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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루한 게 아니라 '그것이' 지루하다 — 하이데거의 권태론과 그 비인칭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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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일 열 시, 형광등 소리만 들리던 순간 3년 전 광고대행사에서 AE로 일할 때, 화요일 오전 10시는 콘텐츠 리뷰 회의였다. 7층 창문 없는 회의실, 프로젝터 화면에는 "0812_카피안_v6_최최종.pptx"라는 파일명이 떠 있었고 팀장은 "이 카피 톤앤매너가 좀 붕 떠 있는 것 같은데"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그 회의실에서 나는 종이컵 테두리를 손톱으로 뜯으며 형광등이 미세하게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었던 날을 기억한다. 초침 소리까지 들렸다는 건 과장이겠지만, 확실한 건 안건의 내용이 하나도 머리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을 곧바로 "나는 그 일에 진짜로 붙잡혀 있지 않았다는 신호였다"라고 해석하는 건 성급하다. 왜 그렇게 읽어야 하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하이데거의 권태의 철학 은 1929-30년 프라이부르크 강의록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이기상·강태성 옮김, 까치, 2001, 3부)에서 지루함을 최소 세 개의 층위로 구분하는 데서 출발하는데, 그 구분의 기준이 바로 이 판단을 정당화하거나 무너뜨린다. ⏳ "그것에 의해"와 "그것과 함께" 사이, 그리고 그 다음 기차역 대합실에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며 시계를 자꾸 보는 지루함이 있다. 이건 "무엇에 의해 지루해짐"이다 — 특정 대상(기다림)이 원인이고, 그 대상이 사라지면(열차가 오면) 지루함도 사라진다. 다른 층위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별다른 문제없이 예의 바르게 대화하고 음식도 나쁘지 않은데, 자리를 뜨고 나서야 "지루했다"는 걸 깨닫는 경우다. 특정 대상 하나를 지목할 수 없고, 그 시간 전체가 뭉근하게 비어 있었다는 감각만 남는다. 하이데거가 정작 파고드는 건 이 둘도 아닌 세 번째, 그가 "깊은 권태"라 부르는 상태다. 여기서는 특정 대상도 특정 시간대도 없다. 존재자 전체가 무차별해지고, 어떤 것도 나를 더 이상 붙잡지 못하는...
🍎 존재는 왜 자꾸 형태를 바꾸는가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하이데거까지, 우시아 개념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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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의 사과, 그리고 이상한 질문 🍎 대학교 1학년 철학개론 첫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사과 하나를 들고 물었다. "이 사과를 사과이게 하는 것은 뭐죠? 껍질을 벗기면 사과가 아닌가요? 갈아서 주스를 만들면요?" 스무 살짜리들 앞에서 참 유치한 질문 같았는데, 나는 그 뒤로 이십 년 가까이 그 질문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이사를 몇 번 다니면서 물건은 다 바뀌었는데 나는 왜 계속 "나"라고 불리는지, 회사가 사람을 몇 번이나 갈아치워도 왜 여전히 "같은 회사"라고 부르는지 — 결국 다 같은 질문의 변주였다. 그리고 이 질문의 그리스어 이름이 바로 우시아(ousia) 개념 변천사 +개념+변천사)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해서 중세 신학을 거쳐 하이데거에게까지 이어지는,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끈질기게 살아남은 개념 하나를 오늘 따라가보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있다"는 것의 진짜 주인을 찾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시아를 두 가지 층위에서 썼다. 『범주론』에서는 꽤 소박하다. "제1 실체"는 "이 사람", "이 말(馬)"처럼 눈앞의 구체적인 개체다. 반면 "인간"이나 "동물" 같은 종과 유는 "제2 실체"로, 개체에 종속된 개념일 뿐이다. 그런데 후기 저작인 『형이상학』 Z권(제7권)으로 가면 입장이 뒤집힌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짜 우시아는 질료(hyle)가 아니라 형상(eidos)이라고 말한다. 청동 조각상에서 청동은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녹여 부을 수 있지만, "이 조각상을 이 조각상이게 하는 것"은 청동에 새겨진 형상이라는 것이다. 이 전환이 중요하다. 우시아는 처음부터 "변하지 않는 실체"라기보다, "그것을 그것이게 만드는 근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를 계속 재정의해나가는 탐구 과정 그 자체였다. ...
⏳ 권태의 현상학: 하이데거와 스벤젠이 말하는 지루함이라는 사건, 지하철 12분이 남긴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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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플랫폼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주 전 퇴근길, 다음 열차까지 12분이 남았다는 전자 안내판을 보고 나는 이상하게 멈춰 섰다. 휴대폰 배터리는 죽어 있었고, 읽을 책도 없었고, 옆에 말을 걸 사람도 없었다. 그 12분 동안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간이 그냥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뭔가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권태의 현상학 이라는 게 단순히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처럼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날 밤 나는 하이데거의 강의록과 라스 스벤젠의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두 사람 모두 지루함을 진지하게 다룬 철학자다. 그런데 접근하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하이데거는 지루함을 존재 자체가 드러나는 순간으로 보고, 스벤젠은 그것을 근대라는 특정한 시대가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로 본다. 이 둘을 나란히 놓고 보면, 지루함이라는 흔하고 하찮아 보이는 감정이 얼마나 다층적인 사건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 하이데거의 세 겹의 권태 하이데거는 1929년에서 30년 사이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한 강의, 흔히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로 번역되는 강의록에서 권태(Langeweile)를 세 단계로 나눈다. 첫 번째는 '무언가에 의해 지루해지는 것'이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상황이 대표적 예다. 여기서 지루함은 명확한 대상, 즉 '기다림'이라는 특정 상황에 묶여 있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느끼며 시계를 자꾸 쳐다본다. 두 번째는 '무언가와 함께 지루해지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저녁 파티에 초대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 시간 전체가 텅 비어 있었다는 느낌을 예로 든다. 이때 지루함은 특정 대상이 아니라 상황 전체의 분위기에 스며 있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이 '심오한 권태(die tiefe Langeweile)'다. 이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 고독의 현상학: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나는 정말 혼자인가 하이데거와 레비나스로 풀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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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두 시, 소리가 나지 않는 방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원룸이었다. 8평쯤 되는 방인데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고, 그날은 그 소리마저 꺼진 새벽 두 시였다. 친구와 잡았던 약속이 그날 오후에 깨졌다. 특별히 슬픈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재생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도 누르지 않은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뭔가를 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이 방에 나 말고 다른 존재가 없다는 사실이 갑자기 물리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그 순간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무섭지도, 슬프지도 않은데 뭔가 텅 빈 느낌. 이 감각을 말로 옮기려다가 결국 하이데거와 레비나스를 다시 펼치게 됐다. 💀 하이데거의 '혼자'는 죽음이 아니라 도피에서 시작한다 『존재와 시간』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걸린 대목은 죽음론 자체가 아니라 그 앞에 나오는 '평균적 일상성' 논의였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세인(das Man)' 속에서 산다고 말한다. 남들이 하는 대로 하고, 남들이 말하는 대로 말하고, 결정도 남들의 눈치를 보며 내린다. 이 상태를 그는 "존재를 도둑맞은" 상태, 정확히는 존재 물음 자체를 회피하는 '비본래성(Uneigentlichkeit)'이라 부른다. 여기서 죽음이 등장하는 이유가 중요하다. 죽음은 "가장 고유하고, 다른 것과 관계할 수 없으며, 뛰어넘을 수 없는 가능성"이라고 하이데거는 쓴다. 남이 대신 죽어줄 수 없다는 뜻만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는 세인의 잡담과 평균적 해석이 더 이상 나를 대신해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본래성은 죽음을 슬퍼하는 태도가 아니라, 세인 속으로 도피하던 나를 다시 나 자신에게 데려오는 사건이다. 흔히 "혼자 죽는다"로 요약되는 이 논의를 다시 보면, 핵심은 죽음이 아니라 '도피로부터의 귀환'이라는 게 더 맞는 독법 같다. 내가 그 새벽에 느낀 텅 빈 감각도 어...
🕰️ 설거지하다 멈춘 일요일 저녁,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진짜 이유는 하이데거의 권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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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2월 어느 일요일, 설거지를 하다가 작년 12월 셋째 주 일요일 저녁 7시쯤이었다. 프리랜서로 넘기던 원고 하나를 막 마감하고, 다음 일감은 아직 안 잡힌 애매한 공백기였다. 밀린 설거지를 하다가 물을 잠그는 순간 라디에이터 돌아가는 소리만 남았는데, 그 정적 속에서 손에 쥔 수세미를 십몇 초쯤 그냥 들고만 있었다. 피곤한 것도 아니었다. 넷플릭스를 켰다가 3초 만에 껐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아무것도 안 꺼내고 닫았고, 휴대폰을 세 번 들었다가 세 번 다 내려놨다. 뭘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는 게 아니라, '하고 싶다'는 감각 자체가 작동을 멈춘 느낌이었다. 이걸 그냥 '무기력하다'고 부르기엔 뭔가 정확하지 않다고 느꼈던 게, 이 글을 쓰게 된 출발점이다. 🌫️ 하이데거가 구분한 세 겹의 권태의 철학 하이데거는 1929년에서 30년 사이 프라이부르크 강의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에서 권태를 세 단계로 나눈다. 첫째는 '무언가에 의해 지루해짐'—기차를 기다리는 역에서 시계를 보는 그 지루함이다. 대상이 명확하다. 둘째는 '무언가와 함께, 그리고 그것에 따라오는 시간에 지루해짐'—저녁 파티는 즐거웠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시간이 텅 빈 채로 흘러갔다는 걸 깨닫는 경우다. 이건 좀 더 은밀하다. 그리고 셋째, 그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깊은 권태(tiefe Langeweile)'가 있다. 원문의 표현을 빌리면 "es ist einem langweilig"—번역하면 "그것은 사람에게 지루하다" 정도인데, 주어가 없다. 나를 지루하게 만드는 대상도, 상황도 없이 그냥 존재 전체가 무차별해지는 상태다. 내가 방금 겪은 설거지 앞의 정지가 이거였는지는 사실 확신할 수 없다. 하이데거 본인도 이 상태를 명확한 증상 목록으로 주지 않는다. 그건 애초에 그가 하려던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이걸 번아웃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
🥱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하이데거는 무엇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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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세 시와 다섯 시 사이 명절 연휴 사흘째였다. 가족들은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고 나는 거실에 혼자 남았다. 창밖의 빛이 오후 3시와 5시 사이 어딘가에 고여 있었다—너무 밝아서 졸리지 않지만, 너무 어두워서 무언가를 시작할 마음도 나지 않는 그 애매한 시간대. 리모컨을 들었다가 놓고, 핸드폰을 켰다가 껐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나를 불러 세우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이름이 마르틴 하이데거였다. 그는 20세기 초, 바로 이 감각—아무것도 아닌 것에 사로잡힌 기분—을 철학의 핵심 주제로 끌어올린 사람이다. 🚂 하이데거가 기차역에서 시작한 것 하이데거는 1929-30년 겨울학기 프라이부르크 강의 『형이상학의 근본 개념들』(*Die Grundbegriffe der Metaphysik*, GA 29/30)에서 권태(Langeweile)를 세 가지 층위로 해부한다. 그가 첫 번째 사례로 드는 것은 작은 간이역이다. 기차가 네 시간 늦는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잡지를 읽어 보지만 이내 시들해진다. 시계를 본다. 삼십 분이 지났을 뿐이다. 이 상태를 하이데거는 *von etwas gelangweilt sein*(무언가에 의해 지루해진다)이라 부른다—지루함의 원인이 외부에 특정되어 있는 형태다. 두 번째 층위는 더 미묘하다. 지인의 저녁 식사 자리. 음식도 나쁘지 않고 대화도 흐른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 문득 자신이 그 자리에서 지루했다는 걸 깨닫는다. 무엇이 지루했는가를 꼭 집을 수 없다. 하이데거는 이를 *sich langweilen bei etwas*(무언가를 하면서 스스로 지루해진다)로 구별한다. 대상이 아닌 나 자신 쪽으로 시선이 이동한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진정으로 주목하는 것은 세 번째 형태다. 💭 "그냥 지루하다"는 말의 철학적 무게 *Es ist einem langweilig.* 번역하면 "그냥 지루하다"—그런데 이 독일어 문장에는 주...
🥱 스마트폰이 훔쳐간 것: 하이데거의 '깊은 권태'는 왜 지금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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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터리가 나간 열다섯 분 작년 봄, 지하철에서 배터리가 나갔다. 합정에서 이대까지, 열다섯 분 남짓 되는 거리였다. 충전기도 없었고, 옆 사람에게 폰을 빌릴 만큼 급한 일도 아니었다. 그냥 앉아 있었다. 처음 5분은 괜찮았다. 창밖을 봤고, 맞은편 사람들 표정을 훑었다. 그런데 그다음 5분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시간과 내가 직접 맞닥뜨리고 있다는 감각이 슬금슬금 불안처럼 올라왔다. 지루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지루함에 도달하기도 전에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이 경험을 곱씹다가 하이데거의 권태의 현상학 을 떠올렸다. 그리고 왜 그 열다섯 분이 철학적으로 생산적인 지루함으로 이어지지 못했는지가 궁금해졌다. 🧠 하이데거가 구분한 권태의 세 층위 1929년에서 1930년 사이,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Die Grundbegriffe der Metaphysik)이라는 강의를 했다. 그 강의의 상당 부분이 '권태'(Langeweile) 분석에 할애되어 있는데, 하이데거는 권태를 세 층위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무언가에 의해 지루해지는 것'(Gelangweilt-sein-von)이다. 기차가 두 시간 늦는다, 약속이 취소됐는데 이미 카페에 와 있다. 지루함의 원인이 특정 상황에 있고, 그 상황이 나를 붙잡고 있다. 빠져나오고 싶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다. 두 번째는 '무언가와 함께하며 스스로 심심해지는 것'(Sich-langweilen-bei)이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우리는 심심함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핸드폰을 꺼내 든다. 하이데거는 이를 'die Zeit vertreiben'—시간을 '몰아내기'라고 부른다. 권태를 '죽이려는' 시도다. 핵심은, 이 시도 자체가 그 밑에 권태가 있다는 사실을 역으로 드...
🧠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 그 이상한 오후, 하이데거가 평생 기다린 심층 권태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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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터리가 나간 그 오후 지난 주말 오후, 홍대 근처 카페에서 스마트폰 배터리가 나갔다. 충전기를 빌릴 수 있는 카운터가 세 걸음 앞에 있었다. 하지만 일어서지 않았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기다리는 것도, 확인해야 할 것도, 당장 연락해야 할 사람도 없었다. 처음엔 손이 자꾸 테이블 위를 더듬었다. 스마트폰을 찾는 동작인데,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손은 그 동작을 반복했다. 5분쯤 지나자 그 반사가 멈췄다. 그리고 이상한 감각이 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지루하다는 것과는 달랐다. 지루함은 방향이 있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할 게 없다'는 느낌이다. 그날 오후의 것은 달랐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구 자체가 없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고, 카페 안의 소음이 거리를 두고 들렸다. 이상하게 편안했고, 동시에 이상하게 낯설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게 하이데거가 평생 기다린 것이었다. 🌀 하이데거의 권태 3단계—세 번째만이 다르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1929-30년 겨울학기 프라이부르크 대학 강의에서 권태(Langeweile)를 세 단계로 분석했다. 이 강의록은 사후에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Grundbegriffe der Metaphysik)로 출판됐다. 하이데거가 이 강의에서 권태에 할애한 분량만 300페이지가 넘는다. 첫 번째는 *gelangweilt werden von etwas*—무언가에 의해 지루해지는 것. 연착한 기차를 기다리는 상황처럼, 원인이 외부에 있고 그것이 제거되면 끝난다. 두 번째는 *sich langweilen bei etwas*—무언가와 함께하면서 스스로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 의무적으로 참석한 파티에서 모두가 즐거운데 혼자만 어색한 상황이다. 원인이 애매해진다. 세 번째가 다르다. *Es ist einem langweilig*—직역하면 '어떤 이에게 지루하다'인데, 여기서 '어떤 이'(einem)는 불특정하다. 주어가 사라진다. 이 형...
🌀 손이 먼저 움직였다—하이데거의 심오한 권태에 대하여: 시간의식과 현존재의 권태 세 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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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이 먼저 움직였다 몇 주 전 일요일 오후, 마감 글도 없었고 밀린 청소도 끝낸 상태였다. 저녁 약속도 없었다. 완벽하게 비어 있는 시간이었다. 소파에 앉아 십오 분쯤 지났을 때, 손이 저절로 핸드폰 쪽으로 갔다. 내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 그냥 갔다. 그 순간 나는 멈췄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싶어서 이걸 집은 거지?" 답이 없었다. 원하는 것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루함도 피곤함도 아닌, 이상하게 낯선 상태였다. 그게 권태였다. 하지만 내가 이름 붙일 수 있는 종류의 권태가 아니었다. 🧠 하이데거가 구분한 권태의 세 층위 마르틴 하이데거는 1929~30년 겨울 강의 『형이상학의 근본 개념들』에서 권태를 세 층위로 나눈다. 첫 번째는 '무언가에 의해 지루해지는' 권태다. 기다리는 기차가 늦거나, 긴 강연이 지루한 것. 원인이 특정되고, 원인이 사라지면 권태도 사라진다. 두 번째는 '무언가와 함께 지루해지는' 권태다. 재미없는 파티에 참석해서 어색하지 않으려고 자리를 지키는 상태. 이건 사회적 맥락이 만드는 권태다. 세 번째가 하이데거가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이것을 'Es ist einem langweilig'—'사람에게 권태롭다'고 표현한다. 주어가 없다. 원인도 없다. 일요일 오후의 그 이상함이 정확히 이것이었다. 기차가 늦은 것도, 파티가 재미없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다. 아무것도 나를 끌어당기지 않는다. 이 세 번째 권태에서 하이데거가 중요하게 본 것은, 특정 대상에 대한 흥미 상실이 아니라 나 자신의 현존 자체가 무게 없이 덩그러니 드러난다는 점이다.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지는 그 순간이, 아무것에도 가려지지 않은 나의 가능성을 노출시킨다. ⏳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의 의미 독일어로 권태는 Langeweile, 직역하면 '긴 시간'이다. 왜 권태로울 때 시간...
🌿 권태는 적이 아니다: 지루함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 하이데거가 들려주는 실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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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탁기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던 오후 작년 봄이었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던 오후. 핸드폰을 들었는데 딱히 열고 싶은 앱이 없었다. 창문 밖 가로수를 한참 봤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예쁜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슬프지도, 딱히 피곤하지도 않았다. 그냥 어딘가 비어 있는 것 같은 느낌. 그 '어딘가'가 어딘지 모른다는 게 더 이상했다. 나는 그게 실존적 권태 였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리고 더 나중에야, 권태가 꼭 없애야 할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보통 권태를 병처럼 취급한다. 지루하면 스마트폰을 꺼내고, 빈 시간이 생기면 채워 넣으려 한다. 자극을 못 받는 상태, 생산성이 제로인 상태—권태는 현대 사회에서 거의 결함처럼 읽힌다. 그런데 철학은 오래전부터 이걸 다르게 봐왔다. 병이 아니라, 어떤 진실이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으로. 🧠 하이데거가 권태를 가장 중요한 기분이라 부른 이유 마르틴 하이데거는 1929-30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강의에서 권태(Langeweile)를 철학의 핵심 주제로 놓았다. 이유가 흥미롭다. 그에게 기분(Stimmung)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세계가 어떻게 열리는지를 결정하는 존재론적 조율 장치다. 기분이 달라지면 세계 자체가 달리 보인다. 그 중에서도 권태는 독특하다. 기쁨이나 불안은 특정 대상을 향한다. 기쁨에는 원인이 있고, 불안에는 대상이 있다. 그런데 깊은 권태—하이데거가 '심층 권태(tiefe Langeweile)'라고 부른 것—는 아무것도 향하지 않는다. 특정 상황이 지루한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상태다. 세탁기 소리가 크게 들리던 그 오후처럼. 하이데거는 이 텅 빔이 사실을 드러낸다고 봤다.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많은 것들—일, 관계, 루틴—로 자신을 메우며 사는지. 권태가 그것들을 걷어내면, 그 아래에 있던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시간을 살고 있는가. 🌿 피투성: 내가 나...
🕰️ 하이데거의 심심함 존재론 — 심심함이 존재의 문을 두드리고, 지루함이 온 세계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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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감 다음 날의 이상한 공기 작년 겨울, 세 달을 매달렸던 보고서를 제출하고 나서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피곤하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 감정도 아닌 이상한 공기 속에 있었다. 화면에는 새 탭이 열려 있었고, 커피는 식어가고 있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감각은 있는데, 그 '뭔가'가 무엇인지 몰랐다. 손에 쥔 일이 사라지자, 손 자체가 어색해졌다. 그것을 지루함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무게가 있었고, 우울이라고 부르기엔 방향이 없었다. 나는 그 감각에 이름을 붙이려다 실패한 채로 한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하이데거를 읽다가, 그게 뭐였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 하이데거가 지루함을 세 번 쪼갠 이유 마르틴 하이데거는 1929-30년 겨울학기 프라이부르크 강의록인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Die Grundbegriffe der Metaphysik, 전집 GA 29/30)에서 지루함(Langeweile, 직역하면 '긴 시간')을 철학의 주제로 끌어올린다. 서론이 아니라 강의 전반부 150페이지를 할애해서. 하이데거가 구분하는 지루함은 세 층위다. 첫 번째는 '무언가에 의해 지루해짐(gelangweilt-werden von etwas)'이다. 시골 간이역에서 기차를 두 시간 기다리는 장면. 지루함의 원인이 분명하다. 시간이 눈에 보이게 늘어진다. 우리는 시계를 보고, 주머니를 뒤지고, 발을 구른다. 시간을 '죽이려(Zeitvertreib)' 한다는 표현이 딱 맞다. 두 번째는 '무언가를 하면서 지루해짐(sich-langweilen bei etwas)'이다. 하이데거의 예시는 저녁 파티다. 음식도 좋고, 대화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득 저녁 내내 지루했다는 걸 깨닫는다. 지루함의 원인을 꼽을 수 없다. 특정 순간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형태가 첫 번째보다 더 불투명하고, 그래서 더 불편하다. 세 번째가 핵심이...
😶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때 — 하이데거 Langeweile로 읽는 스마트폰 시대 현상학적 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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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폰을 찾다가 멈춘 순간 작년 겨울, 퇴근하고 돌아와 가방을 내던지고 소파에 앉았다. 이어폰을 꽂으려고 가방을 뒤지다가 손이 멈췄다. 이어폰을 꽂아서 뭘 들을 건지 몰랐다. 팟캐스트를 틀기엔 집중하기 싫고, 음악을 찾기엔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5분쯤 앉아서 아무것도 안 했다. 불편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지루함'이라는 단어는 좀 달랐다. 지루함은 자극이 없어서 생기는 것 같은데, 그날 저녁 내 주변에는 자극이 부족하지 않았다. 스트리밍, 메시지, 피드 — 전부 손닿는 곳에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더 정확한 단어를 나중에 찾았다. 독일어 Langeweile — 하이데거가 1929년 겨울학기 강의에서 집중적으로 파고든 개념이다. 📚 하이데거가 권태를 세 층으로 나눈 이유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Die Grundbegriffe der Metaphysik, GA 29/30)에서 권태를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현존재(Dasein)의 존재 방식을 드러내는 근본 기분(Grundstimmung)으로 분석한다. 세 층위를 구분한다. 첫 번째는 특정 상황이 지루한 경우다. 연착된 기차를 역에서 두 시간 기다리는 것처럼, 외부 자극이 단조로워서 오는 권태. 여기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Zeitvertreib — 시간 죽이기 — 로 반응한다. 핸드폰을 꺼내고, 주변을 기웃거리고. 두 번째는 자신 속에서 지루해지는 경우다. 사람으로 가득 찬 파티에 있는데 공허한 것처럼, 외부 자극은 충분한데 내가 그것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감각. 뭔가 하고 싶은데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는 상태가 여기 해당한다. 세 번째가 하이데거가 가장 주목한 tiefe Langeweile, 심층적 권태다. 외부 상황도 자신도 아닌, 존재 전체가 지루하다는 감각. 이 상태에서 하이데거가 보는 것은 역설적 가능성이다. "권태 속에서 현존재는 가능성들 앞에 내던져진 자신을 만난다(GA 29/30,...
🥱 지루함을 견디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 하이데거와 파스칼의 권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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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시간의 공항 작년 가을, 국내선이 두 시간 지연됐다. 공항 와이파이가 불안정했고 데이터도 됐다 안 됐다를 반복했다. 처음 20분은 익숙한 순서대로 버텼다 — 메시지 확인, 뉴스 훑기, 유튜브 로딩 실패, 또 메시지 확인. 배터리가 걱정되기 시작하자 결국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시작됐다. 불안이 찾아온 것이다. 연락 기다리는 것도 없고, 딱히 놓친 것도 없는데 무언가를 계속 해야 한다는 충동이 물처럼 밀려왔다. 나는 그 느낌을 그냥 '지루함'이라고 불렀는데, 블레즈 파스칼이 350년 전에 이미 똑같은 상태를 해부해뒀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 파스칼이 진단한 것: 전환이라는 도피 파스칼은 1670년 출판된 《팡세》(Pensées)에서 인간의 불행을 하나의 원인으로 환원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하나에서 온다: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것." (§136) 이 구절은 보통 스마트폰 중독을 예언한 문장처럼 인용된다. 그런데 그렇게 읽는 것은 파스칼의 진단을 절반쯤 놓치는 것이다. 그가 지목한 것은 외부 자극에 대한 의존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파스칼은 이를 *divertissement*(전환, 기분 전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간이 사냥을 즐기는 이유는 사냥 자체가 좋기 때문이 아니다. 사냥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허무함과 유한성을 직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극의 내용이 아니라 자극이 채워주는 빈자리다. 공항에서 내가 느낀 불안은 그래서 단순한 심심함이 아니었다. 평소에 자극으로 눌러두었던 것들이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느낌이었다. 파스칼의 언어로는, 나는 divertissement 없이 자신과 단둘이 남겨진 것이다. 🧭 하이데거의 세 종류 권태 마르틴 하이데거는 1929-30년 프라이부르크 강의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에서 권태의 철학 (Langeweile, 문자 그대로 '긴 시간')을 세...
⏳ 기다림의 현상학: 플랫폼에서 하이데거와 레비나스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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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어느 저녁, 2호선 신촌역 플랫폼에 서 있었다. 전광판은 '4분 후 도착'을 표시하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한결같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나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멈췄다. 왜인지는 그때도 잘 몰랐다. 그냥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 4분은 평소와 달랐다. 터널에서 올라오는 바람 소리가 들렸고, 건너편 플랫폼에 서 있는 어떤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피곤해 보였다. 나중에 그 순간을 생각했다. 기다림의 현상학 이란 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상태인가? 우리가 기다림을 견디지 못할 때, 무엇을 회피하고 있는 걸까? 🔍 하이데거: 기다림에도 두 종류가 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 §65와 §68에서 시간성을 분석하면서, 기다림에 해당하는 독일어를 둘로 구별한다. Erwarten(기대)과 Gewärtigen(기다려-가짐)이다. Erwarten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계산하고 통제하려는 태도다. 열차가 언제 오는지 확인하고, 메시지가 왔는지 새로고침하는 것이 그것이다. Gewärtigen은 다르다. 무엇이 올지 확정하지 않은 채, 도래할 것 자체를 향해 열려 있는 구조다. §65에서 하이데거는 쓴다: "Das primäre Phänomen der ursprünglichen und eigentlichen Zeitlichkeit ist die Zukunft." 번역하면 "근원적이고 본래적인 시간성의 일차 현상은 미래다." 하지만 이 미래는 달력의 미래가 아니다. 현존재(Dasein)가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앞서 달려가는(Vorlaufen, §53) 방식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구조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극단에는 죽음이 있다. §53에서 하이데거는 죽음을 "das eigenste, unbezügliche, unüberholbare Sein-können" — "가장 고유하고, 무연관적이며, 추월 ...
🥱 권태의 철학적 구조: 하이데거가 말한 '깊은 지루함'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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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두 정거장, 핸드폰 세 번 3호선 을지로에서 충무로까지는 두 정거장이다. 3분이 채 안 된다. 나는 그 사이 핸드폰을 세 번 꺼냈다가 집어넣었다. 첫 번째는 알림 확인. 두 번째는 음악 변경. 세 번째는—솔직히 이유가 없었다. 손이 먼저였다. 주머니에서 기계를 꺼내고, 아무것도 새롭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다시 넣었다. 반사에 가까웠다. 나중에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무언가를 원했던 게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상태도 아니었다. '원함'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내용이 비어 있는 상태. 철학자들은 이 상태에 오래전부터 이름을 붙여왔다. 권태의 철학적 구조 . 그런데 그들이 말한 권태는 내가 그 순간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구조적이다. 🚪 하이데거의 세 번째 문: tiefe Langeweile가 여는 것 하이데거는 1929-30년 겨울 학기 프라이부르크 강의—나중에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GA 29/30)로 묶인—에서 권태를 세 개의 층으로 해부한다. §18부터 §38까지, 약 200페이지에 걸쳐서. 이 분량 자체가 이미 신호다. 권태는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존재론적 사태다. 첫 번째 권태(gelangweilt werden von etwas)는 특정 대상에 의해 지루해지는 것이다. 기차를 기다리다 지루해지는 것. 두 번째(sich langweilen bei etwas)는 파티에 있으면서 지루한 것—환경이 아니라 내가 지루함을 생산하는 상태다. 그러나 세 번째가 결정적이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tiefe Langeweile, 심층적 권태라고 부른다. 독일어 표현은 "Es ist einem langweilig"—'사람에게 권태롭다'는 뜻으로, 주어가 없는 문장이다. 누가 무엇에 의해 지루한 것이 아니라, 권태로운 상태 자체가 덮쳐오는 것. §29에서 하이데거는 이 세 번째 권태를 이렇게 기술한다. 심층적 권태가 찾아올 때 존재자 전체(das Sei...
🪦 죽음을 직면할 때 비로소 '나'가 보인다: 하이데거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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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밑줄이 남긴 것 몇 해 전,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고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례를 마치고 유품을 정리하는 자리에서 낡은 문고본 한 권을 건네받았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이었는데, 페이지 곳곳에 연필 밑줄이 쳐져 있었다. 그 밑줄들을 따라가다가 이상한 감각에 빠져들었다. 이 사람이 밑줄을 치던 순간, 이 사람은 살아 있었다. 무언가에 끄덕이거나, 저항하거나, 감동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반응의 주체는 없고, 밑줄만 남아 있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흔적은 있는데 사람이 없는 것. 🔒 우리가 죽음을 '관리'하는 방법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직접 사유하지 않는다. 죽음은 뉴스 속에, 부고란에, 병원 복도 안쪽에 있다. 나의 죽음이 아니라 '사람들'의 죽음, 통계 속의 죽음이다. 하이데거는 이 태도를 가리켜 *das Man*—'사람들', '세상'이라는 익명의 집합—에 귀속된 삶이라고 불렀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라는 말은 죽음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죽음의 회피다. '언젠가' 속에 '나'는 없다. 이 회피는 편안하다. 사회 전체가 이 회피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부고 소식을 들으면 "건강 챙기자"고 말하고 돌아선다. 장례는 치러지지만, 죽음은 묵혀진다. 🧠 하이데거가 말한 것, 그리고 말하지 않은 것 하이데거는 1927년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에서 인간 현존재(Dasein)를 "죽음을-향한-존재(Sein-zum-Tode)"로 규정했다. 이 개념은 흔히 오해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죽음을 자주 생각하면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처세술로 읽는다. 하지만 하이데거가 강조한 것은 죽음이 수행해야 할 명상 기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죽음의 세 가지 성격이다. 죽음은 나의 가장 고유한(eigen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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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아크] 제작 효율 최적화 위한 영지 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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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아크] 로스트아크 생활 도구 옵션
생활 도구 옵션 및 확률 | 옵션 | 고급 | 희귀 | 영웅 | 전설 | 유물 | |-------------------------|-------------|------------|-------------|-------------|-------------| | 기본 보상 추가 획득률 | 5~10% | 10~20% | 15~30% | 20~40% | 25~50% | | 희귀 재료 획득률 | 5~10% | 10~20% | 15~30% | 20~40% | 25~50% | | 특수 획득 확률 | 0.5~1% | 1~2% | 1.5~3% | 2~4% | 2.5~5% | | 내구도 미차감 확률 | 2.5~5% | 5~10% | 7.5~15% | 10~20% | 12.5~25% | | 채집속도 | 1.25~2.5% | 2.5~5% | 3.75~7.5% | 5~10% | 6.25~12.5% | | 미니게임 난이도 하락 | 1 | 1~2 | 1~2 | 2~3 | 2~3 | | 미니게임 보상 획득 확률 | 5~10% | 10~20% | 15~30% | 20~40% | 25~50% | | 낚시 캐스팅 등급 | 1~2 | 2~4 | 4~6 | 6~8 | 8~10 | 생활 키트 옵션 정리 - 영웅 등급 생활 도구가 제작 비용면에서 효율 좋음 | 생활 유형 | 필수 옵션 (빨간색) ...
한국 핵무장 논의와 방위산업 관련주: 핵무기 개발 과정과 유망 종목 분석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논의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며 방위산업 관련 주식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핵무기 및 방어 관련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이 관심을 끌고 있어 투자자들에게 큰 잠재적 수혜가 예상됩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 등 외교적 변화는 이러한 방위산업 관련주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 참조: https://gussconomy.tistory.com/entry/한국-핵무장-시나리오-관련주-투자-포인트-총정리 ) 핵무기 생산과정 요약 #### 핵연료 확보 : 고농축 우라늄-235 또는 플루토늄-239와 같은 핵분열 물질을 확보하는 과정입니다. - 우라늄 농축 : 우라늄-235의 비율을 약 90% 이상으로 높이는 과정입니다. - 플루토늄 생산 : 원자로에서 우라늄-238을 중성자로 포획하여 플루토늄을 생성하고 이를 화학적으로 분리합니다. #### 폭발 장치 개발 : 확보한 핵연료를 폭발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치입니다. - 충돌 방식 (Gun-type) :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해 두 덩어리를 빠르게 결합시켜 핵분열을 유도합니다. - 내부 압축 방식 (Implosion-type) : 고폭압력으로 플루토늄을 압축하여 임계 질량을 초과하도록 합니다. ####. 무기화 및 배치 - 폭발 장치를 무기 형태로 조립하여 배치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미사일, 폭격기 등에 탑재될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핵심적인 부분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핵연료 확보 와 폭발 장치 개발 입니다. - 핵연료 확보 : 핵분열 물질 확보가 핵무기 개발의 필수 조건입니다.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생산은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며, 보안과 국제적인 감시가 강화된 부분입니다. - 폭발 장치 개발 : 핵연료가 있어도 이를 효과적으로 폭발시키는 장치가 없다면 무기화가 불가능합니다. 압축 방식 등 폭발 장치 개발 기술이 핵무기의 폭발력과 신뢰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핵연료 확보 관련 기업 - 한전원자력연료 (KEPCO NF) :...