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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없애지 않고도 무너지지 않는 법 — 폭풍우 속 창백해진 스토아 철학자와 아파테이아

📞 해지방어팀에서 보낸 11개월 카드사 콜센터 해지방어팀에서 11개월을 일했다. 하는 일은 단순했다. 해지하겠다는 고객에게 전화가 넘어오면, 이런저런 혜택을 안내하며 최대한 붙잡는 것. 그러니 전화를 건 사람은 애초에 기분이 좋을 리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통을 아직도 기억한다. 남자였고, 연회비 문제로 화가 나 있었다. 내가 매뉴얼대로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확인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너 이름 뭐야. 내가 게시판에 올릴 거야. 니들 같은 애들이 무슨 상담이야." 통화는 4분쯤 이어졌다. 전화를 끊고 나서 손이 떨리는 걸 느꼈는데, 헤드셋에서는 벌써 다음 콜이 대기 중이라는 알림음이 울리고 있었다. 나는 숨 한 번 쉬고 톤을 한 옥타브 올려 "안녕하세요, 고객님" 하고 받아야 했다. 그 시절 나는 이걸 "감정을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틀렸다. ⛵ 폭풍우 속에서 창백해진 철학자 로마의 문헌학자 아울루스 겔리우스는 『아티카의 밤』 19권 1장에서 이런 일화를 남겼다. 배를 타고 항해하던 한 스토아 철학자가 갑작스러운 폭풍우를 만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동승객들이 놀리듯 물었다. "당신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더니, 왜 그렇게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소?" 철학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안색이 변하고 몸이 움츠러드는 건 판단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이성이 진짜로 흔들려서 "이 배는 곧 침몰할 것이고 나는 끝장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동의해버리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이 구분이 나는 "사건과 판단 사이에 틈이 있다"는 익숙한 문장보다 훨씬 유용했다. 스토아 철학은 감정을 세 겹으로 나눈다. 프로파테이아(propatheia), 즉 몸이 먼저 놀라는 첫 반응. 파테(pathē), 그 반응에 "이건 재앙이다"라는 잘못된 판단이 들러붙어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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