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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사랑 상대의 결혼 소식 앞에서, 니체와 붓다 사이에서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가짐 정리

📬 봉투를 열기 전에 알았다 지난달 회사 우편함에 청첩장이 하나 와 있었다. 보낸 사람 칸에 그 사람 이름이 아니라 그 사람 누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누나가 대신 부쳐준 거였다. 봉투를 뜯기도 전에 손글씨를 보고 알았다. 주소를 쓸 때 우편번호 앞자리를 항상 조금 삐뚤게 쓰는 버릇, 그 집안 특유의 필체였다. 나는 그걸 5초쯤 들여다보다가 봉투를 서랍에 넣고 회의에 들어갔다. 울지 않았다. 그날은. 대신 회의 내내 그 사람이 문자에서 "반드시"를 항상 "반듯이"로 잘못 쓰던 게 생각났다. 3년을 알고 지내면서 한 번도 고쳐주지 않았다. 고쳐줄 타이밍을 놓친 게 아니라, 고쳐주면 그 오타를 다시는 못 볼 것 같아서 일부러 안 고쳤다. 💭 내가 사랑한 건 실제로 누구였나 사람들은 짝사랑을 미화한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정직하게 복기해보면 그 사람은 내가 해준 요리를 먹고 "먹을 만은 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칭찬도 아니고 비난도 아닌, 딱 그 중간의 애매한 말. 나는 그 말을 3주 동안 곱씹었다. 좋다는 거야 별로라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그때는 그 한 문장이 내 자존감을 쥐고 흔들었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원한 감정(르상티망)을 약자의 도덕이라고 불렀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원래 나쁜 것"이라 규정해버리는 심리적 방어기제 말이다. 나는 그 사람을 미화하는 대신 정확히 반대로 갔다. 그 사람의 무심함, 애매함, 가끔의 무례함까지도 사랑의 재료로 삼았다. 이게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놔두고, 그 대상과 부딪히면서 생기는 감정의 낙차 자체를 내 것으로 흡수하는 것. 상대를 신격화하지 않고도 강렬하게 원할 수 있다는 걸, 그 "먹을 만은 하다"는 말을 들으며 배웠다. 🌊 무상, 그런데 왜 이렇게 안 놓아지지 불교의 무상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뜻이다. 감정도, 관계도, 심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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