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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사랑이 가르쳐준 소유와 사랑의 철학적 차이, 니체 영원회귀와 신촌 카페에서 배운 사랑 이야기

☕ 신촌, 어느 카페 구석 자리 2019년 11월 셋째 주 화요일. 신촌 기차역 근처 작은 카페에서 나는 창가 자리를 원했는데 그 사람이 구석 자리를 골랐다. "여기 조명이 눈 안 아파서 좋아." 그 한마디를 나는 그 후로 이 년 가까이 곱씹었다. 정확히는 그 사람을 곱씹은 게 아니라 그 문장을 곱씹었다. 조명, 구석 자리, 화요일 오후 세 시 사십 분경 창밖으로 지나가던 마을버스 번호까지. 짝사랑이 끝나고도 한참 뒤에야 나는 물었다. 나는 그 사람을 그리워한 걸까, 아니면 그 장면을 재생할 권리를 그리워한 걸까. ♾️ 영원회귀라는 형벌 니체는 『즐거운 학문』 341번 아포리즘 "최대의 무게"에서 이런 상상을 던진다. 어느 날 밤 악마가 찾아와 말한다.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을, 크고 작은 모든 고통과 기쁨을 포함해서, 똑같은 순서로 무한히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너는 그 악마를 저주할 것인가, 아니면 "너는 신이며 나는 이보다 더 신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을 신촌 카페 장면에 대입해봤다. 만약 그 화요일 오후를 영원히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 그 대사와 그 표정과 뒤이은 이 년의 미련까지 통째로 — 나는 그러겠다고 할 수 있는가. 처음엔 그렇다고 답할 뻔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알게 됐다. 내가 반복하고 싶었던 건 그 장면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었다. 이건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 즉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그 위에 서서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힘이 아니라 르상티망에 가까웠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앙심을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계속 재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 니체는 불교를 싫어했다 — 그런데도 내겐 둘 다 필요했다 여기서 정직하게 짚어야 할 게 있다. 니체는 불교의 편이 아니었다. 『안티크리스트』 20절과 21절에서 그는 불교가 그리스도교보다 "백 배는 더 냉정하고 진실하며 객관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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