch) 개념을 설명할 때 인용되지만, 나는 카페에서 아무 말도 못 하던 그 겨울에 이 문장이 다르게 읽혔다. 니체에게 인간의 핵심 동력은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다. 단순히 남을 지배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더 강하게, 더 완전하게 만들려는 내적 충동이다. 그는 도덕이나 두려움 앞에 쪼그라드는 인간을 '노예 도덕'의 산물이라고 불렀다.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까를 먼저 계산하고, 거절이 두려워 말을 삼키는 것—니체라면 그게 바로 노예의 자세라고 했을 것이다. [좋아한다는 말을 못 하는 이유](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좋아한다는+말을+못+하는+이유)를 니체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나는 내 의지보다 타인의 반응을 더 크게 두려워했다.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먼저 계산했고...

💔 사인을 몰랐던 게 아니라, 보지 않기로 했던 거였다

## 🎓 강의실 세 줄 앞이 비어 있는데도 대학교 2학년 겨울이었다. 강의실에 늦게 들어온 그녀는 앞쪽에 두 자리씩 비어 있는 줄을 지나쳐 내 옆에 앉았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도. 다섯 번째가 됐을 때 나는 그게 우연이 아닌 걸 알면서도, 알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처음 문자를 보낸 건 기말고사 일주일 전이었다. "오늘 발표 자료 어떻게 정리했어?" 짧은 메시지였는데, 나는 파일을 공유하며 대화를 거기서 끊었다. 다음 날 그녀가 보낸 건 발표 자료가 아니었다. "근처 카페 알아? 나 지금 혼자인데." 나는 스터디 약속이 있다고 했다. 약속은 없었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건 거절의 두려움이 아니었다. 더 정확히는, 관계가 지금 이 상태에서 달라지는 것에 대한 공포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잃을 것도 생긴다는 계산이 이미 내 안에서 끝나 있었다. 나는 감정을 배려로 번역해서 내놓았다. "내가 나서면 부담스러울 수 있잖아." 그 말을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 사람이 실제로 부담스러워했는지는 끝내 물어보지 않았으면서. --- ## 💌 신호는 충분했다 그 학기 내내, 사인은 있었다. 도서관에서 마주쳤을 때 그녀는 이어폰을 빼고 먼저 말을 걸었다. 이어폰을 빼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봐라. 편의점에서 내가 뭘 사는지 보더니 "나도 그거 좋아해" 하고는 같은 걸 집어 들었다. 나는 그냥 웃었다. 과 단체 채팅방에서 내 농담에 처음으로 반응한 사람도 그녀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음 주제로 넘어간 뒤에도. 이 신호들을 나는 정말 몰랐을까. 아니다. 나는 봤다. 보면서 그것들에 다른 이름을 붙였다. '친절한 사람이라서', '그냥 그런 성격이라서', '너무 의미 부여하는 거 아닐까'. 인간의 뇌는 불확실한 것을 무해한 것으로 재분류하는 데 탁월하다. 특히 그 불확실성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

💰 퇴직연금 DC형 자기납입 방법: 매달 직접 넣으면 연말정산 환급이 달라진다

## 💸 월급날마다 퇴직연금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입사 후 4년 동안 퇴직연금 통장 비밀번호도 몰랐다. 회사가 매달 알아서 넣어주는 돈이니까, 내가 건드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은 건 연말정산 시즌이었다. 같은 연차의 동기가 160만 원 환급을 받을 때 나는 28만 원을 받았다. 차이가 어디서 났냐고 물어봤더니 돌아온 답이 짧았다. "나 DC 추가납입하거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DC형 퇴직연금에 본인이 직접 추가납입하는 건 직장인이 쓸 수 있는 세금 환급 수단 중에서 가장 번거롭지 않은 방법 중 하나다. --- ## 💰 세액공제, 실제로 얼마나 돌아오는가 [퇴직연금 DC형 자기납입 방법](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퇴직연금+DC형+자기납입+방법)은 IRP(개인형 퇴직연금)와 합산해 연간 최대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세액공제율은 총급여 기준으로 나뉜다. 연 5,500만 원 이하라면 16.5%, 초과라면 13.2%가 적용된다. 숫자로 바로 보면 이렇다. - 월 25만 원 납입(연 300만 원): **49만 5,000원 환급** (16.5% 기준) - 월 50만 원 납입(연 600만 원): **99만 원 환급** - 월 75만 원 납입(연 900만 원): **148만 5,000원 환급** 연 900만 원을 DC 추가납입과 IRP를 합쳐서 채우면 연말정산 때 148만 5,000원이 통장에 들어온다. 연봉 5,500만 원 이하 기준이고, 그 이상이라면 900만 원 납입 시 118만 8,000원이다. 이 900만 원 한도는 DC 추가납입만으로 채울 수도 있고, DC + IRP 조합으로 채울 수도 있다. 어떻게 나눌지가 실제 선택의 문제다. --- ## 🤔 DC에 먼저 넣어야 하는가, IRP에 넣어야 하는가 이게 실제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건에 따라 다르고, 대부분의...

🤫 에포케(epoché)와 판단중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시대,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이 지혜다

## ⚡ 판단이 너무 쉬워진 세계 3월이었는지 4월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지인 한 명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폭로 글이 피드에 올라왔을 때, 나는 그 글을 세 번 읽었다. 댓글은 이미 수백 개가 달려 있었다. 절반은 피해자를 지지하는 분노였고, 나머지 절반은 "한쪽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는 유보였다. 나는 공유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가 내렸다. 뭔가가 걸렸다. 이 감각이 비겁함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를 나는 한동안 알지 못했다. 지금은 안다. 그 감각의 이름은 [에포케(epoché)와 일상의 판단중지](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에포케(epoché)와+일상의+판단중지)다. --- ## 🏛️ 피론이 2400년 전에 발견한 것 기원전 4세기, 엘리스의 피론(Pyrrho of Elis)은 이런 주장을 했다. 어떤 주장에 대해서도 그와 동등하게 설득력 있는 반론이 존재하며, 이 사태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결국 판단을 보류하게 된다고. 그는 이것을 에포케—'중지' 혹은 '보류'를 뜻하는 그리스어—라 불렀다. 피론주의의 핵심 개념은 이소스테네이아(isostheneia), 번역하면 '동등한 힘'이다. 어떤 논쟁에서든 상반된 주장들을 저울에 올리면 양쪽이 정확히 동등한 무게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 균형을 정직하게 감지한 사람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 이유가 없다. 그래서 에포케가 발생한다.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아니라, 아직 내릴 수 없다는 인식이다. 피론은 이 에포케가 아타락시아(ataraxia)—마음의 평정—로 이어진다고 봤다. 섣부른 판단이 빚어내는 불안과 후회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 ## 🤖 알고리즘이 이소스테네이아를 지운다 문제는 오늘날의 정보 환경이 이소스테네이아를 경험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SNS 알고리즘이 '나쁜 정보를 보여준다'는 비판은 너무 단순하다. 더 ...

💔 사랑하는 것을 잃은 뒤 어떻게 살아가는가 — 애도의 철학과 심리학이 알려주는 상실 이후의 삶

## 🕳️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구멍이 생겼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처음 며칠간 아무렇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고, 밥을 먹고, 심지어 웃기도 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난 뒤—정확히는 슈퍼마켓에서 할머니가 즐겨 드시던 요거트 브랜드를 발견한 순간—무릎이 풀렸다. 죽음은 그때 처음으로 실제가 됐다. 나중에 알았다. 이 반응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 ## 📊 슬픔에는 단계가 없다 — 보나노 연구가 뒤집은 상식 우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슬픔의 5단계"에 익숙하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이 도식은 1969년 《죽음과 죽어감에 관하여(On Death and Dying)》에서 나온 것인데, 원래는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심리를 관찰한 것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유가족의 애도 과정에도 적용되었고, "슬픔에는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관념이 상식처럼 굳어졌다. 컬럼비아대학교 임상심리학자 조지 보나노는 2004년 《미국 심리학자(American Psychologist)》에 발표한 논문 "Loss, Trauma, and Human Resilience"에서 이 도식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205명의 배우자 사별 경험자를 18개월간 추적 조사했다. 결과는 단일하지 않았다. 응답자의 46%는 사별 직후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심리 상태를 유지하는 "회복탄력성" 궤도를 보였고, 16%는 지속적 고통을 겪었으며, 11%는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나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나머지는 사별 이전부터 이미 우울 상태였거나 복합적인 경로를 밟았다. 이 수치가 말하는 건 하나다. 슬픔은 단계를 밟지 않는다. 처음에 울지 않았다고 사랑이 없었던 게 아니고, 두 달째에 웃는다고 회복된 게 아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5단계"를 너무 믿은 나머지 자기 슬픔이 잘못됐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왜 덜 슬프지?" 혹은 ...

💌 사랑의 비대칭성 — 더 많이 원하는 쪽이 왜 지는가, 최소관심의 원리와 흘러넘침의 역설

## 💌 문자 한 통의 무게 나는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고 나서 화면을 열두 번쯤 켰다. 답장이 오기 전까지.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사실 알 수 없었다. 잘 자고 있었는지, 아니면 나처럼 뒤척이고 있었는지—그건 내가 추측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관계에서 더 많이 원하는 쪽은 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창피스러웠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상한 질문이 따라붙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정말로 약한 것인가? 그게 자명한 사실처럼 느껴지는 건 어디서 온 감각인가? --- ## ⚖️ 덜 사랑하는 쪽이 지배한다: 최소관심의 원리 사회학자 윌러드 월러(Willard Waller)는 1938년 저서 *The Family: A Dynamic Interpretation*에서 "최소관심의 원리(principle of least interest)"를 제시했다. 관계에서 권력은 덜 투자한 쪽에게 기운다는 것이다. 더 원하는 쪽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조건을 수용하고, 상대의 페이스를 따라가고, 자신의 욕구를 조정한다. 협상력이 낮다. 이건 직관적으로 맞다. 나는 그 사람의 취향을 외웠고, 그 사람은 내 생일을 세 번 물어봤다. 내가 먼저 연락했고, 일정을 맞췄고, 때로는 침묵을 견뎠다. 월러의 공식대로라면 나는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니체를 읽다가 이 확신이 흔들렸다. --- ## ⚡ 니체의 역설: 선물하는 덕목은 강자의 행위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마지막 장 '선물하는 덕목에 대하여(Von der schenkenden Tugend)'에서 이렇게 쓴다. "흘러넘치는 자야말로 고귀하다. 줄 수 있는 자만이 진정으로 강하다." 니체에게 '선물하는 덕목'은 결핍에서 나오지 않는다. 넘쳐서 줄 수밖에 없는 상태,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가 극대화된 상태에서 흘러나온다. 더 많이 사랑한다는 것이 이 논리...

📉 역전세 고지서가 폭로한 한국형 부채 디플레이션 나선의 속도

## 📬 보증금 3억을 돌려달라는 문자가 온 날 작년 11월, 아는 지인이 전화를 했다. 강남 외곽 아파트 전세를 2021년 고점에 3억 5천에 맞췄는데, 계약 만기가 돼서 새 임차인을 구했더니 시세가 2억 9천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6천만 원을 어떻게 마련하냐고. 그 사람을 탓할 수가 없었다. 그게 한국형 [부채 디플레이션 나선](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부채+디플레이션+나선)의 전형적인 첫 회전이었으니까. 디플레이션이 오면 빚 부담이 커진다는 이야기는 이미 경제 유튜브에서 포화 상태다. 어빙 피셔의 1933년 공식—실질이자율 = 명목이자율 −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웬만한 매경·한경 칼럼에 다 나온다. 그런데 내가 진짜 겁이 났던 건 그 교과서 공식이 아니었다. 한국에는 그 나선을 유독 빠르게 작동시키는 장치가 세 개나 있다는 사실이었다. --- ## 🏠 첫 번째 장치: 전세는 레버리지를 시장 전체에 분산시킨다 전세 구조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 고유의 레버리지 장치다. 집주인은 보증금을 담보 없이 빌려 투자하고, 임차인은 원금 보존을 전제로 이자 수익을 포기한다. 시세가 오를 때는 양쪽 다 괜찮다. 문제는 꺾일 때다. 임차인이 만기를 앞두고 새 세입자를 구하려면 떨어진 시세에 맞춰야 한다. 집주인은 그 차액을 현금으로 메워야 한다. 현금이 없으면 집을 판다. 매물이 쏟아지면 시세가 더 내려간다. 다음 임차인의 역전세 간격이 더 벌어진다. 이것이 첫 번째 피드백 루프다. 2023년 기준 전세 보증 사고액은 5조 4천억 원을 넘었다. 2020년의 열 배다. 이 숫자의 대부분이 사기가 아니라, 전세가 하락과 금리 상승이 겹치면서 집값이 보증금 아래로 내려간 정상적인 역전세 상황이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 ## 📉 두 번째 장치: DSR은 하락장에서 거꾸로 작동한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는 과도한 대출을 막기 위해 설계됐다. 맞는 방향이다. 그런데 이 규제가 자산 가격이 내려갈 때는...

💗 짝사랑 상대가 나를 의식하는 신호 구별법 — 행동 패턴으로 읽되, 먼저 내 눈부터 의심하라

나는 한동안 그 사람의 사소한 것들을 수집했다. 그가 대화 도중 나를 향해 몸을 기울이는 각도, 내가 말할 때 그가 시선을 두는 방향,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우연히 붙어 서게 되는 위치. 그리고 그것들을 전부 '신호'로 읽었다. 그 시절의 나는 분석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짝사랑 상대가 나를 의식하는 신호 구별법](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짝사랑+상대가+나를+의식하는+신호+구별법)을 알고 싶다면 당연히 행동을 봐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그것을 보는 내 눈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 ## 💫 몸이 먼저 알고, 머리는 나중에 납득시킨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썼다. "너의 생각과 감정 뒤에는 강력한 지배자가 있다 — 그의 이름은 자기(自己)다. 그는 네 몸속에 살고 있다; 그가 곧 네 몸이다." 나는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짝사랑을 하면서 다시 읽었을 때 다르게 들렸다. 그가 나를 의식하는지 아닌지는, 그의 말보다 몸이 먼저 답한다. 사회심리학자 탈리아 차트랜드와 존 바그는 1999년 연구 'The Chameleon Effect'에서 사람들이 상대방의 자세·몸짓·표정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하며, 이 모방 빈도가 호감과 비례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였다. 상대를 좋아할수록 몸이 먼저 그를 향해 기운다. 의도 없이, 의식 없이. 그래서 내가 보려 했던 건 그가 내 농담에 웃었는지가 아니라, 그가 내 방향으로 발끝을 두고 있었는지였다. 사회적 미소는 훈련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발끝을 무의식적으로 누군가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건 연기가 아니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의지는 의식 이전에 몸에서 먼저 발현된다. 이 프레임이 없었다면 그냥 '몸짓을 봐라'는 조언으로 끝났겠지만, 니체의 렌즈를 쓰면 왜 몸이 말보다 신뢰할 만한지를 이해하게 된다. 의식적 마음은 스스로...

🕰️ 하이데거의 심심함 존재론 — 심심함이 존재의 문을 두드리고, 지루함이 온 세계를 드러낸다

## 🌫️ 마감 다음 날의 이상한 공기 작년 겨울, 세 달을 매달렸던 보고서를 제출하고 나서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피곤하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 감정도 아닌 이상한 공기 속에 있었다. 화면에는 새 탭이 열려 있었고, 커피는 식어가고 있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감각은 있는데, 그 '뭔가'가 무엇인지 몰랐다. 손에 쥔 일이 사라지자, 손 자체가 어색해졌다. 그것을 지루함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무게가 있었고, 우울이라고 부르기엔 방향이 없었다. 나는 그 감각에 이름을 붙이려다 실패한 채로 한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하이데거를 읽다가, 그게 뭐였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 ## 📚 하이데거가 지루함을 세 번 쪼갠 이유 마르틴 하이데거는 1929-30년 겨울학기 프라이부르크 강의록인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Die Grundbegriffe der Metaphysik, 전집 GA 29/30)에서 지루함(Langeweile, 직역하면 '긴 시간')을 철학의 주제로 끌어올린다. 서론이 아니라 강의 전반부 150페이지를 할애해서. 하이데거가 구분하는 지루함은 세 층위다. 첫 번째는 '무언가에 의해 지루해짐(gelangweilt-werden von etwas)'이다. 시골 간이역에서 기차를 두 시간 기다리는 장면. 지루함의 원인이 분명하다. 시간이 눈에 보이게 늘어진다. 우리는 시계를 보고, 주머니를 뒤지고, 발을 구른다. 시간을 '죽이려(Zeitvertreib)' 한다는 표현이 딱 맞다. 두 번째는 '무언가를 하면서 지루해짐(sich-langweilen bei etwas)'이다. 하이데거의 예시는 저녁 파티다. 음식도 좋고, 대화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득 저녁 내내 지루했다는 걸 깨닫는다. 지루함의 원인을 꼽을 수 없다. 특정 순간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형태가 첫 번째보다 더 불투명하고, 그래서 더 불편하다....

💌 짝사랑 티내지 않는 법 — 숨기는 게 아니라 변형하는 것

## 🏢 9층 엘리베이터, 8시 50분 엘리베이터 소리를 기다린 적이 있다. 9층 사무실, 그 사람은 보통 8시 47분에서 52분 사이에 출근했고, 나는 그 시간대에 괜히 물을 가지러 주방에 갔다가 돌아오거나, 서류를 복사하는 척 프린터 앞에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이미 자연스러운 척을 연습하고 있었다. 들켰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 이건 숨기기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반대였다.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할수록 거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0.3초 더 길어지고, 그 사람 얘기가 나오면 목소리 톤이 미세하게 달라진다. 상대는 의식적으로 알아채지 못해도 감지한다. [짝사랑 티내지 않는 법](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짝사랑+티내지+않는+법)은 숨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를 어디로 흘려보낼지의 문제다. --- ## 💡 감정을 억누르면 더 새어나온다 — 니체의 힘에의 의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자기 극복에 대하여(Von der Selbst-Überwindung)」에서 이렇게 썼다. "살아 있는 것이 하는 모든 것, 그것은 힘에의 의지를 섬기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억압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다.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에너지를 어디로 향하게 할지 선택하는 것.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는 통제가 아니라 창조다. 짝사랑의 에너지를 상대에게 직접 투사하는 대신, 자신을 더 흥미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연료로 쓰는 것. 실제로 나는 그 사람과 같은 팀 프로젝트를 맡게 됐을 때, 잘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발표 자료 준비에 쏟아부었다. 결과는 그 사람의 반응이 아니라 내 발표 실력이 올라간 것이었다 —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관계를 좁혀줬다. 상대가 나를 바라보게 만드는 건 눈빛이 아니라 실력이었다. --- ## 🌊 관계를 좁히는 건 밀도의 문제다 짝사랑에서 가장...

🧠 감정이 기억을 만든다: 키케로의 감정 기억술이 현대 신경과학을 2000년 앞서 증명한 이유

## 🕯️ 제삿날 앨범과 키케로 몇 해 전, 외할머니 기일에 고향에 내려갔다. 제사를 마치고 어머니가 낡은 앨범을 꺼냈는데, 1970년대 흑백 사진들을 넘기던 그 10분은 지금도 선명하다—향 연기 냄새, 어머니 손등의 핏줄, 사진 속 젊은 외할머니의 표정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던 것. 같은 날 기차 시간표나 누가 무슨 반찬을 가져왔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의 감정적 무게가 특정 장면들을 선택적으로 고정시켜놓은 것이다. 이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건 한참 뒤, 논문 자료를 뒤지다 키케로의 《연설가에 관하여(*De Oratore*)》 2권 86~87절을 마주쳤을 때였다. [감정 기억술](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감정+기억술)의 시조 격인 시모니데스 일화를 설명하면서, 키케로는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능한 한 예외적이고 생생한 이미지(*imagines agentes*)—비웃음거리이거나, 아름답거나, 수치스럽거나, 믿기 어려운 것"과 결합시켜야 한다고 썼다(II.87.358). 그냥 정보가 아니라 감정을 건드리는 이미지여야 한다는 것. 2000년 전 로마 수사학자가 편도체 얘기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 ## 🧠 편도체가 먼저 반응한다 조셉 르두(Joseph LeDoux)는 1980년대 말 쥐 실험에서, 감각 자극이 피질을 우회해 시상에서 편도체로 직행하는 경로—그가 "저도로(low road)"라 부른—를 발견했다. 이 경로 덕분에 감정적 반응은 의식적 인지보다 빠르게 일어난다. 그리고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해마의 기억 고착 과정이 강화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감정의 뇌》, 1996). 여기에 UC 어바인의 제임스 맥고(James McGaugh)의 실험이 연결된다. 1994년 래리 캐힐(Larry Cahill)과의 연구에서, 감정적으로 중립적인 영상과 감정을 자극하는 영상을 각각 본 피험자들을 2주 후 테스트했더니 감정적 영상의 기억이 ...

💔 사랑의 현존 역설 — 옆에 있을수록 왜 더 외로워지는가

어느 늦봄 저녁이었다. 그 사람이 아메리카노 잔을 집어 드는 순간, 이상한 것을 알아챘다. 검지 손가락이 손잡이 안쪽으로 완전히 들어가 있었다 — 마치 고리에 낀 것처럼. 그게 눈에 걸릴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그 찰나, 내가 몇 달 동안 공들여 구성해온 그 사람의 형상이, 지금 맞은편에 앉은 이 사람과 조용히 어긋나기 시작했다. 외로움이 밀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 사람이 떠나서도, 다투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거기, 한 뼘 거리에 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면서. --- ## 💎 스탕달의 소금 광산: 우리가 사랑하는 것의 정체 이 경험을 처음으로 언어로 포착한 사람은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었다. 그는 1822년 『연애론(De l'Amour)』에서 '결정화(cristallisation)'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미지는 잘츠부르크 소금 광산에서 빌려온 것이다. 겨울 동안 갱 속에 앙상한 나뭇가지를 던져 넣으면, 몇 달 뒤 꺼낼 때 가지 전체가 소금 결정으로 뒤덮여 빛난다. 스탕달은 사랑이 바로 이 과정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표면에 스스로 붙여놓은 결정들 — 이상화된 이미지, 투사된 기대, 기억 속에서 재조각된 순간들 — 을 사랑한다. 결정화는 **부재 속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한다. 상대를 보지 못하는 시간 동안 상상력은 빈자리를 채우고, 불완전했던 만남은 완벽한 순간으로 다듬어진다. 짝사랑이 실제 연애보다 더 순수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 현실이 방해하지 않는 사랑은 마찰 없이 완전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다시 눈앞에 나타날 때, 살아있는 인간의 작은 버릇들이 결정층을 긁기 시작한다. 커피잔 손잡이 안에 들어간 검지 손가락 같은 것들이. 현존(現存)은 이상화의 천적이다. --- ## 🔍 현존이 균열을 낼 때 이 균열이 외로움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방금 전까지 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었다. 몸은 닿을 거리였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고 있던 존재 — 그...

💸 정부가 돈 쓸수록 내 투자가 줄어든다? 구축효과 경제 완전 정복

내가 처음 이 역설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건, 직장 동료와 나눈 짧은 대화 때문이었다. 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편성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내가 "이 정도면 경기 좀 살아나겠지"라고 했더니, 옆에 앉은 선배가 픽 웃으며 말했다. "그게 꼭 그렇지가 않아. 오히려 내 투자 기회가 밀려날 수도 있거든." 그때는 그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나중에 찾아보니 거기에 이름이 있었다. '[구축효과 경제](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구축효과+경제)(Crowding Out Effect)'였다. --- ## 💰 정부와 기업이 같은 돈을 두고 경쟁한다 구축효과를 이해하려면 먼저 한 가지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 안에서 유통될 수 있는 자금의 총량은 어느 순간이든 한정되어 있다는 것. 정부가 추경을 편성할 때, 그 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국채를 발행해서 민간에 판다. 즉, 정부가 자금 시장에 들어와 "나한테 돈 빌려줘"라고 외치는 셈이다. 그런데 같은 시장에서 기업들도 똑같이 외치고 있다. 공장을 늘리거나, 새 사업을 시작하거나, 설비를 교체하려면 외부 자금이 필요하다.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른다. 돈의 가격이 바로 이자율이다. 정부가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면 자금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자율이 상승한다. 그 결과 기업들은 같은 사업을 위해 더 높은 이자를 내야 한다. 이자율 4%일 때 수익이 났던 투자가 6%가 되자 수지가 안 맞아진다. 투자 계획은 취소된다. 정부 지출이 민간 투자를 '밀어낸다(crowd out)'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이다. 재정 부양책이 민간 활력을 잠식하는 아이러니한 메커니즘이다. --- ## 🏛️ 레이건이 놓친 함정: 환율 경로 여기서 대부분의 설명이 멈춘다. 그런데 구축효과에는 훨씬 더 교묘한 두 번째 경로가 있다. 바로 환율을 통한 경로다. 레이건 행정부 사례가 교과서다. 198...

💓 짝사랑 티가 나는 행동 심리학: 나도 모르게 이미 다 들켰을지 모르는 7가지 심리 신호

## 💭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이미 다 들켰을지도 모른다 대학교 3학년 때였다. 같은 스터디 그룹에 한 사람이 생겼고, 나는 그가 오는 날이면 아무 이유 없이 30분 일찍 도착했다. 그걸 나 스스로는 '성실함'이라고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자기기만이지만, 그때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짝사랑 티가 나는 행동 심리학](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짝사랑+티가+나는+행동+심리학)은 이상하게도 당사자에게만 비밀이다. 옆에서 보는 사람은 다 안다. 심리학이 수십 년간 확인해온 것도 바로 그 불균형이다 — 우리는 감정을 숨긴다고 생각하지만, 몸과 행동은 이미 말하고 있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썼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솔직하다." 불교 《법구경》은 말한다: 마음이 앞서 나가면, 몸이 뒤를 따른다. 수천 킬로미터, 수백 년의 거리를 두고도 두 철학이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는 게 묘하게 위로가 된다. --- ## 🔍 왜 우리는 알아서 티를 내는가 1968년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Robert Zajonc)는 지금도 교과서에 실리는 실험을 했다. 피험자들에게 낯선 한자를 반복 노출시켰더니 — 뜻도 모르는 글자인데 — '좋아 보인다'는 평가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단순 노출만으로도 호감이 생긴다.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Monograph 9권에 실린 이 연구는 12개의 통제된 실험으로 이 효과를 검증했다. 짝사랑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상대를 더 보고 싶어서, 우리는 알아서 '노출 기회'를 만들어낸다. 같은 건물 카페를 쓴다. 그 팀 회의에 자원한다. 퇴근 시간을 맞춘다. 그리고 이 모든 행동이 — 상대에게는 — 패턴으로 읽힌다. --- ## 💬 몸이 먼저 말하는 7가지 방식 **1. 목소리가 달라진다** Juan David L...

🧠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 — 아크라시아와 욕구의 철학: 자기를 배신하는 순간의 심리

## 🌙 오늘 밤도 나는 내 의도를 배신했다 밤 11시 15분. 침대에 누워 내일 아침 7시 발표 준비가 됐는지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체크했다. 됐다. 불을 껐다. 그리고 정확히 3분 후, 어떻게 됐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상한 건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인스타그램을 열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진짜 이상한 건,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멀쩡했다는 것이다. 강압이 없었다. 알코올도, 약물도 없었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스스로 결정해서, 내가 하면 안 된다고 아는 일을 했다. 이 상태에 이름이 있다. [아크라시아](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아크라시아)(akrasia). 그리스어로 '자제력의 부재', 더 정확하게는 '알면서도 더 나쁜 선택을 하는 것'. 소크라테스는 이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사람은 진정으로 알면 그에 따라 행동한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나쁜 선택을 할 때는 실은 그게 나쁜 줄 몰랐던 것이라고. 나는 소크라테스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게 생각했다. --- ## 🧠 앎에는 두 종류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논리는 깔끔하다. 인간은 항상 자신이 최선이라 판단하는 것을 한다. 나쁜 행동은 곧 무지의 결과다. 이 논리대로라면 나는 SNS를 오래 보는 게 나쁜 줄 몰랐기 때문에 봤다는 말이 된다. 당연히 이건 틀렸다. 나는 알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7권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의 핵심 통찰은 이것이다: 앎에는 두 종류가 있다. 명제적으로 아는 것과 실천적으로 아는 것. "SNS를 오래 보면 수면이 망가진다"는 명제는 알지만, 그 앎이 그 순간 실제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잠든 사람이나 술 취한 사람의 비유를 쓴다. 이들도 윤리적 원칙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앎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아크라시아 상태에서 우리의 이성적 판단...

💙 짝사랑 티 안 내는 법 — 감정을 들키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품는 내면의 기술 | 니체·불교

## 💭 고백도 포기도 아닌 자리에서 작년 가을, 나는 한동안 어떤 사람을 좋아했다. 카페에서 마주치면 목소리가 0.5초 늦게 나왔고, 단체 카톡방에서 그 사람 이름이 뜨면 핸드폰을 뒤집어놓곤 했다. 고백을 할 용기도, 포기할 배짱도 없는 사람의 일상이란 이런 것이다. 어느 날 점심을 둘이서 먹게 됐다. 밥 먹는 내내 '들키지 말자'는 생각과 '자연스럽게 굴자'는 생각이 동시에 돌아가는 바람에, 나중에 뭘 먹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생각했다. 나는 왜 이게 이렇게 어려울까. --- ## 🧘 vedanā와 taṇhā — 감정의 층위를 나누면 보이는 것 불교 심리학에는 vedanā와 taṇhā라는 개념이 있다. vedanā는 '느낌의 색깔'이다. 즐거운지, 불쾌한지를 감지하는 원초적 반응. 그것 자체는 의지로 끌 수 없다. 반면 taṇhā는 '갈애(渴愛)', 즉 그 느낌에 달라붙어 더 원하거나 밀어내려는 충동이다. 짝사랑에서 문제는 vedanā가 아니다. 좋다는 느낌 자체는 통제할 수 없고, 통제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taṇhā다. 그 사람 문자를 세 번씩 다시 읽고, '혹시 나를 좋아하나?'를 추론하고, 다음 만남을 머릿속에서 미리 연습하는 것. 이것들이 감정을 '티'로 만드는 회로다. 그 점심 자리에서 나는 두 층위를 구분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 사람이 웃을 때 좋다고 느끼는 것(vedanā)은 그냥 두었다. 그런데 '방금 저 눈빛은 뭔가 다른 것 아닐까'를 돌려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taṇhā), 표정이 굳어졌다. 상대가 눈치챘는지는 모르겠다. 철학적 프레임은 준비되어 있었지만, 현실에서 그 경계선은 생각보다 훨씬 얇았다. --- ## ♾️ 영원회귀와 무상 사이 — 해소되지 않는 긴장 니체의 영원회귀는 이런 가정이다. "지금 이 순간을 무한히 반복해야 한다면, 너는 그것을 원할 수 있는가?" 짝사랑에 ...

😰 밤 세 시에 찾아오는 죽음 불안의 정체 — 철학 없이 이해하기

## 🌙 밤 세 시, 아무 이유도 없이 몇 년 전 새벽이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세 시에 잠에서 깼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고, 옆에서 누군가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한 감각이 왔다. 두려움이라기엔 너무 크고, 불안이라기엔 너무 조용한 무언가. 나는 언젠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 갑자기 '사실'로 느껴졌다. 머리로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이 몸 전체로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많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다음 날 아침 커피를 끓이며 그 감각을 재빨리 덮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다 한참 후에야 그게 무엇이었는지 이름을 붙이게 됐다. --- ## ⚖️ 법원에서 일어난 일 1989년, 애리조나 주 투손의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학 실험이 있었다. 연구자들은 판사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설문지를 나눠줬다. 한 그룹에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잠깐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질문을 끼워 넣었다. '당신이 죽는다는 사실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나요' 같은 식으로. 다른 그룹에는 그런 질문이 없었다. 설문 직후, 두 그룹 모두에게 동일한 가상 사건을 제시했다. 매춘으로 기소된 여성의 보석금을 얼마로 책정할 것인지였다. 죽음을 떠올리지 않은 판사들의 평균 보석금은 50달러였다. 죽음을 상기한 판사들이 제시한 금액은 455달러. 약 아홉 배 차이다. 판사들은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냥 정의롭게 판단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숫자는 달랐다. 이 연구는 이후 500건 이상의 유사 실험으로 반복됐다. 죽음을 상기시키면 사람들은 더 강하게 자기 집단을 편애하고, 도덕적 위반에 과잉 반응하고, 외집단을 배척했다. 전쟁 지지율도 올라갔다. 처음 읽었을 때 꽤 불편했다. 그 판사들이 내 안에도 있다는 느낌 때문에. --- ## 📚 어니스트 베커가 옳았던 것들 이 실험들의 이론 토대를 놓은 사람은 심리학자 어니스트 베커다. 1974년 퓰리처상을 받은 《죽...

💬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는 알고 있었다

## 🌱 이름이 생기기 전 그 사람은 카카오톡으로 음성 메시지를 보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이핑하는 걸, 그 사람은 녹음한다. 처음엔 그냥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어느 날부터 나는 그 메시지를 바로 열지 않게 됐다. 지하철에서, 혼자 걷다가, 이어폰을 꽂고 듣기 좋은 순간을 골라서. 그때는 왜 그러는지 묻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나 이 사람 좋아하나?'라는 생각이 처음 든 건 좀 나중이다. 그 질문이 생기고 나서, 나는 그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아니다 — 알아차리고 나서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사실이 됐다. 이 차이가 이 글 전체의 핵심이다. --- ## ⚡ 니체: 이름이 감정을 만든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말한다. "사실이란 없다, 오직 해석만 있을 뿐이다." (Es gibt keine Tatsachen, nur Interpretationen.) 이 문장은 허무주의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해석이 세계를 만든다는 뜻이다. 그리고 해석은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즉 우리가 세계에 능동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이 사람을 좋아하나?'라고 묻는 순간, 나는 과거의 감각들을 재편집하기 시작했다. 메시지를 기다렸던 것, 대화가 끝나도 자리를 못 떠났던 것, 그 사람이 길을 잘못 들어서 머쓱하게 웃을 때 내가 더 먼저 웃음이 났던 것. 이것들은 이름을 갖기 전에도 있었다. 근데 이름이 생기면서 증거가 됐다. 니체의 틀에서 이건 나쁜 일이 아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삶을 수동적으로 당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나는 이걸 사랑이라 부르기로 한다'는 선언은 힘의 발휘다. --- ## 🪷 불교: 이름이 고통을 만든다 팔리어에 파판차(papañca)라는 단어가 있다. 개념의 증식, 마음의 확산. 《맛지마 니카야》에서 붓다는 이렇게 설명한다 — ...

📈 물가연동국채 투자방법 완전 정리: BEI 모르면 살 타이밍도 모르는 거다

## 🎲 처음엔 이 개념을 몰라서 운에 기댔다 2022년 12월, 잔고를 확인하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물가연동국채 투자방법](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물가연동국채+투자방법) 계좌에서 원금이 올라가 있었다. 10만 원 넣었는데 10만 4천 원이 되어 있던 거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나중에야 그게 물가연동 원금 조정이라는 걸 알았다. 근데 그때 나는 사실 '지금 살 타이밍이 맞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그냥 인플레이션이 높으니까 사야지, 수준이었다. 결과적으로 운이 좋았을 뿐이다. 제대로 판단하려면 한 가지 개념을 먼저 알았어야 했다. 브레이크이븐 인플레이션 레이트(Breakeven Inflation Rate, BEI). --- ## ⏱️ 이걸 모르면 살 타이밍을 모르는 거다 BEI 공식은 단순하다. **BEI = 명목 국채 수익률 − 물가연동국채 실질수익률** 2022년 10월 기준으로 예를 들면, 한국 10년물 국고채 수익률이 약 4.3%, 동기간 10년물 물가연동국채 실질수익률이 약 1.1%였다면 BEI는 3.2%다. 이 숫자의 의미는 하나다: **시장 참여자들이 향후 10년 평균 물가 상승률을 3.2% 수준으로 보고 있다**는 것. 여기서 판단 기준이 생긴다. - 내가 보기에 실제 인플레이션이 3.2%보다 **높을 것 같다** → 물가연동국채가 유리 - 3.2%보다 **낮을 것 같다** → 명목 국고채가 낫다 2022년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월 최고점 6.0%, 연간 기준 5.1%였다. BEI가 3% 수준인데 실제 인플레이션이 5%를 넘겼으니, 그해 물가연동국채를 산 사람은 명목 국채 대비 실질 우위를 가져간 셈이다. 반대로 지금처럼 물가가 안정화 국면이고 BEI가 2.5%인데 실제 인플레이션을 2% 정도로 본다면, 그냥 명목 국채 사는 게 낫다. BEI 데이터는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서 물가연동국채 실질금리를 찾고, 명목 국고채 금리는 금...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로스트아크] 제작 효율 최적화 위한 영지 세팅

[로스트아크] 로스트아크 생활 도구 옵션

한국 핵무장 논의와 방위산업 관련주: 핵무기 개발 과정과 유망 종목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