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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 끄기의 기술: 스토아 철학자의 아디아포라 구분법

🌙 새벽 두 시, 단톡방에서 본 사진 한 장 지난달이었다. 애 재우고 설거지 끝내고 소파에 늘어져 있는데 초등학교 학부모 단톡방이 울렸다. 옆 반 엄마가 아이 영어 학원 레벨테스트 결과를 올렸다. "AR 4.2 나왔어요 감사합니다 ㅠㅠ" 그 밑에 축하 이모티콘이 열댓 개 달렸다. 나는 그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더라. 우리 애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나는 뭘 놓치고 있지. 십 분쯤 각종 학원 블로그를 뒤지다가 문득 스스로한테 물었다. AR 4.2가 나한테, 내 삶에, 대체 무슨 상관이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토아 철학에서 찾은 게 최근이다. 정확히는 ' 아디아포라 (adiaphora)'라는 개념인데, 이게 흔히 알려진 '통제 이분법'이랑 헷갈리기 쉽다. 통제 이분법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라"는 얘기고, 아디아포라는 좀 다르다. "이게 애초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라는 얘기다. 🙅 '무관심'이 아니라 '무차별' 아디아포라는 번역하면 '무차별한 것들', 그러니까 도덕적으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들이라는 뜻이다. 크리시포스나 에픽테토스가 예로 든 목록을 보면 재산, 건강, 명성, 아름다움, 심지어 목숨까지 들어간다. 이게 이상하게 들리는데,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이 안에서도 등급을 나눴다. 건강은 '선호되는 무차별'이고 병은 '기피되는 무차별'이다. 둘 다 상대적으로 나은 쪽, 못한 쪽은 있지만 그 자체로 좋음(선)이나 나쁨(악)은 아니라는 거다. 진짜 좋음은 오직 덕, 즉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반응하느냐에만 있다. 옆집 애 AR 지수는 딱 이 범주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숫자. 문제는 내가 거기에 '좋음'이라는 가치를 멋대로 씌워놓고, 그걸 못 가진 나를 '나쁨' 쪽으로 밀어넣...

🏛️ 스토아 철학 일상 적용법: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법을 따라 했는데 번아웃이 온 이유

🔥 스토아 기법을 1년간 따랐는데도 번아웃이 온 이유 2023년 여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처음부터 다시 읽다가 메모를 멈췄다. 그레고리 헤이스의 영역본, 2.1이었다. "오늘 나는 배은망덕하고, 거만하고, 속이고, 시기하며, 비사교적인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이 문장이 황제의 각오가 아니라 민원인의 넋두리처럼 읽혔다. 뭔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 1년간 나는 스토아 철학 일상 적용법 관련 책을 다섯 권 읽었고, 매일 저녁 '오늘 내가 통제할 수 없었던 것 목록'을 작성했으며, 큰 발표 전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상상하는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을 빠짐없이 수행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번아웃이 왔다. 문제는 내가 스토아 '기법'을 익혔지, 스토아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무관심'이라는 번역이 망쳐놓은 것 스토아 철학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개념이 아디아포라(ἀδιάφορα)다. 보통 '무관한 것들', 즉 승진도 건강도 평판도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소개된다. 나도 그렇게 이해했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출발점이었다. 에픽테토스는 《담화록》 2.19에서 아디아포라를 더 정교하게 분류했다. 외부 사물 중 중요한 범주가 '선호할 만한 무관한 것들(τὰ προηγμένα ἀδιάφορα, 프로에구메나 아디아포라)'이다. 건강, 부, 사회적 지위가 여기에 속한다. 이것들은 추구할 가치가 있다. 단, 그게 없다고 해서 자신의 판단 능력(헤게모니콘, ἡγεμονικόν)이 훼손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명상록》 6.2에서 "자연에 맞는 것들을 추구하되, 그것이 결여될 때 불평하지 말라"고 쓴다. 승진을 원해도 된다. 노력해도 된다. 그러나 그게 안 됐을 때 자신의 안녕이 무너지도록 구조를 짜지 말라는 것이다. "무관심하게 살아라"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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