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 형평성 이론: '나만 더 주는 것 같다'는 서운함을 니체와 불교로 다시 펼쳐 보다
📚 서운함에도 학술 용어가 있었다
연애 형평성 이론을 찾아 읽게 된 건 '왜 늘 나만 더 주는 것 같지'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흔한 감정이라면 누군가 이미 이름을 붙여 뒀을 것 같았다. 실제로 있었다. 심리학자 J. 스테이시 애덤스가 1963년에 제안한 형평성 이론(Equity Theory)이다.
뼈대는 단순하다. 사람은 자기가 들인 것과 돌려받는 것의 비율을 상대방의 비율과 비교한다. 내 쪽 비율이 낮으면 과소보상, 높으면 과대보상이라고 부른다. 과소보상인 사람은 분노를 느끼고, 과대보상인 사람은 죄책감을 느낀다. 저울을 다시 맞추려는 방식도 몇 가지로 정리돼 있다. 덜 주거나 더 받아 내는 것, 상대의 기여를 깎아내리는 것,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하고 정당화하는 것, 그리고 보복하는 것이다.
이 이론이 연애에도 들어맞는지 직접 시험한 연구가 있다. 수전 스프레처의 실험으로, 2016년 온라인에 먼저 공개됐고 2018년 Journal of Family Issues 39권에 실렸다. 참가자를 무작위로 세 집단에 나눈 뒤, 관계 속 지난 상황 하나를 글로 쓰게 했다. 한 집단은 자기가 덜 받았던 장면을, 다른 집단은 더 받았던 장면을, 나머지는 공평했던 장면을 썼다. 괴로움은 덜 받은 장면을 쓴 집단에서 가장 컸고, 그다음이 더 받은 장면, 공평한 장면 순이었다. 관계 만족도는 덜 받은 장면을 쓴 집단에서만 나머지 두 집단보다 낮게 나왔다.
내가 오래 들여다본 건 마지막 결과다. 더 받은 쪽도 분명히 괴로워했지만, 이 실험에서는 그 괴로움이 만족도까지 끌어내리지는 않았다. 고전 이론은 죄책감을 분노의 거울상처럼 다루는데, 적어도 이 데이터에서 두 감정은 무게가 달랐다.
⛓️ 니체가 보기에 죄책감은 빚에서 나왔다
과대보상 쪽의 죄책감을 생각하다가 『도덕의 계보』 제2논문을 다시 펼쳤다. 니체는 4절에서 독일어 Schuld(죄)가 Schulden(빚)이라는 아주 물질적인 개념에서 나왔다고 쓴다. 8절에서는 의무감의 뿌리를 사고파는 사람,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라는 가장 오래된 인간관계에서 찾는다.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니체식으로 옮기면 "나는 빚을 지고 있다"가 된다.
내가 더 섬뜩하게 읽은 건 5절이다. 빚을 돌려받지 못한 채권자는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받는데, 바로 채무자에게 고통을 줄 권리다. 니체는 이 보상을 잔인함에 대한 일종의 청구권이라고 부른다. 형평성 이론이 대처 방식 목록에 '보복'을 넣어 둔 것과 정확히 겹친다. 연애에서 이 보복은 거창하지 않다. 답장을 일부러 늦게 하고, 상대가 기대하는 다정한 말을 한 번 삼킨다. 덜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렇게 빚을 고통으로 받아 낸다. 나도 그런 식의 침묵을 고른 적이 없다고는 못 하겠다.
니체를 이 주제에 끌어온 건 꾸미려고가 아니다. 니체를 읽으면 분노와 죄책감이 따로 노는 두 감정이 아니게 된다. 한 장의 차용증을 양쪽에서 쥐고 있는 두 사람의 감정이 된다. 차용증이 있는 한 한쪽은 받아 내려 하고 다른 쪽은 갚지 못해 움츠러든다.
📒 사랑에 장부를 대는 것 자체를 의심한 연구
여기서 반대쪽 연구도 봐야 공평하다. 마거릿 클라크와 저드슨 밀스는 1979년 「교환관계와 공동체관계에서의 대인 매력」에서 관계를 둘로 나눴다. 교환관계에서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게 적절하고, 공동체관계에서는 상대가 필요로 할 때 주는 게 적절하다. 두 차례 실험(첫 실험은 남성, 둘째 실험은 여성 참가자)에서 교환관계를 원하는 사람은 도움을 받은 뒤 상대가 바로 갚아 오면 호감이 올라갔다. 공동체관계를 원하는 사람은 오히려 호감이 떨어졌다.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 즉시 계산을 끝내 버리면 거리가 생기는 셈이다.
그렇다면 형평성 연구와 이 연구 중 어느 쪽이 맞을까. 내 생각에는 둘이 서로 다른 순간을 보고 있다. 사랑이 잘 굴러갈 때 사람들은 장부를 펴지 않는다. 장부가 펼쳐지는 건 필요가 오래 채워지지 않았을 때다. 그래서 '나만 더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은 셈을 잘해서 생기기보다,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경보로 읽는 편이 맞다고 본다.
니체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마지막 장 「선사하는 덕에 대하여」에서 넘쳐서 주는 선물을 최고의 덕으로 놓는다. 거기서 내가 읽어 낸 건, 돌려받을 걸 계산하며 건넨 선물은 사실 대출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우리가 대출을 선물이라고 부르면서 건넬 때 생긴다. 받는 쪽은 선물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독촉장을 받는다.
⏳ 무상과 집착으로 본 장부의 날짜
불교의 무상(無常)은 이 장부에 날짜를 적어 넣게 만든다. 시험 기간의 연인, 이직 준비 중인 연인, 몸이 아픈 연인이 내어 줄 수 있는 몫은 똑같지 않다. 어느 한 시점에 저울을 찍어 보면 기울어 있는 게 당연하고, 공동체관계는 원래 그런 기울기를 꽤 오래 견딘다. 오늘의 불균형을 관계 전체의 판결로 읽는 순간,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붙드는 셈이 된다.
집착(取)은 그다음 단계다. 스프레처 실험을 여기 갖다 쓸 때는 조심해야 한다. 이 실험은 지금의 불공평과 지난 불공평을 비교하지 않았다. 지난 장면을 떠올리게 한 뒤 그 효과를 쟀을 뿐이다. 그래도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건 있다. 덜 받았던 장면 하나를 글로 적는 것만으로 그 자리에서 매긴 만족도 점수가 내려갔다. 실험실에서 짧게 잰 효과라서 오래 묵은 원망이 관계를 망친다는 증거까지는 못 된다. 다만 내가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을 반복 재생하는지가 지금 상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끼어든다는 건 보여 준다.
그래서 장부를 정리하는 도구로 영원회귀를 써 보고 싶다. 장부의 항목 하나하나에 이렇게 묻는 것이다. "이 일을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한 채 똑같이 몇 번이고 다시 하겠는가?" 그렇다고 답할 수 있으면 그건 선물이니 장부에서 지운다. 아니라고 답하게 되면 그건 대출이다. 그렇다면 침묵으로 받아 내지 말고 소리 내서 말해야 한다.
💬 관계 장부를 다시 맞추는 대화법
아래는 내가 겪은 일이 아니다. 앞의 이론을 흔한 상황에 대입해 본 가상의 장면이다.
1) 연락이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과소보상 쪽). "왜 맨날 나만 연락해?"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청구서라서 상대는 방어부터 하게 된다. 기간을 좁히고, 빚을 필요로 바꿔 말한다. "요 2주 동안 내가 먼저 연락한 날이 많았던 것 같아. 갚으라는 얘기는 아니야. 나는 하루에 한 번쯤 네가 먼저 찾아 주는 게 필요한 사람인가 봐." 클라크와 밀스의 구분으로 보면 교환의 언어를 공동체의 언어로 옮긴 것이다.
2) 받기만 한다며 미안해할 때(과대보상 쪽). 죄책감이 오래가면 상대의 기여를 깎아내리거나 "너는 원래 챙기는 걸 좋아하잖아" 같은 정당화로 넘어가기 쉽다. 사과를 거듭하기보다 구체적인 행동 하나로 바꾸는 편이 낫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이번 주말 계획은 내가 다 짤게." 주는 쪽도 이 말을 받아 줘야 한다. "괜찮아, 안 해도 돼"라고 막으면 상대의 빚은 갈 곳 없이 쌓이기만 한다.
3) 보복이 이미 시작됐을 때. 이 장면이 제일 어렵다. 먼저 내가 받아 내던 방식을 내 입으로 밝힌다. "어제 답장 일부러 늦게 했어. 서운한 걸 그렇게 돌려받으려고 했던 것 같아." 니체가 말한 채권자의 청구권을 스스로 내려놓는 문장이다. 이 말이 나와야 상대도 "나도 요즘 네 연락을 당연하게 여겼어"라고 답할 자리가 생긴다.
4) 정기 점검. 한 달에 한 번쯤 양쪽 방향으로 묻는다. "요즘 네가 더 준다고 느낀 거 있어? 내가 더 받는다고 느낀 건?" 두 번째 질문이 중요하다. 과대보상 쪽의 죄책감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서, 물어봐 주지 않으면 장부의 반쪽이 끝까지 비어 있다.
솔직히 아직 정리가 안 된 의문도 하나 남아 있다. 장부를 아예 덮는 게 사랑인지, 장부를 같이 펼쳐 볼 수 있는 게 사랑인지 모르겠다. 지금으로서는 혼자 몰래 쓰는 장부만큼은 그만 써야 한다는 데까지만 확신한다.
🔗 참고 자료
- Sprecher, S. (2018). Inequity Leads to Distress and a Reduction in Satisfaction: Evidence From a Priming Experiment. Journal of Family Issues, 39(1), 230–244 (2016년 온라인 공개)
- Clark, M. S., & Mills, J. (1979). Interpersonal attraction in exchange and communal relationship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7(1), 12–24 (Yale Clark Relationship Lab)
- Nietzsche, F. 『도덕의 계보』 제2논문 4·5·8절 (Project Gutenberg 영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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