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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이 편집하고 지운 얼굴도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얼굴이라 할 수 있을까, 철학적으로 따져본다

📸 지진 사진 한 장이 남긴 질문 2023년 2월,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 지역에 강진이 덮쳤을 때 나는 여느 때처럼 인스타그램 익스플로어 탭을 넘기고 있었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아버지가 딸의 손을 붙잡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떴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눌러 좋아요를 누르고, 곧바로 다음 게시물로 넘어갔다. 다음 게시물은 누군가의 강아지 산책 브이로그였다. 그 전환의 매끄러움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방금 본 얼굴과 지금 보는 얼굴 사이에, 알고리즘은 아무런 위계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날 이후 며칠간 피드에는 비슷한 재난 사진이 계속 올라왔다. 내가 그 사진에 오래 머물렀다는 신호를 시스템이 읽어낸 결과였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 얼굴이 내 안에 만들어낸 반응을 알고리즘에게 학습시켜주고 있었던 걸까. 💭 레비나스가 말한 얼굴은 계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 는 1961년 저작 『전체성과 무한』에서 '얼굴(visage)'을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라 윤리적 사건으로 규정한다. 그에게 얼굴은 눈, 코, 입의 형태로 환원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나의 인식 범주에 포섭되지 않고 나를 넘어서는 무한이다. 얼굴은 침묵 속에서도 하나의 명령을 발화한다. "너는 나를 죽이지 말라"는 명령. 이후 인터뷰집 『윤리와 무한』(1982)에서 그는 이를 더 분명히 말한다. 얼굴과의 만남은 재현이나 정보 습득이 아니라, 나를 볼모로 잡는 책임의 시작이라고. 중요한 건 레비나스가 이 마주함을 철저히 신체적 근접성, 살과 목소리, 같은 공간을 점유하는 두 신체 사이의 사건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그는 표상과 얼굴을 구조적으로 대립시킨다. 그런데 우리가 화면에서 보는 것은 정확히 표상, 즉 이미지로 압축되고 편집되고 전송된 얼굴이다. 화면을 통과한 얼굴도 레비나스적 의미의 얼굴일 수 있는가. 🤖 알고리즘은 얼굴을 어떻게 다루는가 2021년 프랜시스 하우겐이 유출한 페이스북 내부 문건,...

😶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 앞에서 나는 왜 무장해제되었는가 - 엄마와의 다툼이 남긴 철학적 순간

🚪 문을 열자 마주친 얼굴 작년 11월 어느 저녁 8시쯤이었다. 설거지를 안 했다는 엄마의 잔소리로 시작된 말다툼이었다. "너는 맨날 그런 식이야"라는 내 말에, 엄마는 오래전 아버지 제사 준비를 나 혼자 다 떠맡겼던 일, 형만 챙긴다고 서운했던 기억들을 한꺼번에 꺼냈다. 나는 밥그릇을 싱크대에 던지듯 넣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형광등이 웅웅거리는 소리, 냉장고 모터 도는 소리만 들리는 방 안에서 한 시간쯤 씩씩거리다가, 목이 말라 문을 열었다. 거실엔 엄마가 있었다. 화장이 반쯤 지워진 얼굴로, 개다 만 빨래를 손에 쥔 채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서 있었다. 화가 안 풀린 것도 아닌데, 눈두덩이 붉어진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뭔가가 턱 걸렸다. 나중에 레비나스를 읽으면서 그 순간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그가 말한 '얼굴(visage)'을 마주친 거였다. 🌀 '얼굴'은 눈코입이 아니라 균열이다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 은 생김새가 아니다. 그는 얼굴을 내가 상대를 파악하려는 순간 그 파악을 빠져나가는 것, 그가 '전체성(totalité)'이라 부른 나의 인식 틀을 찢고 나오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우리 엄마는 원래 저래"라는 문장은 전체성이다. 엄마를 내가 다 안다고 규정해버리는 틀이다. 그런데 그 순간 거실에서 본 엄마의 얼굴은 그 틀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장 지워진 눈가, 개다 만 수건, 그 헐거운 자세 — 그건 내가 알던 '엄마'라는 카테고리보다 컸다. 레비나스는 이걸 얼굴이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라고 명령한다고 표현한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이전에, 얼굴 자체가 이미 그 금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철학책 여러 권에 나오는 얘기다. 진짜 질문은 그다음부터다. ✋ 그런데 그 얼굴이 나를 붙잡아 두는 손이라면 레비나스 윤리의 핵심은 비대칭...

⏳ 기다림의 현상학: 플랫폼에서 하이데거와 레비나스를 읽다

## ⏱️ 4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어느 저녁, 2호선 신촌역 플랫폼에 서 있었다. 전광판은 '4분 후 도착'을 표시하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한결같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나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멈췄다. 왜인지는 그때도 잘 몰랐다. 그냥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 4분은 평소와 달랐다. 터널에서 올라오는 바람 소리가 들렸고, 건너편 플랫폼에 서 있는 어떤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피곤해 보였다. 나중에 그 순간을 생각했다. [기다림의 현상학](https://warguss.blogspot.com/search?q=기다림의+현상학)이란 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상태인가? 우리가 기다림을 견디지 못할 때, 무엇을 회피하고 있는 걸까? --- ## 🔍 하이데거: 기다림에도 두 종류가 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 §65와 §68에서 시간성을 분석하면서, 기다림에 해당하는 독일어를 둘로 구별한다. Erwarten(기대)과 Gewärtigen(기다려-가짐)이다. Erwarten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계산하고 통제하려는 태도다. 열차가 언제 오는지 확인하고, 메시지가 왔는지 새로고침하는 것이 그것이다. Gewärtigen은 다르다. 무엇이 올지 확정하지 않은 채, 도래할 것 자체를 향해 열려 있는 구조다. §65에서 하이데거는 쓴다: "Das primäre Phänomen der ursprünglichen und eigentlichen Zeitlichkeit ist die Zukunft." 번역하면 "근원적이고 본래적인 시간성의 일차 현상은 미래다." 하지만 이 미래는 달력의 미래가 아니다. 현존재(Dasein)가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앞서 달려가는(Vorlaufen, §53) 방식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구조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극단에는 죽음이 있다. §53에서 하이데거는 죽음을 "das eigenste, unbezügliche, ...

🕯️ 고독의 현상학: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나는 정말 혼자인가 하이데거와 레비나스로 풀어보다

🕑 새벽 두 시, 소리가 나지 않는 방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원룸이었다. 8평쯤 되는 방인데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고, 그날은 그 소리마저 꺼진 새벽 두 시였다. 친구와 잡았던 약속이 그날 오후에 깨졌다. 특별히 슬픈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재생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도 누르지 않은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뭔가를 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이 방에 나 말고 다른 존재가 없다는 사실이 갑자기 물리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그 순간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무섭지도, 슬프지도 않은데 뭔가 텅 빈 느낌. 이 감각을 말로 옮기려다가 결국 하이데거와 레비나스를 다시 펼치게 됐다. 💀 하이데거의 '혼자'는 죽음이 아니라 도피에서 시작한다 『존재와 시간』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걸린 대목은 죽음론 자체가 아니라 그 앞에 나오는 '평균적 일상성' 논의였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세인(das Man)' 속에서 산다고 말한다. 남들이 하는 대로 하고, 남들이 말하는 대로 말하고, 결정도 남들의 눈치를 보며 내린다. 이 상태를 그는 "존재를 도둑맞은" 상태, 정확히는 존재 물음 자체를 회피하는 '비본래성(Uneigentlichkeit)'이라 부른다. 여기서 죽음이 등장하는 이유가 중요하다. 죽음은 "가장 고유하고, 다른 것과 관계할 수 없으며, 뛰어넘을 수 없는 가능성"이라고 하이데거는 쓴다. 남이 대신 죽어줄 수 없다는 뜻만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는 세인의 잡담과 평균적 해석이 더 이상 나를 대신해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본래성은 죽음을 슬퍼하는 태도가 아니라, 세인 속으로 도피하던 나를 다시 나 자신에게 데려오는 사건이다. 흔히 "혼자 죽는다"로 요약되는 이 논의를 다시 보면, 핵심은 죽음이 아니라 '도피로부터의 귀환'이라는 게 더 맞는 독법 같다. 내가 그 새벽에 느낀 텅 빈 감각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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