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짝사랑 상대의 결혼 소식 앞에서, 니체와 붓다 사이에서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가짐 정리

📬 봉투를 열기 전에 알았다 지난달 회사 우편함에 청첩장이 하나 와 있었다. 보낸 사람 칸에 그 사람 이름이 아니라 그 사람 누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누나가 대신 부쳐준 거였다. 봉투를 뜯기도 전에 손글씨를 보고 알았다. 주소를 쓸 때 우편번호 앞자리를 항상 조금 삐뚤게 쓰는 버릇, 그 집안 특유의 필체였다. 나는 그걸 5초쯤 들여다보다가 봉투를 서랍에 넣고 회의에 들어갔다. 울지 않았다. 그날은. 대신 회의 내내 그 사람이 문자에서 "반드시"를 항상 "반듯이"로 잘못 쓰던 게 생각났다. 3년을 알고 지내면서 한 번도 고쳐주지 않았다. 고쳐줄 타이밍을 놓친 게 아니라, 고쳐주면 그 오타를 다시는 못 볼 것 같아서 일부러 안 고쳤다. 💭 내가 사랑한 건 실제로 누구였나 사람들은 짝사랑을 미화한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정직하게 복기해보면 그 사람은 내가 해준 요리를 먹고 "먹을 만은 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칭찬도 아니고 비난도 아닌, 딱 그 중간의 애매한 말. 나는 그 말을 3주 동안 곱씹었다. 좋다는 거야 별로라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그때는 그 한 문장이 내 자존감을 쥐고 흔들었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원한 감정(르상티망)을 약자의 도덕이라고 불렀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원래 나쁜 것"이라 규정해버리는 심리적 방어기제 말이다. 나는 그 사람을 미화하는 대신 정확히 반대로 갔다. 그 사람의 무심함, 애매함, 가끔의 무례함까지도 사랑의 재료로 삼았다. 이게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놔두고, 그 대상과 부딪히면서 생기는 감정의 낙차 자체를 내 것으로 흡수하는 것. 상대를 신격화하지 않고도 강렬하게 원할 수 있다는 걸, 그 "먹을 만은 하다"는 말을 들으며 배웠다. 🌊 무상, 그런데 왜 이렇게 안 놓아지지 불교의 무상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뜻이다. 감정도, 관계도, 심지어 ...

💰청년도약계좌 중도해지, 3년 문턱에서 157만원이 갈린 이유 (월 70만원 실제 계산법)

💸 이직 공백기, 35개월째 계좌를 깰 뻔했다 지난달에 이직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바로 퇴사 처리를 밟았다. 문제는 새 회사 입사일까지 3주 공백이 생겼는데, 하필 그 사이에 전세 보증금 일부를 먼저 치러야 하는 일정이 겹쳐버린 거다. 통장을 뒤져보니 제일 큰 덩어리가 신한은행 청년도약계좌였다. 가입한 지 딱 35개월째. "3년 다 채운 거나 마찬가진데 그냥 깨자" 싶었는데, 앱에서 해지 예상 금액을 눌러보고 멈칫했다.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그래서 한 달만 더 버티면 얼마나 달라지는지 직접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 왜 하필 '3년(36개월)'이 기준선인가 청년도약계좌는 중도해지 시 혜택이 계단식으로 끊긴다. 특별중도해지 사유(퇴직이 아니라 혼인·출산·생애최초 주택구입·해외이주·장기 실직 등 정해진 사유)가 아닌 일반 해지 기준으로 보면 이렇다. - 36개월 미만 해지: 정부기여금 전액 환수(0원), 이자는 일반과세(15.4%) - 36개월 이상 해지: 비과세 유지, 정부기여금 60% 지급 - 60개월 만기: 비과세 + 정부기여금 100% 즉 35개월째 깨면 정부기여금은 한 푼도 못 받고 이자에도 세금이 붙는다. 3년을 채운다는 건 단순히 "조금 더 참는" 게 아니라 이 두 혜택이 통째로 켜지느냐 꺼지느냐의 문제다. 🧮 월 70만원, 소득 3,200만원 기준으로 다시 계산해봤다 내 조건은 월 납입 70만원, 연소득 3,200만원이다. 이 구간(2,400만~3,600만원)은 정부기여금 매칭한도가 50만원, 매칭비율 4.6%라서 월 기여금은 50만원×4.6%=2만 3천원이 최대치다(70만원을 다 넣어도 매칭은 50만원까지만 적용). 금리는 우대조건 충족 시 연 5.0% 고정으로 가정했다. 세전이자는 적금 이자 계산 공식인 '납입원금×연금리×(개월/12)÷2'로 뽑았다. | 유지 개월 | 납입원금 | 세전이자 | 세후이자 | 정부기여금 | 실수령액 합계 | |---|---|--...

💔짝사랑 유효기간 계산법: 숫자 대신 니체와 불교가 알려준 마음이 식는 진짜 이유 완벽 총정리

🏃 화요일 아침 7시, 러닝머신 세 번째 줄 작년 초여름부터 초겨울까지, 나는 매주 화요일 아침 7시에 동네 헬스장 러닝머신 세 번째 줄에 서 있었다. 그 사람이 항상 네 번째 줄에서 6시 50분쯤 뛰기 시작한다는 걸 알고 난 뒤로 생긴 습관이었다. 페이스를 슬쩍 늦춰서 그가 뛰는 20분 동안 같이 있으려고 한 것뿐인데, 그 20분을 위해 일주일을 살았다. 그가 헤드폰을 안 쓰고 온 날엔 무슨 노래를 듣냐고 물어볼 핑계를 만들었고, 그가 결혼 소식을 동료들에게 전하던 그 아침엔 나는 속도를 낮추지 못하고 발을 헛디딜 뻔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 짝사랑 유효기간 계산법 "을 검색했다. 짝사랑 같은 강렬한 감정이 뇌 안에서 도파민 반응으로 일어나고, 이게 영원히 지속되는 게 아니라 짧게는 1년 반, 길게는 3년 안에 자연스럽게 사그라든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다. 나는 그날부터 달력에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시작일을 어디로 잡을지, 몇 개월을 더할지 계산하면서. 🧮 계산법이라는 이름의 착각 몇 주 뒤 나는 스스로에게 정직해져야 했다. "1년 반에서 3년"이라는 범위는 사람마다 편차가 너무 커서, 사실상 아무 기간에나 끼워 맞출 수 있는 숫자였다. 감정이 강하면 짧은 쪽에, 상대와 계속 마주치면 긴 쪽에 갖다 붙이면 그만이었다. 그건 계산이 아니라 내가 듣고 싶은 답을 미리 정해놓고 숫자로 포장하는 일이었다. 도파민이니 반감기니 하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던 건, 내 감정에 과학이라는 이름의 마감 시한을 붙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끝난다"는 확신이 필요했던 거지, 정확한 날짜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다. 그래서 계산기를 내려놓고 질문을 바꿨다. 언제 끝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끝낼 것인가. 그 답을 준 건 숫자가 아니라 서로 정반대 입장에 서 있던 한 철학자와 하나의 종교였다. ☯️ 무상: 화요일도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불교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무상(無常), 모든 것은...

🧘 신경 끄기의 기술: 스토아 철학자의 아디아포라 구분법

🌙 새벽 두 시, 단톡방에서 본 사진 한 장 지난달이었다. 애 재우고 설거지 끝내고 소파에 늘어져 있는데 초등학교 학부모 단톡방이 울렸다. 옆 반 엄마가 아이 영어 학원 레벨테스트 결과를 올렸다. "AR 4.2 나왔어요 감사합니다 ㅠㅠ" 그 밑에 축하 이모티콘이 열댓 개 달렸다. 나는 그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더라. 우리 애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나는 뭘 놓치고 있지. 십 분쯤 각종 학원 블로그를 뒤지다가 문득 스스로한테 물었다. AR 4.2가 나한테, 내 삶에, 대체 무슨 상관이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토아 철학에서 찾은 게 최근이다. 정확히는 ' 아디아포라 (adiaphora)'라는 개념인데, 이게 흔히 알려진 '통제 이분법'이랑 헷갈리기 쉽다. 통제 이분법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라"는 얘기고, 아디아포라는 좀 다르다. "이게 애초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라는 얘기다. 🙅 '무관심'이 아니라 '무차별' 아디아포라는 번역하면 '무차별한 것들', 그러니까 도덕적으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들이라는 뜻이다. 크리시포스나 에픽테토스가 예로 든 목록을 보면 재산, 건강, 명성, 아름다움, 심지어 목숨까지 들어간다. 이게 이상하게 들리는데,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이 안에서도 등급을 나눴다. 건강은 '선호되는 무차별'이고 병은 '기피되는 무차별'이다. 둘 다 상대적으로 나은 쪽, 못한 쪽은 있지만 그 자체로 좋음(선)이나 나쁨(악)은 아니라는 거다. 진짜 좋음은 오직 덕, 즉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반응하느냐에만 있다. 옆집 애 AR 지수는 딱 이 범주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숫자. 문제는 내가 거기에 '좋음'이라는 가치를 멋대로 씌워놓고, 그걸 못 가진 나를 '나쁨' 쪽으로 밀어넣...

🌙 짝사랑 상대 SNS 눈팅 습관 고치는 법 - 니체와 붓다의 조언이라면 어떻게 완전히 끊었을까

📱 설정 앱을 열어보고 알았다 작년 11월, 아이폰 설정에 들어가 스크린타임을 확인했다. 인스타그램 하루 평균 41분, 앱 실행 횟수 58회. 대단한 숫자는 아니었는데, 문제는 그중 상당수가 한 사람의 프로필 하나를 열었다 닫는 행동이었다는 점이다. 팔로우도 안 한 사이라 알림이 오지 않으니, 뭔가 바뀌었는지는 내가 손가락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기 전에 한 번, 자다 깨서 한 번, 눈뜨자마자 한 번. 그날 밤엔 스토리에 올라온 카페 사진 하나를 붙잡고 삼십 분 동안 배경에 누가 있는지 뜯어봤다. 그 밤에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뭘 하려는 걸까. 말을 걸 것도, 마음을 전할 것도 아니면서 왜 손가락은 같은 화면으로 계속 돌아가는가.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출발해 짝사랑 상대 SNS 눈팅 습관 고치는 법 을 니체와 붓다의 렌즈로 풀어본 기록이다. 이 질문을 붙잡고 있다가 오래전에 밑줄 그어둔 니체와, 대학 때 교양 수업에서 스치듯 배운 붓다가 떠올랐다. 🔍 눈팅은 힘에의 의지가 아니다, 그 반대다 니체를 끌어다 짝사랑을 설명하는 글은 대개 이런 식으로 흐른다. 힘에의 의지는 무언가를 소유하고 확장하려는 충동이니, 눈팅도 결국 상대를 장악하려는 힘에의 의지의 발현이라고. 나는 이 설명이 반대로 짚었다고 생각한다. 힘에의 의지는 저항을 뚫고 나아가는 힘이다. 니체가 말하는 강자는 위험을 감수하고 세계와 부딪치는 자다. 반면 눈팅은 정확히 그 부딪침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다. 말을 걸면 거절당할 수 있고, 고백하면 관계가 어색해질 수 있다. 눈팅은 그 위험 없이 상대와 이어져 있다는 감각만 취하는 방법이다. 프로필 사진, 스토리, 마지막 접속 시간 — 이런 파편들을 모으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안다고 착각했지만, 실은 다가갈 의지를 계속 유예하고 있었을 뿐이다. 『선악의 저편』 146번 잠언에 이런 구절이 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싸움 속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 짝사랑도 느슨하게: 니체와 불교로 읽는 느슨한 연대 연애관, 적당한 거리의 짝사랑 심리학

⏱️ 카톡 답장 텀을 재던 밤들 2021년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나는 정우(가명)라는 사람의 카톡 답장 속도를 재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시계를 봤다. 내가 보낸 메시지 옆에 뜨는 '1'이 사라지기까지 걸리는 시간,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접속한 시각,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린 시간과 내 메시지를 읽은 시간 사이의 간격. 어느 날은 그 간격이 47분이었고 나는 그 47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 답이 빠르면 하루가 괜찮았고, 늦으면 다른 일이 손에 안 잡혔다. 그때는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이건 사랑이라기보다 데이터 수집에 가까웠다. 🔗 그래노베터의 이론은 원래 연애 얘기가 아니다 이 얘기, 그러니까 느슨한 연대 연애관 을 말하려고 마크 그래노베터의 1973년 논문 〈약한 유대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을 끌어오는 글을 몇 번 봤다. 자주 붙는 논리는 이렇다. 그래노베터가 보스턴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을 인터뷰했더니, 이직 정보는 매일 만나는 친한 친구보다 어쩌다 한 번 연락하는 지인을 통해 더 많이 들어왔다. 친한 사이는 정보가 겹치고, 약한 사이는 서로 다른 네트워크에 걸쳐 있어서 새로운 정보가 흘러들어온다는 것이다. 이걸 그대로 연애에 옮기면 안 된다. 그래노베터가 측정한 건 '정보의 다양성'이지 '애착의 질'이 아니다. 느슨한 인맥이 이직 정보에 유리하다는 사실이, 느슨한 관계가 정서적으로 더 낫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이 disanalogy를 인정하지 않고 곧장 은유로 건너뛰면 그냥 학술 용어로 치장한 자기계발서가 된다. 내가 47분을 세던 그 행동을 실제로 설명하는 건 그래노베터가 아니라 존 볼비의 애착이론, 그중에서도 메리 에인스워스가 1970년대 '낯선 상황' 실험으로 분류한 불안 애착 유형에 가깝다. 불안 애착은 상대의 반응이 조금만 늦어져도 관계 자체가 위협받는다고 느끼고, 그 불안을 해소하려...

💰만 60세 국민연금 임의계속가입 3년차, 신청 방법부터 보험료 손익까지 실제 후기 총정리

📬 자격상실 통지서를 받고 든 생각 3년 전, 만 60세가 되던 달이었어요. 우편함에 국민연금공단 봉투가 하나 꽂혀 있었는데, 열어보니 "국민연금 자격상실 안내"였습니다. 가입기간을 확인해보니 19년 7개월. 20년을 못 채운 상태였어요. 이게 왜 문제냐면, 국민연금은 가입기간 10년 이상이면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긴 한데, 저는 원래 20년 채워서 좀 더 안정적인 금액을 받고 싶었거든요. 그 5개월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이때 공단 직원이 알려준 게 국민연금 임의계속가입 후기 였어요. 만 60세가 넘어도 65세까지는 본인이 원하면 계속 가입자 자격을 유지하면서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제도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신청서를 썼어요. 💰 매달 빠져나가는 보험료, 정확히 얼마였나 신청하고 나서 가장 먼저 궁금했던 건 "그래서 얼마를 내야 하나"였습니다. 저는 퇴직 후라 지역가입자로 분류됐고, 기준소득월액을 210만원으로 신고했어요. 보험료율 9%를 적용하면 월 18만9천원. 3년째 매달 이 금액이 자동이체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3년이면 대략 680만원 정도를 추가로 낸 셈이에요. 📊 반환일시금 대신 연금을 택한 이유, 손익분기점을 계산해봤다 사실 신청 당시 다른 선택지도 있었어요. 가입기간이 10년이 안 됐다면 무조건 반환일시금이지만, 저는 애매하게 10년을 넘긴 상태라 "그냥 연금 안 받고 반환일시금으로 정산받을까"도 고민했습니다. 공단에 문의해보니 제가 그 시점에 반환일시금을 신청했다면 4,187만원을 한 번에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계산을 해보니, 19년 7개월 가입 기준 예상 노령연금액이 월 79만3천원이었습니다. 4,187만원을 79만3천원으로 나누면 52.8개월, 그러니까 4년 4개월이에요. 65세부터 연금을 받는다고 치면 69세 4개월까지만 살아도 반환일시금보다 이득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국민연금공단 기대여명 통계만 봐도 60세 기준 평균 기대여명이 20년을 훌쩍 넘으니,...

☕ 짝사랑 티내는 법: 거리를 두고도 은근하게 마음을 전하는 3초의 눈맞춤과 타이밍 기술

☕ 화요일 아침 8시 40분, 아메리카노 두 잔 작년 11월부터 석 달 동안, 나는 회사 앞 카페에서 한 사람을 혼자 좋아했다.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 8시 40분, 정확히 그 시간에 마주쳤다. 처음 몇 주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12월 둘째 주 화요일, 그 사람이 먼저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라고 말을 걸었을 때 알았다. 상대도 그 시간표를 외우고 있었다는 걸. 그날 이후로 나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마다 커피를 두 잔 주문했다 — 하나는 내 것, 하나는 혹시 상대가 카드를 놓고 왔을 때를 대비한 여분. 실제로 쓴 적은 두 번뿐이었다. 하지만 그 두 번을 위해 석 달을 준비한 셈이다. 고백은 하지 않았다. 대신 카카오톡 답장을 정확히 40분에서 50분 사이에 보냈다. 너무 빠르면 기다렸다는 티가 나고, 너무 늦으면 관심 없어 보일까 봐. 이 계산이 얼마나 우스운지는 나도 안다. 그런데 그 우스운 계산 안에 철학이 하나 숨어 있었다. 👀 거리의 파토스: 왜 눈을 3초 이상 마주치면 안 되는가 니체는 《선악의 저편》 257절에서 '거리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라는 말을 쓴다. 두 존재 사이의 격차와 긴장이야말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힘이라는 뜻이다. 거리가 사라지고 완전히 밀착되는 순간, 그 관계는 더 이상 서로를 밀어올리지 못한다. 나는 이걸 눈맞춤에서 실감했다. 상대와 대화하다 눈이 마주치면 1~2초쯤 보다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처음엔 그냥 부끄러워서였는데, 나중엔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 3초 넘게 마주치면 상대는 그 시선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 반응해야 하고, 해석해야 하고, 뭔가 답을 줘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반면 1~2초의 시선은 "나는 너를 본다"는 사실만 남기고 부담은 남기지 않는다. 거리의 파토스가 말하는 긴장은 이런 것이다. 완전히 물러나지도, 완전히 다가가지도 않는 자리에서만 상대는 그 신호를 자유롭게 받아들이거나 흘려보낼 수 있다. 💌 관능의 영...

📊 DC형 퇴직연금 실물이전 신청부터 완료까지 12영업일 걸린 후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 나스닥100 ETF를 팔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작년 3월, 다니던 200명 규모 스타트업에서 지금 회사로 옮기면서 DC형 퇴직연금 계좌를 정리해야 했다. 문제는 계좌 안에 TIGER 미국나스닥100 ETF가 들어있었다는 것. 이직 시점 기준 평가금액이 원금 대비 21% 넘게 올라 있었는데, 이걸 팔았다가 새 계좌에서 똑같은 종목을 다시 사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단 세금은 안 나온다. 퇴직연금은 IRP나 새 회사 DC 계좌로 옮기는 한 과세이연이 되니까 매도해도 당장 세금은 안 문다. 진짜 문제는 매매 타이밍이다. 팔았다가 다시 사는 그 며칠 사이에 가격이 오르면 그만큼 손해고, 매수·매도 스프레드에 수수료까지 붙으면 푼돈이 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실물이전'이었다. ETF를 현금화하지 않고 보유 종목 그대로 계좌만 옮기는 방식이다. 📅 신청부터 완료까지, 실제로 걸린 12영업일 결론부터 말하면 신청일부터 새 계좌에 ETF가 찍히기까지 정확히 12영업일이 걸렸다. 그런데 이 숫자를 그대로 '실물이전은 12일 걸린다'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미리 밝혀두자면 내 경우는 표준적인 케이스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퇴직연금 실물이전 은 하나의 사업자(운용관리기관+자산관리기관이 같은 금융사)에서 다른 하나의 사업자로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때는 서류 접수 후 영업일 기준 3~5일 안에 끝나는 게 보통이다. 실제로 주변에 신한은행 DC에서 미래에셋증권 IRP로 단순 이전한 동료는 4영업일 만에 끝났다고 했다. 내가 12영업일이나 걸린 이유는 따로 있다. ❓ 왜 하필 12영업일이었나 — '복수사업자'라는 변수 이전 회사의 DC 계좌는 운용관리기관이 미래에셋증권, 자산관리기관이 신한은행으로 나뉜 '복수사업자' 구조였다. 퇴직연금 계좌는 운용 지시를 담당하는 운용관리기관과 실제 자산을 보관·결제하는 자산관리기관이 분리될 수 있는데, 두 기관이 다른 회사면 이전 절차에서 ...

🍎 존재는 왜 자꾸 형태를 바꾸는가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하이데거까지, 우시아 개념 변천사

책상 위의 사과, 그리고 이상한 질문 🍎 대학교 1학년 철학개론 첫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사과 하나를 들고 물었다. "이 사과를 사과이게 하는 것은 뭐죠? 껍질을 벗기면 사과가 아닌가요? 갈아서 주스를 만들면요?" 스무 살짜리들 앞에서 참 유치한 질문 같았는데, 나는 그 뒤로 이십 년 가까이 그 질문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이사를 몇 번 다니면서 물건은 다 바뀌었는데 나는 왜 계속 "나"라고 불리는지, 회사가 사람을 몇 번이나 갈아치워도 왜 여전히 "같은 회사"라고 부르는지 — 결국 다 같은 질문의 변주였다. 그리고 이 질문의 그리스어 이름이 바로 우시아(ousia) 개념 변천사 +개념+변천사)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해서 중세 신학을 거쳐 하이데거에게까지 이어지는,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끈질기게 살아남은 개념 하나를 오늘 따라가보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있다"는 것의 진짜 주인을 찾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시아를 두 가지 층위에서 썼다. 『범주론』에서는 꽤 소박하다. "제1 실체"는 "이 사람", "이 말(馬)"처럼 눈앞의 구체적인 개체다. 반면 "인간"이나 "동물" 같은 종과 유는 "제2 실체"로, 개체에 종속된 개념일 뿐이다. 그런데 후기 저작인 『형이상학』 Z권(제7권)으로 가면 입장이 뒤집힌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짜 우시아는 질료(hyle)가 아니라 형상(eidos)이라고 말한다. 청동 조각상에서 청동은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녹여 부을 수 있지만, "이 조각상을 이 조각상이게 하는 것"은 청동에 새겨진 형상이라는 것이다. 이 전환이 중요하다. 우시아는 처음부터 "변하지 않는 실체"라기보다, "그것을 그것이게 만드는 근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를 계속 재정의해나가는 탐구 과정 그 자체였다. ...

💔짝사랑 감정 일기 쓰는 법: 니체와 불교의 지혜로 흔들리는 내 마음을 관찰하는 완벽 가이드

🌙 11월 3일, 47일째 밤 작년 가을 나는 짝사랑 감정 일기 쓰는 법 을 나름대로 실험하듯, 노트 앱에 날짜와 함께 짝사랑 일기를 썼다. 11월 3일 자 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 그가 내 메시지에 세 시간 만에 답했다. '오늘 좀 바빴어ㅎㅎ' 이 여섯 글자를 열두 번 읽었다." 그날은 짝사랑이 시작된 지 47일째였다. 나는 첫날부터 날짜를 세고 있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감정이 며칠째 이어지는지 눈으로 봐야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47일째 일기와 12일째 일기를 나란히 놓고 보면 차이가 보인다. 12일째에는 "그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문장이 세 번 나온다. 47일째에는 그 문장이 한 번도 안 나온다. 대신 "왜 답장 속도에 내 기분이 걸려 있는지 모르겠다"는 문장이 나온다. 감정의 내용이 바뀐 게 아니라, 감정을 보는 각도가 바뀐 거다. 이 각도 변화, 이게 일기의 유일한 효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니체가 일기장에 던진 질문 니체는 『즐거운 학문』 341절에서 악마가 찾아와 이렇게 묻는다고 썼다.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을, 사소한 것 하나 빠짐없이 무한히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너는 그것을 저주로 받아들이겠는가, 아니면 "너는 신이며 이보다 더 신성한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답하겠는가. 나는 이 질문을 일기 재독(再讀)에 그대로 적용했다. 61일째 되던 날, 나는 47일째 일기를 다시 읽었다. "답장 속도에 기분이 걸려 있다"는 문장을 다시 읽는데, 이걸 내일도 똑같이 쓸 수 있는가 자문했다. 답은 "아니오"였다. 61일째에는 답장이 세 시간 걸려도 신경이 안 쓰였다. 이게 영원회귀 테스트의 실제 쓸모다. 추상적으로 "이 삶을 다시 살겠는가"를 묻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 문장을 내일도 똑같이 쓰겠는가"를 묻는 것. 못...

💀 서류에 손이 떨렸다: 죽음을 공부한다는 것, 왜 하필 지금 '타나톨로지'를 읽어야 하나

✍️ 서명하는 손이 떨렸던 날 작년에 아버지가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 담당의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연명의료계획서였다. "심폐소생술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자연스러운 임종을 원하십니까." 문장은 담담했는데 손이 떨렸다. 그 순간 깨달은 게 있다. 나는 태어나는 법, 사랑하는 법, 돈 버는 법에 대해서는 어디선가 조금씩 배웠는데, 죽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때부터 '죽음학'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곧 ' 타나톨로지 (thanatology)'라는 낯선 영어 단어와 마주쳤다. 🌐 타나톨로지는 왜 굳이 영어 이름을 쓸까 죽음학이라는 한글 표현이 이미 있는데도 왜 굳이 '타나톨로지'라는 수입 용어가 매체와 강좌 이름에 자꾸 등장하는 걸까. 이건 단순한 허영이 아니라 학문의 계보 문제다. 타나톨로지는 1959년 심리학자 허먼 파이펠이 편집한 《The Meaning of Death》, 이어 1969년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On Death and Dying》을 기점으로 심리학·의학·사회학·인류학이 각자 따로 다루던 죽음을 하나의 학제로 묶으면서 붙은 이름이다. 즉 '죽음학'이 민간에서 오래 써온 느슨한 표현이라면, '타나톨로지'는 제도권 학문으로서의 계보와 방법론을 함께 데려오는 이름이다. 한국에서 이 단어가 다시 호출되는 건, 죽음을 다루는 기존의 언어—장례 절차, 상조 상품, 종교적 위로—로는 감당 안 되는 새로운 질문들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 초고령사회·웰다잉법·팬데믹이 만든 '언어 공백' 행정안전부가 2024년 12월 발표한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처음으로 20%를 넘어서면서 한국은 그 시점에 국제 기준상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숫자 자체가 아니라, 이 숫자가 만들어내는 '죽음의 위치 이동'이다. 통계청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국내 사망자의 다수가 병...

🧭 재회 확률 계산에 집착했던 63일, 스토아 철학으로 이별 극복하는 법

📊 63일째, 나는 확률을 계산하고 있었다 정확히 63일째였다. 헤어진 날짜를 손가락으로 세고 있다는 걸 스스로 눈치챘을 때, 나는 잠실나루역 계단을 오르며 그 사람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다섯 번째로 새로고침하는 중이었다. 어제는 스토리를 열두 시간 만에 올렸고, 그제는 세 시간 만에 올렸다. 나는 그 간격을 노트 앱에 적어두고 있었다. 마지막 연락 이후 경과 시간, 스토리 업로드 텀, 공통 친구가 태그된 게시물 빈도 — 이걸 다 모으면 재회 확률이 나올 것 같았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그때는 이게 '분석'이라고 생각했다. 매달리는 것과는 다른, 이성적인 접근이라고.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그건 분석이 아니라 의식(ritual)에 가까웠다.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내기 위한 행동. 🎰 내가 붙들고 있던 건 사실 슬롯머신이었다 에픽테토스는 엔케이리디온 1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고. 의견, 충동, 욕구, 회피는 우리 것이고, 몸, 재산, 평판, 타인의 반응은 우리 것이 아니라고. 이 문장을 그때 처음 읽은 건 아니었다. 문제는 안다고 해서 적용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내가 스토리 업로드 간격을 기록한 이유를 나중에야 알았다. 그건 행동심리학에서 말하는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와 똑같은 구조였다. 슬롯머신이 사람을 중독시키는 방식은 매번 터뜨려주는 게 아니라, 가끔, 불규칙하게 터뜨려주는 거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오히려 더 강하게 잡아당긴다. 그 사람이 가끔 답장을 늦게 하고, 가끔 나만 알아볼 힌트를 스토리에 흘리고, 가끔 갑자기 연락이 오면 — 나는 그 불규칙성을 '패턴'으로 착각하고 거기서 확률을 뽑아내려 했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 자체가 내가 그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스토아 철학 이별 극복 이 알려주는 건 '재회는 통제 밖'이라는 명제 자체가 아니라, 왜...

🌙 짝사랑 상대가 꿈에 자꾸 나오는 이유, 니체와 불교 철학으로 들여다보는 무의식과 감정의 정체

🌙 어젯밤에도 그 사람이 나왔다 새벽 다섯 시쯤 눈이 떠졌다. 꿈 내용은 별거 없었다. 스터디 끝나고 다 같이 나가는데 그 사람이 우산을 안 챙겨서, 내가 반쯤 씌워주면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장면. 그게 다였다. 그런데 눈을 뜬 순간 이상하게 서운했다. 현실에서는 지난달 스터디 끝나고 "다음 주에 봬요" 정도가 우리 대화의 최대치인데, 꿈속의 나는 왜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산을 씌워줬을까. 이번 주만 세 번째다. 월요일엔 그 사람이 내 메시지에 답을 안 해서 서운해하는 꿈, 수요일엔 어딘가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쳐 한참 얘기하는 꿈, 그리고 오늘. 재밌는 건 세 꿈의 온도가 다 다르다는 거다. 월요일 꿈에서는 초조했고, 수요일 꿈에서는 편안했고, 오늘은 그냥 서운했다. 같은 사람이 나오는데 매번 내가 다른 감정으로 깨어난다. 이게 단순히 짝사랑 상대 꿈에 자주 나오는 이유 라는 한 줄로 정리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뇌는 왜 굳이 그 사람을 골라서 재생하는가 수면 연구자 캘빈 홀은 1953년에 발표한 자신의 이론에서, 꿈이 무작위한 잡음이 아니라 우리가 깨어 있을 때 마음을 쓰고 있는 대상과 관계를 그대로 이어서 다룬다고 봤다. 그가 대학생들에게서 수집한 천 건 가까운 꿈 보고서를 분석해보니, 꿈에 등장하는 인물과 감정은 꿈꾼 사람이 현실에서 신경 쓰고 있는 인간관계와 상당히 겹쳤다. 이걸 연속성 가설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꿈에 나오는 건 신비로운 계시가 아니라, 낮 동안 내가 그 사람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에 대한 뇌의 정직한 보고서에 가깝다. 여기에 하나 더 있다. 수면 연구자 매슈 워커는 렘수면 동안 스트레스 호르몬인 노르아드레날린 분비가 뚝 떨어진다는 걸 보여줬다. 낮에 감정이 실려 있던 기억을, 그 감정의 날카로움은 빼고 처리하는 시간이 렘수면이라는 거다. 그런데 내 경우엔 이 처리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감정이 무뎌지긴커녕 매번 다른 버전으로 재생되니까. 어쩌면 뇌가 이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 권태의 현상학: 하이데거와 스벤젠이 말하는 지루함이라는 사건, 지하철 12분이 남긴 균열

🚇 지하철 플랫폼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주 전 퇴근길, 다음 열차까지 12분이 남았다는 전자 안내판을 보고 나는 이상하게 멈춰 섰다. 휴대폰 배터리는 죽어 있었고, 읽을 책도 없었고, 옆에 말을 걸 사람도 없었다. 그 12분 동안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간이 그냥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뭔가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권태의 현상학 이라는 게 단순히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처럼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날 밤 나는 하이데거의 강의록과 라스 스벤젠의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두 사람 모두 지루함을 진지하게 다룬 철학자다. 그런데 접근하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하이데거는 지루함을 존재 자체가 드러나는 순간으로 보고, 스벤젠은 그것을 근대라는 특정한 시대가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로 본다. 이 둘을 나란히 놓고 보면, 지루함이라는 흔하고 하찮아 보이는 감정이 얼마나 다층적인 사건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 하이데거의 세 겹의 권태 하이데거는 1929년에서 30년 사이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한 강의, 흔히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로 번역되는 강의록에서 권태(Langeweile)를 세 단계로 나눈다. 첫 번째는 '무언가에 의해 지루해지는 것'이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상황이 대표적 예다. 여기서 지루함은 명확한 대상, 즉 '기다림'이라는 특정 상황에 묶여 있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느끼며 시계를 자꾸 쳐다본다. 두 번째는 '무언가와 함께 지루해지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저녁 파티에 초대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 시간 전체가 텅 비어 있었다는 느낌을 예로 든다. 이때 지루함은 특정 대상이 아니라 상황 전체의 분위기에 스며 있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이 '심오한 권태(die tiefe Langeweile)'다. 이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 얼음 네 개, 라떼가 되던 날—니체와 불교로 쓴 짝사랑 관찰 노트 작성법 완벽 정리

🧊 얼음 네 개, 그리고 나의 첫 관찰 노트 2023년 9월 둘째 주, 나는 회사 1층 카페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커피를 사 가는 옆 팀 디자이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관찰"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전에, 그냥 그 사람이 뭘 시키는지 외우고 있었다. 얼음 네 개짜리 아메리카노. 카드로 결제. 영수증은 안 받음. 이걸 적어둔 게 시작이었다. 돌이켜보면 이게 나만의 짝사랑 관찰 노트 작성법 이었다. 노트를 산 건 그로부터 이 주 뒤였다. 무지 노트에 처음 쓴 문장은 "아메리카노, 얼음 많이"였고, 그 밑에 날짜를 적었다. 나는 이게 다이어리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사실은 상대의 취향을 데이터처럼 모으는 일이었다. 회의 때 재즈 얘기가 나오면 그 사람 말이 빨라진다는 것, 월요일 아침엔 유독 말이 없다는 것, 이런 것들을 몇 달에 걸쳐 채워 넣었다. 변화가 생긴 건 11월 말이었다. 얼음 네 개짜리 아메리카노가 어느 날부터 뜨거운 라떼로 바뀌었다. 노트에 그걸 적으면서 알았다. 계절이 바뀌었을 뿐인데 나는 그 변화에 괜히 서운했다는 걸. 그 순간 이 노트가 취향 기록이 아니라 집착의 증거라는 걸 처음 인정했다. 🌀 니체: 이 삶을 다시 살겠느냐는 질문 니체는 『즐거운 학문』 341절에서 악마가 찾아와 이렇게 묻는 상상을 하라고 한다. 지금까지 산 삶을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 똑같이, 무한히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어떻겠냐고. 이 질문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그래, 다시"라고 답할 수 있는 삶을 살라는 게 영원회귀 사고실험의 핵심이다. 나는 이 질문을 노트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라떼로 바뀐 걸 알고 서운해했던 그 순간까지 포함해서, 이 짝사랑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시 겪겠느냐고. 처음엔 아니라고 답했다. 거절당할 걸 알면서 왜 다시. 그런데 노트를 몇 장 넘겨보니 답이 흔들렸다. 재즈 얘기에 신났던 그 사람의 표정을 관찰하던 순간, 그건 다시 겪어도 괜찮았다. 니체가 말한 힘에의 ...

🗣️ 파르헤시아, 왜 솔직하게 말하기는 여전히 위험한 일인가 — 고대 그리스 자기발언의 윤리

⏰ "QA가 사흘밖에 안 남는데요" 8명짜리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였다. 팀장이 6주짜리 스프린트를 짰는데, 개발에 4주, 남은 2주를 QA에 쓰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회의 자료를 다시 보니 계산이 이상했다. 개발 마감이 이미 한 번 밀린 걸 반영하면 QA는 2주가 아니라 사흘이었다. 손을 들고 그대로 말했다. "이 일정대로면 QA가 사흘이에요, 2주가 아니라." 회의실이 3초쯤 조용해졌다. 팀장은 표정이 굳었다가 곧 자료를 다시 열어 날짜를 세어보더니 "어... 그러네요" 하고 일정을 다시 짰다. 그게 다였다. 나한테 불이익도 없었고 관계가 틀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심장이 뛴 건 확실히 기억한다. 별일 아니었는데도 말하기 전에 몇 초를 망설였다는 것, 그게 이 글을 쓰게 만든 이유다. 🗣️ 파르헤시아는 그냥 솔직한 말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파르헤시아 자기 발언 윤리 (parrhesia)는 그리스어로 pan(모두)과 rhesis(말하기)가 합쳐진 단어다. 직역하면 "모두 털어놓고 말하기" 정도인데, 아테네에서 이 말이 처음 쓰인 맥락을 보면 지금 우리가 쓰는 "솔직함"과는 결이 다르다. 미셸 푸코는 1983년 버클리 강연(사후 「Fearless Speech」로 출간)에서 파르헤시아를 다섯 가지 조건으로 정리했다. 화자가 실제로 위험을 감수할 것, 자기가 진실이라 믿는 바를 말할 것, 청자보다 권력이 약한 위치에 있을 것, 침묵해도 됐지만 말하기를 선택했을 것, 그 말로 관계가 나빠질 각오를 했을 것. 다섯 조건 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건 파르헤시아가 아니라 그냥 발언이다. 힘 있는 사람이 약자를 향해 던지는 직설은 파르헤시아가 아니고, 위험이 전혀 없는 자리에서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아테네 민주정의 또 다른 개념인 이세고리아(isegoria)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 선명해진다. 이세고리아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민회에서 발언할 권리가 있다는 정...

💔 연애의 손절선: 니체와 붓다가 말하는 이별의 기준과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순간의 판단법

📱 재작년 11월, 화요일 밤 11시 47분 읽음 표시가 뜬 게 저녁 8시였다. 나는 "이번 주말에 뭐해?"라는 문장 하나를 보내놓고 세 시간 넘게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다. 11시 47분에 답이 왔다. "ㅇㅇ" 그게 다였다. 물음표도, 그 흔한 이모티콘도 없이 딱 두 글자. 나는 그 "ㅇㅇ"을 갖고 십 분을 더 앉아 있었다. 이게 바빠서 못 쓴 답장인지, 나를 밀어내는 답장인지 구분이 안 됐다. 다음 날 점심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 뭐야, 나한테"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왜 갑자기 그래"라고 되물었다. 그 순간 알았다. 이 관계에서 질문을 던질 권리는 나한테 없었구나. 나는 그날 저녁 번호를 차단했다. 그로부터 이 년, 이 장면을 몇 번이고 복기하면서 내가 진짜 궁금했던 건 이거였다. 그 "ㅇㅇ"이 손절의 신호였다는 건 지금은 안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왜 몰랐을까. 연애의 손절선 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상대의 행동이 아니라 내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를 미리 정해두는 일 아닐까. 그 기준을 찾아 니체와 불교를 동시에 붙잡아봤는데, 이 둘은 순순히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 니체와 붓다를 나란히 놓을 수 없는 이유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한동안 이 둘을 같은 편으로 썼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와 불교의 "집착을 놓아라"를 나란히 두고, 둘 다 "나를 갉아먹는 관계에서 벗어나라"는 말 아니냐고 뭉뚱그린 적이 있다. 그런데 니체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안티크리스트』에서 니체는 불교를 "피로한 문명의 위생학"이라고 부른다. 기독교보다는 정직한 종교라고 인정하면서도, 결국 불교는 삶에 대한 갈애 자체를 꺼트리려는 시도이며, 그건 삶을 확장하고 긍정하는 게 아니라 고통을 피해 삶의 온도를 낮추는 소극적 허무주의라는 것이다. 반대로 불교의 논리에서 보면 힘에의 ...

📦 해외역직구 오배송 신발 관세 12만8천원, 세관에 직접 물어본 위약물품 환급 신청 방법

👟 사이즈 잘못 온 신발 한 켤레가 알려준 것 작년 가을에 위탁판매로 미국 브랜드 운동화를 들여오다가 사이즈가 완전히 틀리게 온 적이 있어요. 고객한테는 급한 대로 환불부터 처리했고, 저는 반품 받은 신발을 창고 한구석에 처박아뒀죠.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통관할 때 이미 관세를 냈는데, 그 물건이 팔리지도 못하고 그냥 재고로 죽어버린 거예요. 관세까지 손해 보는 건가 싶어서 답답한 마음에 관세청 고객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는데, 상담원이 "위약물품 환급"이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관세도 조건만 맞으면 돌려받을 수 있다는 걸. 📜 법 조문부터 짚고 가면 헷갈릴 일이 없다 이게 어디 있는 규정인지 찾아보니 관세법 제106조 제1항이었어요. 조문을 그대로 옮기면 "수입신고가 수리된 물품이 계약 내용과 다르고, 그 물품이 수입신고 수리 당시의 성질 또는 형태가 변경되지 아니한 경우로서 해당 물품이 수입신고 수리일부터 1년 내에 보세구역에 반입되어 수출되거나 세관장의 승인을 얻어 폐기된 것"이면 관세를 환급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걸 실무에서 어떻게 증명하는지는 관세법 시행령 제121조에 나와 있어요. 수입신고필증, 매매계약서 또는 이에 갈음할 서류, 그리고 물품이 변형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세관장에게 제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알아둘 게 있는데, 저처럼 정식으로 수입신고를 한 물품이 아니라 해외직구 형태로 목록통관 처리된 물품이라면 조금 다릅니다. 목록통관은 물품가격 150달러(미국은 200달러) 이하 자가사용 물품을 정식 수입신고서 없이 간이하게 통과시키는 절차라서, 애초에 제106조의 정식 환급 대상 서류 자체가 없거든요. 그런데 이 경우를 위해 따로 관세법 제106조의2, 전자상거래물품에 대한 특례 조항이 있습니다. 전자상거래로 수입된 물품을 반품하면서 관세 등을 이미 낸 경우, 수입신고 취하 승인을 받아 간이하게 환급받을 수 있게 해둔 거예요. 그러...

☕ 직장 내 짝사랑 티 안 내는 법, 90일간 감정 강도를 기록해 얻은 니체와 붓다의 답

탕비실에서 커피 두 잔을 타던 날 ☕ 작년 3월 12일 목요일 오후 3시쯤이었다.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고 있는데 옆 팀 준영 대리님이 들어왔다(실명은 아니고 가명이다). "저도 한 잔 같이 타드릴까요" 하고 물었는데 목소리가 이상하게 갈라져서 스스로도 당황했다. 그날 밤 일기장에 "오늘 강도 8"이라고 적었다. 강도에 숫자를 매긴 게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두 달 전부터 이미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매일 저녁 그날의 짝사랑 강도를 1부터 10까지 점수로 기록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90일 넘게 기록을 모으고 나서야 알게 된 게 있다. 그걸 이해하는 데 니체와 불교 경전이 의외로 도움이 됐다. 일기장 90일치가 말해준 것 — 무상과 연기 📊 기록을 쭉 늘어놓고 보니 패턴이 보였다. - 3/12(목) 강도 8 — 탕비실에서 마주쳐 대화함 - 3/13(금) 강도 3 — 하루 종일 못 봄 - 3/17(화) 강도 9 — 회식에서 옆자리 - 3/18(수) 강도 2 — 월차 써서 안 나감 - 3/24(화) 강도 7 — 메신저에 이모티콘 답장 옴 - 3/25(수) 강도 3 — 평범한 하루, 마주친 적 없음 숫자만 봐도 뭔가 이상했다. 이게 진짜 '사랑'이라는 고정된 감정이라면 매일 비슷한 수치가 나와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 사람과 직접 접촉이 있었던 날에만 수치가 튀었다. 접촉이 없는 날은 거의 항상 2~3점 사이였다. 불교의 연기(緣起) — 모든 현상은 조건에 의존해 일어난다는 개념 — 이 이 패턴을 정확히 설명한다. 열반경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이라는 구절은 흔히 "모든 것은 변한다" 정도로 뭉뚱그려 인용되지만, 원래 맥락은 더 구체적이다. 형성된 것(諸行)은 조건이 모여서 생겼다가 조건이 흩어지면 사라지는 법(生滅法)이라는 뜻이다. 내 강도 8은 '사랑'이라는 실체가 있어서 생긴 게 아니라 탕비실 대화라는 조건이 있었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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