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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 앞에서 나는 왜 무장해제되었는가 - 엄마와의 다툼이 남긴 철학적 순간

🚪 문을 열자 마주친 얼굴 작년 11월 어느 저녁 8시쯤이었다. 설거지를 안 했다는 엄마의 잔소리로 시작된 말다툼이었다. "너는 맨날 그런 식이야"라는 내 말에, 엄마는 오래전 아버지 제사 준비를 나 혼자 다 떠맡겼던 일, 형만 챙긴다고 서운했던 기억들을 한꺼번에 꺼냈다. 나는 밥그릇을 싱크대에 던지듯 넣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형광등이 웅웅거리는 소리, 냉장고 모터 도는 소리만 들리는 방 안에서 한 시간쯤 씩씩거리다가, 목이 말라 문을 열었다. 거실엔 엄마가 있었다. 화장이 반쯤 지워진 얼굴로, 개다 만 빨래를 손에 쥔 채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서 있었다. 화가 안 풀린 것도 아닌데, 눈두덩이 붉어진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뭔가가 턱 걸렸다. 나중에 레비나스를 읽으면서 그 순간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그가 말한 '얼굴(visage)'을 마주친 거였다. 🌀 '얼굴'은 눈코입이 아니라 균열이다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 은 생김새가 아니다. 그는 얼굴을 내가 상대를 파악하려는 순간 그 파악을 빠져나가는 것, 그가 '전체성(totalité)'이라 부른 나의 인식 틀을 찢고 나오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우리 엄마는 원래 저래"라는 문장은 전체성이다. 엄마를 내가 다 안다고 규정해버리는 틀이다. 그런데 그 순간 거실에서 본 엄마의 얼굴은 그 틀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장 지워진 눈가, 개다 만 수건, 그 헐거운 자세 — 그건 내가 알던 '엄마'라는 카테고리보다 컸다. 레비나스는 이걸 얼굴이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라고 명령한다고 표현한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이전에, 얼굴 자체가 이미 그 금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철학책 여러 권에 나오는 얘기다. 진짜 질문은 그다음부터다. ✋ 그런데 그 얼굴이 나를 붙잡아 두는 손이라면 레비나스 윤리의 핵심은 비대칭...

🍰 알면서도 왜 못할까: 아크라시아, 새벽의 치즈케이크가 던진 2400년 된 오래된 질문과 답

```html 🌙 새벽 세 시, 치즈케이크 앞에서 작년 12월 3일, 인바디 검사를 받고 나온 다음 날이었다. 72.4kg. 목표는 4kg 감량, 두 달 안에. 그렇게 다짐한 지 나흘째 되던 밤, 나는 냉장고 문을 열어둔 채로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이미 입에 넣고 있었다. 포크를 든 손이 움직이기 전에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산이 끝나 있었다. "이거 먹으면 이틀치 노력이 날아간다." 알고 있었다. 정확히, 숫자까지 계산할 만큼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먹었다. 이 흔한 장면에 이름을 붙인 사람이 2400년 전에 이미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걸 아크라시아 (ἀκρασία), 흔히 '의지의 나약함'이라 번역하는 상태라고 불렀다. 그런데 재밌는 건, 아리스토텔레스 본인도 이 개념을 설명하다가 스스로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막다른 골목이야말로 이 글에서 진짜 하고 싶은 얘기다. 🤔 소크라테스는 왜 "알면서 짓는 죄"를 부정했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먼저 이 문제를 건드린 건 소크라테스였다.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에서 소크라테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누구도 알면서 나쁜 것을 향해 가지 않는다고. 나쁜 줄 아는 사람이 그걸 선택한다면, 그건 사실 몰랐던 거라고. 앎이 진짜 앎이라면 그 앎은 행동을 지배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게 그 유명한 '주지주의(intellectualism)'다. 솔직히 말하면 이 주장은 좀 얄밉다. 치즈케이크를 삼키던 그 순간의 나에게 "너는 사실 몰랐던 거야"라고 말하면, 나는 웃을 것 같다. 나는 분명히 알았다. 계산까지 했다니까.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7권에서 스승뻘 되는 이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 주장은 명백히 드러난 현상들과 충돌한다"고, 그는 꽤 단호하게 적는다(7권 2장, 1145b21 근처). 인간은 실제로 알면서도 저지른다. 문제는 '안다'는 게 도대...

🍂 밑으로 끌려 내려가는 마음에게: 시몬 베유가 말한 중력과 은총, 지친 마음을 위한 회복법

🌙 화요일 밤 11시, 배포 버튼을 누르고 나서 작년 가을, 10개월 끌던 앱 리뉴얼 프로젝트를 화요일 밤 11시에 배포했다. 마지막 커밋을 올리고 나니 몸이 텅 빈 캔처럼 가벼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노트북을 덮고 눕기는커녕, 40분 뒤 다시 열어서 다음 분기 할 일 목록을 만들고 있었다. 딱히 급한 일도 아니었다. 그냥 뭐라도 계획해두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 다음 사흘도 마찬가지였다. 퇴근하면 저녁마다 새 할 일을 하나씩 추가했는데, 나중에 세어보니 그중 실제로 다음 달까지 필요했던 항목은 하나도 없었다. 쉬어야 할 몸이 대신 계획을 만들고 있었다는 게, 그때는 이상하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 베유가 "중력"이라는 단어를 가져온 이유 『중력과 은총』은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가 1943년 서른네 살에 죽은 뒤, 생전에 쓴 노트(cahiers)를 귀스타브 티봉이 추려 1947년에 처음 묶어낸 책이다. 원래 완결된 논증서가 아니라 단상 모음이라, 티봉이 직접 "중력과 은총", "공백과 보상" 같은 제목을 붙여 장을 나눴다. 책의 첫 문장으로 알려진 구절은 이렇다. > "Tous les mouvements naturels de l'âme sont régis par des lois analogues à celles de la pesanteur matérielle. La grâce seule fait exception." 내가 옮기면 "영혼의 모든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물리적 중력과 유사한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은총만이 예외다" 정도가 된다. 번역서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니 정확한 어감은 원문 대조가 필요하지만, 핵심 구도는 분명하다. 욕망, 불안, 자기주장 같은 것은 사과가 떨어지듯 저절로 아래로 끌려간다는 것. 노력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작동한다는 것. 🕳️ 공백을 못 견디는 게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부터가 ...

📱 손가락이 화면을 누르기 전, 에픽테토스의 스토아 철학이 알려주는 아침 루틴, 그 찰나의 훈련

⏰ 7월 22일 화요일, 알람을 끄자마자 벌어진 일 지난 7월 22일 화요일 아침 6시 40분, 알람을 끄자마자 손이 먼저 움직였다. 화면에 뜬 건 예전 팀장이 보낸 카카오톡이었다. "내일 회의 자료 아직 안 왔는데 확인 부탁드려요." 퇴사한 지 넉 달째인 회사에서, 후임자가 나를 참조로 넣은 채 보낸 메시지였다. 화가 난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부터 나는 30분 내내 어떻게 답할지, 왜 아직도 나를 참조에 넣는지를 생각했다. 그날 하려던 원고는 손도 못 댔다. 이 사소한 사건 때문에 다시 스토아 철학 아침 루틴 을 찾아, 에픽테토스를 펼쳤다. 이번엔 흔히 인용되는 첫 문장 말고, 그다음을 읽었다. 📖 "우리에게 달린 것" 다음 문장이 진짜다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 1장은 "세상에는 우리에게 달린 것과 달려 있지 않은 것이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스토아 자기계발 콘텐츠 어디를 가도 이 문장이 나온다. 그런데 그 문단 바로 뒤에, 훨씬 덜 인용되는 대목이 있다. "거친 인상이 떠오를 때마다 즉시 스스로에게 말하라. 너는 그저 인상일 뿐, 네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다." 이 구절이 중요한 이유는, 스토아 철학이 실제로 훈련시키는 지점이 '통제 가능/불가능 분류'가 아니라 그 이전 단계이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걸 판타시아(인상)와 슁카타테시스(동의)로 나눠 불렀다. 카카오톡을 보는 순간 내 안에서 일어나는 건 이미 하나의 해석이다. "또 나를 귀찮게 하네"라는 판단은 인상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 인상에 이미 동의해버린 결과다. 통제이분법 체크리스트는 동의가 끝난 다음에 "이건 내 통제 밖이니 신경 끄자"라고 사후 처리하는 것이고, 에픽테토스가 훈련하라고 한 건 동의하기 전, 인상을 인상으로만 붙잡아두는 그 찰나다. 순서가 다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기계발서를 쓴 적이 없다 ...

🍎 존재는 왜 자꾸 형태를 바꾸는가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하이데거까지, 우시아 개념 변천사

책상 위의 사과, 그리고 이상한 질문 🍎 대학교 1학년 철학개론 첫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사과 하나를 들고 물었다. "이 사과를 사과이게 하는 것은 뭐죠? 껍질을 벗기면 사과가 아닌가요? 갈아서 주스를 만들면요?" 스무 살짜리들 앞에서 참 유치한 질문 같았는데, 나는 그 뒤로 이십 년 가까이 그 질문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이사를 몇 번 다니면서 물건은 다 바뀌었는데 나는 왜 계속 "나"라고 불리는지, 회사가 사람을 몇 번이나 갈아치워도 왜 여전히 "같은 회사"라고 부르는지 — 결국 다 같은 질문의 변주였다. 그리고 이 질문의 그리스어 이름이 바로 우시아(ousia) 개념 변천사 +개념+변천사)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해서 중세 신학을 거쳐 하이데거에게까지 이어지는,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끈질기게 살아남은 개념 하나를 오늘 따라가보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있다"는 것의 진짜 주인을 찾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시아를 두 가지 층위에서 썼다. 『범주론』에서는 꽤 소박하다. "제1 실체"는 "이 사람", "이 말(馬)"처럼 눈앞의 구체적인 개체다. 반면 "인간"이나 "동물" 같은 종과 유는 "제2 실체"로, 개체에 종속된 개념일 뿐이다. 그런데 후기 저작인 『형이상학』 Z권(제7권)으로 가면 입장이 뒤집힌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짜 우시아는 질료(hyle)가 아니라 형상(eidos)이라고 말한다. 청동 조각상에서 청동은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녹여 부을 수 있지만, "이 조각상을 이 조각상이게 하는 것"은 청동에 새겨진 형상이라는 것이다. 이 전환이 중요하다. 우시아는 처음부터 "변하지 않는 실체"라기보다, "그것을 그것이게 만드는 근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를 계속 재정의해나가는 탐구 과정 그 자체였다. ...

⏳ 권태의 현상학: 하이데거와 스벤젠이 말하는 지루함이라는 사건, 지하철 12분이 남긴 균열

🚇 지하철 플랫폼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주 전 퇴근길, 다음 열차까지 12분이 남았다는 전자 안내판을 보고 나는 이상하게 멈춰 섰다. 휴대폰 배터리는 죽어 있었고, 읽을 책도 없었고, 옆에 말을 걸 사람도 없었다. 그 12분 동안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간이 그냥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뭔가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권태의 현상학 이라는 게 단순히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처럼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날 밤 나는 하이데거의 강의록과 라스 스벤젠의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두 사람 모두 지루함을 진지하게 다룬 철학자다. 그런데 접근하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하이데거는 지루함을 존재 자체가 드러나는 순간으로 보고, 스벤젠은 그것을 근대라는 특정한 시대가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로 본다. 이 둘을 나란히 놓고 보면, 지루함이라는 흔하고 하찮아 보이는 감정이 얼마나 다층적인 사건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 하이데거의 세 겹의 권태 하이데거는 1929년에서 30년 사이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한 강의, 흔히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로 번역되는 강의록에서 권태(Langeweile)를 세 단계로 나눈다. 첫 번째는 '무언가에 의해 지루해지는 것'이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상황이 대표적 예다. 여기서 지루함은 명확한 대상, 즉 '기다림'이라는 특정 상황에 묶여 있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느끼며 시계를 자꾸 쳐다본다. 두 번째는 '무언가와 함께 지루해지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저녁 파티에 초대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 시간 전체가 텅 비어 있었다는 느낌을 예로 든다. 이때 지루함은 특정 대상이 아니라 상황 전체의 분위기에 스며 있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이 '심오한 권태(die tiefe Langeweile)'다. 이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 에피쿠로스의 '정원' 공동체가 셰어하우스 룸메이트 갈등에 남긴 소유와 우정의 오래된 질문

🌬️ 공기청정기 한 대가 쏘아 올린 작은 전쟁 셰어하우스 3년 차, 나를 가장 오래 괴롭힌 건 냉장고 칸도 설거지 당번표도 아니었다. 룸메이트였던 재원(가명)이 40만 원짜리 공기청정기를 사 오더니 4등분해서 정산하자고 한 사건이었다. 그는 "미세먼지는 건강 문제니까 필수 지출"이라 했고, 나는 "네가 사고 싶어서 산 거지 우리가 합의한 적 없잖아"라고 맞섰다. 결국 각자 방에 있던 소형 공기청정기는 그대로 두고 거실용만 재원이 혼자 쓰기로 하며 흐지부지 끝났는데, 그 며칠간 나는 계속 이런 질문을 곱씹었다. 이게 정말 '필요'인가, 아니면 필요라는 이름을 빌린 '취향'인가. 이 질문을 붙들고 있다가 오래전 읽었던 에피쿠로스가 다시 떠올랐다. 그는 기원전 306년경 아테네 외곽에 땅을 사서 제자들과 함께 살았다. 이 에피쿠로스 정원 공동체 의 이름이 '케포스(κῆπος)', 즉 정원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0권에서 전하는 바로는 이 땅의 매입가가 80미나였다고 한다. 결코 소박한 액수가 아니다. 그리고 이 정원이 흥미로운 건 단순히 철학자들이 모여 살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누가 그 안에 있었느냐다. 🌿 정원의 구성원들: 이름이 남은 사람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정원의 구성원으로 레온티온이라는 여성을 기록한다. 그는 헤타이라(고급 유녀) 출신이었지만 정원에서 철학을 배웠고, 나중에는 소요학파의 테오프라스토스를 비판하는 글을 쓸 정도로 자기 목소리를 가진 철학자가 됐다. 테미스타라는 또 다른 여성도 함께였다. 그리고 노예 신분자들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린 에피쿠로스의 유언장에는 자신이 소유했던 노예 미스, 니키아스, 리콘, 그리고 여성 노예 파이드리온을 해방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이들은 단순히 시중을 든 게 아니라 정원의 철학 활동에 참여한 구성원으로 언급된다. 여기서 편집장이 지적할 법한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거짓말쟁이 역설과 메가라학파: 잊힌 논리의 다리

🍻 친구의 농담에서 시작된 것 지난달 술자리에서 친구 하나가 대뜸 이런 말을 던졌다. "나는 항상 거짓말만 해." 다들 웃고 넘겼는데 나는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 문장이 참이면 그는 방금 거짓말을 한 게 되니 문장은 거짓이어야 하고, 문장이 거짓이면 그는 거짓말만 하는 게 아니니 문장은 참이어야 한다. 취기 오른 자리에서 나 혼자 이 순환을 세 바퀴쯤 돌리다가, 문득 이게 2400년 전에 이미 이름까지 붙어 있던 문제라는 걸 떠올렸다. 거짓말쟁이 역설, 그리고 그걸 처음 정식으로 정리한 사람은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아닌, 지금은 철학사 교과서에서 한두 줄로 지나가는 메가라학파 역설 의 에우불리데스였다. 메가라학파는 대개 "소크라테스와 스토아 사이 어딘가"로만 취급된다. 그런데 이 학파를 다시 들여다볼수록, 이들이 남긴 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논리학이 아직 갖추지 못했던 어휘로 붙잡으려 했던 진짜 균열이라는 생각이 든다. ⚖️ 유클레이데스, 소크라테스를 논쟁의 기술로 바꾼 사람 메가라학파의 시조 유클레이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 2권 106절에서 그를 소개하며,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 아테네인들이 메가라인의 입국을 금지했을 때도 유클레이데스가 여자 옷을 입고 밤길로 아테네까지 걸어와 스승의 강의를 들었다는 일화를 전한다. 이 일화가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후대인들이 유클레이데스를 어떤 인물로 기억하고 싶어 했는지는 분명히 보여준다. 논증을 위해서라면 위험도 감수하는 사람으로. 더 중요한 대목은 2권 107절이다. 유클레이데스는 "좋음(善)은 하나이며, 지혜라 불리기도 하고 신이라 불리기도 하고 정신이라 불리기도 한다"고 주장하면서, 비유(analogy)에 의한 논증을 거부하고 오직 이미 인정된 전제로부터의 연역만을 인정했다고 디오게네스는 전한다. 이 한 문장이 메가라학파 전체의 방향을 결정했다고 나는 본...

🕯️ 고독의 현상학: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나는 정말 혼자인가 하이데거와 레비나스로 풀어보다

🕑 새벽 두 시, 소리가 나지 않는 방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원룸이었다. 8평쯤 되는 방인데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고, 그날은 그 소리마저 꺼진 새벽 두 시였다. 친구와 잡았던 약속이 그날 오후에 깨졌다. 특별히 슬픈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재생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도 누르지 않은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뭔가를 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이 방에 나 말고 다른 존재가 없다는 사실이 갑자기 물리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그 순간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무섭지도, 슬프지도 않은데 뭔가 텅 빈 느낌. 이 감각을 말로 옮기려다가 결국 하이데거와 레비나스를 다시 펼치게 됐다. 💀 하이데거의 '혼자'는 죽음이 아니라 도피에서 시작한다 『존재와 시간』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걸린 대목은 죽음론 자체가 아니라 그 앞에 나오는 '평균적 일상성' 논의였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세인(das Man)' 속에서 산다고 말한다. 남들이 하는 대로 하고, 남들이 말하는 대로 말하고, 결정도 남들의 눈치를 보며 내린다. 이 상태를 그는 "존재를 도둑맞은" 상태, 정확히는 존재 물음 자체를 회피하는 '비본래성(Uneigentlichkeit)'이라 부른다. 여기서 죽음이 등장하는 이유가 중요하다. 죽음은 "가장 고유하고, 다른 것과 관계할 수 없으며, 뛰어넘을 수 없는 가능성"이라고 하이데거는 쓴다. 남이 대신 죽어줄 수 없다는 뜻만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는 세인의 잡담과 평균적 해석이 더 이상 나를 대신해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본래성은 죽음을 슬퍼하는 태도가 아니라, 세인 속으로 도피하던 나를 다시 나 자신에게 데려오는 사건이다. 흔히 "혼자 죽는다"로 요약되는 이 논의를 다시 보면, 핵심은 죽음이 아니라 '도피로부터의 귀환'이라는 게 더 맞는 독법 같다. 내가 그 새벽에 느낀 텅 빈 감각도 어...

🪞알고리즘이 편집하고 지운 얼굴도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얼굴이라 할 수 있을까, 철학적으로 따져본다

📸 지진 사진 한 장이 남긴 질문 2023년 2월,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 지역에 강진이 덮쳤을 때 나는 여느 때처럼 인스타그램 익스플로어 탭을 넘기고 있었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아버지가 딸의 손을 붙잡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떴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눌러 좋아요를 누르고, 곧바로 다음 게시물로 넘어갔다. 다음 게시물은 누군가의 강아지 산책 브이로그였다. 그 전환의 매끄러움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방금 본 얼굴과 지금 보는 얼굴 사이에, 알고리즘은 아무런 위계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날 이후 며칠간 피드에는 비슷한 재난 사진이 계속 올라왔다. 내가 그 사진에 오래 머물렀다는 신호를 시스템이 읽어낸 결과였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 얼굴이 내 안에 만들어낸 반응을 알고리즘에게 학습시켜주고 있었던 걸까. 💭 레비나스가 말한 얼굴은 계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 는 1961년 저작 『전체성과 무한』에서 '얼굴(visage)'을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라 윤리적 사건으로 규정한다. 그에게 얼굴은 눈, 코, 입의 형태로 환원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나의 인식 범주에 포섭되지 않고 나를 넘어서는 무한이다. 얼굴은 침묵 속에서도 하나의 명령을 발화한다. "너는 나를 죽이지 말라"는 명령. 이후 인터뷰집 『윤리와 무한』(1982)에서 그는 이를 더 분명히 말한다. 얼굴과의 만남은 재현이나 정보 습득이 아니라, 나를 볼모로 잡는 책임의 시작이라고. 중요한 건 레비나스가 이 마주함을 철저히 신체적 근접성, 살과 목소리, 같은 공간을 점유하는 두 신체 사이의 사건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그는 표상과 얼굴을 구조적으로 대립시킨다. 그런데 우리가 화면에서 보는 것은 정확히 표상, 즉 이미지로 압축되고 편집되고 전송된 얼굴이다. 화면을 통과한 얼굴도 레비나스적 의미의 얼굴일 수 있는가. 🤖 알고리즘은 얼굴을 어떻게 다루는가 2021년 프랜시스 하우겐이 유출한 페이스북 내부 문건,...

🍯 모든 걸 다 아는 사이는 필요 없다 —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우정이라는 쾌락, 그 놀라운 이유

📱 카톡 친구 800명, 정작 그날 밤엔 한 명도 못 눌렀다 작년 이맘때, 자정 넘어 갑자기 배가 뒤틀리듯 아팠다. 맹장인가 싶어 진지하게 응급실을 검색하다가, 혼자 가긴 무서워서 누구한테라도 연락해볼까 하고 카톡을 열었다. 친구 목록을 내려봤다. 800명 가까이 있었다. 대학 동기, 전 직장 사람들, 몇 번 술자리에서 만난 지인, 이름은 아는데 얼굴이 가물가물한 사람들. 그런데 그 목록에서 "지금 와줄 수 있어?"라고 물을 사람은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단체 채팅방은 열 개가 넘게 떠 있는데 말이다. 결국 나는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못하고 택시를 불러 혼자 응급실에 갔고, 대기실에서 세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 800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공허한지 계속 곱씹었다. 다행히 장염이었다. 하지만 그날 확인한 건 위장 상태보다 더 불편한 사실이었다. 나는 관계의 숫자는 넘치는데 관계의 밀도는 텅 비어 있었다. 📜 에피쿠로스가 우정을 "최고의 쾌락"이라 부른 이유 이 경험을 곱씹다가 다시 펼친 게 에피쿠로스 우정론 의 『주요 교설』(Kyriai Doxai)이었다. 27번째 교설에 이런 문장이 있다. "지혜가 완전한 삶의 축복을 위해 마련하는 것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을 소유하는 것이다." 흔히 에피쿠로스를 쾌락주의자로만 기억하는데, 그가 말한 쾌락은 술과 음식이 아니라 '아타락시아', 즉 마음의 동요가 없는 평정 상태였다. 그는 쾌락을 두 종류로 나눴다. 배고픔을 채우는 것 같은 순간적·동적인 쾌락과, 그 결핍 자체가 사라진 상태에서 오는 지속적·정적인 쾌락. 우정이 후자에 속한다. 맛있는 걸 먹는 즐거움은 끝나지만, 위급할 때 부를 사람이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안정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에피쿠로스가 실제로 우정을 이론으로만 말한 게 아니라, 아테네 외곽에 '정원(케포스)'이라는 공동체를 차려 제자들과 함께 살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곳엔 여성도, 노예 신분이던...

📱 손안의 반쪽 자아: 폰 없이 보낸 아홉 시간 사십 분, 시몽동의 개체화로 다시 읽는 스마트폰

🕗 아침 8시 22분, 폰이 없다는 걸 알았다 지난달 7월 셋째 주 화요일, 나는 평소보다 십 분 늦게 집을 나섰다. 지하철 3호선 개찰구 앞에서 교통카드 앱을 켜려고 주머니를 뒤졌는데 폰이 없었다. 식탁 위, 충전기 옆에 그대로 놓여 있는 게 뻔했다. 다시 집에 갔다 오면 지각이 확정이라 그냥 역무원에게 사정을 말하고 일회용 승차권을 샀다. 그날 하루가 얼마나 이상했는지 구체적으로 적어보면 이렇다. 회사 출입증이 폰 안의 QR코드라서 로비에서 십오 분을 서 있다가 지나가는 동료를 붙잡고 같이 들어갔다. 열한 시 화상회의는 링크가 팀 채팅방에 왔는데 그걸 받을 방법이 없어서 이십 분 늦게 노트북으로 겨우 접속했다. 점심 약속은 상대방 번호가 폰에만 저장돼 있어서 결국 못 갔다.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땐 도어록 비밀번호가 기억이 안 나 십 분간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그렇게 폰 없이 보낸 시간이 정확히 아홉 시간 사십 분이었다. 이상한 건 그 아홉 시간 사십 분 동안 내가 느낀 감정이 '불편'이라는 단어로는 잘 안 담긴다는 점이다. 뭔가 내가 반쪽만 작동하는 느낌, 아니 더 정확히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로 하루를 돌아다닌 느낌이었다. 그날 밤 이 감각이 이상하게 낯익어서, 대학원 시절 잠깐 읽다 만 질베르 시몽동 개체화 의 책을 다시 꺼냈다. 🌱 개체는 완성품이 아니라는 이야기 시몽동은 1958년 박사논문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와 이어지는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에서 개체화(individuation)라는 개념을 다룬다. 그가 뒤집으려 한 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서구 철학이 당연하게 여겨온 전제, 즉 개체란 이미 완성된 실체이고 철학은 그 완성된 것을 나중에 설명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시몽동의 주장은 반대다. 개체는 처음부터 완결된 것으로 주어지지 않고, 언제나 '전개체적 실재(réalité préindividuelle)'라는 잠재력의 저장고를 안고 태어난다. 그리고 이...

🎭 웃음이 아니라 판단을 훈련한다 — 스토아 철학자들이 지킨 아파테이아와 감정노동 사이에서

🎭 웃는 목소리로 버티다, 어느 날 말이 안 나왔다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나는 헤드셋을 쓰면 목소리 톤이 반음쯤 올라가는 사람이었다. 매뉴얼에 그렇게 쓰여 있었으니까. "고객님,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를 하루에 수십 번 반복하다 보면 그 말이 진심인지 습관인지 나조차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 그러던 어느 오후, 세 번째로 같은 항의를 반복하는 고객 앞에서 나는 정해진 문장을 읊다가 갑자기 목이 잠겼다.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보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 내 감정과 내 목소리 사이에 얇은 막이 하나 껴 있는 느낌. 그 막이 그날 처음으로 찢어졌다. 나중에야 이 현상에 이름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1983년 저서 『관리되는 마음(The Managed Heart)』에서 델타항공 승무원들의 교육 과정을 몇 달간 참여관찰하며 이 현상을 기록했다. 그는 승무원들이 실제로는 느끼지 않는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표면 연기(surface acting)"를 하거나, 아예 스스로 그 감정을 느끼려고 애쓰는 "심층 연기(deep acting)"를 한다는 걸 발견했고, 이 둘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자기소외감을 "정서적 부조화(emotional dissonance)"라 불렀다. 내가 그날 느낀 막은 정확히 그 부조화였다. ⛓️ 에픽테토스는 서재에 앉은 온화한 철학자가 아니었다 감정노동에 지칠 때마다 스토아철학이 자주 소환되는데, 대부분 "동요하지 마라"는 말만 떼어다 쓴다. 그런데 이 말을 처음 체계화한 에픽테토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면 그 말의 무게가 달라진다. 그는 로마의 노예였다. 소아시아 히에라폴리스에서 태어나 네로 황제의 비서였던 에파프로디토스의 소유였고, 3세기 교부 오리게네스가 『켈수스 반박』에 남긴 기록에 따르면 주인이 그의 다리를 비틀어 학대할 때 에픽테토스는 담담히 "그렇게 하면 부러질 겁니다"라고 말했고...

🧊 아파테이아 실천법: 번아웃과 헷갈리기 쉬운 정반대의 무감각, 완벽 구별 가이드와 자가진단

📅 2024년 11월 12일, 팀장이 한 말 정확히 기억한다. 화요일 저녁 7시 반, 프로젝트 킥오프 회의가 끝나갈 즈음이었다. 팀장이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했다. "이번 분기 이거 엎어졌어요. 위에서 다른 팀한테 넘기기로 했대요. 다들 그동안 고생하셨고요." 석 달 동안 야근해서 만든 기획서 얘기였다. 나는 "네, 알겠습니다"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 2호선 안에서 이상한 걸 깨달았다. 화가 안 났다. 억울하지도 않았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한강을 보면서 든 생각은 "저녁에 뭐 먹지"였다. 스스로도 놀라서 휴대폰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나 지금 정상인가?" 그 문장을 다시 읽은 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 나는 아파테이아가 아니라 탈인격화를 겪고 있었다 한동안 이 상태를 스토아철학의 아파테이아 실천법 , 그러니까 부동심에 도달한 거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매슬랙이 1981년에 만든 번아웃 측정 도구, 매슬랙 번아웃 인벤토리(MBI)를 들여다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MBI는 번아웃을 세 축으로 나눈다. 정서적 소진, 개인적 성취감 저하, 그리고 탈인격화(depersonalization). 세 번째 항목의 정의가 딱 내 얘기였다. "동료나 업무 대상을 감정 없는 대상처럼 대하게 되는 상태." 세계보건기구도 2019년 국제질병분류(ICD-11)에서 번아웃을 직업 관련 현상으로 등재하면서 이 세 축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즉 내가 지하철에서 느낀 무감각은 철학적 성취가 아니라 임상적으로 이름 붙은 소진 증상이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진짜 질문이 나온다. 아파테이아와 탈인격화는 겉으로 똑같이 "아무 느낌이 없다"인데, 뭐가 다른가. 스토아철학자들이 없애려던 건 파토스(pathos), 즉 잘못된 판단에서 나온 격정이었지, 판단력 자체가 아니었다. 반면 탈인격화는 판단력까지 같이 꺼진 상태다. 화가 안 나는 게 ...

🕰️ 설거지하다 멈춘 일요일 저녁,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진짜 이유는 하이데거의 권태였다

🧽 2024년 12월 어느 일요일, 설거지를 하다가 작년 12월 셋째 주 일요일 저녁 7시쯤이었다. 프리랜서로 넘기던 원고 하나를 막 마감하고, 다음 일감은 아직 안 잡힌 애매한 공백기였다. 밀린 설거지를 하다가 물을 잠그는 순간 라디에이터 돌아가는 소리만 남았는데, 그 정적 속에서 손에 쥔 수세미를 십몇 초쯤 그냥 들고만 있었다. 피곤한 것도 아니었다. 넷플릭스를 켰다가 3초 만에 껐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아무것도 안 꺼내고 닫았고, 휴대폰을 세 번 들었다가 세 번 다 내려놨다. 뭘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는 게 아니라, '하고 싶다'는 감각 자체가 작동을 멈춘 느낌이었다. 이걸 그냥 '무기력하다'고 부르기엔 뭔가 정확하지 않다고 느꼈던 게, 이 글을 쓰게 된 출발점이다. 🌫️ 하이데거가 구분한 세 겹의 권태의 철학 하이데거는 1929년에서 30년 사이 프라이부르크 강의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에서 권태를 세 단계로 나눈다. 첫째는 '무언가에 의해 지루해짐'—기차를 기다리는 역에서 시계를 보는 그 지루함이다. 대상이 명확하다. 둘째는 '무언가와 함께, 그리고 그것에 따라오는 시간에 지루해짐'—저녁 파티는 즐거웠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시간이 텅 빈 채로 흘러갔다는 걸 깨닫는 경우다. 이건 좀 더 은밀하다. 그리고 셋째, 그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깊은 권태(tiefe Langeweile)'가 있다. 원문의 표현을 빌리면 "es ist einem langweilig"—번역하면 "그것은 사람에게 지루하다" 정도인데, 주어가 없다. 나를 지루하게 만드는 대상도, 상황도 없이 그냥 존재 전체가 무차별해지는 상태다. 내가 방금 겪은 설거지 앞의 정지가 이거였는지는 사실 확신할 수 없다. 하이데거 본인도 이 상태를 명확한 증상 목록으로 주지 않는다. 그건 애초에 그가 하려던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이걸 번아웃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

🧦 회색 양말 스물한 번, 그리고 세탁기가 알려준 흄의 인과율 회의주의와 습관에 대한 질문

🧦 세탁기가 고장 나던 날, 회색 양말은 없었다 대학교 3학년 2학기, 복수전공으로 듣던 통계학 202 수업. 그 학기에만 중간고사 두 번, 기말고사 한 번, 도합 세 번의 시험이 있었고 나는 세 번 다 같은 회색 양말을 신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사실 그 습관은 1학년 때부터였다. 3년 동안 치른 크고 작은 시험 스물한 번 중에 그 양말을 신은 건 열아홉 번. 나머지 두 번은 못 신었는데, 그중 한 번이 하필 통계학 기말고사 전날이었다. 자취방 세탁기가 고장 나서 양말을 빨 수가 없었고, 나는 새로 산 검은 양말을 신고 시험장에 들어가야 했다. 결과는 B+. 평소보다 한 등급 낮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그 검은 양말을 시험 전날 절대 세탁기에 넣지 않는 규칙까지 만들었다. 말도 안 되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데이비드 흄을 다시 읽으면서, 이 양말 습관과 흄이 말한 인과율이 사실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됐다. 📖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 7절, 흄이 진짜로 쓴 문장 흄의 인과율 회의주의 은 보통 당구공 예시로 요약되지만, 정작 그 논증이 나오는 자리는 1748년에 나온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 7절, "필연적 연관의 관념에 대하여"다. 여기서 흄은 이렇게 쓴다. 우리는 원인이라 불리는 사건과 결과라 불리는 사건이 늘 붙어서 나타나는 것, 즉 "항상적 결합"만을 관찰할 뿐, 그 둘을 묶어주는 필연적인 힘 자체는 단 한 번도 감각으로 포착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5절에서 이 문제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둔다. "관습이야말로 인간 삶의 위대한 안내자다(Custom, then, is the great guide of human life)." 내일도 해가 뜰 거라는 믿음, 불을 만지면 뎄다는 확신, 심지어 회색 양말을 신어야 시험을 잘 본다는 느낌까지, 이 모든 게 같은 심리적 장치, 즉 반복된 경험이 남긴 습관에서 나온다는 게 흄의 ...

🍷 짝사랑 티 안 내는 법을 니체에게 물었더니, 부처와는 정말 완전히 다른 답이 돌아온 이유

💧 회의실에서 물을 마신 이유 작년 가을, 분기 보고 자료를 넘기다가 손이 떨리는 걸 들킬까 봐 일부러 물컵을 집어 든 적이 있다. 상대는 옆 팀 대리였고, 그가 발표 중에 내 쪽을 한 번 쳐다보기만 해도 목소리가 갈라질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물을 세 번 마셨다. 갈증 때문이 아니라 표정을 숨길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그날 집에 와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감정을 숨기고 싶은 걸까, 아니면 감정에 끌려다니는 게 싫은 걸까.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문제다. 전자는 연기의 문제고, 후자는 태도의 문제다. 그리고 이 태도의 문제를 오래 붙들고 있다 보니, 대학 때 억지로 읽었던 니체와 불교 책들이 다시 떠올랐다. 둘 다 "감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정면으로 다뤘던 사람들이니까. 🔥 니체라면 숨기는 대신 이겼을 것이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 341번에서 악령 하나를 등장시킨다. 악령은 이렇게 속삭인다.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을, 사소한 것 하나 빠짐없이,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아야 한다면 어떻겠느냐고. 니체는 이 질문 앞에서 절망할지, 아니면 "이보다 더 신성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를 삶의 시험대로 삼는다. 이게 영원회귀다. 이 사고실험을 짝사랑에 그대로 대입해보면 질문이 하나 생긴다. 지금 이 순간, 물컵 뒤에 표정을 숨기는 나를 무한히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나는 그걸 긍정할 수 있는가.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는 상대를 갖는 힘이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부 「자기 극복에 대하여」에서 그는 힘을 갖는다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문제라고 말한다.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상대의 시선에 종속된 상태다. 반대로 내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룰 줄 아는 상태, 그게 니체식 힘이다. 그는 훗날 『이 사람을 보라』에서 자기 삶의 태도를 "아모르 파티", 운명애라는 한 단어로 정리한다. 짝사랑도 피하고 싶은 사고가 ...

🕊️ 형용사를 지우자 내가 보였다 — 케노시스가 가르쳐준 자기비움과 자아의 역설, 그 새벽의 발견

🌙 자기소개서에서 형용사를 지우던 밤 이직을 준비하면서 자기소개서를 고치던 밤이 있었다. 화면에는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팀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해온" 같은 문장들이 빼곡했다. 다 지웠다. 하나씩. 형용사부터, 그다음 부사, 그다음 자랑처럼 들리는 동사까지. 새벽 두 시쯤 되니 문서에는 내가 실제로 한 일들, 그러니까 "6개월간 매주 고객 열댓 명을 직접 인터뷰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기능 우선순위를 바꿨다" 같은 밋밋한 문장들만 남았다. 이상한 건 그 다음이었다. 수식어를 다 걷어내고 남은 문장이 오히려 더 나답게 느껴졌다. 포장을 벗겨낼수록 내가 더 잘 보였다. 그때 처음으로, 자아라는 게 채워서 완성되는 게 아니라 걷어내서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신학 공부를 하다가 이 감각에 이름이 있다는 걸 알았다. 케노시스(자기비움) ), 그리스어로 "비움"이다. 👑 케노시스, 권력이 스스로를 지운 사건 빌립보서 2장은 이렇게 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초대 교회는 이 구절을 두고 오래 다퉜다. 19세기 신학자 고트프리트 토마지우스는 성육신 순간 신이 전능이나 편재 같은 속성을 실제로 내려놓았다고 주장했고, 정통 교의학은 그렇게 되면 신의 불변성 자체가 무너진다며 반박했다. 신이 신이기를 잠깐 멈출 수 있는가, 라는 형이상학 퍼즐이다. 솔직히 나는 이 논쟁의 승패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눈여겨보는 건 방향이다. 이 텍스트가 그리는 건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존재가 자리를 지키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내려놓는 쪽을 택했다"는 그림이다. 그런데 요즘 자기계발서에서 케노시스를 인용할 때는 보통 반대 논리를 쓴다. "자아를 비우면 더 ...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휘둘리지 않는 연습 — 스토아 철학 아파테이아와 번아웃 사이에서

🎭 회의실에서 웃고 있던 나, 사실은 없었다 몇 년 전 팀장이었을 때 일이다. 오전에 클라이언트한테 깨지고, 오후엔 팀원 고충 상담을 하고, 저녁엔 웃으면서 회식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 종일 웃고, 화내고, 다독이고, 사과했는데—정작 내가 뭘 느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감정을 쓴 게 아니라 감정을 '연기'한 느낌이었다. 그게 번아웃의 시작이었다. 그 무렵 우연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다시 펼쳤다가 ' 아파테이아 (apatheia)'라는 단어에 멈춰 섰다. 흔히 무감정, 냉정함으로 오해받는 이 개념이 사실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아파테이아는 감정을 죽이는 기술이 아니다 아파테이아를 감정 없는 로봇 상태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한 건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는 상태'였다. 에픽테토스는 『엥케이리디온』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즉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판단이 고통을 만든다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매일 밤 스스로에게 물었다. 오늘 화가 났던 순간, 그 화는 상황 때문이었나 아니면 상황을 대하는 내 해석 때문이었나. 이 질문 자체가 이미 감정을 없애려는 시도가 아니라 감정과 나 사이에 '거리'를 만드는 훈련이다. 화를 느끼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화가 났을 때 그 화가 나를 통째로 삼키지 못하게 하는 것—그게 아파테이아의 실제 의미다. 🔥 번아웃은 감정이 많아서가 아니라 통제감을 잃어서 온다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마슬라흐(Christina Maslach)는 번아웃을 정서적 소진, 냉소, 개인 성취감 저하 세 축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그의 연구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번아웃이 단순히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

💔 짝사랑 혼자 끝내는 법 — 니체와 불교가 싸우는 자리에서 내가 찾은 것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이렇게 지치는 일인 줄 처음엔 몰랐다. 고백도 못 하고 포기도 안 되는 그 애매한 자리에 나는 꽤 오래 서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군가와 웃는 사진을 보면 배가 아팠고, 답장이 한 시간 늦으면 하루가 무너졌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 내가 사랑한 건 그가 아니었다 — 스탕달이 먼저 알고 있었다 1822년, 스탕달은 《연애론(De l'amour)》 2장에서 '결정화(cristallisation)'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소금 광산의 나뭇가지가 소금 결정으로 뒤덮이듯,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 위에 자신이 원하는 모든 완벽한 이미지를 입힌다는 것이다. 실제 그 사람은 그 결정 아래 점점 사라진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사람의 실제 일상을 거의 몰랐다. 화가 났을 때 어떤 사람인지, 별로인 하루엔 어떻게 버티는지. 내가 좋아했던 건 짧은 대화에서 내가 상상으로 채운 나머지였다. 스탕달의 언어로 하면, 나는 결정을 사랑했지 나뭇가지를 사랑한 게 아니었다. 불교는 이걸 다른 언어로 말한다. 《쌍윳따 니까야》 22편 59경(SN 22.59, 아낫딸락카나 숫따)에서 붓다는 이렇게 말한다. "색(色)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고(苦)다. 고인 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내가 집착하는 대상이 내가 구성한 것임을 직시하는 것, 그 환(幻)을 알아차리는 것이 불교가 말하는 첫 번째 해방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 니체와 불교는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 오히려 정반대다 나는 한동안 니체와 불교를 나란히 세우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둘 다 결국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라고 하잖아.' 틀렸다. 니체는 《안티크리스트(Der Antichrist)》 §20에서 불교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불교는 소극적 허무주의의 종교다. 욕망을 소멸시켜 고통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생명력이 쇠퇴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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