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자기극복인 게시물 표시

💔화요일 오전 10시 회의실, 짝사랑 티 안 내는 법을 니체와 붓다에게 묻다: 감정 다스리기

⏰ 화요일 오전 10시, 내가 매번 무너지던 순간 지난 3월부터 넉 달 동안, 나는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정기 회의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옆 부서 대리님이 발표를 시작하면 나는 화면 대신 그 사람 손끝을 보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나만 모르는 티였다는 거다. 한 번은 옆자리 동료가 "너 요즘 회의 때 표정이 이상해"라고 던졌고, 그날 밤 나는 카톡 답장을 12분 만에 보낼지 3분 만에 보낼지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서른 넘어서 이러고 있다는 게 우스웠다. 그러다 니체와 붓다를 다시 꺼내 읽었는데, 흔히 쓰이는 방식과는 다르게 읽혔다. 💥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받아들이면 편해진다'가 아니다 블로그에서 니체를 인용할 때 가장 많이 왜곡되는 지점이 여기다.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는 감정을 인정하고 체념하라는 수용 심리학이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가 말하는 자기극복(Selbstüberwindung)은 반응적 감정(르상티망)을 그대로 삭이는 게 아니라, 그 힘을 다른 형태로 전환시켜 창조하라는 요구다. 나는 그 감정을 참는 대신 다른 곳에 썼다. 그 시기에 회사 사보에 낼 글 두 편을 썼고, 퇴근 후 달리기 거리를 5km에서 8km로 늘렸다. 감정을 죽인 게 아니라 방향을 바꾼 거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나는 반응하는 자에서 벗어나 그 에너지를 창조하는 자의 것으로 만들려 한 거고, 이건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는 자기위안과는 결이 다르다. 🙏 담마빠다가 말하는 애착, 그리고 정확한 출처 붓다의 가르침을 가져올 때도 두루뭉술하게 인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재성 역주 『담마빠다』 삐야 품(愛品) 212번 게송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에서 근심이 생기고 사랑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에서 벗어난 자에게 근심이 없거늘 두려움이 어디 있으랴." 이건 감정을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갈애(渴愛, taṇhā)가 집착의 대상을 고정된 것으...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로스트아크] 제작 효율 최적화 위한 영지 세팅

[로스트아크] 로스트아크 생활 도구 옵션

한국 핵무장 논의와 방위산업 관련주: 핵무기 개발 과정과 유망 종목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