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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쿠로스 아타락시아: 욕망을 없애라고 한 적 없다, 스크린타임 47분이 알려준 진짜 의미

📱 좋아요 38개, 확인 47번 — 스크린타임 앱이 보여준 숫자 작년 가을 어느 밤, 아이폰 설정에 들어가서 스크린타임을 열어봤다. 인스타그램: 하루 평균 47분, 앱을 연 횟수 38번. 눈뜨자마자, 지하철에서, 화장실에서, 자기 직전까지 하루에 38번씩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아래로 당기고 있었다는 얘기다. 뭘 보려고 그렇게 여러 번 들어갔는지 스스로도 설명이 안 됐다. 새 글이 딱히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날 앱을 지웠다. 사흘을 버텼다. 나흘째 되던 날 다시 깔았다. 부끄러워서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처음 털어놓는다. 문제는 의지력이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원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이 지점에서 에피쿠로스를 다시 읽게 됐다. 🚫 "욕망을 없애라"는 말, 어디에도 없다 에피쿠로스 하면 흔히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라"는 식으로 소개된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확하지도 않다. 그가 남긴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와 「쿠리아이 독사이(주요 교설)」를 보면, 욕망을 없애라는 말은 없다. 대신 욕망을 세 가지로 쪼갰다. (국내 번역으로는 오유석 옮김 『쾌락』, 문학과지성사, 1998에 실린 두 글을 참고했다. 「쿠리아이 독사이」 29~30번 항목이 이 분류를 다룬다.) 첫째,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욕망 —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는 것. 둘째, 자연스럽지만 필수적이지는 않은 욕망 — 같은 배고픔이라도 담백한 빵 대신 굳이 값비싼 음식을 찾는 것. 셋째, 자연스럽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욕망 — 명예, 권력, 남들보다 돋보이고 싶은 마음처럼 "공허한 의견"(케노독시아, kenodoxia)에서 생겨난 것. 그런데 이 분류에서 진짜 중요한 건 세 가지로 나눴다는 사실이 아니다. 나눈 기준이다. 배고픔은 밥 한 그릇을 먹으면 몸이 알아서 멈춘다. 몸이 신호를 보낸다. 반면 명예욕이나 인정욕구는 아무리 채워도 몸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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