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에피쿠로스인 게시물 표시

🍎 에피쿠로스 아타락시아: 욕망을 없애라고 한 적 없다, 스크린타임 47분이 알려준 진짜 의미

📱 좋아요 38개, 확인 47번 — 스크린타임 앱이 보여준 숫자 작년 가을 어느 밤, 아이폰 설정에 들어가서 스크린타임을 열어봤다. 인스타그램: 하루 평균 47분, 앱을 연 횟수 38번. 눈뜨자마자, 지하철에서, 화장실에서, 자기 직전까지 하루에 38번씩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아래로 당기고 있었다는 얘기다. 뭘 보려고 그렇게 여러 번 들어갔는지 스스로도 설명이 안 됐다. 새 글이 딱히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날 앱을 지웠다. 사흘을 버텼다. 나흘째 되던 날 다시 깔았다. 부끄러워서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처음 털어놓는다. 문제는 의지력이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원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이 지점에서 에피쿠로스를 다시 읽게 됐다. 🚫 "욕망을 없애라"는 말, 어디에도 없다 에피쿠로스 하면 흔히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라"는 식으로 소개된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확하지도 않다. 그가 남긴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와 「쿠리아이 독사이(주요 교설)」를 보면, 욕망을 없애라는 말은 없다. 대신 욕망을 세 가지로 쪼갰다. (국내 번역으로는 오유석 옮김 『쾌락』, 문학과지성사, 1998에 실린 두 글을 참고했다. 「쿠리아이 독사이」 29~30번 항목이 이 분류를 다룬다.) 첫째,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욕망 —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는 것. 둘째, 자연스럽지만 필수적이지는 않은 욕망 — 같은 배고픔이라도 담백한 빵 대신 굳이 값비싼 음식을 찾는 것. 셋째, 자연스럽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욕망 — 명예, 권력, 남들보다 돋보이고 싶은 마음처럼 "공허한 의견"(케노독시아, kenodoxia)에서 생겨난 것. 그런데 이 분류에서 진짜 중요한 건 세 가지로 나눴다는 사실이 아니다. 나눈 기준이다. 배고픔은 밥 한 그릇을 먹으면 몸이 알아서 멈춘다. 몸이 신호를 보낸다. 반면 명예욕이나 인정욕구는 아무리 채워도 몸에서 "이...

🏠함께 살아도 냉장고는 따로 썼다, 에피쿠로스 정원학교가 알려주는 공동체 생활의 오랜 지혜

🧊 냉장고 칸 하나 때문에 시작된 이야기 2019년 봄, 서울 합정동의 4층짜리 셰어하우스에 6개월쯤 산 적이 있다. 방 다섯 개짜리 집에 다섯 명이 살았고, 냉장고는 한 대, 칸은 다섯 개로 나뉘어 있었다. 문제는 그 칸이 균등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제일 위 칸을 쓰던 사람 — 편의상 민석이라고 하자 — 이 야식을 자주 시켜 먹으면서 자기 칸이 부족하다고 아래 칸까지 슬금슬금 넘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배달 온 치킨 상자 하나였다가, 나중엔 각종 반찬통이 쌓였다. 결국 집주인이 중재에 나서서 칸마다 이름표를 붙이는 걸로 끝났는데, 그 이름표 하나 붙이는 데 두 달이 걸렸다. 부엌 하나, 냉장고 하나를 같이 쓰는 것과 그 안의 칸까지 완전히 섞는 것 사이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었다. 같이 사는 건 됐는데, 뭘 같이 쓰고 뭘 따로 둘지에 대한 합의가 없으니까 매번 부딪혔다. 🌿 "정원"은 코뮌이 아니었다 에피쿠로스 얘기가 나오면 보통 원조 미니멀리스트, 최초의 코리빙 공동체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틀린 말은 아닌데, 정작 핵심은 다른 데 있다. 기원전 306년쯤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성벽 바깥 한적한 곳에 땅을 사서 학교 겸 거주 공간을 차렸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0권에서 전하는 바로는 이 땅값이 80미나였다고 한다. 1미나가 100드라크마이니 8천 드라크마, 숙련 노동자 일당이 1드라크마 안팎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 즉 에피쿠로스 개인이 자기 돈으로 땅을 매입한 것이지, 제자들이 돈을 모아 공동 소유한 게 아니었다. 이 지점이 피타고라스 학파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피타고라스 공동체는 재산을 완전히 공유하는 걸 원칙으로 삼았던 걸로 유명한데, 에피쿠로스 정원학교 는 그러지 않았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대화하되, 소유권은 각자의 것으로 남겨뒀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그대로 옮겨 적은 에피쿠로스의 유언장(10권 16~21절 부근)을 보면 이 구조가 얼마나 꼼꼼하게 설계...

🌙 프리랜서 8년 차, 잔고 237만원의 새벽 — 에피쿠로스 콰트라파르마콘이 건넨 위로 한 줄

🌙 프리랜서 8년 차, 잔고 237만 원과 함께 뜬 새벽 세 시 지난달이었다. 통장 잔고가 237만 원까지 떨어진 걸 확인하고 나서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 프로젝트 계약서에 사인이 언제 될지 모르는 채로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스토아 철학 책을 열었다가 덮었다. 세네카의 문장들은 정확했지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네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은 신경 쓰지 마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만큼, 감정적으로도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래서 책장에서 에피쿠로스를 다시 꺼냈다. 📜 네 줄짜리 처방전, 출처는 파피루스 두루마리다 에피쿠로스 콰트라파르마콘 (tetrapharmakos)이라 불리는 이 넉 줄은 사실 에피쿠로스 본인의 육필이 아니다.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굴된 파피루스 사본 중 하나인 PHerc. 1005 — 에피쿠로스학파 철학자 필로데모스가 남긴 문헌 — 에 이 네 줄이 요약 형태로 등장한다. 내용 자체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정리한 '주요 교설(Kyriai Doxai)' 1번부터 4번 항목과 거의 겹친다. 번역하면 이렇다. 신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죽음은 걱정할 대상이 아니다 좋은 것은 얻기 쉽다 나쁜 것은 견디기 쉽다 넉 줄이 다다. 그런데 이게 왜 스토아의 통제이분법과 다른 처방인지, 여기서부터가 예전 글에서 내가 놓쳤던 지점이다. 🧭 통제이분법이 아니라 욕망의 분류법 스토아는 세상을 '내 힘 안에 있는 것'과 '없는 것' 둘로 가른다. 에피쿠로스는 세상이 아니라 내 욕망을 가른다. '주요 교설' 29번이 제시하는 분류는 셋이다.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욕망(물, 음식, 잠), 자연스럽지만 필수는 아닌 욕망(맛있는 음식, 좋은 잠자리), 그리고 자연스럽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욕망(명성, 무한한 부, 남들보다 앞서는 것). 잔고 237만 원 앞에서 잠 못 이룬 이유를 이 틀로 뜯어보면, 두려움의 8할은 세 번째 칸이었다. ...

📚 에피쿠로스는 SNS를 끄라고 하지 않았다: '케노독시아' 감별로 완성하는 아타락시아 실천법

🍂 재작년 가을, 종로서적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대학 때 같이 자취방에서 라면 끓여 먹던 친구가 있었다. 졸업하고 십 년 넘게 각자 회사 다니느라 연락이 뜸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종로에 작은 헌책방을 차렸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으로 봤다. 개업 첫날 사진이었다. 손글씨로 쓴 나무 간판, 친구가 앞치마를 두르고 웃고 있는 모습, 밑에는 "십 년 만에 제 이름 걸고 하는 일이네요"라는 문구. 이상하게 그 사진 앞에서 오래 멈췄다. 부럽다는 감정은 아니었다. 헌책방 운영이 얼마나 고달픈지는 나도 안다. 그런데도 뭔가 뾰족한 게 가슴을 찔렀다. 나는 그해 봄에 이직 제안을 받았다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그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 사진 한 장 앞에서 갑자기 내 선택 전체가 재판대에 오른 기분이었다. 화면을 끄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중에 이 감정을 곱씹다가 에피쿠로스를 다시 읽었다. 대학 교양 수업에서 "쾌락주의 철학자, 사실은 검소하게 살라고 한 사람" 정도로 배웠던 그 사람.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읽어보니, 그가 남긴 글 중에 그날 밤 내 감정을 정확히 겨냥한 개념이 있었다. 🏺 에피쿠로스가 실제로 나눈 건 '자연스러운 욕망'과 '케노독시아'였다 에피쿠로스의 『주요 교설(Kuriai Doxai)』 29번 항목을 보면 그는 욕망을 세 가지로 나눈다.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것(배고프면 먹고 싶은 것), 자연스럽지만 필수는 아닌 것(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것), 그리고 자연스럽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것. 마지막 항목을 그는 '케노독시아(kenodoxia)'에서 비롯된 욕망이라 불렀다. 직역하면 '텅 빈 의견', 실체 없는 평판과 타인의 시선에서 생겨난 욕망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에피쿠로스가 이 세 번째 범주를 그냥 '사치'로 뭉뚱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명예, 권...

🏡 에피쿠로스의 '정원' 공동체가 셰어하우스 룸메이트 갈등에 남긴 소유와 우정의 오래된 질문

🌬️ 공기청정기 한 대가 쏘아 올린 작은 전쟁 셰어하우스 3년 차, 나를 가장 오래 괴롭힌 건 냉장고 칸도 설거지 당번표도 아니었다. 룸메이트였던 재원(가명)이 40만 원짜리 공기청정기를 사 오더니 4등분해서 정산하자고 한 사건이었다. 그는 "미세먼지는 건강 문제니까 필수 지출"이라 했고, 나는 "네가 사고 싶어서 산 거지 우리가 합의한 적 없잖아"라고 맞섰다. 결국 각자 방에 있던 소형 공기청정기는 그대로 두고 거실용만 재원이 혼자 쓰기로 하며 흐지부지 끝났는데, 그 며칠간 나는 계속 이런 질문을 곱씹었다. 이게 정말 '필요'인가, 아니면 필요라는 이름을 빌린 '취향'인가. 이 질문을 붙들고 있다가 오래전 읽었던 에피쿠로스가 다시 떠올랐다. 그는 기원전 306년경 아테네 외곽에 땅을 사서 제자들과 함께 살았다. 이 에피쿠로스 정원 공동체 의 이름이 '케포스(κῆπος)', 즉 정원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0권에서 전하는 바로는 이 땅의 매입가가 80미나였다고 한다. 결코 소박한 액수가 아니다. 그리고 이 정원이 흥미로운 건 단순히 철학자들이 모여 살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누가 그 안에 있었느냐다. 🌿 정원의 구성원들: 이름이 남은 사람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정원의 구성원으로 레온티온이라는 여성을 기록한다. 그는 헤타이라(고급 유녀) 출신이었지만 정원에서 철학을 배웠고, 나중에는 소요학파의 테오프라스토스를 비판하는 글을 쓸 정도로 자기 목소리를 가진 철학자가 됐다. 테미스타라는 또 다른 여성도 함께였다. 그리고 노예 신분자들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린 에피쿠로스의 유언장에는 자신이 소유했던 노예 미스, 니키아스, 리콘, 그리고 여성 노예 파이드리온을 해방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이들은 단순히 시중을 든 게 아니라 정원의 철학 활동에 참여한 구성원으로 언급된다. 여기서 편집장이 지적할 법한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 모든 걸 다 아는 사이는 필요 없다 —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우정이라는 쾌락, 그 놀라운 이유

📱 카톡 친구 800명, 정작 그날 밤엔 한 명도 못 눌렀다 작년 이맘때, 자정 넘어 갑자기 배가 뒤틀리듯 아팠다. 맹장인가 싶어 진지하게 응급실을 검색하다가, 혼자 가긴 무서워서 누구한테라도 연락해볼까 하고 카톡을 열었다. 친구 목록을 내려봤다. 800명 가까이 있었다. 대학 동기, 전 직장 사람들, 몇 번 술자리에서 만난 지인, 이름은 아는데 얼굴이 가물가물한 사람들. 그런데 그 목록에서 "지금 와줄 수 있어?"라고 물을 사람은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단체 채팅방은 열 개가 넘게 떠 있는데 말이다. 결국 나는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못하고 택시를 불러 혼자 응급실에 갔고, 대기실에서 세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 800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공허한지 계속 곱씹었다. 다행히 장염이었다. 하지만 그날 확인한 건 위장 상태보다 더 불편한 사실이었다. 나는 관계의 숫자는 넘치는데 관계의 밀도는 텅 비어 있었다. 📜 에피쿠로스가 우정을 "최고의 쾌락"이라 부른 이유 이 경험을 곱씹다가 다시 펼친 게 에피쿠로스 우정론 의 『주요 교설』(Kyriai Doxai)이었다. 27번째 교설에 이런 문장이 있다. "지혜가 완전한 삶의 축복을 위해 마련하는 것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을 소유하는 것이다." 흔히 에피쿠로스를 쾌락주의자로만 기억하는데, 그가 말한 쾌락은 술과 음식이 아니라 '아타락시아', 즉 마음의 동요가 없는 평정 상태였다. 그는 쾌락을 두 종류로 나눴다. 배고픔을 채우는 것 같은 순간적·동적인 쾌락과, 그 결핍 자체가 사라진 상태에서 오는 지속적·정적인 쾌락. 우정이 후자에 속한다. 맛있는 걸 먹는 즐거움은 끝나지만, 위급할 때 부를 사람이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안정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에피쿠로스가 실제로 우정을 이론으로만 말한 게 아니라, 아테네 외곽에 '정원(케포스)'이라는 공동체를 차려 제자들과 함께 살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곳엔 여성도, 노예 신분이던...

🏛️ 에피쿠로스는 왜 재산을 공유하지 말라고 했을까 — 정원학교의 진짜 구조와 공동체 설계 비밀

📦 당근마켓에 짐을 다 풀어놓고 작년에 이사하면서 당근마켓에 물건을 한 사흘 내내 올렸다. 안 입는 재킷, 사놓고 펼치지도 않은 전공서적, 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커피용품들. 물건이 하나씩 팔려나가면서 방이 비는 걸 보는데, 이상하게 홀가분한 것과 별개로 조금 허전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 감정이 뭔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작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몇 달 뒤 에피쿠로스의 '정원(케포스, Kepos)'에 대해 읽으면서였다. 다만 지금 와서 보니 그때 내가 느낀 건 미니멀리즘이라기보다는, 물건을 줄이는 것과 함께 사는 방식 자체에 대한 질문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이 글은 '비우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뻔한 이야기 대신, 에피쿠로스가 실제로 어떻게 공동체를 설계했는지를 좀 파보려 한다. 🚪 정원 대문에 붙어 있던 문구 기원전 306년,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성벽 밖에 땅을 사서 학교 겸 거주 공동체를 만든다. 세네카가 『도덕서한』 21번에서 전하길, 그 정원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나그네여, 여기 머물면 좋을 것이다. 여기서는 쾌락이 최고선이다." 아카데메이아나 리케이온처럼 귀족 자제들이 다니는 엘리트 교육기관과 나란히 놓고 보면, 이 광고 문구 자체가 이미 도발이다. 게다가 정원에는 여성(헤타이라 출신인 레온티온), 노예(뮈스) 도 정식 구성원으로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그리스 철학 공동체에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다. 여기까지만 보면 "역시 진보적인 코뮌이었구나" 싶은데, 실제 운영 방식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정반대 지점에서 흥미로워진다. 🤝 "친구의 재산은 공동의 것"이라는 말을 에피쿠로스는 거절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모든 것이 공동이다"라는 원칙으로 유명했다. 재산을 공동 소유로 묶는 방식이다. 그런데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에피쿠로스의 편지에는 이 원칙에 대한 명시적인 반박이 ...

🌿에피쿠로스 정원학파, 2300년 전 아테네가 먼저 살았던 '조용한 삶'의 진짜 의미를 다시 묻다

🔕 알림을 끄던 밤,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했을까 작년 가을 어느 저녁이었다. 회사 단톡방, 인스타그램, 뉴스 푸시까지 하루 종일 울려대던 휴대폰을 보다가 홧김에 알림을 죄다 꺼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밤, 개운하기는커녕 좀 허전했다. 조용해진 방 안에서 나는 뭘 놓친 기분이었을까. 요즘 유행하는 '조용한 삶(quiet living)'이라는 말도 비슷한 온도로 다가온다. 알고리즘과 비교, 성과 압박에서 벗어나 작은 삶으로 물러나자는 제안. 그런데 이걸 처음 실천한 사람들이 2300년 전 아테네에 있었다는 걸 알고 나서, 나는 이 유행어를 다시 보게 됐다. 🏛️ 아테네 변두리, 이상한 공동체 하나 기원전 306년,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성벽 밖 어딘가에 땅을 사서 학교를 세운다. 흔히 에피쿠로스 정원학파 의 '정원(Kepos)'이라 불리는 곳이다. 당시 아테네 철학계의 중심이던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나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리케이온과 비교하면 이 정원은 지리적으로도, 구성원 면에서도 변방이었다. 여기엔 시민만 있는 게 아니라 여성도, 심지어 노예 신분인 사람도 함께 공부했다. 아테네 시민 남성만 정식 구성원이 될 수 있던 다른 학파들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저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0권(에피쿠로스 편)에 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다. 🙊 "숨어 살라"는 말, 사실은 반대였다 에피쿠로스의 유명한 모토 중에 "λάθε βιώσας(라테 비오사스)", 흔히 "숨어서 살라"로 번역되는 말이 있다. 나도 처음엔 이걸 '은둔형 외톨이가 되라'는 뜻으로 오해했다. 그런데 이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쓴 사람이 있다. 그리스 출신의 전기작가이자 수필가인 플루타르코스다. 그는 시인이 아니라 「영웅전」을 쓴 것으로 유명한 산문가인데, 「모랄리아」에 실린 「'숨어서 살라'는 말은 옳은가...

🍯 쾌락주의자가 우정을 최고의 쾌락이라 부른 이유, 에피쿠로스 우정론과 관계 피로 사회

🌙 단체 카톡방 스물일곱 개를 나가던 밤 작년 초, 휴대폰 저장 공간이 부족하다는 알림을 보다가 홧김에 카카오톡 대화 목록을 정리한 적이 있다. 스크롤을 내리는데 이름도 가물가물한 단체방이 끝없이 나왔다. 동창회, 전 직장 동기, 아파트 커뮤니티, 육아 정보방, 몇 년째 안 만난 동아리 선후배… 스물일곱 개를 나가고 나서 이상하게 후련했다. 사람을 잃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뭔가 내려놓았다는 느낌. 그날 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데, 왜 정작 새벽에 전화할 사람은 두세 명뿐일까. 이 물음을 붙잡고 있다가 다시 펼친 책이 에피쿠로스 우정론 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쾌락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놓은 철학자다. 그런데 정작 그가 남긴 문장 중 가장 자주 인용되는 건 쾌락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우정에 대한 찬사다. "지혜가 삶 전체의 행복을 위해 마련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의 소유다." 쾌락주의자가 왜 쾌락이 아니라 우정을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했을까. 🌿 정원 공동체, 그리고 노예와 여성이 앉을 자리 기원전 306년,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외곽에 땅을 사서 '정원'이라 불리는 공동체를 꾸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원이 얼마나 목가적이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 문을 드나들 수 있었느냐다. 당대 그리스 철학 공동체는 대개 자유 시민 남성만 받았다. 정원은 달랐다. 여성도, 노예 신분이었던 이들도, 매춘부 출신도 구성원으로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에서 우정을 유용성·쾌락·덕성이라는 세 층위로 나누고, 그중 진짜 우정은 대등한 시민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선을 그은 것과 정면으로 다르다. 에피쿠로스에게 우정의 자격 조건은 신분이나 쓸모가 아니라 그저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두려움이 줄어드느냐였다. 그가 평생 씨름한 문제는 쾌락을 어떻게 늘리느냐가 아니라 고통과 불안, 특히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아타락시아를 깨는 것들)를 어떻...

🍲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쾌락 대신 남긴 유산: 우정과 매달 스무날의 특별한 약속

🍱 반찬통에 붙어있던 포스트잇 2년 전 11월, 아버지가 담낭 쪽 수술을 받고 두 달 가까이 입원해 계셨다. 회사 끝나고 병원 들렀다가 집에 오면 자정이 다 되어 있었고, 냉장고를 열어봐야 반쯤 마른 계란 두 알이 전부였던 시기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현관 앞에 반찬통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대학 동기 정은이가 다녀간 거였다. 소고기무국이랑 멸치볶음, 그리고 통 옆에 붙은 포스트잇에는 "국 데워서 밥 챙겨 먹어, 자책하지 말고"라고 적혀 있었다. 국을 냄비에 옮겨 담는데 아직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어서, 숟가락도 안 들고 그 앞에 한참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정작 정은이한테 전화해서는 고맙단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딴소리만 늘어놨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 뻔하다면 뻔한 장면을 기원전 3세기 아테네에서 이미 정교하게 이론화해 놓은 사람이 있다. 쾌락을 인생의 목표로 선언해서 지금까지도 오해받는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남긴 것이 바로 에피쿠로스 우정론 이다. 🧮 쾌락주의자가 계산기를 두드리자 나온 답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은 사실 방탕이 아니라 계산이다. 쾌락을 늘리고 고통을 줄이는 게 목표라면, 뭐가 제일 효율 좋은 투자처인지 따져봐야 한다. 그가 남긴 『주요 교설』(퀴리아이 독사이) 27번은 이렇게 말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원문을 시릴 베일리가 1926년에 영역한 걸 옮기면 이렇다. "지혜가 일생 전체의 행복을 위해 마련해주는 것들 가운데, 우정을 얻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Of all the things which wisdom acquires to produce the blessedness of the complete life, far the greatest is the possession of friendship)." 돈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고 우정이 1등이라는 거다. 이유는 다음 교설에서 좀 더 풀리는데, 고통 중에서 가장 큰 건 눈앞의 통증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게 에피쿠...

🌿 아타락시아: 에피쿠로스가 정원을 만든 이유 — 새벽 세 시 불안에서 영혼의 고요를 찾는 여정

🌙 새벽 세 시의 목록 몇 달 전, 새벽 세 시에 눈이 떠졌다. 이유는 없었다. 발표도 없고, 마감도 없었다. 그냥 천장을 보고 있었는데 머릿속에 이상한 목록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답장 안 한 메시지, 연락이 끊긴 사람, 삼 년 전에 내가 한 말 한 마디. 특이한 건 그 목록이 불안의 이유가 아니라 불안의 증상이었다는 거다. 불안이 먼저 왔고, 뇌가 그것을 설명하려고 재료를 끌어모은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에피쿠로스를 다시 읽었다. 처음이 아니었다. 대학 때 한 번 훑었고, 아타락시아 —영혼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라는 개념도 알고 있었다. 근데 이번엔 다른 질문이 생겼다. 이 사람이 처방한 게 금욕도 아니고 은둔도 아닌데, 어떻게 이 고요에 도달한다는 거지? 🌿 에피쿠로스는 욕망을 끊으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에피쿠로스에 대해 오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틀렸다. 쾌락을 철학의 목표라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적게 원하고 쉽게 만족하라"는 메시지—그러니까 세련된 금욕주의. 근데 원전은 다르다. 그는 "쾌락은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이다(ἡδονὴν ἀρχὴν καὶ τέλος λέγομεν τῆς μακαρίας ζωῆς)"라고 명시적으로 썼다. 그러면서 아타락시아—마음의 교란이 없는 상태—를 최고의 쾌락으로 정의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건 쾌락의 종류 구분이 아니라, 그가 불안의 원인으로 무엇을 지목했는가다. 에피쿠로스는 죽음에 대한 공포, 신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끝없는 사회적 인정 욕구가 불안의 삼대 원천이라고 봤다. 새벽 세 시의 내 목록을 대입해보면 세 번째였다—더 잘 했어야 했는데 못한 것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들에 대한 반추. 근데 에피쿠로스의 처방이 "더 적게 원해라"가 아니었다는 게 흥미롭다. 그는 아테네 교외에 정원(케포스)을 사서 거기서 살았다.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 정원에는 누가 있었나 에피쿠로스의 케포스는 당시 기준으로 파격적인 공동...

🌿 에피쿠로스가 현대를 살았다면: 정보 과부하 시대의 아타락시아

😮‍💨 기대가 쾌락보다 더 피로하다 어느 오후, 아무 알림도 없는 시간에 일부러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불편했다. 피로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감각—확인하지 않은 메시지, 업데이트되었을 피드, 아직 오지 않은 응답—이 머릿속을 조용히 채웠다. 그 피로는 정보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기다림의 상태' 자체가 이미 소진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이 감각을 알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이것을 철학적 문제로 먼저 정의했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말한다: "미래에 대해, 그것이 전적으로 우리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우리 것이 아닌 것도 아님을 기억하라(τὸ δὲ μέλλον οὔτε ἡμέτερον οὔτε πάντως οὐχ ἡμέτερον)." 쾌락주의자라는 이미지와 기묘하게 어긋나는 이 문장이 사실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에 가장 가깝다. 그가 아타락시아 의 진짜 적으로 지목한 것은 쾌락이 아니었다. 쾌락에 대한 예상—올지 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긴장의 상태—이었다. 현대 플랫폼은 이 구조를 정교하게 활용한다. 유튜브 자동재생, 인스타그램 무한 스크롤, 카카오톡 읽음 표시. 이 기능들의 공통점은 '다음'을 항상 암시한다는 것이다. 콘텐츠가 끝나면 다음이 시작되고, 메시지를 보내면 읽음 여부를 기다리게 되고, 피드를 내리면 새 게시물이 뜬다. 플랫폼은 현재 쾌락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다음 쾌락에 대한 기대를 심는다. 에피쿠로스의 언어로 말하자면, 현대 디지털 환경은 쾌락의 기계가 아니라 기대의 기계다. ⚖️ 운동하는 쾌락과 안정된 쾌락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두 종류로 나눈다. '운동하는 쾌락(κίνησις, kinesis)'—배고플 때 먹는 것, 알림이 왔을 때의 흥분, 좋아요를 받을 때의 자극 같은 것. 그리고 '안정적 상태의 쾌락(κατάστημα, katastema)'—배부른 상태, 필요한 것이 이미 채워진 상태, 더...

🌿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 배우는 아타락시아 — 쾌락이 아닌 고요한 마음이 진짜 행복인 이유

😔 불안이 배경음이 된 시대 어느 날 저녁, 할 일 목록을 다 지웠는데도 마음이 무거웠다. 마감도 없고, 미뤄둔 이메일도 없고, 딱히 걱정할 거리도 없었다. 그런데도 가슴 어딘가에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었다. 이유 없는 불안. WHO가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불안장애를 겪는 인구는 약 3억 100만 명에 달한다. 수치 뒤에는 내가 있었고, 아마 당신도 있을 것이다. 그 무렵, 에피쿠로스를 다시 펼쳤다. 흔히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라는 낙인과 함께 소환된다. 맛있는 음식, 좋은 와인, 감각적 향유. 하지만 그것은 로마 상류층이 자신의 방종을 철학으로 포장하면서 만들어낸 왜곡이었다. 에피쿠로스가 아테네 교외 정원에서 제자들과 나눈 식사는 치즈와 빵이 전부였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철학자 열전』 10권에서 에피쿠로스의 편지를 직접 인용한다. "치즈 한 조각만 있어도 나는 이미 풍요롭다." 이것이 쾌락주의자의 식단이다. 📜 에피쿠로스가 실제로 말한 것 에피쿠로스의 핵심 개념인 아타락시아 (ἀταραξία)는 '쾌락의 극대화'가 아니라 '동요 없음'이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131절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몸에 고통이 없고 영혼에 불안이 없을 때, 우리는 쾌락의 극점에 도달한다." 최고의 상태는 강렬한 쾌감이 아니라, 결핍과 동요의 부재다. 『중요한 교설』(Κύριαι Δόξαι)에서 에피쿠로스는 욕망을 세 층위로 분류한다.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배고픔, 우정, 철학적 사유), 자연스럽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미식, 성적 향락), 자연스럽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것(명성, 권력, 부). 아타락시아는 첫 번째 층위에서만 충족 가능하다. 나머지는 채울수록 비어지는 그릇이다. 이 구조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급진적이다. 에피쿠로스는 욕망을 없애라고 말하지 않는다. 욕망을 정확하게 분류해 불필요한 것에 대한 갈망을 끊어내라고 말한다. 문제는 ...

🫒 에피쿠로스가 죽기 직전 쓴 편지에는 쾌락이 없었다

🎓 에피쿠로스를 처음 만난 날의 착각 대학원 첫 학기, 헬레니즘 철학 수업에서 담당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에피쿠로스가 쾌락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거의 모든 손이 올라갔다. 나도 올렸다. 교수는 짧게 웃고는 수업을 시작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한 학기가 걸렸다. 에피쿠로스(기원전 341–270)는 쾌락을 삶의 시작점이자 목적으로 보았다. 여기까지는 맞다. 그런데 그가 남긴 텍스트를 직접 읽으면 이상한 대목이 있다. 기원전 306년 아테네 외곽에 '정원(Κῆπος)'이라는 공동체를 세운 이 철학자가 가장 반복적으로 강조한 것은 쾌락이 아니라 우정이었다. 『주요 교설』 27번은 이렇게 말한다. "지혜가 우리에게 주는 것들 중 행복한 삶을 위해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의 소유다." 쾌락주의자의 언어처럼 들리는가. 💭 '쾌락'이라는 단어가 만든 오해 오해의 출발점은 그리스어 '헤도네(ἡδονή)'다. 에피쿠로스는 헤도네를 두 종류로 나눴다. 움직이는 쾌락(키네틱 헤도네)과 정지한 쾌락(카타스테마틱 헤도네)이다. 맛있는 것을 먹는 순간의 즐거움은 전자다. 몸에 고통이 없는 상태인 아포니아(ἀπονία)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인 아타락시아(ἀταραξία)는 후자다. 에피쿠로스가 실제로 추구한 것은 후자였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편지에 명확히 나온다. "우리가 쾌락이 시작이자 목적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방탕한 자들의 쾌락이나 감각적 즐거움 안에 놓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타락시아의 상태에 가장 가깝게 데려다주는 것은 무엇인가. 부도, 명성도, 철학적 논증도 아니다. 에피쿠로스의 대답은 우정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분류했고, 에피쿠로스는 우정을 살았다 에피쿠로스 우정론 이 얼마나 독특한지 이해하려면 같은 시기의 철학적 맥락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8–9권에서 우정(φιλία,...

🪦 죽음이 두렵다면, 태어나기 전을 기억해보라

마흔이 다가오면서 처음으로 '나는 죽는다'는 게 실감으로 왔다. 지인의 부고를 받은 것도 아니고, 건강검진 결과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오후, 회의실 창문 너머로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 그 순간이었다. *저 햇살을 내가 못 볼 날이 온다.* 두렵다기보다는, 처음으로 내 삶이 유한하다는 걸 '이해'가 아닌 '감각'으로 알아버린 기분. 그날 이후로 죽음의 철학적 수용 이라는 주제로 철학자들이 뭐라고 했는지 다시 찾아보게 됐다. 🏺 소크라테스가 독배 앞에서 태연할 수 있었던 이유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앞두고 거의 기쁜 것처럼 보인다. 제자들이 울고 있을 때 그는 담담하게 말한다.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 육체의 욕망과 감각에서 영혼을 분리하는 훈련이 철학이고, 죽음은 그 훈련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멈춰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태연함은 영혼불멸이라는 믿음을 전제한다. 죽어도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으니 독배를 들 수 있었던 거다. 그 전제를 빼면 논변은 흔들린다. 현대인에게 소크라테스의 위로는 그래서 절반짜리다. 🔍 에피쿠로스의 논변, 그리고 그 논변의 구멍 에피쿠로스는 영혼불멸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할 때 죽음은 없고, 죽음이 있을 때 우리는 없다." 루크레티우스가 이것을 더 선명하게 다듬었다. 이른바 '대칭 논변'이다. 태어나기 전 수십억 년의 비존재 상태를 우리는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다. 죽은 후의 비존재도 그것과 같다. 앞과 뒤가 대칭이라면, 왜 앞은 괜찮고 뒤는 두려운가? 처음 읽었을 때 꽤 강력하게 느껴졌다. *맞다. 나는 태어나기 전에 대해 겁먹지 않는다.* 그런데 철학자 토마스 네이글이 이 대칭에 구멍을 뚫는다. 그의 '박탈 논변'은 이렇다. 죽음이 나쁜 이유는 죽은 상태가 고통스럽기 때문...

💀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할수록 불안해지는 이유

할머니 장례식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다. 조문 내내 아무도 '죽다'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가셨다", "떠나셨다", "편히 쉬고 계신다". 죽음을 가리키는 말은 넘쳤지만 정작 그 단어는 금기어처럼 피했다. 나는 영정 앞에 앉아 생각했다. 이 회피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 우리는 왜 "죽었다"는 말을 못 하게 됐나 20세기 이전, 죽음은 집에서 일어났다. 가족이 임종을 지켰고, 아이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병원이 죽음의 공간을 독점하면서 달라졌다. 사회학자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ès)는 『죽음 앞의 인간』(1977)에서 이 전환을 "길들여진 죽음(tame death)"에서 "금지된 죽음(forbidden death)"으로의 이행이라고 불렀다. 죽음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상상하는 법도 잃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이야기할 수도 없게 된다. 🔍 에피쿠로스의 논리, 어디에 구멍이 있나 그래서 고대 철학자들이 소환된다. 에피쿠로스가 단골로 나온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없고, 죽음이 오면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이 논리는 우아하고 그럴듯하다. 그런데 철학자 토마스 네이글(Thomas Nagel)이 1970년 논문 「죽음(Death)」에서 이 논리의 구멍을 찌른다. 에피쿠로스의 주장은 죽음이 *경험되지 않으므로* 해가 없다는 것인데, 네이글은 반문한다. 박탈(deprivation) 자체는 경험 없이도 해악이 될 수 있지 않냐고. 내가 죽은 뒤 누릴 수 있었던 좋은 것들을 박탈당했다면, 내가 그 박탈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 손실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 더 단순한 반론도 있다. 에피쿠로스는 죽음 *그 자체*를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대부분 *죽어가는 ...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로스트아크] 제작 효율 최적화 위한 영지 세팅

[로스트아크] 로스트아크 생활 도구 옵션

한국 핵무장 논의와 방위산업 관련주: 핵무기 개발 과정과 유망 종목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