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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할수록 불안해지는 이유

할머니 장례식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다. 조문 내내 아무도 '죽다'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가셨다", "떠나셨다", "편히 쉬고 계신다". 죽음을 가리키는 말은 넘쳤지만 정작 그 단어는 금기어처럼 피했다. 나는 영정 앞에 앉아 생각했다. 이 회피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 ## 🚫 우리는 왜 "죽었다"는 말을 못 하게 됐나 20세기 이전, 죽음은 집에서 일어났다. 가족이 임종을 지켰고, 아이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병원이 죽음의 공간을 독점하면서 달라졌다. 사회학자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ès)는 『죽음 앞의 인간』(1977)에서 이 전환을 "길들여진 죽음(tame death)"에서 "금지된 죽음(forbidden death)"으로의 이행이라고 불렀다. 죽음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상상하는 법도 잃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이야기할 수도 없게 된다. --- ## 🔍 에피쿠로스의 논리, 어디에 구멍이 있나 그래서 고대 철학자들이 소환된다. 에피쿠로스가 단골로 나온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없고, 죽음이 오면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이 논리는 우아하고 그럴듯하다. 그런데 철학자 토마스 네이글(Thomas Nagel)이 1970년 논문 「죽음(Death)」에서 이 논리의 구멍을 찌른다. 에피쿠로스의 주장은 죽음이 *경험되지 않으므로* 해가 없다는 것인데, 네이글은 반문한다. 박탈(deprivation) 자체는 경험 없이도 해악이 될 수 있지 않냐고. 내가 죽은 뒤 누릴 수 있었던 좋은 것들을 박탈당했다면, 내가 그 박탈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 손실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 더 단순한 반론도 있다. 에피쿠로스는 죽음 *그 자체*를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두려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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