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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기, 견디지 말고 이용하라 — 니체와 불교가 알려주는 권태기 극복법과 사랑의 진짜 의미

## 🍙 삼각김밥처럼 앉아 있던 저녁 3년 사귄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데 문득 할 말이 없었다. 설렘은커녕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고르듯 무덤덤했다. 그날 느낀 건 슬픔이 아니라 죄책감이었다. "나 지금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건가"라는 질문이 밥그릇보다 먼저 앞에 놓였다. 그 질문에 답을 찾겠다고 몇 주를 헤맸는데, 결국 나를 건진 건 심리학 논문이 아니라 니체와 불교였다. 둘 다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권태는 사랑이 고장 났다는 신호가 아니라, 사랑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증거라고. --- ## 🔁 니체라면 이 권태를 "고장"이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 341절에서 이상한 질문을 던진다. 어느 날 악마가 찾아와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이 지루한 저녁 식사까지 포함해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영원히 반복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묻는다면. 그 순간 절규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번!"이라고 외칠 것인가. 이 질문을 [권태기 철학적 재해석](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권태기+철학적+재해석)에 들이대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나는 그 삼각김밥 저녁을 다시 살라면 절규할 줄 알았는데, 곰곰이 따져보니 아니었다. 그 침묵 자체가 싫었던 게 아니라, 그 침묵을 "실패"로 해석하는 내 습관이 싫었던 거다. 니체가 힘에의 의지라고 부른 건 거창한 정복욕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을 저항 없이 긍정하고 거기서 다시 뻗어나가는 힘이다. 권태로운 저녁을 실패로 낙인찍고 도망칠 자료로 쓸지, 아니면 "이 관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됐다"는 데이터로 쓸지는 순전히 내 해석의 몫이었다. --- ## ☸️ 불교는 권태를 없애라고 말하지 않는다 불교의 무상(無常)은 모든 상태가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한다는 뜻이다. 초기 경전들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건 "설렘도 무...

💔 3분 47초와 47분 사이, 짝사랑의 심장박동과 권태로운 침묵이 말해주는 사랑의 진실 이야기

## 📱 밤 11시 42분, "자니?"라는 문자 하나 3년 전 봄, 대학원 세미나실에서 자주 마주치던 선배가 있었다. 이름은 여기서 밝히지 않겠지만, 그가 밤 11시 42분에 보낸 "자니?"라는 문자 하나에 그날 밤 두 시간을 뜬눈으로 보냈다는 사실은 밝혀야겠다. 답장을 쓰다 지우고, 쓰다 지우고, 결국 "ㅇㅇ 왜"라고 보내기까지 11분이 걸렸다. "1"이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다시 답이 오기까지 3분 47초 — 이건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카톡 화면을 캡처해 친구에게 보여준 적이 있어서 기억한다. 그 3분 47초 동안 나는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 속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게 물리적으로 느껴졌다. 그 관계는 정확히 11주 지속됐다. 3월 둘째 주부터 5월 마지막 주까지. 지금 남자친구와는 3년째다. 지난주 화요일, 같은 동네 피자집에서 시킨 페퍼로니 피자를 먹으면서 그는 유튜브를, 나는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47분이 지났다. 불편하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 ## 🧘 촉-수-애-취, 그 11주 동안 내 몸에서 일어난 일 불교의 십이연기에는 촉(觸)-수(受)-애(愛)-취(取)라는 연쇄가 있다. 감각기관이 대상과 접촉하고(촉), 거기서 느낌이 일어나고(수), 그 느낌이 갈애를 만들고(애), 갈애가 집착으로 굳어진다(취). 선배의 문자 알림음, 그 특정 진동 패턴이 바로 촉이었다. 진동이 울리면 0.5초 안에 손이 폰으로 갔다. 그게 그 사람 문자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수가 시작됐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문제는 갈애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사이클이 하루에 40번쯤 반복됐다는 물리적 빈도였다. 지금 남자친구의 문자에는 그런 진동 패턴이 따로 없다. 3년을 쓰다 보니 카톡 알림이 다 똑같이 울린다. 이건 내가 흔히 듣던 "안정된 사랑은 집착을 놓아버린 평정심"이라는 설명과는 다르다. ...

💕 권태기는 실패가 아니다: 니체와 붓다에게 물어본 사랑의 권태기 철학적 의미와 진짜 이유

## 📱 문자 보내는 속도가 달라졌다는 걸 눈치챈 밤 사귄 지 2년 반쯤 됐을 때였다. 예전엔 그이 문자가 오면 화장실에 있다가도 뛰쳐나와 확인했는데, 어느 순간 "이따 답장해야지" 하고 미뤄두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처음엔 죄책감이 들었다. 마음이 식었나, 싶어서. 그날 밤 연남동 카페에서 그이가 "따뜻한 오트밀라떼 하나요"라고 주문하는 뒷모습을 보는데도 예전 같은 심장 반응이 없었다. 근데 이상하게 불안하지 않고, 오히려 그 순간이 편안했다. 이 낙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서 한동안 책만 붙들고 있었다. --- ## 💌 프롬이 갈라놓은 두 개의 사랑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 서문에서부터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착각 하나를 지적한다. 사랑을 '빠지는 것(falling in love)'으로만 이해하는 착각이다. 그는 이걸 사랑하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받는' 대상을 찾는 문제로 사람들이 착각한다고 썼다. 낯선 두 사람 사이의 벽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생기는 그 폭발적 친밀감 — 프롬은 이게 강렬하긴 해도 본질적으로 일시적이라고 봤다. 서로에 대해 몰랐던 것들이 익숙해지면 벽은 다시 세워지고, 그 폭발도 가라앉는다. 그가 진짜 사랑이라고 부른 건 그 다음 단계다. 원서에서 프롬은 mature love를 giving의 능력으로 정의하면서, "미성숙한 사랑은 '너를 필요로 하니까 사랑한다'고 말하고, 성숙한 사랑은 '너를 사랑하니까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는 문장을 남겼다. 설렘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결핍이 아니라, 매일 다시 선택하는 행위라는 뜻이다.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기술(art)로 본 이유도 여기 있다. 기술은 연습과 인내, 훈련이 필요하고, 그건 권태로운 순간에도 계속 작동해야 한다. --- ## 😈 니체의 악마가 던진 질문을 연애에 적용하면 니체는 《즐거운 학문》 341절에서 악마 하나를 등장시킨다. 그 ...

💔 사랑의 감가상각: 마카롱 다섯 개에서 삼각김밥 두 개로, 정말 변해버린 우리 사랑의 온도차

## 🍪 마카롱 다섯 개와 마지막 통화 3년 전 10월, 합정동 '책방 무사' 옆 카페에서 정우를 처음 만났다. 그는 약속 시간보다 20분 늦었고, 변명 대신 종이백을 내밀었다. "여기 줄이 너무 길어서요." 종이백 안에는 마카롱 다섯 개가 들어 있었다. 피스타치오, 얼그레이, 라즈베리, 솔티드 카라멜,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보라색 하나. 나는 그 보라색을 가장 먼저 집어 먹었고, 그는 그걸 보고 "왜 하필 그거부터 먹어요?" 하고 웃었다. 별것 아닌 대화였는데 그날 집에 가는 길에 그 말을 세 번쯤 곱씹었던 기억이 난다. 지난주 화요일, 그는 회사 앞에서 나를 기다리다 편의점 봉투를 건넸다. 삼각김밥 두 개와 캔커피였다. "뭐 먹었는지 모르겠어서 그냥 이거 샀어요." 나는 고맙다고 말했고, 그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나는 그 말을 곱씹지 않았다. 곱씹을 말 자체가 없었다. 이 두 장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싸운 적도, 헤어질 위기를 넘긴 적도 없다. 그저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나는 이 흐름을 설명할 단어를 연애 에세이가 아니라 회계 교과서에서 빌려오기로 했다. [사랑의 감가상각](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사랑의+감가상각). --- ## 📉 정액법만으로는 이 마음을 다 적을 수 없어서 감가상각을 처음 연애에 가져다 붙였을 때, 나는 그게 '시간이 지나면 설렘이 줄어든다'는 뻔한 말을 어렵게 포장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정액법은 자산의 가치를 내용연수 동안 똑같은 금액만큼 매년 떨어뜨리는 방식이고, 정률법은 처음에 더 많이, 나중에 적게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둘 다 우리 관계에 대입하면 그럴듯했다. 첫 만남의 흥분이 가장 크고, 그 다음부터는 일정하게든 점점 적게든 줄어드는 거라고. 그런데 회계에는 이 두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개념이 따로 있다. 손상차손이다. 자산은 보통 정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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