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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픽테토스의 스승인데 왜 이름조차 몰랐을까 — 잊혀진 스토아 철학자 무소니우스 루푸스 이야기

📜 담화록 각주에서 발견한 낯선 이름 몇 년 전 에픽테토스의 《담화록》을 처음 읽었을 때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본문보다 각주를 더 오래 들여다보는 버릇이었다. "무소니우스는 이렇게 말했다"는 문장이 너무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에픽테토스 본인의 말인 줄 알았던 유명한 구절들, 예를 들어 자기 통제와 인내에 관한 문장들이 사실은 스승 무소니우스 루푸스의 말을 옮긴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서점에 가서 그 이름을 검색해봤다. 국내 번역본이 없었다. 위키백과 항목 하나, 그리고 영어권 학술 논문 몇 편이 전부였다. 제자는 유명한데 스승은 이렇게까지 지워질 수 있구나 싶었다. 🏛️ 로마가 두 번 쫓아낸 남자 무소니우스 루푸스 는 에트루리아 볼시니 출신의 로마 기사 계급이었고, 서기 30년경 태어나 101년 이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65년 피소 음모 사건 여파로 네로에 의해 기아로스 섬으로 유배되는데, 이 섬이 어느 정도로 척박했는지는 타키투스의 《연대기》에서 짐작할 수 있다. 원로원이 한 유배 대상자를 기아로스로 보내려다가 "물도 나무도 없는 섬이라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이유로 도누사 섬으로 행선지를 바꿨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연대기》 3권 68~69장). 무소니우스는 바로 그런 곳에 보내졌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71년이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로마에서 철학자들을 통째로 추방하는 칙령을 내렸을 때, 카시우스 디오의 《로마사》 65권 13장은 "무소니우스만은 예외였다"고 명시한다. 스토아와 견유학파 철학자 전체가 쫓겨나는 와중에 이름이 콕 집혀 예외 처리됐다는 건, 그가 단순한 재야 사상가가 아니라 권력 핵심부도 무시 못 할 인물이었다는 증거다. 물론 이후 개인적 원한 관계로 또 한 번 유배를 겪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 "여성도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 세 번째 강의 무소니우스가 지금 다시 읽을 가치가 있는 이유는 이 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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