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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광부 공무도하가 해석, 강 건넌 남자는 슬퍼한 게 아니라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다

📞 아버지는 이미 죽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해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아버지가 운전하다 말고 갑자기 전화기를 들었다. 번호를 누르고, 신호음을 듣고, 아무 말 없이 끊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냥, 걸어봤어"라고만 하셨다. 그 번호가 외할머니 번호였다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이상한 건, 아버지는 그 며칠 전 이미 화장까지 다 마친 상태였다는 거다. 죽음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알면서도 손이 먼저 번호를 눌렀다. 그때는 그냥 "정신이 없으셨나 보다" 하고 넘겼는데, 나중에 공무도하가를 다시 읽다가 이 장면이 계속 겹쳐 보였다. 백수광부 공무도하가 해석 을 안다는 사람도 내용을 정확히 아는 경우는 드물다. 백발의 남자가 강물로 뛰어들고, 아내가 뒤에서 "그러지 마세요" 외치다가 결국 남편은 물에 빠져 죽고, 아내도 노래 한 자락을 남기고 따라 죽는다. 짧고, 잔인하고, 이상하게 논리가 없다. 그런데 그 "논리 없음"이야말로 이 텍스트가 신화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 애도 반응을 기록한 증거일 수 있다. 📜 곽리자고가 본 것, 최표가 적어놓은 것 원전부터 짚고 가자. 이 이야기는 중국 진(晉)나라 학자 최표(崔豹)가 쓴 『고금주(古今注)』 「음악」편에 실려 있다. 뱃사공 곽리자고(霍里子高)가 새벽에 배를 젓다가 백발의 남자가 물을 건너는 걸 목격한다. 아내가 쫓아가며 말리지만 소용없고, 남자는 빠져 죽는다. 아내는 공후(箜篌)를 타며 노래를 짓고는 스스로 강에 몸을 던진다. 곽리자고가 집에 돌아가 아내 여옥(麗玉)에게 이 얘기를 전하자, 여옥이 그 노래를 공후로 재현한 게 바로 「공후인(箜篌引)」, 즉 공무도하가다. 정리하면 이건 목격담이 두 다리를 건너 문학이 된 텍스트다. 사건 - 곽리자고의 증언 - 여옥의 재현. 세 단계를 거치는 동안 원래 감정의 날것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이 노래는 처음부터 ...

🗄️ 서랍은 열었지만,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 — 반 게넵의 통과의례로 읽는 애도의 인류학 이야기

🗄️ 서랍 앞에서 여섯 달,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반년쯤 지난 어느 일요일, 나는 결국 옷장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 글은 그 순간 뭔가 극적인 걸 발견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안에는 오래된 영수증 뭉치, 다 닳은 휴대폰 충전기, 쓰다 만 안경닦이 천 같은 게 들어 있었다. 눈물이 왈칵 나거나 아버지의 어떤 진심을 발견하는 그런 장면은 없었다. 그냥... 좀 허무했다. 여섯 달을 못 연 게 민망할 정도로. 그런데 이상하게 그 허무함이 오래갔다. 나는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서 애도의 인류학 책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슬픔을 개인의 감정으로만 보면 "왜 별것도 아닌 서랍을 그렇게 오래 못 열었나"에 대한 답이 안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찾다 보니, 이 감정을 개인이 아니라 절차와 구조로 설명하려 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 반 게넵의 세 단계, 그런데 그건 원래 '함께' 치르는 것 아르놀드 반 게넵은 1909년 『통과의례』에서 인생의 큰 전환 — 출생, 성인식, 결혼, 죽음 — 을 세 단계로 나눴다. 분리(séparation), 경계(marge), 재통합(agrégation). 죽음의 경우 상주는 상복을 입고 일상에서 분리되고(분리), 장례 기간 동안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머물다가(경계), 탈상과 함께 다시 사회로 복귀한다(재통합)는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반 게넵이 관찰한 통과의례는 기본적으로 '공동체가 함께 목격하는' 절차다. 상복, 곡, 조문, 탈상제 — 전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내가 서랍을 연 건 일요일 오후, 아무도 모르게, 혼자였다. 반 게넵의 틀을 그대로 갖다 대면 이 행동은 어느 단계에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다. 이건 이론이 나를 설명해준 게 아니라, 이론과 내 경험 사이에 틈이 있다는 걸 알려준 것에 가깝다. 🦴 에르츠의 이중장례, 그리고 그 이론의 한계 로베르 에르츠는 ...

🗣️ 이탈률 32%, 내가 끝내 삼키지 않은 한마디 — 스토아 철학의 파르헤시아가 말하는 용기

📉 이탈률 32%, 그리고 내가 삼키지 않은 말 작년 9월이었다. 우리 팀은 '무제한 저장' 기능을 10월 둘째 주에 내보내기로 이미 위에 보고를 마친 상태였고, 그 주 화요일 회의는 사실상 최종 점검용이었다. 문제는 2주 전에 돌린 베타 테스트 데이터였다. 신규 유입 사용자의 32%가 그 기능을 켠 뒤 사흘 안에 앱을 지웠다. 우리 팀 평균 이탈률이 보통 14~16% 선이었으니 거의 두 배였다. 나는 그 숫자를 슬라이드 한 장에 넣어 회의에 들고 갔다. 발표 순서가 돌아왔을 때 나는 "일정대로 가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다. 상사는 "그 데이터는 표본이 작다"고 했고 나는 "표본 크기는 이미 유의수준 계산에 넣었다"고 반박했다. 회의실 공기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상사는 "검토해보겠다"고 답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기능은 예정대로 나갔고, 12월 초에 실제로 이탈률 문제가 지표에 잡혔지만 그때는 "계절적 요인으로 예상보다 저조한 성과"라는 문구로 정리됐다. 내가 옳았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다음 분기 기획 회의 참석자 명단에서 조용히 빠졌다. 아무도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 '용기'가 아니라 '분리' — 에픽테토스가 말한 파르헤시아 이 이야기를 스토아 철학 책을 다시 펴 든 건 그다음 달이었다. 에픽테토스의 『담화록』 1권 2장에는 헬비디우스 프리스쿠스 이야기가 나온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원로원 회의에 나오지 말라고 명령하자 프리스쿠스는 원로원 의원인 이상 회의에 참석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답한다. 황제가 "그럼 최소한 발언은 하지 말라"고 하자 그는 "내 의견을 묻는다면 말할 것"이라 답하고, 황제가 "말하면 죽이겠다"고 하자 "내가 언제 내가 죽지 않는다고 말한 적 있느냐...

🏛️ 최악을 미리 상상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 스토아 철학 프리메디타티오 말로룸

😰 발표 전날 밤, 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본으로 썼다 작년 가을, 프리랜서로 일하던 나는 한 중소 제조업체의 신사업 투자심의위원회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다. 서른 명 남짓한 임원들 앞에서, 반년 동안 준비한 IoT 센서 사업안을 20분 안에 설득해야 하는 자리였다. 발표 전날 밤 11시, 호텔 방에서 슬라이드를 열댓 번째 넘기다가 문득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잠을 자야 하는데 눈이 말똥말똥했다. 그때 노트북을 덮고 대신 메모장을 열었다. 그리고 이렇게 적기 시작했다. "질문 시간에 재무이사가 ROI 근거를 공격하면? 슬라이드 12번의 손익분기점 계산이 틀렸다고 지적당하면? 발표 도중 목이 잠겨서 말을 더듬으면?" 하나씩 최악의 장면을 문장으로 써 내려갔다. 스무 개쯤 적고 나니, 손 떨림이 잦아들었다. 잠도 왔다. 나중에 알았다. 이게 스토아 철학자들이 " 프리메디타티오 말로룸 (praemeditatio malorum)", 라틴어로 "미리 겪어보는 악(惡)"이라 부르던 훈련과 닮아 있었다는 걸. 📜 세네카가 실제로 쓴 문장은 조금 다르다 문제는, 이 개념을 다룬 글 대부분이 세네카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라고 했다"는 식으로 뭉뚱그려 인용한다는 거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썼다가, 실제로 원문을 찾아보고 좀 놀랐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건 세네카가 친구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도덕서한』 91번 편지다. 리옹 대화재로 도시 하나가 하룻밤 만에 잿더미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쓴 편지인데, 여기서 세네카가 강조하는 건 "불안을 줄이자"가 아니라 "우리는 이미 일어난 일 앞에서만 놀란다(nihil accidere nobis insperatum debet)"는 문장이다. 즉 핵심은 감정 조절 기법이 아니라, 재앙을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항상 가능한 일로 재분류하는 인식론적 작업에 가깝다. 더 구체적인 지침은 24번 편지에 나...

⏳수도사들은 시계가 아니라 해를 보고 살았다: 오후 2시 집중력이 무너지는 이유, 베네딕토 규칙

🕒 오후 3시, 나는 왜 매번 무너지는가 지난달에 스크린타임 앱으로 3주 동안 내가 언제 뭘 하는지 기록해봤다. 결과가 좀 민망했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는 딥워크 앱 기준 평균 87분을 몰입 상태로 채우는데, 점심 먹고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엔 이 수치가 19분으로 뚝 떨어진다. 그 시간에 뭘 하냐면 슬랙 확인, 뉴스 앱, 다시 슬랙. 의지력 문제라고 생각해서 카페인을 늘렸는데 오히려 그 다음날 밤 수면의 질이 나빠져서 원인과 결과가 뒤엉킨 채로 몇 주를 흘려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읽은 게 성 베네딕토가 480년경에 쓴 「베네딕도 규칙」이었다. 내가 참고한 건 이형우 신부가 옮기고 분도출판사에서 낸 판본인데, 라틴어 원문과 조항 번호가 나란히 달려 있어서 어느 챕터에서 뭘 말하는지 추적하기가 편했다. 흔히 이 책 하면 '기도와 노동'이라는 표어부터 떠올리는데, 정작 흥미로운 건 그 표어가 아니라 8장부터 16장, 그리고 48장에 걸쳐 나오는 시간표의 디테일이었다. ☀️ 시계가 아니라 해를 따라 산 사람들 RB 48장은 '하루의 노동에 관하여'라는 제목인데, 여기서 눈에 띄는 건 노동 시간이 고정값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활절부터 10월 1일까지는 아침 일찍부터 정오까지 노동하고, 10월 2일부터 사순절 시작 전까지는 해 뜨는 시각 자체가 늦어지니까 노동 시간대 전체가 뒤로 밀린다. 겨울철엔 새벽 성무일도(Vigils) 시작 시각도 여름과 다르게 잡혀 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오전 9시 출근이 계절마다 8시가 됐다 10시가 됐다 하는 셈이다. 이게 나한텐 좀 충격이었다. 나는 그동안 '루틴은 고정할수록 좋다'고 믿고 기상 시간, 작업 블록을 1년 내내 똑같이 맞추려고 애썼는데, 정작 시간관리의 원조 격인 이 규칙서는 정반대였다. 해가 짧아지면 노동도 짧아지고, 해가 길어지면 노동도 늘어난다. 규율은 시계가 아니라 태양에 종속돼 있었다. 😴 낮잠은 게으름이 아니라 규정이었다 더 재밌는 건 RB...

🔥 3년 사귄 애인과의 권태기, 실은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니체의 르상티망(원한)이 쌓인 거였다

🍜 3년 사귄 애인이 밥 먹는 소리마저 거슬리기 시작했을 때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3년을 만난 사람이랑 밥을 먹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국물 마시는 소리가 너무 거슬리는 거다. 예전엔 귀엽다고 생각했던 습관들이 어느 순간부터 하나씩 신경을 긁기 시작했다. "우리 권태기인가 봐" 하고 넘어갔는데, 곱씹어보니 이상했다. 그 사람이 변한 게 아니었다. 국물 마시는 소리는 3년 내내 똑같았으니까. 변한 건 나였다. 정확히는 내 안에 뭔가가 쌓이고 있었다. 그러다 니체를 다시 읽으면서 무릎을 쳤다. 이거, 니체 르상티망 권태기 (ressentiment)이잖아. 📖 르상티망은 그냥 '원한'이 아니다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말하는 르상티망은 단순히 화가 났다는 뜻이 아니다. 핵심은 행동으로 발산되지 못하고 안으로 쌓이는 반응 이라는 데 있다. 그는 이걸 노예 도덕의 기원으로 설명하는데, 직접 맞서 싸울 힘이 없는 자가 상대를 '악'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자기 무력함을 정당화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라는 거다. 유명한 비유가 있다. 니체는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인간을 "포도에 손이 닿지 않으니 저 포도는 실 거야"라고 말하는 여우에 비유한다. 원하는 걸 가질 힘이 없으니, 원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그 대상을 깎아내리는 것. 중요한 건 이게 대상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자기 무력감의 위장이라는 점이다. 연애로 옮겨 생각해보면 소름 돋는다. 권태기의 짜증은 대개 상대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이 관계 안에서 표현하지 못하고 눌러온 무언가의 축적이다. 서운했던 순간, 말하지 못한 불만, 맞춰주느라 삼킨 욕구들. 그게 국물 소리라는 만만한 대상을 찾아서 터져나온 거다. 🤔 왜 하필 상대의 사소한 습관을 미워하게 될까 니체는 르상티망의 특징으로 "반응적(reactive)"이라는 표현을 쓴다. 능동적인 힘은 스스로 원하는 걸 향해 나아가지만, 반응적인 힘은 외부 ...

🤐 나는 왜 또 손을 들지 않았을까: 파르레시아와 회의실에서 삼켜버린 말들의 정치학에 대한 단상

💳 결제 모듈, 3주, 그리고 들지 않은 손 작년 여름, 다니던 스타트업에서 앱 리뉴얼 프로젝트 킥오프 회의가 있었다. 팀장이 화면에 간트 차트를 띄우고 말했다. "3주 안에 결제 모듈까지 끝내자." 개발자 두 명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PG사 연동만 붙여봐도 API 문서 검토에 인증 테스트, 정산 로직 확인까지 보통 열흘은 잡아먹는다는 걸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절반은 알고 있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말을 안 했다. 팀장이 "다들 괜찮죠?"라고 물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프로젝트는 결국 6주 만에 끝났다. 3주가 아니라. 회의가 끝나고 복도에서 동료 개발자가 슬쩍 말했다. "그거 3주 안에 되겠어요?" 나는 "글쎄요, 빡빡하긴 하죠"라고 답했다. 회의실 안에서는 하지 못한 말을 복도에서는 했다. 이 낙차가 나는 계속 마음에 걸렸다. 🗣️ 파르레시아 , 목이 걸린 채로 하는 말 고대 그리스에 파르레시아(parrhesia)라는 말이 있다. 미셸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에서 여러 번 다룬 개념인데, 그냥 '표현의 자유'로 번역하면 오히려 핵심을 놓친다. 푸코가 강조한 지점은 이거다. 파르레시아는 발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발언하는 사람이 그 말 때문에 위험을 감수한다는 데 있다. 신하가 왕에게 직언할 때, 그 말이 왕의 심기를 건드려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데도 하는 말. 위험 부담이 없는 발언은 파르레시아가 아니다. 이 정의를 회의실에 그대로 옮겨보면 이상하게 잘 들어맞는다. 내가 그 킥오프 회의에서 "3주는 무리입니다"라고 말하는 데 드는 비용은 뭐였을까. 목이 달아나진 않는다. 하지만 팀장 앞에서 초를 치는 사람, 협조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찍힐 위험은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분기 평가에서 '협업 태도' 항목에 그 장면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될 거라는 계산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머릿속에 있었다. ...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을 공자가 '덕을 훔치는 도둑'이라 부른 이유: 향원(鄕原)의 정체

🤔 "그 사람 진짜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이 걸릴 때 몇 년 전 팀에 박 과장이라는 분이 있었다. 신입이던 나한테 제일 먼저 커피를 사준 사람도, 야근하는 날 야식을 시켜준 사람도, 팀장 험담을 하는 사람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도 다 그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람이 낸 의견이 뭐였는지, 그 사람이 반대한 안건이 있었는지를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다. 3년을 같이 일했는데도. 최근에 논어를 다시 읽다가 ' 향원(鄕原) 논어 '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얼굴이 박 과장이었다. 딱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 이름이 떠올랐는지, 그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 공자가 콕 집어 미워한 딱 한 유형 논어 양화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鄕原, 德之賊也(향원, 덕지적야)." 향원은 덕을 훔치는 도둑이라는 뜻이다. 공자가 평생 미워한 인물 유형은 많지 않다. 소인은 자주 등장하지만, 소인은 그냥 사람이 못됐다고 하면 끝이다. 그런데 향원은 다르다. 마을(鄕)에서 다들 좋다(原, 愿)고 인정하는 사람, 즉 동네에서 평판 좋은 그 사람을 콕 집어 도둑이라 부른 거다. 나쁜 사람보다 좋은 척하는 사람을 더 미워했다는 얘기인데, 처음 읽으면 좀 이상하다. 착하다는데 왜. 🎭 맹자가 풀어준 그 답, "사이비"라는 말의 기원 이 궁금증을 풀어준 건 맹자다. 진심 하편에서 만장이 공자가 왜 향원을 미워했는지 묻자 맹자가 답한다. "비지무거야, 자지무자야(非之無擧也, 刺之無刺也)" — 비난하려 해도 딱히 들 흠이 없고, 꼬집으려 해도 꼬집을 게 없다. 세속에 동조하고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며, 있는 모습은 충직하고 신실한 것 같고, 행동은 청렴한 것 같아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스스로도 옳다 여기지만, 요순의 도에는 절대 함께 들어갈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덕의 도둑이라 했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나온 표현이 "사이비(似而非)" ...

🏠함께 살아도 냉장고는 따로 썼다, 에피쿠로스 정원학교가 알려주는 공동체 생활의 오랜 지혜

🧊 냉장고 칸 하나 때문에 시작된 이야기 2019년 봄, 서울 합정동의 4층짜리 셰어하우스에 6개월쯤 산 적이 있다. 방 다섯 개짜리 집에 다섯 명이 살았고, 냉장고는 한 대, 칸은 다섯 개로 나뉘어 있었다. 문제는 그 칸이 균등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제일 위 칸을 쓰던 사람 — 편의상 민석이라고 하자 — 이 야식을 자주 시켜 먹으면서 자기 칸이 부족하다고 아래 칸까지 슬금슬금 넘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배달 온 치킨 상자 하나였다가, 나중엔 각종 반찬통이 쌓였다. 결국 집주인이 중재에 나서서 칸마다 이름표를 붙이는 걸로 끝났는데, 그 이름표 하나 붙이는 데 두 달이 걸렸다. 부엌 하나, 냉장고 하나를 같이 쓰는 것과 그 안의 칸까지 완전히 섞는 것 사이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었다. 같이 사는 건 됐는데, 뭘 같이 쓰고 뭘 따로 둘지에 대한 합의가 없으니까 매번 부딪혔다. 🌿 "정원"은 코뮌이 아니었다 에피쿠로스 얘기가 나오면 보통 원조 미니멀리스트, 최초의 코리빙 공동체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틀린 말은 아닌데, 정작 핵심은 다른 데 있다. 기원전 306년쯤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성벽 바깥 한적한 곳에 땅을 사서 학교 겸 거주 공간을 차렸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0권에서 전하는 바로는 이 땅값이 80미나였다고 한다. 1미나가 100드라크마이니 8천 드라크마, 숙련 노동자 일당이 1드라크마 안팎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 즉 에피쿠로스 개인이 자기 돈으로 땅을 매입한 것이지, 제자들이 돈을 모아 공동 소유한 게 아니었다. 이 지점이 피타고라스 학파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피타고라스 공동체는 재산을 완전히 공유하는 걸 원칙으로 삼았던 걸로 유명한데, 에피쿠로스 정원학교 는 그러지 않았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대화하되, 소유권은 각자의 것으로 남겨뒀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그대로 옮겨 적은 에피쿠로스의 유언장(10권 16~21절 부근)을 보면 이 구조가 얼마나 꼼꼼하게 설계...

📖 몽테뉴 수상록 필사 루틴, 3권짜리 민음사판에서 유명한 문장 다음 문장을 읽는 법을 매일 되새기다

📚 책장 정리하다 다시 편 책 지난겨울 책장을 정리하다가 대학 때 사서 표지만 넘겨보고 처박아둔 몽테뉴 수상록을 다시 꺼냈다. 심민화·최권행이 옮긴 민음사판 세 권짜리인데, 유독 3권만 손때가 묻어 있었다. 아마 졸업 논문 어딘가에 인용하려고 뒤적였던 흔적일 거다. 나머지 두 권은 새 책이나 다름없었다. 그날 밤 아무 페이지나 펴서 읽다가, 그냥 베껴 써보기로 했다. 특별한 결심은 아니었다. 눈으로 읽으면 문장이 미끄러지듯 지나가는데, 손으로 쓰면 한 글자씩 걸리는 느낌이 좋았을 뿐이다. 그게 8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몽테뉴 수상록 필사 루틴 이다. ✍️ 다들 인용하는 문장 말고 몽테뉴를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나는 존재를 그리는 게 아니라 지나감을 그린다"는 문장을 안다. 수상록 서문이나 해설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문장이라 나도 필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 문장을 베껴 쓰다가 무슨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말하면 거짓말이다. 내가 걸린 건 바로 다음 문단이었다. 3권 2장 "회한에 대하여"에서 몽테뉴는 이렇게 쓴다. 자기 영혼이 확고한 발판을 얻을 수 있었다면 스스로를 시험하지 않고 그냥 결정했을 텐데, 실제로는 늘 수련 중이고 시험 중이라고. 유명한 문장 바로 뒤에 이어지는, 상대적으로 덜 인용되는 문장이다. 처음 읽었을 땐 그냥 지나쳤는데 손으로 옮겨 쓰다 보니 이 문장이 더 오래 남았다. '발판'이라는 단어를 짚어가며 계속 고쳐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결론을 낼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러니까 필사가 준 건 새로운 인용구가 아니라, 이미 아는 문장 옆에 붙어 있던 문장을 다르게 읽는 속도였다. 📔 일기장에 남은 버릇 필사를 시작하고 나서 예전에 쓰던 일기를 다시 펼쳐본 적이 있다. 몇 개인지 세거나 퍼센트를 낸 건 아니고—사실 세보려다가 관뒀다. 그런 숫자는 어차피 내가 원하는 결론에 맞춰 나올 게 뻔했다. 다만 뒤로 갈수록...

📜 에픽테토스의 스승인데 왜 이름조차 몰랐을까 — 잊혀진 스토아 철학자 무소니우스 루푸스 이야기

📜 담화록 각주에서 발견한 낯선 이름 몇 년 전 에픽테토스의 《담화록》을 처음 읽었을 때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본문보다 각주를 더 오래 들여다보는 버릇이었다. "무소니우스는 이렇게 말했다"는 문장이 너무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에픽테토스 본인의 말인 줄 알았던 유명한 구절들, 예를 들어 자기 통제와 인내에 관한 문장들이 사실은 스승 무소니우스 루푸스의 말을 옮긴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서점에 가서 그 이름을 검색해봤다. 국내 번역본이 없었다. 위키백과 항목 하나, 그리고 영어권 학술 논문 몇 편이 전부였다. 제자는 유명한데 스승은 이렇게까지 지워질 수 있구나 싶었다. 🏛️ 로마가 두 번 쫓아낸 남자 무소니우스 루푸스 는 에트루리아 볼시니 출신의 로마 기사 계급이었고, 서기 30년경 태어나 101년 이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65년 피소 음모 사건 여파로 네로에 의해 기아로스 섬으로 유배되는데, 이 섬이 어느 정도로 척박했는지는 타키투스의 《연대기》에서 짐작할 수 있다. 원로원이 한 유배 대상자를 기아로스로 보내려다가 "물도 나무도 없는 섬이라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이유로 도누사 섬으로 행선지를 바꿨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연대기》 3권 68~69장). 무소니우스는 바로 그런 곳에 보내졌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71년이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로마에서 철학자들을 통째로 추방하는 칙령을 내렸을 때, 카시우스 디오의 《로마사》 65권 13장은 "무소니우스만은 예외였다"고 명시한다. 스토아와 견유학파 철학자 전체가 쫓겨나는 와중에 이름이 콕 집혀 예외 처리됐다는 건, 그가 단순한 재야 사상가가 아니라 권력 핵심부도 무시 못 할 인물이었다는 증거다. 물론 이후 개인적 원한 관계로 또 한 번 유배를 겪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 "여성도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 세 번째 강의 무소니우스가 지금 다시 읽을 가치가 있는 이유는 이 세 번째...

🖋️ 염경애의 손끝, 이제현의 붓끝 — 묘지명으로 되짚는 고려시대 여성 문인의 흔적과 생존기

🖐️ 손끝에 남은 냄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18년 겨울,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을 보러 갔다. 같이 간 후배는 국문학 대학원생이었는데, 묘지명 탁본이 늘어선 진열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대뜸 이러는 거다. "이거 다 누구 아버지, 누구 아들, 누구 남편 얘기야." 유리 너머로 한자가 빼곡한 탁본을 들여다보다가,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한참 뒤에야 이해했다. 이규보 문집이 몇 권씩 남아 있고, 이제현의 시가 지금도 교과서에 실리는 동안, 같은 시대를 산 여자들의 이름은 왜 남편이나 아들의 묘지명 한 귀퉁이에서만 찾아야 하는가. 그날 이후로 이 질문을 몇 년째 붙들고 있다. 📜 염경애, 묘지명 속에 남은 다섯 글자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염경애다. 12세기 중반, 남편 최루백이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해 지은 묘지명인데, 이 자료는 김용선 선생이 고려시대 묘지명 수백 편을 모아 엮은 『고려묘지명집성』(한림대학교출판부)에 실려 있다. 이 책은 고려시대 여성 문인 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반드시 거치는 기초 자료집이고, 정용숙·권순형 같은 연구자들이 여성의 실제 삶을 재구성할 때 반복해서 끌어다 쓰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정확한 한문 원문을 여기서 자신 있게 옮기진 못하겠다. 다만 연구자들이 공통으로 짚는 대목은 있다. 염경애가 글자를 알았고, 남편이 과거 공부에 매달려 있는 동안 집안 살림을 실질적으로 이끌었으며, 아이들 글공부까지 직접 챙겼다는 기록이다. 흥미로운 건 이 사실이 '특별히' 적혔다는 점이다. 묘지명이라는 장르 자체가 죽은 이의 미덕을 골라 새기는 글이니, 문식 능력이 따로 언급됐다는 건 그게 당연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뒤집어 말하면, 글을 몰랐던 훨씬 많은 여성들은 애초에 언급할 미덕 목록에 '글'이라는 항목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다. 『고려묘지명집성』에 실린 여성 대상 묘지명 다수가 효(孝)·열(烈)·정숙(貞淑) 같은 상투적 형용사 나열에 그친다는...

📜 함무라비보다 350년 앞선,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에 새겨진 최초의 계약과 약속 기록

📝 도장 찍다가 든 생각 - 계약서는 누구의 약속인가 며칠 전 원룸 재계약을 하면서 특약사항을 하나하나 읽었다. 보증금 반환 시기, 원상복구 범위, 중도해지 위약금. 공인중개사가 "다 표준 문구예요"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걸렸다. 표준 문구라는 건 결국 누군가 먼저 싸워보고 진 사람이 있었다는 뜻 아닌가. 계약서 한 줄 한 줄이 과거의 분쟁을 압축해놓은 화석 같았다. 그러다 문득 메소포타미아 점토판 계약서 가 궁금해졌다. 인류가 처음으로 "이 약속을 문자로 남기자"고 결심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답은 의외로 명확하다. 지금의 이라크 남부, 수메르. 함무라비보다 무려 350년 앞서 이미 왕의 이름으로 법이 새겨졌고, 이웃들이 모여 살인 사건을 재판했고, 상인들은 국경 밖에서 계약서를 봉인해 신용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 왕의 법, 이웃의 재판, 상인의 계약 - 는 같은 걸 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신뢰를 문서로 만드는 방식 자체가 영역마다 완전히 달랐다. 👑 우르남무, 함무라비보다 문지방 하나 더 판 남자 기원전 2100년경, 우르 제3왕조를 세운 우르남무는 자기 이름을 딴 법전을 남겼다. 서문부터 특이하다. 왕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고아를 부자의 손에 넘기지 않고, 과부를 권력자의 손에 넘기지 않겠다는 선언. 그다음에야 조항이 이어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처벌 방식이다. 훗날 함무라비 법전이 "눈에는 눈"이라는 동해보복을 택한 것과 달리, 우르남무 법전은 대부분 은으로 배상하게 했다. 이빨을 부러뜨리면 은 2셰켈, 코를 자르면 은 1미나를 물게 했다. 이혼도 마찬가지다. 정처를 버리면 은 1미나, 과부를 버리면 그 절반을 지불하라고 못 박았다. 신체가 아니라 은이 오간다는 것, 그게 핵심이다. 이건 개인 간 협상의 기록이 아니다. 왕이 "이제부터 폭력이 아니라 배상으로 갈등을 끝낸다"고 사회 전체에 선포한 것이다. 조항 하...

⚖️ 근저당권 한 줄이 가르쳐준 스토아철학 네거티브 시각화, 최악을 미리 상상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

📜 등기부등본에 적힌 근저당권 한 줄 2021년 11월, 계약 도장을 찍기 전날 밤이었다. 전세금 2억 4천만 원짜리 집이었고, 등기부등본을 다시 한번 훑어보다가 근저당권 1억 9천만 원이 잡혀 있는 걸 봤다. 집주인 명의 대출이 전세금의 80%에 육박한다는 뜻이었다. 그날 밤 잠을 설치면서 계속 같은 생각을 굴렸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내 순위가 밀리면, 그래서 보증금을 못 돌려받으면 — 정확히 얼마를 잃는지 계산해봤다. 2억 4천에서 선순위 근저당을 뺀 나머지, 최악의 경우 전액. 그 숫자를 종이에 써놓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막연한 불안보다 구체적인 손실액이 오히려 덜 무서웠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게 스토아 철학자들이 '프라이메디타티오 말로룸(praemeditatio malorum)', 미리 나쁜 일을 그려보는 훈련이었다. ✉️ 세네카가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편지 세네카는 리옹(옛 루그두눔)이 하룻밤 사이 화재로 완전히 잿더미가 된 사건을 두고 루킬리우스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도덕 서한』 91번). 번영하던 도시 하나가 밤사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그는 운명이 우리에게서 빼앗아갈 수 있는 것들을 미리 계산해두라고 말한다. 다만 세네카가 진짜 흥미로운 지점은 다른 편지에 있다. 13번 편지에서 그는 "우리는 실제보다 상상 속에서 더 자주 고통받는다(Plura sunt quae nos terrent quam quae premunt, et saepius opinione quam re laboramus)"고 썼다. 이건 얼핏 91번 편지와 모순처럼 보인다 — 미리 최악을 상상하라면서, 동시에 상상 속 고통이 과장됐다고 경고하니까. 하지만 두 편지를 같이 읽으면 요지가 분명해진다. 세네카가 권한 건 막연히 겁내는 게 아니라, 손실을 구체적인 숫자와 장면으로 '계산'하는 작업이었다. 계산이 끝나면 상상은 더 이상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 로또 당첨자와 사고 피해자가 알려준 것 197...

📚 92명 중 셋, 감옥에서 쓴 보에티우스 철학의 위안이 내게 남긴 정답 아닌 질문하는 습관

💸 92명 중 셋, 그리고 통장을 세 번 확인한 밤 작년 3월, 다니던 핀테크 스타트업이 결제 사업부를 접었다. 전체 인원 92명 중 우리 팀 8명에서 나를 포함해 셋이 그 주에 나갔다. 실업급여 수급률이 전년 대비 3.8%에서 7.2%로 뛰었다는 기사를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읽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통장 잔액은 40만원 남짓이었고, 그걸 세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이미 아는 숫자인데도. 그 무렵 서점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책이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 이었다. 사형 선고를 기다리며 감옥에서 쓴 책이라는 소개 문구에 혹해서 샀는데, 정작 내가 걸려 넘어진 건 사형이 아니라 다른 대목이었다. "신은 내가 앞으로 뭘 할지 이미 알고 있는데, 그럼 나한테 진짜 선택권이 있는 건가?"라는, 되게 오래된 질문. 📚 사실 이건 새로운 답이 아니다 먼저 하나 정직하게 짚고 가야겠다. 보에티우스가 5권에서 내놓는 해법 — 신의 예지가 인간 행위의 원인이 아니다 — 은 지금 철학과나 종교학과 개론 수업에 가면 반드시 나오는 표준 답안이다. 양립가능론(compatibilism)이라는 이름까지 붙어 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이 책에서 뭔가 감춰진 통찰을 발굴해낸 게 아니라, 1500년 동안 이미 다들 알고 있던 답을 뒤늦게 읽은 거다. 그런데 표준 해법이라고 해서 그 안의 논증까지 이해했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나도 처음엔 "예지는 그냥 지켜보는 거고, 원인은 아니지"라는 문장만 붙잡고 안다고 생각했는데, 보에티우스가 실제로 하는 작업은 그보다 훨씬 정교하다. 🔍 조건적 필연과 단순 필연 5권에서 그가 쓰는 구분은 '조건적 필연'과 '단순 필연'이다. 예를 들어 내가 창밖을 보다가 누가 걸어가는 걸 목격했다고 치자. "내가 그를 걷는 모습으로 봤다면, 그는 그 순간 걷고 있는 게 필연적으로 맞다." 이건 조건적 필연이다. 내 관찰이 참이려면 그 사실도 참이어야 하...

😤 화가 날 때마다 스토아 철학자를 떠올리는 이유: '첫 번째 움직임' 다음의 3초가 만드는 차이

📧 팀장님 메일 하나에 3일을 망친 적이 있다 작년 이맘때, 나는 B2B SaaS 스타트업에서 마케팅 카피를 쓰고 있었다. 팀장이 랜딩페이지 초안에 피드백을 달았는데, 그중 한 줄이 유독 눈에 박혔다. "이 문장은 타겟 고객이 읽고 바로 이탈할 것 같은데요, 다시 써주세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근데 이상하게 그 문장만 사흘 내내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회의 중에도, 밥 먹다가도 갑자기 "이탈할 것 같은데요"가 떠올라서 손이 멈췄다. 정작 팀장은 그 말을 하고 그날 오후에 다 잊었을 텐데, 나만 그 문장의 인질로 3일을 살았다. 그때 다시 꺼내 읽은 게 세네카의 《분노에 관하여》였다. 그리고 거기서 이번 글의 진짜 실마리를 찾았다. 🧠 '무감정'이 아니라 '첫 번째 움직임' 이후의 문제다 스토아 아파테이아 실천법 을 다루는 글은 대개 "아파테이아는 감정 없음이 아니라 휘둘리지 않음이다"라는 말로 끝난다. 맞는 말이지만 이 문장만으로는 아무것도 실천할 수 없다. 세네카가 실제로 더 흥미로운 구분을 해놨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세네카는 《분노에 관하여》 2권에서 "첫 번째 움직임(primi motus)"이라는 개념을 쓴다. 누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 현자라도 심장이 뛰고 얼굴이 붉어진다. 이건 감정이 아니라 몸의 자동 반사다. 세네카는 이걸 "분노의 그림자일 뿐, 분노 자체가 아니다"라고 못 박는다. 진짜 감정, 즉 파토스(pathē)는 그 반사 다음에 온다. 내가 그 반사에 "이건 나에 대한 공격이다"라는 판단(assent, 승인)을 붙이는 순간 분노가 완성된다. 이게 핵심이다. 팀장 메일을 읽었을 때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끈거린 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건 그냥 몸이다. 문제는 그다음 0.5초, 내가 그 반응에 "나는 무능하다는 뜻이구나"라는 해석을 갖다 붙인 지점이었다. 세네카식으로 말하면 나...

💔 헤어질 결심이 안 서는 진짜 이유, 사랑이 아니라 매몰비용의 오류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 3년을 만난 사람과 헤어지지 못했던 이유 스물아홉 겨울, 나는 이미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6개월을 더 만났다. 대화는 줄었고, 서로 눈을 피하는 시간이 늘었고, 만나도 핸드폰만 봤다. 그러다 한번은 그 사람 자취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다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그 사람이 "왜 울어" 하고 물었을 때 나는 "몰라, 그냥"이라고 답했는데,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보낸 3년이라는 시간이 아까워서 울고 있었다. 그때 내가 스스로에게 제일 많이 한 말은 "그래도 3년인데, 여기서 끝내면 그 시간이 다 무의미해지는 거잖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논리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헤어지든 안 헤어지든 이미 써버린 것이다. 앞으로 6개월을 더 만난다고 그 3년이 갑자기 유의미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논리는 그 순간엔 너무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 이미 낸 돈, 이미 쓴 시간 경제학에는 이 현상을 가리키는 오래된 실험이 하나 있다. 오하이오대학의 심리학자 할 아크스와 캐서린 블루머가 1985년에 한 연구인데, 방식이 재밌다. 참가자들에게 미시간으로 가는 100달러짜리 스키 여행권을 샀다고 상상하게 한다. 그런데 얼마 뒤 위스콘신으로 가는 여행이 50달러에 나왔고, 여러 면에서 더 좋아 보여서 그것도 산다. 문제는 두 여행 날짜가 겹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것. 둘 중 하나만 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겠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덜 좋다고 스스로 평가한 미시간 여행을 더 많이 골랐다. 돈을 두 배 냈다는 이유 하나로. 이게 웃긴 건, 그 100달러는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이미 사라진 돈이라는 점이다. 남은 선택은 "어느 여행이 더 즐거울까"여야 하는데,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얼마를 냈던 여행인가"로 바뀌어버린다. 아크스와 블루머는 이걸 " 매몰비용 오류 이별 효과"라는 이름으로 학계에 ...

💔 짝사랑이 원한(르상티망)으로 변하는 순간: 니체와 붓다가 알려주는 마음의 비밀과 인문학적 통찰

💔 짝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던 그 순간 대학교 2학년 겨울, 같은 동아리에 반년 넘게 마음에 담아둔 사람이 있었다. 매주 화요일 정기모임 끝나고 다 같이 술 마시러 가는 자리에서, 그 사람 옆자리가 비어 있으면 일부러 늦게 도착한 척하고 앉는 식이었다. 그해 12월 종강 회식 자리에서 취기를 빌려 고백했고, 돌아온 답은 "오빠는 진짜 좋은 사람인데 우리 이렇게 지내는 게 더 편할 것 같아"였다. 문자도 아니고 카톡도 아니고, 노래방 화장실 앞 복도에서 들은 말이었다. 이상한 건 그다음이었다. 처음 며칠은 그냥 우울했는데, 한 2주쯤 지나니까 그 사람이 밉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회의 때 발언하는 방식이 거슬리고, 다른 사람한테는 웃으면서 나한테는 예의만 차리는 것 같고, 나중엔 "쟤 원래 좀 계산적이었잖아"라는 말을 술자리에서 은근슬쩍 흘리고 다녔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반년을 좋아하다가 한 달 만에 "계산적인 애"로 재분류해버린 거니까. 이 낙차가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니체 르상티망 짝사랑 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찾아보다가 이름을 발견했다. ⚖️ 르상티망, 손댈 수 없는 것을 나쁜 것으로 만드는 재주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말하는 르상티망(ressentiment)은 단순히 "미워하는 감정"이 아니다. 핵심은 방향이 거꾸로 뒤집힌다는 데 있다. 힘 있는 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먼저 긍정하고, 거기서 부족한 것을 나중에 "나쁜 것"으로 규정한다. 반대로 원한을 품은 자는 순서가 뒤바뀐다. 손에 넣지 못한 대상을 먼저 "저건 원래 나쁜 것"이라고 못박고, 그걸 근거 삼아 자기 자신을 정당화한다. 내가 했던 일이 정확히 이거였다. "그 사람을 못 가졌다"는 사실 자체는 바꿀 수 없으니, 그 대신 "그 사람은 원래 별로였다"는 서사를 만들어낸 거다. 노예의 도덕이 강자의 미덕을 뒤집어 "겸손...

💌 짝사랑 편지 예절, 상대에게 부담 주지 않고 마음을 전하는 정성스런 글쓰기 방법 총정리

🌙 편지지를 세 번 고쳐 쓴 밤 스물두 살 겨울, 학교 앞 문구점에서 편지지를 세 번 다시 산 적이 있다. 종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었다. 써놓은 첫 문장 때문이었다. "이 편지 읽고 나면 답장 좀 해줘." 다시 읽어보니 그 한 줄이 편지 전체를 바꿔놓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말이 아니라 부탁으로, 부탁이 아니라 거의 조건처럼 읽혔다. 결국 그 문장을 지웠다. 그런데 지우고 나니 이상하게 더 무서웠다. 답장을 요구하지 않으면 이 마음이 허공에 뜬 채로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날 밤 알게 된 게 있다. 짝사랑 편지 예절 은 맞춤법도, 문장력도 아니고, 상대에게 응답의 의무를 지우지 않는 것이더라는 것. 📮 "답장 주세요"가 왜 실례인가 편지에 답장을 요구하는 순간, 그 편지는 선물이 아니라 청구가 된다. 받는 사람은 이제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내 마음을 받아주거나, 내 마음을 대놓고 거절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데 무시하기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만나줄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나는 "답을 달라"는 숙제를 내준 셈이다. 고전 서간문화에서 이걸 실례로 여긴 이유도 비슷하다. 조선시대 편지, 특히 마음을 전하는 사적인 서한에서는 상대의 답신 유무를 편지의 성패로 삼지 않았다. 편지는 화자의 심경을 정리해 전달하는 행위 자체로 완결됐다. 답이 오면 다행이고, 오지 않으면 그저 그 편지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읽씹"에 그렇게 예민한 건, 편지(혹은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부터 이미 상대의 반응까지 내 마음의 일부로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계산을 걷어내는 게 예절의 시작이다. 📜 이옥봉, 쫓겨나고도 편지를 보낸 여자 16세기 조선의 여성 시인 이옥봉의 이야기가 있다. 서녀로 태어난 그는 문신 조원(趙瑗)의 소실이 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받는다. 다시는 시를 짓지 말라는 것. 그런데 억울하게 옥에 갇힌 이웃의 남편을 위해, 이옥봉이 대신 탄원의 시를 지어 ...

📚 에피쿠로스는 SNS를 끄라고 하지 않았다: '케노독시아' 감별로 완성하는 아타락시아 실천법

🍂 재작년 가을, 종로서적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대학 때 같이 자취방에서 라면 끓여 먹던 친구가 있었다. 졸업하고 십 년 넘게 각자 회사 다니느라 연락이 뜸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종로에 작은 헌책방을 차렸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으로 봤다. 개업 첫날 사진이었다. 손글씨로 쓴 나무 간판, 친구가 앞치마를 두르고 웃고 있는 모습, 밑에는 "십 년 만에 제 이름 걸고 하는 일이네요"라는 문구. 이상하게 그 사진 앞에서 오래 멈췄다. 부럽다는 감정은 아니었다. 헌책방 운영이 얼마나 고달픈지는 나도 안다. 그런데도 뭔가 뾰족한 게 가슴을 찔렀다. 나는 그해 봄에 이직 제안을 받았다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그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 사진 한 장 앞에서 갑자기 내 선택 전체가 재판대에 오른 기분이었다. 화면을 끄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중에 이 감정을 곱씹다가 에피쿠로스를 다시 읽었다. 대학 교양 수업에서 "쾌락주의 철학자, 사실은 검소하게 살라고 한 사람" 정도로 배웠던 그 사람.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읽어보니, 그가 남긴 글 중에 그날 밤 내 감정을 정확히 겨냥한 개념이 있었다. 🏺 에피쿠로스가 실제로 나눈 건 '자연스러운 욕망'과 '케노독시아'였다 에피쿠로스의 『주요 교설(Kuriai Doxai)』 29번 항목을 보면 그는 욕망을 세 가지로 나눈다.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것(배고프면 먹고 싶은 것), 자연스럽지만 필수는 아닌 것(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것), 그리고 자연스럽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것. 마지막 항목을 그는 '케노독시아(kenodoxia)'에서 비롯된 욕망이라 불렀다. 직역하면 '텅 빈 의견', 실체 없는 평판과 타인의 시선에서 생겨난 욕망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에피쿠로스가 이 세 번째 범주를 그냥 '사치'로 뭉뚱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명예,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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