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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 — 아크라시아와 욕구의 철학: 자기를 배신하는 순간의 심리

## 🌙 오늘 밤도 나는 내 의도를 배신했다 밤 11시 15분. 침대에 누워 내일 아침 7시 발표 준비가 됐는지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체크했다. 됐다. 불을 껐다. 그리고 정확히 3분 후, 어떻게 됐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상한 건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인스타그램을 열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진짜 이상한 건,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멀쩡했다는 것이다. 강압이 없었다. 알코올도, 약물도 없었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스스로 결정해서, 내가 하면 안 된다고 아는 일을 했다. 이 상태에 이름이 있다. [아크라시아](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아크라시아)(akrasia). 그리스어로 '자제력의 부재', 더 정확하게는 '알면서도 더 나쁜 선택을 하는 것'. 소크라테스는 이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사람은 진정으로 알면 그에 따라 행동한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나쁜 선택을 할 때는 실은 그게 나쁜 줄 몰랐던 것이라고. 나는 소크라테스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게 생각했다. --- ## 🧠 앎에는 두 종류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논리는 깔끔하다. 인간은 항상 자신이 최선이라 판단하는 것을 한다. 나쁜 행동은 곧 무지의 결과다. 이 논리대로라면 나는 SNS를 오래 보는 게 나쁜 줄 몰랐기 때문에 봤다는 말이 된다. 당연히 이건 틀렸다. 나는 알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7권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의 핵심 통찰은 이것이다: 앎에는 두 종류가 있다. 명제적으로 아는 것과 실천적으로 아는 것. "SNS를 오래 보면 수면이 망가진다"는 명제는 알지만, 그 앎이 그 순간 실제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잠든 사람이나 술 취한 사람의 비유를 쓴다. 이들도 윤리적 원칙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앎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아크라시아 상태에서 우리의 이성적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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