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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사랑이 원한(르상티망)으로 변하는 순간: 니체와 붓다가 알려주는 마음의 비밀과 인문학적 통찰

💔 짝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던 그 순간 대학교 2학년 겨울, 같은 동아리에 반년 넘게 마음에 담아둔 사람이 있었다. 매주 화요일 정기모임 끝나고 다 같이 술 마시러 가는 자리에서, 그 사람 옆자리가 비어 있으면 일부러 늦게 도착한 척하고 앉는 식이었다. 그해 12월 종강 회식 자리에서 취기를 빌려 고백했고, 돌아온 답은 "오빠는 진짜 좋은 사람인데 우리 이렇게 지내는 게 더 편할 것 같아"였다. 문자도 아니고 카톡도 아니고, 노래방 화장실 앞 복도에서 들은 말이었다. 이상한 건 그다음이었다. 처음 며칠은 그냥 우울했는데, 한 2주쯤 지나니까 그 사람이 밉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회의 때 발언하는 방식이 거슬리고, 다른 사람한테는 웃으면서 나한테는 예의만 차리는 것 같고, 나중엔 "쟤 원래 좀 계산적이었잖아"라는 말을 술자리에서 은근슬쩍 흘리고 다녔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반년을 좋아하다가 한 달 만에 "계산적인 애"로 재분류해버린 거니까. 이 낙차가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니체 르상티망 짝사랑 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찾아보다가 이름을 발견했다. ⚖️ 르상티망, 손댈 수 없는 것을 나쁜 것으로 만드는 재주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말하는 르상티망(ressentiment)은 단순히 "미워하는 감정"이 아니다. 핵심은 방향이 거꾸로 뒤집힌다는 데 있다. 힘 있는 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먼저 긍정하고, 거기서 부족한 것을 나중에 "나쁜 것"으로 규정한다. 반대로 원한을 품은 자는 순서가 뒤바뀐다. 손에 넣지 못한 대상을 먼저 "저건 원래 나쁜 것"이라고 못박고, 그걸 근거 삼아 자기 자신을 정당화한다. 내가 했던 일이 정확히 이거였다. "그 사람을 못 가졌다"는 사실 자체는 바꿀 수 없으니, 그 대신 "그 사람은 원래 별로였다"는 서사를 만들어낸 거다. 노예의 도덕이 강자의 미덕을 뒤집어 "겸손...

💌 짝사랑 편지 예절, 상대에게 부담 주지 않고 마음을 전하는 정성스런 글쓰기 방법 총정리

🌙 편지지를 세 번 고쳐 쓴 밤 스물두 살 겨울, 학교 앞 문구점에서 편지지를 세 번 다시 산 적이 있다. 종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었다. 써놓은 첫 문장 때문이었다. "이 편지 읽고 나면 답장 좀 해줘." 다시 읽어보니 그 한 줄이 편지 전체를 바꿔놓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말이 아니라 부탁으로, 부탁이 아니라 거의 조건처럼 읽혔다. 결국 그 문장을 지웠다. 그런데 지우고 나니 이상하게 더 무서웠다. 답장을 요구하지 않으면 이 마음이 허공에 뜬 채로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날 밤 알게 된 게 있다. 짝사랑 편지 예절 은 맞춤법도, 문장력도 아니고, 상대에게 응답의 의무를 지우지 않는 것이더라는 것. 📮 "답장 주세요"가 왜 실례인가 편지에 답장을 요구하는 순간, 그 편지는 선물이 아니라 청구가 된다. 받는 사람은 이제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내 마음을 받아주거나, 내 마음을 대놓고 거절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데 무시하기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만나줄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나는 "답을 달라"는 숙제를 내준 셈이다. 고전 서간문화에서 이걸 실례로 여긴 이유도 비슷하다. 조선시대 편지, 특히 마음을 전하는 사적인 서한에서는 상대의 답신 유무를 편지의 성패로 삼지 않았다. 편지는 화자의 심경을 정리해 전달하는 행위 자체로 완결됐다. 답이 오면 다행이고, 오지 않으면 그저 그 편지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읽씹"에 그렇게 예민한 건, 편지(혹은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부터 이미 상대의 반응까지 내 마음의 일부로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계산을 걷어내는 게 예절의 시작이다. 📜 이옥봉, 쫓겨나고도 편지를 보낸 여자 16세기 조선의 여성 시인 이옥봉의 이야기가 있다. 서녀로 태어난 그는 문신 조원(趙瑗)의 소실이 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받는다. 다시는 시를 짓지 말라는 것. 그런데 억울하게 옥에 갇힌 이웃의 남편을 위해, 이옥봉이 대신 탄원의 시를 지어 ...

📚 에피쿠로스는 SNS를 끄라고 하지 않았다: '케노독시아' 감별로 완성하는 아타락시아 실천법

🍂 재작년 가을, 종로서적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대학 때 같이 자취방에서 라면 끓여 먹던 친구가 있었다. 졸업하고 십 년 넘게 각자 회사 다니느라 연락이 뜸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종로에 작은 헌책방을 차렸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으로 봤다. 개업 첫날 사진이었다. 손글씨로 쓴 나무 간판, 친구가 앞치마를 두르고 웃고 있는 모습, 밑에는 "십 년 만에 제 이름 걸고 하는 일이네요"라는 문구. 이상하게 그 사진 앞에서 오래 멈췄다. 부럽다는 감정은 아니었다. 헌책방 운영이 얼마나 고달픈지는 나도 안다. 그런데도 뭔가 뾰족한 게 가슴을 찔렀다. 나는 그해 봄에 이직 제안을 받았다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그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 사진 한 장 앞에서 갑자기 내 선택 전체가 재판대에 오른 기분이었다. 화면을 끄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중에 이 감정을 곱씹다가 에피쿠로스를 다시 읽었다. 대학 교양 수업에서 "쾌락주의 철학자, 사실은 검소하게 살라고 한 사람" 정도로 배웠던 그 사람.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읽어보니, 그가 남긴 글 중에 그날 밤 내 감정을 정확히 겨냥한 개념이 있었다. 🏺 에피쿠로스가 실제로 나눈 건 '자연스러운 욕망'과 '케노독시아'였다 에피쿠로스의 『주요 교설(Kuriai Doxai)』 29번 항목을 보면 그는 욕망을 세 가지로 나눈다.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것(배고프면 먹고 싶은 것), 자연스럽지만 필수는 아닌 것(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것), 그리고 자연스럽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것. 마지막 항목을 그는 '케노독시아(kenodoxia)'에서 비롯된 욕망이라 불렀다. 직역하면 '텅 빈 의견', 실체 없는 평판과 타인의 시선에서 생겨난 욕망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에피쿠로스가 이 세 번째 범주를 그냥 '사치'로 뭉뚱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명예, 권...

🧘 신경 끄기의 기술: 스토아 철학자의 아디아포라 구분법

🌙 새벽 두 시, 단톡방에서 본 사진 한 장 지난달이었다. 애 재우고 설거지 끝내고 소파에 늘어져 있는데 초등학교 학부모 단톡방이 울렸다. 옆 반 엄마가 아이 영어 학원 레벨테스트 결과를 올렸다. "AR 4.2 나왔어요 감사합니다 ㅠㅠ" 그 밑에 축하 이모티콘이 열댓 개 달렸다. 나는 그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더라. 우리 애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나는 뭘 놓치고 있지. 십 분쯤 각종 학원 블로그를 뒤지다가 문득 스스로한테 물었다. AR 4.2가 나한테, 내 삶에, 대체 무슨 상관이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토아 철학에서 찾은 게 최근이다. 정확히는 ' 아디아포라 (adiaphora)'라는 개념인데, 이게 흔히 알려진 '통제 이분법'이랑 헷갈리기 쉽다. 통제 이분법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라"는 얘기고, 아디아포라는 좀 다르다. "이게 애초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라는 얘기다. 🙅 '무관심'이 아니라 '무차별' 아디아포라는 번역하면 '무차별한 것들', 그러니까 도덕적으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들이라는 뜻이다. 크리시포스나 에픽테토스가 예로 든 목록을 보면 재산, 건강, 명성, 아름다움, 심지어 목숨까지 들어간다. 이게 이상하게 들리는데,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이 안에서도 등급을 나눴다. 건강은 '선호되는 무차별'이고 병은 '기피되는 무차별'이다. 둘 다 상대적으로 나은 쪽, 못한 쪽은 있지만 그 자체로 좋음(선)이나 나쁨(악)은 아니라는 거다. 진짜 좋음은 오직 덕, 즉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반응하느냐에만 있다. 옆집 애 AR 지수는 딱 이 범주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숫자. 문제는 내가 거기에 '좋음'이라는 가치를 멋대로 씌워놓고, 그걸 못 가진 나를 '나쁨' 쪽으로 밀어넣...

💀 서류에 손이 떨렸다: 죽음을 공부한다는 것, 왜 하필 지금 '타나톨로지'를 읽어야 하나

✍️ 서명하는 손이 떨렸던 날 작년에 아버지가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 담당의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연명의료계획서였다. "심폐소생술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자연스러운 임종을 원하십니까." 문장은 담담했는데 손이 떨렸다. 그 순간 깨달은 게 있다. 나는 태어나는 법, 사랑하는 법, 돈 버는 법에 대해서는 어디선가 조금씩 배웠는데, 죽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때부터 '죽음학'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곧 ' 타나톨로지 (thanatology)'라는 낯선 영어 단어와 마주쳤다. 🌐 타나톨로지는 왜 굳이 영어 이름을 쓸까 죽음학이라는 한글 표현이 이미 있는데도 왜 굳이 '타나톨로지'라는 수입 용어가 매체와 강좌 이름에 자꾸 등장하는 걸까. 이건 단순한 허영이 아니라 학문의 계보 문제다. 타나톨로지는 1959년 심리학자 허먼 파이펠이 편집한 《The Meaning of Death》, 이어 1969년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On Death and Dying》을 기점으로 심리학·의학·사회학·인류학이 각자 따로 다루던 죽음을 하나의 학제로 묶으면서 붙은 이름이다. 즉 '죽음학'이 민간에서 오래 써온 느슨한 표현이라면, '타나톨로지'는 제도권 학문으로서의 계보와 방법론을 함께 데려오는 이름이다. 한국에서 이 단어가 다시 호출되는 건, 죽음을 다루는 기존의 언어—장례 절차, 상조 상품, 종교적 위로—로는 감당 안 되는 새로운 질문들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 초고령사회·웰다잉법·팬데믹이 만든 '언어 공백' 행정안전부가 2024년 12월 발표한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처음으로 20%를 넘어서면서 한국은 그 시점에 국제 기준상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숫자 자체가 아니라, 이 숫자가 만들어내는 '죽음의 위치 이동'이다. 통계청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국내 사망자의 다수가 병...

🗣️ 파르헤시아, 왜 솔직하게 말하기는 여전히 위험한 일인가 — 고대 그리스 자기발언의 윤리

⏰ "QA가 사흘밖에 안 남는데요" 8명짜리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였다. 팀장이 6주짜리 스프린트를 짰는데, 개발에 4주, 남은 2주를 QA에 쓰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회의 자료를 다시 보니 계산이 이상했다. 개발 마감이 이미 한 번 밀린 걸 반영하면 QA는 2주가 아니라 사흘이었다. 손을 들고 그대로 말했다. "이 일정대로면 QA가 사흘이에요, 2주가 아니라." 회의실이 3초쯤 조용해졌다. 팀장은 표정이 굳었다가 곧 자료를 다시 열어 날짜를 세어보더니 "어... 그러네요" 하고 일정을 다시 짰다. 그게 다였다. 나한테 불이익도 없었고 관계가 틀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심장이 뛴 건 확실히 기억한다. 별일 아니었는데도 말하기 전에 몇 초를 망설였다는 것, 그게 이 글을 쓰게 만든 이유다. 🗣️ 파르헤시아는 그냥 솔직한 말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파르헤시아 자기 발언 윤리 (parrhesia)는 그리스어로 pan(모두)과 rhesis(말하기)가 합쳐진 단어다. 직역하면 "모두 털어놓고 말하기" 정도인데, 아테네에서 이 말이 처음 쓰인 맥락을 보면 지금 우리가 쓰는 "솔직함"과는 결이 다르다. 미셸 푸코는 1983년 버클리 강연(사후 「Fearless Speech」로 출간)에서 파르헤시아를 다섯 가지 조건으로 정리했다. 화자가 실제로 위험을 감수할 것, 자기가 진실이라 믿는 바를 말할 것, 청자보다 권력이 약한 위치에 있을 것, 침묵해도 됐지만 말하기를 선택했을 것, 그 말로 관계가 나빠질 각오를 했을 것. 다섯 조건 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건 파르헤시아가 아니라 그냥 발언이다. 힘 있는 사람이 약자를 향해 던지는 직설은 파르헤시아가 아니고, 위험이 전혀 없는 자리에서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아테네 민주정의 또 다른 개념인 이세고리아(isegoria)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 선명해진다. 이세고리아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민회에서 발언할 권리가 있다는 정...

😴 최악의 순간을 미리 상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잠을 더 잘 자는 이유, 스토아철학 저널링

🌃 새벽 2시, 프로젝트를 통째로 날릴 뻔한 날 지난 5월 초였다. 클라이언트에게 보내야 할 최종 파일을 실수로 예전 버전으로 덮어써서 보냈다. 발견한 건 자정 넘어서였고, 그날 밤 세 시간 넘게 뒤척였다. 머릿속에서는 상사가 화내는 장면, 클라이언트가 계약을 끊는 장면이 번갈아 재생됐다.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보니 별일 아니었다. 메일 하나로 정정되는 수준의 실수였다. 문제는 실수 자체가 아니라 그날 밤 세 시간이었다. 그 세 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냥 같은 장면을 스무 번쯤 되감기했을 뿐이다. 이 경험 이후로 잠들기 전 노트를 펴는 습관을 붙였는데, 시작은 세네카였다. 📜 세네카가 편지에서 반복해서 던진 질문 세네카는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91번째 편지에서 리옹(당시 루그두눔)이 하룻밤 화재로 도시 전체가 잿더미가 된 사건을 다룬다. 번영하던 도시가 반나절 만에 사라진 걸 보며, 그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는 것들이 사실 얼마나 위태로운 전제 위에 서 있는지를 짚는다. 이게 흔히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premeditatio malorum)', 나쁜 일을 미리 그려보는 훈련이라 불리는 것의 뿌리다. 그런데 이걸 그냥 "최악을 상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로 요약하면 절반만 맞다. 내가 그날 밤 세 시간 동안 한 것도 사실 최악을 상상하는 일이었으니까. 차이는 다른 데 있다. 에픽테토스가 『엥케이리디온』 1장에서 그은 선, 내 힘으로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나누는 그 구분이 빠지면 상상은 그냥 반추로 미끄러진다. 나는 그날 밤 "상사가 화낼까"만 반복했지, "화를 내든 말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정정 메일 하나뿐이다"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의 핵심은 최악을 그리는 게 아니라, 최악을 그린 다음 그중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한 조각을 찾아내고 거기서 멈추는 거였다. 그래서 이후로는 자기 전 5분, 다음 날 있을 일 중 가장 껄끄러운 걸 하...

😑 와이파이 끊긴 토요일 4시간, 쇼펜하우어와 철학자들이 말하는 권태의 철학사 인문학 총정리

📶 와이파이가 끊긴 토요일 지난달 인터넷 회사가 아파트 단지 배선 공사를 한다고 토요일 하루 종일 와이파이를 끊었다.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책 읽으면 되지, 밀린 청소하면 되지.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나니까 이상하게 초조해졌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가만히 있지도 못하겠는 상태. 결국 나는 창밖을 십 분 넘게 멍하니 보다가, 문득 이 감정이 낯설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어릴 때 방학 숙제 다 끝내고 아무것도 할 게 없던 그 며칠, 회의 중간에 발표자가 같은 슬라이드를 삼 분째 설명할 때의 그 마비감. 권태라는 감정은 늘 있었는데, 나는 한 번도 이걸 진지하게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권태의 철학사 를 한 번 짚어보려 한다. 🕰️ 쇼펜하우어: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1818)에서 인간의 삶을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에 비유했다. 원하는 걸 못 얻으면 결핍의 고통을 느끼고, 막상 얻고 나면 그 대상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면서 곧바로 지루함이 찾아온다는 논리다. 처음 읽었을 땐 너무 염세적이라 웃어넘겼는데, 와이파이 끊긴 날 다시 생각해보니 묘하게 들어맞았다. 나는 '못 봐서' 답답했던 게 아니라 '보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갈 곳을 잃어서' 불편했던 거였다. 쇼펜하우어식으로 보면 권태는 결핍의 반대가 아니라 결핍의 사촌쯤 되는 감정이다. 💬 키르케고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 권태 얘기에 빠지지 않는 문장이 있다. "권태는 모든 악의 뿌리다." 키르케고르가 『이것이냐 저것이냐』(Enten – Eller, 1843) 1부의 「윤작」("The Rotation of Crops", 하워드 홍·에드나 홍 번역본,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 에세이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이 문장만 떼서 인...

🧠무감정이 아니다: 스토아 철학 아파테이아 실천법으로 감정 소진에서 벗어나는 심리학적 방법

😰 회의실에서 손이 떨렸던 날 작년 가을, 팀장한테 프로젝트 결과를 보고하다가 예상보다 날카로운 피드백을 받았다. 목이 메고 손끝이 떨렸다. 그날 밤 집에 와서 옛날에 사놓고 안 읽던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Encheiridion)』을 다시 펼쳤다. 첫 문장부터 눈에 박혔다.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엥케이리디온』 1장). 팀장의 말투는 내 소관이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어떤 이야기를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지는 내 소관이었다.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딱 하나다. 아파테이아 실천법 는 감정을 없애는 훈련이 아니라, 자극과 반응 사이에 있는 '판단'이라는 단계를 실제로 다룰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라는 것. 다만 이건 라이언 홀리데이류 스토아 콘텐츠에서 늘 반복되는 얘기라 여기서 멈추면 새로울 게 없다. 그래서 이 '틈'이라는 게 심리학에서는 정확히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어떻게 검증됐는지까지 짚어보려 한다. 🧠 에픽테토스가 말한 '표상'과 그 사이의 틈 에픽테토스는 『엥케이리디온』 5장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을 어지럽히는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의견이다." 여기서 핵심은 '표상(phantasia)'이라는 개념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먼저 마음에 인상이 맺히고, 그다음 우리가 거기에 '동의(synkatathesis)'를 하면서 비로소 감정이 완성된다는 게 스토아 심리학의 구조다. 즉 자극과 감정 사이에 판단이라는 처리 단계가 끼어 있다는 얘긴데, 이게 2000년 전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현대 정서심리학에서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라는 이름으로 연구되는 과정이다. 스탠퍼드의 제임스 그로스(James Gross)는 1998년 논문 「The Emerging Field of Emotion Regulation」(Review ...

📖 회사가 망하고 대출 4200만원 남았을 때, 1500년 전 죄수가 쓴 철학의 위안을 읽다

재작년 11월, 다니던 광고대행사 '그로스랩'이 문을 닫았다. 두 달치 월급이 밀린 상태로 출근했더니 사무실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대표는 연락이 끊겼고, 나는 서른다섯이었고, 전세자금대출 4200만원이 남아 있었다. 그 뒤로 일곱 달을 백수로 보냈다. 이력서를 백 통쯤 넣었을 때, 친구 책상에서 얼떨결에 집어 든 책이 보이티우스 철학의 위안 요약 이었다. 처음엔 제목이 너무 뻔해서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저자 소개를 읽다가 멈췄다. 이 사람, 진짜 감옥에서 죽기 직전에 이걸 쓴 거였다. ⛓️ 반역죄로 갇힌 로마 귀족이 남긴 마지막 책 보에티우스는 6세기 초 동고트 왕국에서 집정관까지 지낸 인물이다. 왕 테오도리쿠스 밑에서 승승장구하다가 524년, 반역 혐의로 파비아 감옥에 갇혔다. 재판도 제대로 못 받고 그해 처형당했다. 『철학의 위안』은 그 감옥에서, 죽음을 코앞에 두고 쓴 글이다. 철학이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를 위로한다는 설정인데, 산문과 운문이 번갈아 나오는 독특한 형식(프로시메트룸)을 쓴다. 재밌는 건 이 사람이 원래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저작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던 학자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의 논증도 감상적인 위로가 아니라, 하나씩 전제를 세우고 반박하고 결론을 좁혀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역사가들이 그를 두고 "마지막 로마인이자 최초의 스콜라 철학자"라 부르는 이유다. 🎡 포르투나의 수레바퀴, 그리고 내 대출 문자 2권에서 철학은 '포르투나(운명의 여신)'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나는 원래 이런 존재다. 오르내림이 내 본질이며, 그것이 내 놀이다. 올라가고 싶으면 올라가라, 다만 내 놀이의 규칙에 따라 다시 내려와야 할 때 그것을 억울해하지는 마라." (박문재 옮김, 『철학의 위안』, 현대지성, 2018, 2권 2장 부분 발췌)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운명은 원래 변덕스럽다'는 뻔한 소리로 들렸다. 그런데 실직 통보를 받은 그날 밤, 대...

🏛️ 에피쿠로스는 왜 재산을 공유하지 말라고 했을까 — 정원학교의 진짜 구조와 공동체 설계 비밀

📦 당근마켓에 짐을 다 풀어놓고 작년에 이사하면서 당근마켓에 물건을 한 사흘 내내 올렸다. 안 입는 재킷, 사놓고 펼치지도 않은 전공서적, 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커피용품들. 물건이 하나씩 팔려나가면서 방이 비는 걸 보는데, 이상하게 홀가분한 것과 별개로 조금 허전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 감정이 뭔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작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몇 달 뒤 에피쿠로스의 '정원(케포스, Kepos)'에 대해 읽으면서였다. 다만 지금 와서 보니 그때 내가 느낀 건 미니멀리즘이라기보다는, 물건을 줄이는 것과 함께 사는 방식 자체에 대한 질문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이 글은 '비우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뻔한 이야기 대신, 에피쿠로스가 실제로 어떻게 공동체를 설계했는지를 좀 파보려 한다. 🚪 정원 대문에 붙어 있던 문구 기원전 306년,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성벽 밖에 땅을 사서 학교 겸 거주 공동체를 만든다. 세네카가 『도덕서한』 21번에서 전하길, 그 정원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나그네여, 여기 머물면 좋을 것이다. 여기서는 쾌락이 최고선이다." 아카데메이아나 리케이온처럼 귀족 자제들이 다니는 엘리트 교육기관과 나란히 놓고 보면, 이 광고 문구 자체가 이미 도발이다. 게다가 정원에는 여성(헤타이라 출신인 레온티온), 노예(뮈스) 도 정식 구성원으로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그리스 철학 공동체에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다. 여기까지만 보면 "역시 진보적인 코뮌이었구나" 싶은데, 실제 운영 방식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정반대 지점에서 흥미로워진다. 🤝 "친구의 재산은 공동의 것"이라는 말을 에피쿠로스는 거절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모든 것이 공동이다"라는 원칙으로 유명했다. 재산을 공동 소유로 묶는 방식이다. 그런데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에피쿠로스의 편지에는 이 원칙에 대한 명시적인 반박이 ...

🌿에피쿠로스 정원학파, 2300년 전 아테네가 먼저 살았던 '조용한 삶'의 진짜 의미를 다시 묻다

🔕 알림을 끄던 밤,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했을까 작년 가을 어느 저녁이었다. 회사 단톡방, 인스타그램, 뉴스 푸시까지 하루 종일 울려대던 휴대폰을 보다가 홧김에 알림을 죄다 꺼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밤, 개운하기는커녕 좀 허전했다. 조용해진 방 안에서 나는 뭘 놓친 기분이었을까. 요즘 유행하는 '조용한 삶(quiet living)'이라는 말도 비슷한 온도로 다가온다. 알고리즘과 비교, 성과 압박에서 벗어나 작은 삶으로 물러나자는 제안. 그런데 이걸 처음 실천한 사람들이 2300년 전 아테네에 있었다는 걸 알고 나서, 나는 이 유행어를 다시 보게 됐다. 🏛️ 아테네 변두리, 이상한 공동체 하나 기원전 306년,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성벽 밖 어딘가에 땅을 사서 학교를 세운다. 흔히 에피쿠로스 정원학파 의 '정원(Kepos)'이라 불리는 곳이다. 당시 아테네 철학계의 중심이던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나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리케이온과 비교하면 이 정원은 지리적으로도, 구성원 면에서도 변방이었다. 여기엔 시민만 있는 게 아니라 여성도, 심지어 노예 신분인 사람도 함께 공부했다. 아테네 시민 남성만 정식 구성원이 될 수 있던 다른 학파들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저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0권(에피쿠로스 편)에 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다. 🙊 "숨어 살라"는 말, 사실은 반대였다 에피쿠로스의 유명한 모토 중에 "λάθε βιώσας(라테 비오사스)", 흔히 "숨어서 살라"로 번역되는 말이 있다. 나도 처음엔 이걸 '은둔형 외톨이가 되라'는 뜻으로 오해했다. 그런데 이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쓴 사람이 있다. 그리스 출신의 전기작가이자 수필가인 플루타르코스다. 그는 시인이 아니라 「영웅전」을 쓴 것으로 유명한 산문가인데, 「모랄리아」에 실린 「'숨어서 살라'는 말은 옳은가...

🕰️ 설거지하다 멈춘 일요일 저녁,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진짜 이유는 하이데거의 권태였다

🧽 2024년 12월 어느 일요일, 설거지를 하다가 작년 12월 셋째 주 일요일 저녁 7시쯤이었다. 프리랜서로 넘기던 원고 하나를 막 마감하고, 다음 일감은 아직 안 잡힌 애매한 공백기였다. 밀린 설거지를 하다가 물을 잠그는 순간 라디에이터 돌아가는 소리만 남았는데, 그 정적 속에서 손에 쥔 수세미를 십몇 초쯤 그냥 들고만 있었다. 피곤한 것도 아니었다. 넷플릭스를 켰다가 3초 만에 껐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아무것도 안 꺼내고 닫았고, 휴대폰을 세 번 들었다가 세 번 다 내려놨다. 뭘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는 게 아니라, '하고 싶다'는 감각 자체가 작동을 멈춘 느낌이었다. 이걸 그냥 '무기력하다'고 부르기엔 뭔가 정확하지 않다고 느꼈던 게, 이 글을 쓰게 된 출발점이다. 🌫️ 하이데거가 구분한 세 겹의 권태의 철학 하이데거는 1929년에서 30년 사이 프라이부르크 강의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에서 권태를 세 단계로 나눈다. 첫째는 '무언가에 의해 지루해짐'—기차를 기다리는 역에서 시계를 보는 그 지루함이다. 대상이 명확하다. 둘째는 '무언가와 함께, 그리고 그것에 따라오는 시간에 지루해짐'—저녁 파티는 즐거웠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시간이 텅 빈 채로 흘러갔다는 걸 깨닫는 경우다. 이건 좀 더 은밀하다. 그리고 셋째, 그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깊은 권태(tiefe Langeweile)'가 있다. 원문의 표현을 빌리면 "es ist einem langweilig"—번역하면 "그것은 사람에게 지루하다" 정도인데, 주어가 없다. 나를 지루하게 만드는 대상도, 상황도 없이 그냥 존재 전체가 무차별해지는 상태다. 내가 방금 겪은 설거지 앞의 정지가 이거였는지는 사실 확신할 수 없다. 하이데거 본인도 이 상태를 명확한 증상 목록으로 주지 않는다. 그건 애초에 그가 하려던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이걸 번아웃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

🍯 쾌락주의자가 우정을 최고의 쾌락이라 부른 이유, 에피쿠로스 우정론과 관계 피로 사회

🌙 단체 카톡방 스물일곱 개를 나가던 밤 작년 초, 휴대폰 저장 공간이 부족하다는 알림을 보다가 홧김에 카카오톡 대화 목록을 정리한 적이 있다. 스크롤을 내리는데 이름도 가물가물한 단체방이 끝없이 나왔다. 동창회, 전 직장 동기, 아파트 커뮤니티, 육아 정보방, 몇 년째 안 만난 동아리 선후배… 스물일곱 개를 나가고 나서 이상하게 후련했다. 사람을 잃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뭔가 내려놓았다는 느낌. 그날 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데, 왜 정작 새벽에 전화할 사람은 두세 명뿐일까. 이 물음을 붙잡고 있다가 다시 펼친 책이 에피쿠로스 우정론 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쾌락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놓은 철학자다. 그런데 정작 그가 남긴 문장 중 가장 자주 인용되는 건 쾌락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우정에 대한 찬사다. "지혜가 삶 전체의 행복을 위해 마련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의 소유다." 쾌락주의자가 왜 쾌락이 아니라 우정을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했을까. 🌿 정원 공동체, 그리고 노예와 여성이 앉을 자리 기원전 306년,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외곽에 땅을 사서 '정원'이라 불리는 공동체를 꾸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원이 얼마나 목가적이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 문을 드나들 수 있었느냐다. 당대 그리스 철학 공동체는 대개 자유 시민 남성만 받았다. 정원은 달랐다. 여성도, 노예 신분이었던 이들도, 매춘부 출신도 구성원으로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에서 우정을 유용성·쾌락·덕성이라는 세 층위로 나누고, 그중 진짜 우정은 대등한 시민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선을 그은 것과 정면으로 다르다. 에피쿠로스에게 우정의 자격 조건은 신분이나 쓸모가 아니라 그저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두려움이 줄어드느냐였다. 그가 평생 씨름한 문제는 쾌락을 어떻게 늘리느냐가 아니라 고통과 불안, 특히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아타락시아를 깨는 것들)를 어떻...

🌙 매일 밤 3줄, 스토아 철학 저널링이 임원 회의 반려 후 흔들린 내 감정을 완전히 바꾼 이유

📋 그 제안서는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작년 3월, 내가 두 달 넘게 매달린 제안서가 임원 회의에서 5분 만에 반려됐다. 이유도 제대로 안 알려줬다. 그날 밤 열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같은 문장을 세 번 다시 썼다 지웠다. "이건 부당하다"로 시작해서 "그 사람은 원래 그렇다"로 끝나는 문장이었다. 잠이 안 와서 책장에서 먼지 쌓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꺼냈다. 펼친 곳이 하필 2권 1장이었다. "오늘도 나는 참견하기 좋아하고, 은혜를 모르고, 거만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시기하고, 비사교적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가 자기 자신에게 매일 아침 하는 다짐이었다. 웃겼다. 이 사람은 로마 황제였는데 나랑 비슷한 걸 걱정하고 있었다는 게. 그 제안서, 결국 안 통과됐다. 대신 석 달 후 거의 같은 내용이 다른 팀 이름으로 올라가서 통과됐다. 화가 안 풀린 건 그 사실을 알게 된 다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감정이 가라앉는 데 걸린 시간이 3주가 아니라 사흘이었다. 뭐가 달라졌는지 돌아보니, 그 사흘 동안 매일 밤 노트에 세 줄씩 썼다는 것 말고는 없었다. 🤔 "사건이 아니라 판단이 괴롭힌다"는 말, 절반만 맞다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 1장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누라고 말한다. 5장은 더 나아가 "인간을 어지럽히는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판단"이라고 못박는다. 이 문장, 스토아 철학 입문서마다 지겹도록 나온다. 나도 처음엔 이걸 만능키처럼 받아들였다. 화가 날 때마다 "이건 내 판단이지 사실이 아니다"라고 되뇌면 감정이 사라질 줄 알았다. 안 사라졌다. 오히려 두 번 실패했다. 한 번은 그 제안서 반려 건이었고, 다른 한 번은 몇 년 전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였다. 후자의 경우 "이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니 판단을 내려놓자"는 문장을 몇 번을 ...

🍲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쾌락 대신 남긴 유산: 우정과 매달 스무날의 특별한 약속

🍱 반찬통에 붙어있던 포스트잇 2년 전 11월, 아버지가 담낭 쪽 수술을 받고 두 달 가까이 입원해 계셨다. 회사 끝나고 병원 들렀다가 집에 오면 자정이 다 되어 있었고, 냉장고를 열어봐야 반쯤 마른 계란 두 알이 전부였던 시기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현관 앞에 반찬통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대학 동기 정은이가 다녀간 거였다. 소고기무국이랑 멸치볶음, 그리고 통 옆에 붙은 포스트잇에는 "국 데워서 밥 챙겨 먹어, 자책하지 말고"라고 적혀 있었다. 국을 냄비에 옮겨 담는데 아직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어서, 숟가락도 안 들고 그 앞에 한참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정작 정은이한테 전화해서는 고맙단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딴소리만 늘어놨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 뻔하다면 뻔한 장면을 기원전 3세기 아테네에서 이미 정교하게 이론화해 놓은 사람이 있다. 쾌락을 인생의 목표로 선언해서 지금까지도 오해받는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남긴 것이 바로 에피쿠로스 우정론 이다. 🧮 쾌락주의자가 계산기를 두드리자 나온 답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은 사실 방탕이 아니라 계산이다. 쾌락을 늘리고 고통을 줄이는 게 목표라면, 뭐가 제일 효율 좋은 투자처인지 따져봐야 한다. 그가 남긴 『주요 교설』(퀴리아이 독사이) 27번은 이렇게 말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원문을 시릴 베일리가 1926년에 영역한 걸 옮기면 이렇다. "지혜가 일생 전체의 행복을 위해 마련해주는 것들 가운데, 우정을 얻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Of all the things which wisdom acquires to produce the blessedness of the complete life, far the greatest is the possession of friendship)." 돈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고 우정이 1등이라는 거다. 이유는 다음 교설에서 좀 더 풀리는데, 고통 중에서 가장 큰 건 눈앞의 통증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게 에피쿠...

🐍 책 도둑은 뱀에 물려 죽으리라 — 유명한 중세 필경사 저주 문구, 진짜 출처를 추적해보니

🏛️ 박물관 유리장 앞에서 든 의문 몇 년 전 런던의 한 도서관 특별전에서 필사본 한 점을 본 적이 있다. 마지막 장 여백에 적힌 중세 필경사의 저주 문구 사진이 설명판에 큼지막하게 인쇄돼 있었는데, 요지는 이 책을 훔치는 자는 손이 뱀으로 변해 스스로를 물어뜯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어뒀다가, 나중에 블로그 글을 쓰겠다고 "산페드로 수도원본"이라는 출처를 붙여 인용했다. 그런데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 이 문구의 소장처, 필사본 번호, 연대를 구체적으로 밝힌 학술 논문이 단 하나도 없었다. 인터넷을 도는 이 유명한 저주문은 정작 누구도 원본을 본 적이 없는 셈이었다. 이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원래 소재보다 더 흥미로웠다. ⛪ 저주는 수도사들의 발명품이 아니다 책에 저주를 붙이는 관습을 중세 수도원 문화로 설명하는 글이 많은데, 실제로는 그보다 천오백 년 이상 앞선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니네베 출토 점토판, 그러니까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 장서표에도 비슷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판을 훔치거나 물에 담가 지우는 자에게 아슈르 신과 닌릴 여신이 분노한 얼굴로 그 이름과 후손을 이 땅에서 지워버리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점토판이라는 매체 자체가 파괴하기 어려운데도 저주를 새겼다는 건, 도둑질을 막으려는 실용적 목적보다는 소유권과 지식에 대한 태도를 공동체에 각인시키는 의례에 가까웠다는 뜻으로 읽힌다. 중세 수도사들은 이 오래된 관습을 기독교 신학의 언어로 새로 쓴 후계자들이었을 뿐이다. 📜 그 유명한 문구는 어디서 왔을까 캠브리지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의 사서를 지낸 필사본 연구자 크리스토퍼 드 하멜은 여러 저서에서 실제 필사본에 남은 소유 표시와 경고 문구를 다수 소개하는데, 정작 인터넷에서 가장 널리 퍼진 "뱀이 되어 물어뜯으리라"류의 극적인 저주문은 그가 인용하는 목록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 분야의 가장 본격적인 연구서는 마크 드로긴이 1983년에 낸 『Anathem...

🏛️ 만물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 2,500년 전 철학자들이 품었던 질문

🔥 헤라클레이토스의 수수께끼 처음 헤라클레이토스 원전 단편을 만난 건 학부 2학년 철학사 수업이었다. 교수가 그리스어 원문과 함께 단편 B50을 칠판에 적었다. "내 말이 아니라 로고스를 듣고서, 모든 것이 하나라는 데 동의하는 것이 지혜다(μὴ ἐμοῦ, ἀλλὰ τοῦ λόγου ἀκούσαντας ὁμολογεῖν σοφόν ἐστιν ἓν πάντα εἶναι)."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다. 수업 전에 예습한 교재에서는 '로고스는 우주의 보편 법칙'이라고 다섯 줄로 요약해놨는데, 막상 원문 앞에 서니 그 설명이 얼마나 공허한지가 느껴졌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왜 굳이 "내 말이 아니라"고 먼저 못박았을까? 그 거리두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그 질문이 나를 소크라테스 이전(pre-Socratic) 철학자들 에게 붙들어 놨다. 🏛️ 신을 빼고 설명하려 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고대 그리스에서 천둥은 제우스가 치는 것이었다. 봄이 오는 건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에서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설명하는 방식이 항상 인격적 행위자—신, 영웅, 귀신—를 전제했다. 기원전 6세기 밀레토스에서 탈레스가 한 일은 그 문법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그는 만물의 근원(archē)이 물이라고 주장했다. 이것만 보면 그냥 틀린 말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 983b6에서 탈레스를 언급하며 주목한 건 답의 옳고 그름이 아니었다. 탈레스는 자연 현상을 자연 속 어떤 원리로 설명하려 했다. 신이 없어도, 이야기가 없어도 세계가 설명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타진한 것이다. 이게 왜 혁명적인지는 지금 우리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 우리가 그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태풍을 기상청 앱으로 예보받고, 번개를 대기 중 전하 불균형으로 배운다. 그 감각이 너무 당연해서, 그것이 얼마나 특수한 인식론적 전제—세계는 인격이 없고, 규칙적이고, 조사하면 이해할 수 있다—위에...

🕯️ 공황이 먼저 온 밤 — 스토아 철학자들의 죽음 연습과 평정심

작년 가을, 마흔셋의 선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느낀 건 이상하게도 슬픔이 아니었다. 슬픔은 며칠 뒤에야 왔다. 그날 밤을 지배한 건 공황이었다. '나도 언제든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추상이 아닌 현실로 들이닥친 느낌. 이 공황을 나는 오래 생각했다. 왜 슬픔이 먼저가 아니라 공황이 먼저였을까. 그리고 2000년 전 철학자들이 왜 그토록 죽음을 '연습'하라고 했는지가, 그제야 진짜 의미로 들리기 시작했다. 😔 슬픔과 공황은 다른 곳을 가리킨다 슬픔은 밖을 향한다. 내가 잃은 사람, 더 이상 볼 수 없는 존재를 애도하는 감정이다. 공황은 안을 향한다. 자기 자신이 없어질 수 있다는 공포다. 나는 선배를 애도하다가 어느 순간 나 자신의 죽음과 맞닥뜨렸다. 그것도 아무 준비 없이. 공황이 온 것은 당연했다. 낯선 것을 처음 만났을 때 오는 반응이 바로 공황이니까. 스토아 철학자들이 memento mori를 말할 때, 그들이 진짜 싸우려 했던 적은 죽음 자체가 아니었다. 죽음이 갑자기 '처음으로' 들이닥치는 그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방어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미리, 자발적으로 연습하는 것. 📖 안다는 것과 연습한다는 것 사이 "우리는 모두 죽는다." 이 명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나는 그날 밤 이것을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공황에 빠졌다. 이 간극이 스토아 철학이 집요하게 파고든 지점이다. 스토아는 인지(cognitio)와 훈련(askesis)을 구분한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를 안다고 해서, 그 사실을 실제로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감당하려면 반복적이고 구체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스토아에서 감정 통제의 이상으로 제시하는 개념은 아파테이아(apatheia)다. 이것은 흔히 '감정 없음'으로 오해되지만, 정확하게는 외부 사건에 의해 내적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감...

🤐 댓글을 지운 그 3초—푸코의 파레시아로 읽는 SNS 시대의 침묵

## 🗑️ 그날 나는 왜 댓글을 지웠을까 몇 달 전 일이다. 지인이 SNS에 올린 글이 영 찜찜했다. 틀린 정보는 아니었다. 다만 절반만 말한 진실—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더 교묘한 거짓이었다. 나는 댓글창을 열고, 다섯 문장쯤 썼다가 지웠다. 썼다가 또 지웠다. 결국 이모지 하나만 남겼다. 뭐가 무서웠던 걸까. 그 글에는 이미 수백 개의 공감이 달려 있었고, 댓글들은 하나같이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내 말은 분명 튀어 보일 것이었다. 괜히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도 있었다. 그냥 넘어가는 게 현명해 보였다. 나만 그런 게 아닌 것도 안다.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가 2020년 미국 SNS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48퍼센트가 "원래 쓰려던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한 적 있다"고 답했다. 거의 절반이다. 쓰다가 멈춘 말들이 이 세계에 얼마나 쌓여 있을까. --- ## 🎯 [파레시아](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파레시아): 진실은 위험을 동반해야 한다 푸코(Michel Foucault)는 말년에 '파레시아(parrhesia)'라는 고대 그리스 개념을 다시 꺼냈다. 1983~84년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사후에 『진실의 용기(Le Courage de la vérité)』로 묶인 그 강의에서 그는 파레시아를 단순한 '솔직함'과 구분했다. 파레시아에는 세 조건이 붙는다. 말하는 사람이 그 진실을 진심으로 믿을 것. 그 말이 말하는 사람에게 실제 위험을 초래할 것. 그럼에도 말하는 것이 의무라는 인식에서 비롯될 것. 두 번째 조건이 핵심이다. 푸코가 든 예는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는 권력자들 앞에서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했고 사형을 받았다. 반면 상사가 부하에게 "네 기획서 별로야"라고 말하는 건 파레시아가 아니다.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파레시아는 구조적으로 약자가 강자에게, 또는 동등한 관계에서 상대가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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