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IRP 중도인출 요양 사유, 탈락하는 3가지 패턴과 혼합계좌 세금·기회비용 실전 완전 정리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 6개월 요양, 실제로는 생각보다 훨씬 좁다 지난해 팀 후배가 [퇴직연금 IRP 중도인출 조건](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퇴직연금+IRP+중도인출+조건) 신청을 했다가 반려당했다. 3개월 입원을 하고 이후 3개월 동안 외래치료를 받은 상황이었는데, 심사 결과는 "요양 기간 미충족"이었다. 퇴원 후 외래치료를 이어갔으니 합산하면 6개월 아닌가 싶었는데, 담당 창구에서 돌아온 말은 "입원치료와 외래치료는 요양 기간 합산이 불인정되는 경우가 있다"였다. 법령상 요양은 '지속적 치료를 요하는 상태'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퇴원 후 외래전환은 심사 기관에 따라 요양 종료로 간주하기도 한다. 첫 번째 조건을 통과해도 두 번째 조건이 남는다. 임금총액의 12.5% 이상 의료비를 써야 인출이 가능한데, 연봉 5,000만 원이면 의료비가 625만 원을 넘어야 한다. 여기서 '임금총액'이 기본급이 아니라 성과급·식대·교통비·연장근로수당까지 포함한 세전 총액이라는 게 함정이다. 성과급이 많을수록 기준선이 올라가서 오히려 고소득자일수록 이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워진다. 심사에서 자주 탈락하는 패턴을 정리하면 세 가지다. 입원 기간만 요양으로 계산하고 외래는 빼는 것, 임금총액을 기본급 기준으로 계산해서 12.5% 기준선을 낮게 잡는 것, 무주택 주택구입 사유에서 배우자·세대원 전원이 아닌 본인만 무주택을 확인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특히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직장인들이 많이 걸린다. --- ## 💰 세액공제금과 퇴직금이 섞인 계좌에서 세금이 두 가지로 나오는 이유 IRP에 돈이 쌓이는 경로는 두 가지다. 본인이 납입하면서 연말정산에서 세액공제를 받은 개인납입금, 그리고 이직·퇴사 때 넘어온 퇴직금. 계좌 안에서는 섞여 있어 보이지만 세금 처리는 전혀 다르게 적용된다. 중도인출 시 인출금은 두 재원의 비율에 따라 자동으로 쪼개진다. 계좌에 개인납입금 2,0...
🌿 아타락시아: 에피쿠로스가 정원을 만든 이유 — 새벽 세 시 불안에서 영혼의 고요를 찾는 여정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 새벽 세 시의 목록 몇 달 전, 새벽 세 시에 눈이 떠졌다. 이유는 없었다. 발표도 없고, 마감도 없었다. 그냥 천장을 보고 있었는데 머릿속에 이상한 목록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답장 안 한 메시지, 연락이 끊긴 사람, 삼 년 전에 내가 한 말 한 마디. 특이한 건 그 목록이 불안의 이유가 아니라 불안의 증상이었다는 거다. 불안이 먼저 왔고, 뇌가 그것을 설명하려고 재료를 끌어모은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에피쿠로스를 다시 읽었다. 처음이 아니었다. 대학 때 한 번 훑었고, [아타락시아](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아타락시아)—영혼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라는 개념도 알고 있었다. 근데 이번엔 다른 질문이 생겼다. 이 사람이 처방한 게 금욕도 아니고 은둔도 아닌데, 어떻게 이 고요에 도달한다는 거지? --- ## 🌿 에피쿠로스는 욕망을 끊으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에피쿠로스에 대해 오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틀렸다. 쾌락을 철학의 목표라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적게 원하고 쉽게 만족하라"는 메시지—그러니까 세련된 금욕주의. 근데 원전은 다르다. 그는 "쾌락은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이다(ἡδονὴν ἀρχὴν καὶ τέλος λέγομεν τῆς μακαρίας ζωῆς)"라고 명시적으로 썼다. 그러면서 아타락시아—마음의 교란이 없는 상태—를 최고의 쾌락으로 정의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건 쾌락의 종류 구분이 아니라, 그가 불안의 원인으로 무엇을 지목했는가다. 에피쿠로스는 죽음에 대한 공포, 신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끝없는 사회적 인정 욕구가 불안의 삼대 원천이라고 봤다. 새벽 세 시의 내 목록을 대입해보면 세 번째였다—더 잘 했어야 했는데 못한 것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들에 대한 반추. 근데 에피쿠로스의 처방이 "더 적게 원해라"가 아니었다는 게 흥미롭다. 그는 아테네 교외에 정원(케포스)을 사서 거기서 살았다. 혼자가 아니...
💘 짝사랑 상대의 관심사를 역이용해 첫 대화를 여는 법 — 연출된 우연도 진심이면 사랑이다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 그 사람이 말한 한마디를, 나는 두 달 동안 곱씹었다 어느 오후, 그 사람이 옆자리 사람에게 말했다. "요즘 일본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에 완전 빠졌어." 내게 한 말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말이었고, 나는 그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무라카미 다케시의 에세이를 찾아 읽었다. 와비사비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주말에 아무 이유 없이 MUJI 매장을 혼자 돌아다녔다. 그게 '연구'였는지 '집착'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두 달 후, 공용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말했다. "그거 알아? 와비사비에서 '사비'가 원래 녹슬고 낡은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이래. 처음엔 이상하다 싶었는데, 생각할수록 맞는 말 같아." 그 사람이 멈췄다. "어떻게 알아?" 그 순간, 나는 철학을 생각했다. --- ## ⚡ 니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기다림은 이미 포기다 니체는 수동성을 경멸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는 반복해서 묻는다 — 너는 너 자신을 극복했는가. 그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는 타인을 굴복시키는 욕망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형성하는 창조적 충동이다. 짝사랑에서 가장 약한 형태의 의지는 '기다림'이다. 마음에 들면 언젠가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 니체에게 이것은 노예 도덕의 언어다. 노예 도덕은 반응한다. 타인의 행동을 기다린 뒤 그것에 기대어 자신을 정의한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를 기억하고, 직접 읽고, 매장을 걷고, 생각을 만들어낸 행위 — 니체는 이것을 Selbstüberwindung, 자기 극복이라 불렀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 사람을 통해 내가 몰랐던 아름다움의 형태를 배웠고, 그 배움이 나를 조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첫 대화는 그 변화의 증거를 내미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해석에는 불편한 균열이 있다. --- ## 🪷 붓다가 끼...
🏛️ 에픽테토스를 오해하고 있었다 — '체념의 철학'이라는 누명과 스토아 실천법이 가르치는 것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 먼저, 불편한 질문 하나 나는 [에픽테토스 스토아 실천법](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에픽테토스+스토아+실천법)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불편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마라." 서점에 가면 이 말의 변형들이 표지만 바꿔 쌓여 있다. 스토아 철학은 이미 자기계발 시장의 단골 메뉴다. 그리고 은근히 이런 의심이 따라온다. 이거 그냥 '참고 살아라'를 철학적으로 포장한 거 아닌가? 그 의심이 제대로 형태를 갖춘 건 에픽테토스의 출신을 더 파고들었을 때다. 기원후 50년경, 에픽테토스는 로마의 노예로 태어났다. 주인은 에파프로디토스—네로 황제의 비서관이었던 인물이다. 전해지는 이야기 중 하나는, 에파프로디토스가 그의 다리를 비틀었을 때 에픽테토스가 조용히 말했다는 것이다. "계속하면 부러질 겁니다." 다리가 부러졌다. 에픽테토스는 "그것 보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와, 멋있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읽었을 때는 달랐다. 이 사람은 왜 저항하지 않았을까? 저항할 수 없었기 때문에 초연함을 내면화한 건 아닐까? 철학이 실제 자유를 준 게 아니라, 불가능한 저항 대신 선택한 심리적 생존 전략이었던 건 아닐까? 이건 현대 스토아 비판의 핵심이기도 하다. '외부 결과에 무관심하라'는 태도가 구조적 불의를 개인의 내면 문제로 환원한다는 것이다. 번아웃도 마찬가지다. 과중한 업무, 불공정한 보상, 통제 불능의 조직 문화—이것들은 개인이 태도를 바꾼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연연 말라"는 말은, 연연해야 할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취약함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 나는 이 비판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에픽테토스가 정확히 이 지점을 알고 있었다는 것도. --- ## 📖 프로헤이레시스: 번역에서 사라진 것 『엔...
💔 사랑 피로 증후군 — 자꾸 상처받는 건 상대방 탓이 아니다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나는 그 사람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바뀔 때마다 알아챘다. 새벽 두 시, 잠이 오지 않아 폰을 들고 누워 아무 이유 없이 프로필을 열었다. 전날과 같은 사진이었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폰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습관이 6개월 동안 이어졌다. 이상한 건, 우리가 연인 사이였던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짝사랑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마치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처럼 살았다. 정확히 말하면 감시가 아니라 — 확인이었다. 그 사람이 잘 있다는 걸, 아직 내 세계 안에 존재한다는 걸, 계속 확인해야 했다. 그 6개월이 끝나고 나는 다음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 다음 사람도. 상대방은 달라졌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에서 계속 같은 피로감을 느꼈다. 상대가 연락을 늦게 하면 심장이 조여들고, 약속이 취소되면 온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세 번의 연애를 마치고 나서야, 나는 이 패턴의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 ## 🧠 마음이 아픈 게 아니라, 뇌가 아픈 거다 2011년 에단 크로스(Ethan Kross) 연구팀은 『PNAS』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실연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전 연인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뇌를 스캔했더니, 물리적 통증을 처리하는 체성감각피질(somatosensory cortex)이 활성화됐다. 마음의 아픔이 은유가 아니라는 뜻이다. 누군가를 잃은 감각은 실제로 피부에 닿는 통증처럼 뇌에 입력된다. 그보다 앞선 2003년, 나오미 아이젠버거(Naomi Eisenberger)는 『Science』에서 사회적 거절이 배측 전대상피질(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을 활성화한다는 것을 보였다. 이 영역은 신체 통증 신호를 받는 곳과 동일하다. 뇌는 차이를 모른다 — 발목을 삔 것과 메시지를 무시당한 것을 같은 종류의 위협으로 처리한다. 여기서 '[사랑 피로 증후군](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사랑+피로+증후군)'의 첫 번째 층위가 드러난다....
💔 짝사랑을 혼자 삭히는 사람들의 심리 — 침묵을 선택한 이유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 고백하지 않는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 나는 한 사람을 2년 동안 좋아했다. 그 사람이 핸드폰을 꺼낼 때 손목의 각도가 기억날 정도로 오래, 그리고 조용히. 고백하지 않은 이유를 나는 오래 '신중함'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그게 거짓말이었다는 걸 안다. 신중한 게 아니었다. 나는 통제권을 원했다. 고백하지 않는 한, 그 관계는 내가 상상하는 방식으로만 존재했다.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거절할지, 무안해할지 — 그 모든 불확정성을 나는 침묵으로 막아두었다. 고백은 상대에게 결정권을 넘기는 행위다. 침묵은 그 결정권을 내 손에 쥐어두는 것이다. [짝사랑 혼자 삭히는 사람 특징](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짝사랑+혼자+삭히는+사람+특징) 중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은 두려움 이전에 이것, 즉 관계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유지하려는 의지다. --- ## 🔥 니체가 이 침묵에 던지는 질문 니체는 영원회귀를 이렇게 제시한다. "지금 이 순간을 무한히 반복해서 살기를 원하는가?" 짝사랑에 적용하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이 침묵을, 이 망설임을, 이 혼자 삭히는 감정을 — 영원히 반복해서 살기를 원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니체의 요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영원히 반복하기 싫다고 느껴지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충분히 살고 있지 않다는 신호다.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는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충동이다. 침묵으로 관계를 통제하는 것은 표면상 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장의 회피다. 상대에게 진실을 내보이고, 거절당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 그것이 니체적 의미에서 삶을 긍정하는 행위다. 침묵은 관계를 가상의 공간에 가두어 둠으로써 '지지 않는' 상태를 유지한다. 그것은 힘이 아니라 힘의 흉내다. 니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고백의 두려움보다, 고백하지 않는 삶이 영원히 ...
💰 청년도약계좌 중도해지 환급금 실수령액 계산법 — 3년 만에 깨면 실제로 얼마가 돌아오나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작년 봄, 전세 재계약 때 집주인이 보증금을 2,000만 원 올렸다. 부족분을 마련할 방법을 며칠째 고민하다가 [청년도약계좌 중도해지 환급금](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청년도약계좌+중도해지+환급금) 통장을 꺼냈다. 납입한 지 29개월째였고, 납입 원금 합계가 딱 2,030만 원이었다. '그냥 깨면 맞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수령액을 계산해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적었고, 그 숫자가 나를 멈추게 했다. --- ## 💸 중도해지하면 실제로 무엇을 잃는가 청년도약계좌를 중도해지하면 두 가지가 날아간다. 첫 번째는 정부기여금 전액이다. 이 상품의 핵심은 매달 납입액에 정부가 일정 비율을 얹어준다는 것인데, 중도해지 시 이 금액이 전부 반환된다. 소득 구간별 기여율과 월 한도는 아래와 같다. | 개인소득 구간 | 기여율 | 월 최대 | |---|---|---| | 2,400만 원 이하 | 6.0% | 24,000원 | | 2,400~3,600만 원 | 4.6% | 23,000원 | | 3,600~4,800만 원 | 3.7% | 22,000원 | | 4,800~6,000만 원 | 3.0% | 21,000원 | | 6,000~7,500만 원 | 없음 | — | 월 70만 원씩 60개월 기준으로 소득이 2,400만 원 이하라면 누적 기여금은 24,000원 × 60개월 = **144만 원**이다. 중도해지 시 이 금액이 전액 사라진다. 두 번째는 비과세 혜택이다. 만기 시에는 이자 전액이 과세되지 않지만, 중도해지하면 이자 전체에 15.4%의 이자소득세가 붙는다. 납입 기간이 길수록 누적 이자가 커지기 때문에, 늦게 깰수록 세금으로 날아가는 금액도 늘어난다. --- ## 💰 3년 시점에 깨면 손에 쥐는 금액이 얼마인가 수치로 확인해보면 감이 달라진다. 월 70만 원 납입, 연 4.5% 금리(2024년 기준 농협·신한·하나·우리 등 주요 시중은행 청년도약계좌 기본금리 수준) 조건에서 36개월 시...
🥱 스마트폰이 훔쳐간 것: 하이데거의 '깊은 권태'는 왜 지금 불가능한가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 배터리가 나간 열다섯 분 작년 봄, 지하철에서 배터리가 나갔다. 합정에서 이대까지, 열다섯 분 남짓 되는 거리였다. 충전기도 없었고, 옆 사람에게 폰을 빌릴 만큼 급한 일도 아니었다. 그냥 앉아 있었다. 처음 5분은 괜찮았다. 창밖을 봤고, 맞은편 사람들 표정을 훑었다. 그런데 그다음 5분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시간과 내가 직접 맞닥뜨리고 있다는 감각이 슬금슬금 불안처럼 올라왔다. 지루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지루함에 도달하기도 전에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이 경험을 곱씹다가 하이데거의 [권태의 현상학](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권태의+현상학)을 떠올렸다. 그리고 왜 그 열다섯 분이 철학적으로 생산적인 지루함으로 이어지지 못했는지가 궁금해졌다. --- ## 🧠 하이데거가 구분한 권태의 세 층위 1929년에서 1930년 사이,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Die Grundbegriffe der Metaphysik)이라는 강의를 했다. 그 강의의 상당 부분이 '권태'(Langeweile) 분석에 할애되어 있는데, 하이데거는 권태를 세 층위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무언가에 의해 지루해지는 것'(Gelangweilt-sein-von)이다. 기차가 두 시간 늦는다, 약속이 취소됐는데 이미 카페에 와 있다. 지루함의 원인이 특정 상황에 있고, 그 상황이 나를 붙잡고 있다. 빠져나오고 싶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다. 두 번째는 '무언가와 함께하며 스스로 심심해지는 것'(Sich-langweilen-bei)이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우리는 심심함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핸드폰을 꺼내 든다. 하이데거는 이를 'die Zeit vertreiben'—시간을 '몰아내기'라고 부른다. 권...
💔 새벽 두 시마다 짝사랑 상대 SNS를 반복 염탐하는 이유: 의지 대신 구조로 끊는 3단계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새벽 두 시였다. 유리 화면에 그 사람 프로필이 켜졌다. 스토리를 확인하고, 피드를 내리고, 태그된 사진까지 들여다봤다. 다 확인하고 나서 나는 화면을 끄며 생각했다. 이게 마지막이야. 그리고 다음 날 밤, 나는 또 같은 화면을 열었다. [짝사랑 상대 SNS 그만 보는 법](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짝사랑+상대+SNS+그만+보는+법)을 의지로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었다. 이미 세 번이나 그 계정을 뮤트했고, 한 번은 앱을 삭제했다가 열여섯 시간 만에 다시 깔았다. 의지로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다면, 이미 이겼을 것이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였다. --- ## 🎰 의지가 지는 이유: 불확실한 보상의 함정 행동심리학에서 가장 집요한 학습 패턴은 '변동 비율 강화(variable ratio reinforcement)'다. B.F. 스키너가 비둘기 실험에서 발견한 원리인데, 강화가 언제 올지 예측할 수 없을 때 행동이 가장 강하게 반복된다는 것이다. 슬롯머신이 이 원리로 설계됐고, SNS 알고리즘도 마찬가지다. 짝사랑 상대의 계정을 열 때마다 뭔가 새로운 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없고, 어떤 날은 누군가와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다. 그 불확실성 자체가 보상이다. 우리가 중독되는 것은 무엇을 발견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다. 그래서 '의지로 끊겠다'는 접근은 처음부터 불리하다. 의지력은 고갈되는 자원이고, 도파민 회로는 쉬지 않는다. 제임스 클리어는 『아토믹 해빗』(2018)에서 이 비대칭을 간결하게 정리했다. 나쁜 습관을 끊으려면 의지가 아니라 마찰을 설계하라고. 행동의 동선에 저항을 끼워 넣으면, 충동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회로 자체를 방해할 수 있다. --- ## 🔁 니체가 말한 것과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것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니체는 이것을 가장 무거운 질문으로 ...
🔥 세네카가 번아웃 직장인에게 보내는 편지 — 스토아 철학과 현대 과로 사회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 그날 밤, 나는 화장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몇 년 전 일이다. 마감이 겹치던 어느 화요일 새벽 두 시, 나는 욕실 타일 바닥에 그냥 주저앉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더 이상 일어서기가 싫었다. 몸이 무거운 게 아니라, 계속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감각 자체가 너무 무거웠다. 그걸 번아웃이라는 단어로 부르게 된 건 한참 나중이었다. 당시엔 그냥 '내가 나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을 보면 다들 잘만 버티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최근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다시 펼치다가 이런 구절을 만났다. >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거든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러 일어나는 것이다." 처음엔 '또 이런 훈계냐' 싶었다. 그런데 문맥을 읽다 보니, 이 문장을 쓴 사람은 로마 황제였다. 제국 전체의 운명을 어깨에 올려놓은 사람이. 그도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었다는 뜻이다. 2000년 전 로마 철학자들은 이미 번아웃을 알고 있었다. [스토아 철학과 현대 번아웃](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스토아+철학과+현대+번아웃), 이 둘은 같은 문제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뿐이다. --- ## ⏳ 세네카가 말한 "빼앗긴 시간" 스토아 철학자 중에서 가장 현대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를 선택한다. 그는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De Brevitate Vitae)』에서 이런 말을 했다.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은 게 아니다. 우리가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하는 것이다." 처음 이걸 읽었을 때 솔직히 반감이 들었다. '낭비? 나는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는데?' 하지만 세네카가 말하는 '낭비'는 게으름이 아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끌려다니며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즉 "남의 삶을...
📉 예금 4%인데 실질 손해 본 이유 — 물가연동채권 개인투자자가 직접 사는 법 완전 정리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 예금 금리 4%인데 왜 나는 손해를 봤나 지난해 1년 만기 정기예금에 3,000만 원을 넣었다. 금리는 연 4.1%. 이자소득세 15.4%를 빼면 세후 실수령 금리는 약 3.46%, 만기에 손에 쥔 이자는 약 103만 원이었다. 문제는 그 1년 동안 장을 보면서 알아챘다. 돼지고기 가격이 올랐고, 외식비가 올랐고, 택배비도 슬그머니 올랐다. 통계청이 발표한 그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2%. 내 3,000만 원은 이자를 받는 동안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 126만 원어치가 조용히 녹아 있었다. 이자를 받았는데 실제로는 손해를 본 셈이다. 그때부터 '예금 금리가 물가를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시대에 어떻게 저축해야 하나를 다시 생각했다. 그러다 눈을 돌린 것이 [물가연동채권 개인투자자 매수법](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물가연동채권+개인투자자+매수법), 흔히 TIPS(Treasury Inflation-Protected Securities)의 한국판이다. --- ## 📊 물가연동채권 구조: 원금이 물가를 따라 올라간다 — 세금도 함께 일반 채권은 원금이 고정돼 있다. 100만 원을 빌려주면 만기에 100만 원을 돌려받고, 이자만 약정 금리대로 받는다. 물가연동채권은 다르다. 원금 자체가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연동돼 올라간다. 100만 원짜리 물가채를 샀는데 그해 물가가 3.5% 오르면 원금이 103만 5,000원으로 조정되고, 이자는 그 조정된 원금에 실질 금리를 곱해 지급된다. 여기서 많은 블로그가 빠뜨리는 중요한 세금 구조가 있다. **원금 조정분(물가조정분)에도 이자소득세 15.4%가 과세된다.** 물가 3.5% 상승으로 원금이 35만 원 늘었다면, 그 35만 원 전체를 이자소득으로 봐서 세금을 뗀다. 이걸 모르고 계산하면 실제 수익보다 훨씬 높게 나온다. **세후 실질 수익 시뮬레이션 (원금 1,000만 원 기준)** | 항목 | 금액 | |---|---| ...
💘 짝사랑 티가 나는 행동 심리 — 고백도 안 했는데 몸이 먼저 자백하는 이유, 심리학으로 분석하다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 그날, 내 몸이 먼저 자백했다 어느 날 친구가 불쑥 물었다. "너 걔 좋아하지?" 나는 아무 말도 한 적 없었다. 고백은커녕 그 이름도 입에 올린 적 없었다. 그런데 들켰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친구의 대답은 황당할 만큼 단순했다. "네 발이 항상 그쪽을 향하고 있었어." 발이라니. 표정도 목소리도 아니고 발이라니. 그 순간 나는 내 몸이 내 의식보다 먼저 마음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묘한 굴욕감을 느꼈다. 짝사랑은 왜 이렇게 쉽게 들킬까. 왜 몸은 거짓말을 못 하는 걸까. 그 질문을 오래 붙들었다. --- ## 🔬 심리학이 포착한 신체의 자백들 1999년, 사회심리학자 Tanya Chartrand와 John Bargh는 실험 하나를 발표했다. '카멜레온 효과(The Chameleon Effect)'. 피험자들이 대화 상대방의 자세와 동작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한다는 내용이었다. 상대가 다리를 꼬면 따라 꼬고, 턱을 괴면 따라 괴고. 이 미러링은 의도적 흉내가 아니라 무의식적 공감 반응이었다. 더 중요한 발견은, 이 모방이 강할수록 상대가 그 사람을 더 호감 있게 평가했다는 점이다. 짝사랑 상태에서 미러링은 더 강렬해진다. 관심이 깊을수록 무의식적 동조 반응은 증폭된다. 좋아하는 사람이 커피잔을 들면 당신도 들고 싶어지고, 그 사람이 앞으로 기울면 당신도 기운다. 당신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은 본다. 더 결정적인 것은 신체 방향이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Adam Kendon은 'F-formation' 개념을 통해 사람들이 대화할 때 발과 무릎이 관심을 두는 대상 쪽을 향하게 된다는 것을 체계화했다. 얼굴은 통제 가능하다. 표정은 연습할 수 있다. 하지만 발은 어렵다. 발은 뇌가 가장 마지막으로 감시하는 신체 부위다. 그래서 발이 먼저 자백한다. 친구가 본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미러링과 신체 방향 외에도 패턴은 더 있다. 짝사랑 대상과 눈이 ...
💰 세액공제 900만 다 채워도 연금저축 IRP 더 넣어야 할 이유 — 30년 초과납입 전략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 나도 처음엔 900만 원에서 멈췄다 연금저축펀드에 600만 원, IRP에 300만 원. 매년 12월이 되면 나는 이 숫자를 맞추는 데만 집중했다. 세액공제 환급액을 계산기로 두드려보고, 돌아올 13~16만 원짜리 절세 효과를 확인한 뒤 그해 재테크 할 일은 다 끝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한 선배가 IRP에 세액공제 한도를 훌쩍 넘겨서 납입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공제도 못 받는 돈을 왜 거기 넣어?"라고 물었더니, 선배는 "과세이연이 핵심이지"라고만 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안 해줬다. 그날 이후 나는 직접 숫자를 뜯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효과는 흔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 개념이었다. --- ## 📊 시뮬레이션: 실제 차이는 얼마인가 재테크 블로그에서 [연금저축 IRP 초과납입 전략](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연금저축+IRP+초과납입+전략)의 효과를 설명할 때 가장 흔히 저지르는 오류가 있다. 연간 세후 수익률에 세금을 미리 뺀 채로 복리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TIGER 미국S&P500 같은 국내 상장 해외 ETF의 매매차익에 붙는 15.4% 배당소득세는 매년 부과되는 게 아니라 **매도 시점에 일괄 부과**된다. 30년 보유 후 팔 때 딱 한 번 낸다는 뜻이다. 이걸 매년 차감하면 과세이연 효과를 두 배 가까이 부풀리게 된다. 정확한 비교는 이렇다. **연간 100만 원, 30년, 연 7% 수익률 운용 시:** | 계좌 유형 | 30년 후 평가금액 | 세금 | 세후 수령액 | |---|---|---|---| | 일반계좌 (TIGER S&P500) | 9,446만 원 | 수익 6,446만 원 × 15.4% = 993만 원 (매도 시 일괄) | **8,453만 원** | | 연금계좌 초과납입 | 9,446만 원 | 수익 6,446만 원 × 3.3% = 213만 원 | **9,233만 원** | 차이: **780...
🗣️ 나는 왜 그 말을 삼켰는가 — 파레시아와 SNS의 진실 발화 구조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2022년 겨울, 나는 트위터 입력창 앞에서 약 3분을 멈춰 있었다. 대학 선배가 특정 복지 정책을 비판하는 긴 스레드를 올렸는데, 그가 인용한 OECD 수치가 원래 맥락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된 걸 알고 있었다. 정정 댓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가락이 멈췄다. '이 선배는 팔로워가 3만 명이다. 그 팔로워들이 내 프로필을 클릭할 것이다. 내 과거 트윗들이 보일 것이다. 어떤 트윗이 오해받을 수 있다.' 나는 결국 댓글을 쓰지 않았다. 사흘 뒤 그 스레드는 3,200번 이상 리트윗됐다. 오류 포함으로. 그 3분 동안 내 안에서 무슨 계산이 이루어졌는지, 나는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 ## 🗣️ [파레시아](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파레시아): 위험을 감수하는 발화라는 기술 푸코는 1983년 버클리 강연—후에 《담론과 진실》(Discourse and Truth)로 출판된—에서 '파레시아(parrhesia)'를 단순한 진실 발화가 아닌 윤리적 실천으로 정의한다. 파레시아적 발화자는 세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말해야 하고, 그 발화로 인해 자신에게 어떤 위험—사회적, 관계적, 물리적—이 돌아올 것임을 알아야 하며, 그럼에도 말해야 한다. 푸코는 이것을 명시적으로 "용기의 문제"라 부른다. 아무런 대가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파레시아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파레시아는 구체적인 공간을 전제했다. 발화자는 특정 청자—왕, 시민 집회, 철학 학파의 제자—앞에서 말했다. 맥락이 있었고, 청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으며, 위험의 크기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푸코가 파레시아를 'tekhnē(기술, 실천)'라고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진실 말하기는 추상적 덕목이 아니라 구체적인 조건 속에서 연습되고 숙련되는 기예(技藝)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SNS라는 공간에서 이 기술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아니, 작동할 수 ...
💘 짝사랑 상대가 나를 의식한다는 신호를 읽는 법 — 무의식이 먼저 흘리는 몸의 언어와 심리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 그 사람이 나를 보는 순간, 나는 무엇을 보고 있었나 금요일 오후, 창가 자리였다. 나는 노트를 펼쳐두고 있었고, 그 사람은 카운터 앞에서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우리 눈이 마주쳤다. 0.5초쯤 됐을까. 그 사람은 천장을 봤다. 나는 노트를 봤다. 그리고 다음 15분 동안 나는 그 0.5초를 해석하는 데 소진했다. 짝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질문 앞에서 한 번쯤 탐정이 돼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개 실패한다. 증거를 찾으면 찾을수록 더 깊이 빠지고, 답을 구하면 구할수록 질문이 늘어난다. 나는 이 글에서 신호 목록을 나열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신호를 *읽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먼저 묻고 싶다. 니체와 불교는 이 질문에 대해 서로 다른, 그러나 이상하게도 보완적인 대답을 가지고 있다. --- ## 🫀 몸은 배신한다 — 의식이 숨기는 것을 몸이 먼저 흘린다 신경과학자 자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의 팀이 1990년대 마카크 원숭이 실험에서 발견한 거울 뉴런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할 때 자신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처럼 신경이 발화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후 인간에게도 유사 메커니즘이 확인됐고, 이것이 무의식적 미러링의 신경학적 기반으로 논의된다. 관심 있는 상대 앞에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은 의도가 아니다. 뇌가 그 사람을 중요하다고 분류하면, 몸은 그 사람을 향해 조율된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1966년 저서 *The Hidden Dimension*에서 인간의 공간 활용이 관계의 친밀도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개인 공간(약 45~120cm)을 자발적으로 허용하거나 그 거리 안으로 들어오려는 경향은, 언어 없이 드러나는 관심의 표현이다. 이름을 기억하고, 한 달 전의 말을 불쑥 꺼내고, 내가 지나가는 방향으로 시선이 따라오는 것. 이 모두는 의식이 개입하기 전에 이미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야 한다. 이런 [짝사랑 상대가 나를 ...
📜 죽음의 기술 아르스 모리엔디 — 600년 전 사람들이 알고 있던 잘 죽는 법과 현대 웰다잉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사흘 전, 나는 중환자실 유리창 너머로 그분을 바라봤다. 콧줄, 모니터 수치, 깜빡이는 형광등. 병실 안은 조용했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의사는 바빴고, 가족들은 복도에 서 있었고, 할아버지는 혼자였다. 죽음이 거기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 않았다. 그 느낌에 이름을 붙이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 📜 15세기 유럽인들은 '죽는 법'을 매뉴얼로 만들었다 1415년경, 유럽은 흑사병이라는 대규모 죽음을 막 통과하고 있었다. 역병은 성직자도 귀족도 가리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이 마지막 고해성사도 받지 못한 채 죽어나갔다. 이 공포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태어난 책이 *[죽음의 기술 아르스 모리엔디](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죽음의+기술+아르스+모리엔디)(Ars Moriendi)*, 라틴어로 '죽는 기술'이다. 이 텍스트가 단순한 종교 위로집이 아닌 이유는 그 확산 규모에서 드러난다. 현재까지 확인된 필사본이 300종 이상, 구텐베르크 인쇄기 발명 이후 1501년까지 출판된 초기 인쇄본(인큐나불라)만 해도 100종을 넘긴다. 영어·프랑스어·독일어·네덜란드어·스페인어 번역이 잇따랐다. 당시 책 한 권이 한 귀족 가문의 서재에 놓이는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15세기 베스트셀러'라는 표현은 수사가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 내용은 더 놀랍다. 책은 임종자가 겪는 다섯 가지 유혹을 정밀하게 분류한다. ①믿음의 상실(infidelitas), ②절망(desperatio), ③분노와 조급함(impatientia), ④자기과시와 허영(vanagloria), ⑤세속적 집착(avaritia). 각 유혹마다 악마와 천사가 침대 옆에 나타나고, 삽화와 함께 유혹을 어떻게 물리칠지 구체적인 대화 형식으로 안내한다. 이건 기도문이 아니라 일종의 심리 시나리오 플래너다. --- ## 🔗 '직접 계보'는 없다, 하...
💗 짝사랑 티 내지 않는 법: 감정을 없애는 대신 의식으로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더 강하다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 연습의 기억 그 사람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표정을 미리 연습했다. 거울 앞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그냥 안녕이라고 말하는 나, 버튼을 누르면서 폰을 꺼내는 나, 어색하지 않게 웃는 나를 반복 재생했다. 이상하게도 그 예행연습이 실제 만남보다 더 피로했다. 짝사랑을 숨기는 일은 연기처럼 보이지만 연기보다 복잡하다. 연기자는 역할을 준비하고 무대에 선다. 하지만 짝사랑을 숨길 때 나는 반응하는 나와 그것을 관찰하는 나를 동시에 유지해야 한다. 이름이 화면에 뜨는 순간, 가슴이 세게 뛰는 것을 느끼면서 동시에 '지금 가슴이 세게 뛰고 있음'을 기록하는 것이다. --- ## 🔥 니체가 말한 정념의 영성화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념에 대하여」 장에서 이렇게 썼다. "그대의 정념을 죽이지 말라. 영성화하라(vergeistige)." 그가 쓴 단어 vergeistigen은 문자 그대로 '정신화하다'로, 감각적인 것을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는 의미다. 정념을 영성화하려면 먼저 그것을 객체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감정'이면서 동시에 '감정을 보는 자'여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이중 위치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수련이나 명상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나는 그것을 훨씬 저렴한 방식으로 강제당했다. 좋아한다는 사실이 들킬까 봐, 내 감정의 외부 표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기 시작한 것이다. 티를 내지 않으려는 사회적 동기가 철학적 훈련과 구조적으로 같은 결과를 낳는다—이것이 내가 발견한 이상한 역설이다. --- ## 🧘 불교의 관찰과 나의 관찰 사이 불교 명상에서 사띠(sati, 正念)는 자기 상태를 판단 없이 관찰하는 것이다. 호흡이 빨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되 거기에 끌려가지 않는다.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 나는 불편했다. 그게 내가 짝사랑을 숨길 때 쓰던 방식과 구조적으로 같았기 때문이다. 차이는 목적에 있었...
💰 공모주 증거금 나흘, 그냥 두면 0원입니다 — RP 이자 루틴과 세금 함정 실전 계산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공모주 청약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증거금을 증권사 계좌에 그냥 놔뒀다. 5천만 원이 나흘 동안 묶여 있는데 이자는 0원이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청약 기간엔 돈을 못 움직이니까. 착각이 깨진 건 2024년 초, 한 커뮤니티 글을 읽고 나서다. "RP에 넣으면 청약 전날까지 이자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반신반의하면서 써봤다. 그러다 작년에 한 번 제대로 삽질을 했다. 그 얘기부터 하겠다. --- ## 💸 3일물 넣었다가 하루 이자를 날린 사연 작년 7월, 코스닥 바이오 기업 청약에 8,000만 원을 넣었다. 환불 예정일이 목요일이었고, 나는 4일물 RP를 샀다. 딱 맞게 계산한 거라고 생각했다. 환불은 목요일 오후 늦게 들어왔다. RP는 이미 오전에 만기 처리돼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마침 다른 대형 공모주 청약 마감이 바로 다음 날이었는데, 환불금을 다시 RP에 넣으려니 당일 RP 매수 마감 시간(오후 4시)을 이미 넘긴 상태였다. 하루치 이자가 그냥 날아갔다. 더 황당한 건 따로 있었다. 그 다음 청약에서 환불이 예고보다 하루 밀렸다. 4일물로 넣었는데 환불이 5일째에 들어온 거다. RP는 4일 만에 만기됐고, 남은 하루는 이자 없이 묶였다. 대부분의 증권사 확정금리 RP는 중도해지하면 약정 이자를 못 받는다. 꺼낼 수도 없었다. 배운 것: 공모주 환불은 예고보다 하루 밀리는 일이 종종 있다. RP 만기는 환불 예정일보다 하루 짧게 잡아야 안전하다. 하루 이자 욕심에 중도해지 리스크를 떠안는 것보다, 2일물로 짧게 넣고 나머지 하루를 CMA로 메우는 게 낫다. --- ## 💰 이자, 실제로 얼마나 되나 5천만 원 청약, 나흘 대기, 연 3.0% RP를 가정하면: > 5,000만 원 × 3.0% ÷ 365 × 4일 = **약 16,400원** 건당으로는 커피값이다. 그런데 연간 15건 청약하면 약 24만 원, 1억짜리 증거금으로 15건을 굴리면 약 49만 원이다. 5억짜리 포지션을 운용하...
🗣️ 파르헤시아: SNS 시대, 우리는 왜 진실을 말하지 않는가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 오늘도 나는 지우기를 눌렀다 몇 달 전의 일이다.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생각을 정리한 뒤, 트위터에 글을 올리려고 했다. 입력창에 세 문단쯤 써 내려갔을 때 손가락이 멈췄다. *이게 오해받으면 어쩌지.* 해명 스레드를 달아야 할 수도 있다. 맥락이 잘린 스크린샷이 돌아다니면? 결국 전체 선택, 삭제를 눌렀다. 그 순간을 나는 신중함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진짜 그랬을까. --- ## 🗣️ [파르헤시아](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파르헤시아): 말하는 자가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 미셸 푸코는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생애 마지막 강의들에서 고대 그리스 개념 하나를 파내기 시작했다. 강의록은 《자기와 타자의 통치》와 《진실의 용기》로 출간되었는데, 그 중심에 '파르헤시아(parrhesia)'가 있었다. pan(모두) + rhema(말)의 합성어, 문자 그대로는 '모든 것을 말하기'다. 푸코는 파르헤시아를 네 조건으로 정의한다. 화자는 자신이 말하는 것이 진실임을 믿는다. 그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자신에게 위험하다. 그 위험을 알면서도 의무감으로 말한다. 그리고 이 발화는 더 강한 위치에 있는 상대를 향한다—약자가 강자에게 말하는 구조다. 이 마지막 조건이 핵심이다. 파르헤시아는 강자가 약자에게 진실을 꺼내놓는 행위가 아니다. 발화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더 강한 자에게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푸코는 이것을 아첨(kolakeia)의 정반대로 놓는다. 아첨꾼은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골라 한다. 파르헤시아스트는 상대가 듣기 싫어할 말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낀다. --- ## 🏛️ 민주 광장이 파르헤시아를 삼킨 방식 푸코 분석에서 가장 예리한 대목은 여기서부터다. 그는 파르헤시아가 민주정 아테네에서 꽃피었지만, 바로 그 민주정에 의해 내파(implosion)했다고 분석한다. 아테네의 민회(에클레시아)는 모든 시민에게 발언권을 부여했다. 광장에...
💘 짝사랑 들키지 않는 법: 숨길수록 오히려 가까워지는 역설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 화요일 커피와 하나의 의문 2023년 가을, 나는 같은 팀의 J에게 마음이 있었다. 고백할 용기가 없었던 게 아니다 — 정확히는, 고백이라는 행위가 이 감정을 어떤 결말 앞에 세우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숨겼다. 매주 화요일, J가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는 시간에 맞춰 슬며시 같이 서 있었다.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는 노력이 역설적으로 나를 더 경청하게 만들었고, 더 관찰하게 만들었다. 결국 우리는 점심도 같이 먹는 사이가 됐다. 그런데 나는 오래 붙들었다. 이게 정말 숨겼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냥 같은 팀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건가? 이 두 설명을 분리하지 않으면 "숨길수록 가까워진다"는 말은 관찰이지 주장이 아니다. --- ## 🧠 숨기는 것의 심리학 — 유추는 가능하지만 주의가 필요하다 심리학에는 처리 비유창성(processing disfluency)이라는 개념이 있다. Adam Alter와 Daniel Oppenheimer의 2009년 리뷰 논문은 정보가 쉽게 읽히지 않을 때 — 글씨체가 흐릿하거나 문장이 복잡할 때 — 사람들이 그 내용을 더 깊이 처리하고 더 의미 있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정리한다. 단, 이 연구는 인지적 판단에 관한 것이지 인간관계에 직접 적용된 연구가 아니다. 그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럼에도 유추는 해볼 수 있다. 쉽게 읽히지 않는 사람, 즉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나는 상대에게 해석이 필요한 존재가 된다. 그 해석의 과정이 상대로 하여금 나를 더 자주 떠올리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인과가 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나는 같은 해 봄에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을 썼다가 실패했다. 침묵을 지키고, 한발 물러서고, 불가사의한 존재가 되려 했는데 돌아온 건 "걔 왜 말이 없어?"라는 평가였다. 상대에게 나를 해석하고 싶어할 최소한의 호감이 없으면, 숨기는 전략은 그냥 거리감이 된다. J와 달랐던 건 어쩌면 전략이 아니라 이미 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