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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는 왜 80므나짜리 땅에 '정원' 공동체를 세웠을까 - 쾌락주의자라는 오해 바로잡기

🍽️ 오마카세 앞에서 에피쿠로스를 소환한 친구 얼마 전 친구가 한 끼에 이십만 원짜리 오마카세를 예약해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게 에피쿠로스지, 인생 뭐 있어." 나도 그때는 그냥 웃고 넘겼는데, 집에 가는 길에 계속 걸렸다. 정작 에피쿠로스 본인은 평생 그런 자리에 앉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세운 에피쿠로스 정원 공동체 의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느낀 건, 우리가 그 이름을 빌려 정당화하는 삶과 그가 실제로 살았던 삶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거였다. 🏡 정원은 얼마였을까 - 80므나짜리 반란 기원전 306년,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성벽 바로 바깥, 아카데메이아로 가는 길목의 땅을 샀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값은 80므나. 당시 숙련 노동자 하루 품삯이 대략 1드라크마였고 100드라크마가 1므나였으니, 단순 계산으로도 노동자 한 명이 몇 년치 임금을 꼬박 모아야 살 수 있는 땅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 값비싼 부동산에 지은 건 신전도 강당도 아니고 채소밭과 몇 채의 숙소였다. 세네카가 서신 21번에서 전하는 정원 입구 문구는 이렇다. "나그네여, 여기서는 좋을 것이오. 여기서 최고선은 쾌락이니." 광고 카피처럼 읽히지만, 정작 안에서 벌어진 생활은 채소를 직접 길러 먹는 자급 공동체였다는 게 세네카가 이 문구를 인용한 맥락이다. 그는 이 말을 조롱하려고 인용한 게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걸 짚으려고 인용했다. 👩‍🏫 레온티온이 남긴 것 - 정원의 여자들 정원의 특이함은 채소밭보다 구성원 명단에 있다. 레온티온은 원래 헤타이라, 그러니까 아테네의 고급 매춘부로 일하다가 정원에 들어와 철학자가 된 여성이다. 그가 테오프라스토스를 반박하는 글을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정작 그 글은 전하지 않고 키케로가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이걸 언급하며 남긴 게 유명하다. 키케로는 "일개 창녀 주제에 테오프라스토스를 공격하는 글을, 그것도 제법 아티카식 문체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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