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우주론인 게시물 표시

🌊 2600년 전 질문이 지금도 물리학자와 철학자를 싸우게 만든다

## 📖 2015년의 서평 한 편 몇 년 전 철학 강의 자료를 뒤지다가 철학자 데이비드 앨버트가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쓴 서평을 읽었다. 물리학자 로런스 크라우스의 책 《무(無)로부터의 우주》를 겨냥한 글이었는데, 앨버트의 핵심 주장은 한 문장이었다. "크라우스가 말하는 '무(無)'는 진짜 무가 아니다. 양자장, 법칙, 에너지 상태가 있는 진공은 이미 뭔가다." 크라우스는 발끈해서 인터뷰에서 앨버트를 "아마추어 철학자"라고 불렀다. 앨버트는 크라우스가 존재론적 질문과 물리학적 기술을 혼동했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 모두 완전히 틀리지 않았는데 대화가 안 됐다. 이유는 하나였다. '무(無)'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합의가 없었다. 이 논쟁 구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600년 전 밀레토스에서. --- ## 💧 탈레스가 한 것: 신화를 내보내고 관찰을 들여보내다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다는 사실은 워낙 유명해서, 그게 왜 중요한지는 잘 안 다뤄진다. 물이 근원이라는 주장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그 주장을 어떻게 만들었는가가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1권 3장(983b6~27)에서 탈레스의 근거를 재구성한다. 모든 영양분에는 수분이 있고, 씨앗은 수분이 있는 환경에서 생겨나며, 열 자체도 수분에서 나온다고 탈레스는 추론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창조신화에도 물은 등장하지만, 그건 신의 의지로 설명됐다. 탈레스는 신을 등장시키지 않고 관찰을 근거로 댔다. 물론 그 결론은 틀렸다. 그런데 틀릴 수 있다는 것, 즉 반증 가능한 주장 형태를 가졌다는 것이 오히려 이전 설명 방식과 탈레스를 가르는 선이다. '포세이돈이 원했기 때문에'는 틀릴 수가 없다. '물이기 때문에'는 틀릴 수 있다. 지식의 역사에서 이 차이는 작지 않다. --- ## ♾️ 아낙시만...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로스트아크] 제작 효율 최적화 위한 영지 세팅

한국 핵무장 논의와 방위산업 관련주: 핵무기 개발 과정과 유망 종목 분석

[로스트아크] 로스트아크 생활 도구 옵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