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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행위다 — 니체와 불교로 다시 읽어낸 나의 3년짜리 짝사랑 이야기

📑 목차 📅 목요일 오후 3시, 내가 만든 우연 💭 프롬의 '의지'와 칸트의 '의무' 사이에서 내가 한 게 없었다는 것 🔥 니체: 이 3년을 영원히 반복해도 좋은가 🕉️ 불교: 내가 붙잡고 있던 건 사랑이 아니라 갈애였다 ⚖️ 결론: 두 철학은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 목요일 오후 3시, 내가 만든 우연 같은 팀 TF에 있던 사람이었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 스탠드업 미팅에서만 자연스럽게 말을 섞을 핑계가 생겼다. 그 30분을 위해 나는 화요일부터 할 말을 준비했다. "그 프로젝트 리서치 자료 정리해뒀어요" 같은, 안 해도 될 일을 굳이 만들어서 말을 걸 구실로 썼다. 슬랙 메시지에 답장이 12분 안에 오면 그날 하루가 통째로 괜찮아졌고, 30분이 넘어가면 뭘 잘못했는지 대화를 처음부터 복기했다. 3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사내 공지방에 청첩장 사진이 올라온 날, 이상하게 슬프지 않았다. 그냥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게 이상해서 이 글을 쓴다. 💭 프롬의 '의지'와 칸트의 '의무' 사이에서 내가 한 게 없었다는 것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1956) 후반부에서 사랑을 "의지의 행위, 즉 내 삶 전체를 한 사람의 삶에 완전히 헌신하기로 하는 결정"이라고 썼다. 같은 책에서 그는 미성숙한 사랑과 성숙한 사랑을 이렇게 가른다. 미성숙한 사랑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성숙한 사랑은 "사랑하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기준으로 3년을 돌아보면 나는 사랑을 한 적이 없다. 나는 결정한 게 하나도 없었다. 고백도, 거절당할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심지어 밥 한번 먹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매주 목요일의 그 30분만 소비했을 뿐이다. 칸트는 『도덕형이상학 정초』에서 사랑을 '경향으로서의 사랑'(pathologische Liebe)과 '실천적 사랑'(praktisc...

💔 이별 63일째, 니체와 불교 사이에서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로 다시 배운 진짜 사랑하는 법

🌙 새벽 2시, 인스타그램 스토리 47개를 넘기다가 지난 6월 어느 새벽, 나는 헤어진 지 63일째 되던 날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봤다. 47개였다. 친구 결혼식, 새로 산 러닝화, 누군가와 함께 먹은 마라탕 사진. 그중 어느 것도 나와 상관없는데 나는 마라탕 사진에서 멈춰서 "저거 예전에 나랑 갔던 집인데" 하고 5분을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이상했다. 나는 슬픈 게 아니라 계산을 하고 있었다. 저 사람이 지금 몇 퍼센트나 나를 잊었을지, 저 표정이 진짜 웃는 건지. 그 밤에 우연히 책장에서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연애 적용 을 다시 꺼냈다. 대학생 때 읽고 밑줄만 긋고 처박아둔 책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게 읽혔다. 📖 "사랑은 기술이다"를 처음엔 완전히 잘못 이해했다 프롬은 1956년에 쓴 이 책 2장 서두에서 사람들이 사랑을 대체로 "빠지는 것"으로 여기지, "숙달해야 할 능력"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가 드는 근거가 재밌는데, 사람들은 사랑받는 법을 고민하지 사랑하는 법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거다. 예뻐지려고, 돈을 벌려고, 매력을 쌓으려고는 애쓰면서 정작 사랑이라는 행위 자체를 훈련하지는 않는다. 나는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그래, 나도 더 노력해서 좋은 사람이 되면 되겠지"라고 오해했다. 그런데 프롬이 말하는 훈련(discipline)은 자기계발이 아니다. 그는 이 능력의 네 요소로 규율(discipline), 집중(concentration), 인내(patience),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일에 대한 절대적 관심(supreme concern)을 꼽는다. 즉 사랑을 잘하려면 '더 매력적인 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실제로 집중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거다. 새벽에 스토리 47개를 스캔하던 나는 정반대로 하고 있었다. 그건 집중이 아니라 감시였다. ⚖️ 니체와 불교가 정확히 반...

💕 권태기는 실패가 아니다: 니체와 붓다에게 물어본 사랑의 권태기 철학적 의미와 진짜 이유

📱 문자 보내는 속도가 달라졌다는 걸 눈치챈 밤 사귄 지 2년 반쯤 됐을 때였다. 예전엔 그이 문자가 오면 화장실에 있다가도 뛰쳐나와 확인했는데, 어느 순간 "이따 답장해야지" 하고 미뤄두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처음엔 죄책감이 들었다. 마음이 식었나, 싶어서. 그날 밤 연남동 카페에서 그이가 "따뜻한 오트밀라떼 하나요"라고 주문하는 뒷모습을 보는데도 예전 같은 심장 반응이 없었다. 근데 이상하게 불안하지 않고, 오히려 그 순간이 편안했다. 이 낙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서 한동안 책만 붙들고 있었다. 💌 프롬이 갈라놓은 두 개의 사랑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 서문에서부터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착각 하나를 지적한다. 사랑을 '빠지는 것(falling in love)'으로만 이해하는 착각이다. 그는 이걸 사랑하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받는' 대상을 찾는 문제로 사람들이 착각한다고 썼다. 낯선 두 사람 사이의 벽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생기는 그 폭발적 친밀감 — 프롬은 이게 강렬하긴 해도 본질적으로 일시적이라고 봤다. 서로에 대해 몰랐던 것들이 익숙해지면 벽은 다시 세워지고, 그 폭발도 가라앉는다. 그가 진짜 사랑이라고 부른 건 그 다음 단계다. 원서에서 프롬은 mature love를 giving의 능력으로 정의하면서, "미성숙한 사랑은 '너를 필요로 하니까 사랑한다'고 말하고, 성숙한 사랑은 '너를 사랑하니까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는 문장을 남겼다. 설렘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결핍이 아니라, 매일 다시 선택하는 행위라는 뜻이다.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기술(art)로 본 이유도 여기 있다. 기술은 연습과 인내, 훈련이 필요하고, 그건 권태로운 순간에도 계속 작동해야 한다. 😈 니체의 악마가 던진 질문을 연애에 적용하면 니체는 《즐거운 학문》 341절에서 악마 하나를 등장시킨다. 그 악마는 어느 날 밤 찾아와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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